"관객들은 <기억의 전쟁>과 함께 하겠다며 마스크를 끼고 손을 소독하고 장갑을 끼고 자리를 띄어 앉아 영화를 관람했다. 고맙고 반가웠지만 포옹을 할 수도 손을 잡을 수도 없었다. 마스크 너머의 표정과 눈빛으로 연대와 감사의 마음을 주고받았다. 그렇게 열심히 완주해냈다."
[ACT! 120호 이슈와 현장 2020.6.3.]
-정부의 코로나19 긴급지원대책에 배제되었던 영화 <기억의 전쟁>의 사례를 통해
이길보라(영화감독, 작가)
4월 말, 한 영화 주간지 기자로부터 코로나19로 인해 피해를 입은 독립영화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한 좌담회 형식의 인터뷰를 진행한다며 섭외 연락이 왔다. 필요하시면 하겠다고 흔쾌히 대답했지만 마음이 복잡했다. 좌담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거울 것 같았다. 코로나19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례로 몇 차례 인터뷰를 했던 후였다. 안되겠다 싶어 다시 전화를 걸었다. 특별히 어떤 해결 방안이 없는 상황에서 피해 사실을 단순히 기술하는 것은 하고 싶지 않다고, 불쌍하고 안타까운 사례로 소개되는 건 원치 않는다며 거절했다. 며칠 후,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코로나19로 인해 심각한 피해를 입은 영화산업에 대한 170억 원 규모의 긴급지원 대책이 발표되었다. 거기에는 2월 말 극장에서 개봉한 영화 <기억의 전쟁>은 포함되지 않았다.
영화 <기억의 전쟁>은 코로나19가 폭발적으로 확산되던 2월 27일에 개봉했다. 배급사는 독립예술영화를 전문으로 배급하는 ‘시네마달’이었고, 제작사는 내 이름으로 가지고 있는 1인 회사였다.
극장 개봉 홍보를 위한 모든 인터뷰 일정을 마치고 상영 극장들의 명단과 시간표가 올라오던 때였다. 몇몇 극장은 예매 창을 열고 티켓을 판매하고 있었다. 프로듀서가 다급히 전화를 했다.
“지금 상황이 너무 심각해요. 코로나19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다른 큰 영화들은 다 개봉을 미룬다고 해요. 조만간 모든 곳들이 문을 닫을 것 같아요. 우리 영화 어떡하죠.”
해외 출장 중이라 국내 상황이 어떤지 알 수 없었지만 심상치 않은 건 분명했다. 논의 끝에 개봉 일정을 미루기로 했다. 5년 동안 제작한 영화를 이렇게 날려버리고 싶진 않았다. 문제는 대부분의 홍보 기사가 이미 나갔고 예매가 시작된 시점이라는 것이었다. 개봉에 필요한 비용 역시 다 써버린 후였다. 배급사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작진과 논의해봤는데 저희는 이 영화 지금 개봉하고 싶지 않아요. 베트남에 있는 영화 주인공도 비행기가 끊겨 못 오시고, 예정된 행사 모두 취소될 텐데 이런 상황에서 개봉 못합니다. 크라우드펀딩으로 어렵게 개봉 비용도 마련했는데. 이건 정말 아니에요.”
배급사는 단호했다. 방법이 없다고 했다. 배급 비용을 다 지출했고 개봉을 미룬다고 뾰족한 수가 생기는 건 아니라고 했다. 상황이 잠잠해지길 기다렸다 개봉하면 개봉을 미룬 수많은 영화들과 경쟁해야할 텐데 그럼 상영관을 쉽게 확보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는 내게 대안이 있냐고 물었다. 없었다. 개봉을 미루자고 힘주어 말했지만 다시 홍보와 배급을 진행할 비용, 돈이 없었다.
대표는 틈새를 노리자고 했다. 모든 영화들이 개봉을 미뤄 오히려 틀 영화가 없으니 거기에 우리 영화가 들어가는 전략이라고, 개봉 1, 2주차는 어쩔 수 없이 버리고 가자고 말이다. 납득할 수 없었지만 대안이 없었다. 프로듀서는 매번 울면서 전화를 했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개봉 당일, 그래도 개봉일에 영화 봐야 한다며 두 프로듀서가 손을 붙잡고 인디스페이스로 향했다. 그날 그곳에서 우리 영화를 본 사람은 딱 두 명, 두 프로듀서뿐이었다. 문을 닫은 극장이 많아 개봉관이 반 토막, 아니 1/3로 줄었고 상영 회차 역시 크게 줄었다.
많이 울었다. 개봉을 미룰 수 없어 울었고, 배급사 대표가 미워 울었다. 돈이 없는 1인 제작사여서 울었고, 돈이 없는 작은 배급사라 울었다. 큰 영화들과 경쟁할 수 없어 화가 났고, 영화관에 걸릴 영화들이 없는 상황에서도 CGV, 롯데시네마 등의 멀티플렉스 영화관에 우리 영화를 상영할 수 없어 화가 났다. 영화 <기억의 전쟁>은 작은 규모의 독립영화였지만 홍보가 꽤 잘 되었고 시사회 반응도 좋았기 때문에 다들 나름 기대를 하던 터였다. 그러나 이렇게 코로나19가 터질 줄 몰랐다.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개봉하게 될 줄 더더욱 몰랐다.
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영화 개봉했으니 보러오라는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어렵사리 말을 꺼내면 다들 난처해했다. 애가 있어서, 집에 어르신이 계셔서. “아니에요, 제가 말을 괜히 꺼내서. 죄송해요, 건강 잘 챙기시고요.” 전화를 끊었다. 정부가 강력하게 사회적 거리 두기를 권고하는 상황에서 극장으로 오라고 청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해야 했다. 극장에 걸린 우리 영화를 누군가는 지켜야 했다.
개봉 3주차가 되자 코로나19가 대구, 경북 지역을 중심으로만 확산하는 것 같아 서울에서 행사를 천천히 안전하게 열어보기로 했다. 극장, 배급사와 논의 후 안전한 관람 수칙을 만들어 영화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GV)를 진행했다. 코로나19가 터진 후 처음으로 진행하는 영화 관련 행사였다. 누군가는 상황이 이런데 행사를 하냐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지만 이렇게 영화를 버릴 순 없었다. 돈이 없어서, 작은 영화여서 지금 개봉할 수밖에 없었던 영화, 우리가 지켜야 했다.
관객들은 <기억의 전쟁>과 함께 하겠다며 마스크를 끼고 손을 소독하고 장갑을 끼고 자리를 띄어 앉아 영화를 관람했다. 고맙고 반가웠지만 포옹을 할 수도 손을 잡을 수도 없었다. 마스크 너머의 표정과 눈빛으로 연대와 감사의 마음을 주고받았다. 그렇게 열심히 완주해냈다. 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극장을 찾는 관객, 약속대로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 힘 보태겠다며 토크 세션에 게스트로 참여해주시는 분들과 함께 했다. 서로 위로하고 연대하며 속상하고 화나는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이런 상황에서 이만큼 해낸 것만으로도 정말 잘한 거라며 서로를 다독였다.
그러나 문화체육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의 대책은 그렇지 않았다. 정부가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은 긴급지원대책을 마련하지 않자, 2020년 4월 6일부터 4월 12일까지 23개 단체와 52명의 개인 총 75곳이 코로나19 독립영화 공동행동이라는 이름으로 피해사실을 조사하여 입장문(*주1)을 발표했다.
그러나 현장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않았다. 코로나19가 터졌을 때 극장에 걸려 있던 작은 영화들, 관객이 없을 것이란 것을 알고도 개봉할 수밖에 없었던 작은 제작사와 배급사의 영화들, 잠깐 문을 닫거나 혹은 닫을 수 없었던 독립예술영화전용관들에 대한 지원은 손소독제 지원과 일회성 방역 말고는 전무했다. 절망스러웠다.
어쨌든 개봉했고, 이후 일정들도 안전하게 잘 소화해냈다고 평가하던 중이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함께 한 제작진, 배급사, 극장, 관객이 있어, 코로나19로 인한 휴관을 마치고 개관하는 극장들이 두 달 전에 개봉한 우리 영화를 개봉작으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용기와 의리에 감사해 힘을 내던 때였다.
그런데 우리 영화는 개봉했으니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고 개봉을 미룬 영화들은 피해 사실이 있으니 지원 대상에 포함된다는 말이 너무 속상했다. 프로듀서는 이게 우리가 돈이 없어서 그런 거라며 계급을 운운했고 나는 이럴 거면 처음부터 작은 영화, 다큐멘터리 영화 하지 말 걸 그랬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이후 영화진흥위원회 주최로 간담회가 열렸지만 갈 수 없었다. 개문발차 같은 말이 조롱처럼 들렸다. 이 상태로는 소통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태로는 가서 소리를 지르거나 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 같아서, 마음이 너무 속상해서, 영화 만드는 일을 포기하게 될 것 같아 가지 못했다. 우리의 사례는 이미 코로나19 독립영화 공동행동 피해사실에 기술했으니 정부 측에서 읽고 지원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얼마 전, 4차 간담회가 열렸다. 긴급지원 소식은 없었다. 이번에 가지 않으면 우리 영화는 아예 배제될 것 같았다. 용기를 내어 참석했다. 다양한 분야의 독립예술영화인들이 모였다. 덤덤하게 피해 사실을 얘기하려 했지만 마이크를 잡은 손이 덜덜 떨렸다.
“저는 정부 지원사업의 목표는 모두에게 같은 출발점을 만드는 데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는 모두에게 닥쳤지만 그 지원 대책은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습니다. 저는 저희 제작진과, 배급사, 저희 영화를 상영했던 용기 있는 극장들과 영화를 계속 하고 싶습니다.”
이 말을 하기까지 정말 오래 걸렸다. 말을 할 자리도 없었고, 상대방이 내 말을 진심으로 들어줄 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우리 영화가 정부긴급지원을 받을 수 있을지 아닐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간담회 자리를 만들고 지켜온 이들이 있어 말할 수 있었고 상대방이 듣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속도를 멈추고 문을 열었기 때문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코로나19는 전 세계 경제 전체를 흔들었고 우리의 생활·사고방식을 뒤집었다. 천천히 사라지던 극장 문화는 조금 더 빠르게 사라질 것이고, 우리는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건 영화계에 종사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잘 듣고 모으고 수집하고 기록하는 것, 함께 모여 미래를 상상해내는 것이어야 한다.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나올 수 있는 평등한 자리를 만들고 나오지 못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를 상상하는 일, 그 목소리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지켜내는 것이 우선이어야 할 것이다.
코로나19가 닥친 후 한 방송국 기자가 물었다. 이렇게 생계가 어렵고 관객이 없는데 어째서 이 일을 계속 하냐고 말이다.
“예술은 돈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려면 다른 일을 했겠죠. 세상에는 돈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가치들이 있어요. 그래서 ‘독립영화’라는 말이 생겨났죠.”
그렇다. 나는 그래서 독립영화를 시작했다. ‘독립’과 ‘영화’라는 단어를, 내가 몸담고 있는 이 판을 다시금 믿어볼 것이다. □
글쓴이. 이길보라(영화 감독, 작가)
- 농인 부모로부터 태어난 것이 이야기꾼의 선천적인 자질이라고 믿고, 글을 쓰고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는다. 18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동남아시아를 홀로 여행하며 겪은 이야기를 책 『길은 학교다』(2009)와 『로드스쿨러』(2009)로 펴냈다. 농부모의 반짝이는 세상을 딸이자 감독의 시선으로 담은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2014)를 찍고, 동명의 책 『반짝이는 박수 소리』(2015)를 출간했다.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 학살에 대한 서로 다른 기억을 다룬 영화 <기억의 전쟁>(2018)은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부문 심사위원 특별언급을 받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방송영상과 학사 과정과 Netherlands Film Academy의 Artistic Research in and Through Cinema 영화학 석사를 마쳤다.
*주1. 코로나19 독립영화 공동행동 입장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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