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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을 넘어, 무선적 상상력의 정치로 : 『아키바 손의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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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9. 5. 9.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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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14호 리뷰 2019.05.25.]

 

손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을 넘어 무선적 상상력의 정치

- 『아키바 손의 사고(코가와 테츠오, 2018)

 

최혁규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아키바 손의 사고』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이것 먼저 짚고 가자. 우선, 책의 저자인 코가와 테츠오는 이 책을 통해 일본 전자 부품 유통의 중심지였던 아키하바라를 중요한 참고항으로 하여 “나에게 ‘손의 사고’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어떻게 길러지고 ‘익숙’해졌는지, 그리고 지금 이렇게 혼란을 일으키기 시작한 과정 전체를 더듬어 보려”(344)고 시도한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자유 라디오 운동에 대한 지침서나 라디오아트에 대한 예술서적이 아니라, 예술가이자 교육가이며 미디어 활동가인 테츠오가 현재의 자신을 만들어낸 장소와 신체 그리고 활동 궤적에 대해 술회한 에세이적 실천이라고 볼 수 있을 테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서 아키하바라의 역사적 변화에 대해, 그리고 자유 라디오 운동에 대해, 손의 제작문화에 대해 논리적으로 잘 설명된 글을 볼 것이라고 기대했다면 큰 오산이다. 이는 그의 글을 힐난하거나 평가 절하 하는 것이 아니라 모호한 성격의 이 글을 명확히 위치 짓고자 함이다. 그래서 오히려 우리는 그를 오랫동안 아키하바라를 드나들면서 그곳의 변화를 예리하게 포착하는 문화비평가이자, 송신기 제작 퍼포먼스를 통해 라디오아트를 개척한 예술가이자, 자신의 예술적·기술적 실천을 적극적으로 해석해내는 현상학자로 바라봐야 한다. 이런 면에서 여러 재주를 가진 이 ‘전자 예인’의 활동 궤적과 생각의 흐름이 담긴 비망록을 들춰보는 행위는 참 흥미롭다.

▲ 『아키바 손의 사고』(코가와 테츠오, 2018) 



아키하바라, 그리고 라디오가 낳은 상상력

  책을 독해하는 방식은 두 갈래가 있다. 하나는 저자의 자전적 경험에 입각한 철학적 저술로 간주하여 그의 생각에 공감하여 개념적 아이디어를 얻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이 에세이를 재료로 삼아 저자의 삶의 궤적을 재구성한 뒤 이를 둘러싼 맥락과 환경을 추적하고 분석하면서 역사적 교훈을 도출해내는 방식이다. 후자는 욕심을 부려볼 만한 작업이다. 자유롭고 국제적인 예술가이자 실천가인 테츠오의 노마드적 삶과 소비자본주의 문화와 권력을 비판하는 그의 언술, 그리고 우연성에 기반 한 새로운 기술적·예술적 실천들을 끊임없이 실험하는 그의 활동을 보고 있으면, 이 인물이 어떤 역사적인 배경과 사회경제적인 맥락 속에서 자신의 삶을 구축해왔는지가 궁금해진다. (또는 이탈리아의 철학자이자 미디어활동가인 비포(Bifo)에게도 동일한 분석을 해보며 이 둘을 서로 비교해볼 수도 있을 테다.) 하지만 이 질문은 서평에서 다룰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니 넘어가도록 하고, 그의 활동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사상적이고 관념적 차원에 초점을 맞춰보자.
  『아키바 손의 사고』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1장은 망각된 아카하바라의 기억을 복원한다. 테츠오는 미군 부대에서 흘러온 물건이나 중고 부품 등을 팔던 정크숍과 여러 전자상회들이 가득하던 아키하바라의 거리와 상가를 드나들면서 라디오 자가 제작, TV키트 제작, 컴퓨터 조립 등 전자기기의 조립을 익혔다. 그리고 이윽고 그는 자가제작하는 DIY 문화에 빠져든다. 당대의 ‘정크’(junk, 폐품, 폐기물)의 문화는 그에게 신성한 정서까지 느끼게 할 정도로 그에게 깊은 영향을 줬지만 일본 경제 성장과 소비 자본주의의 등장은 정크의 거리를 밀어버리고 유명 메이커의 완제품을 가판대에 올려놨다. 컴퓨터의 등장으로 다시 컴퓨터의 정크가 돌아오는 듯싶었는데, 이는 납땜 없이 단순 조립만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이제 아키바는 성인물과 오타쿠 서브컬쳐가 넘치는 비즈니스의 거리가 되었다. 한때 “아키바의 육체파”였다고 자처하던 그는, 이러한 변화를 디지털 시대의 도래로 인해 육체성을 결여한 현대인이 균형을 잡으려고 하는 행위로 포착하고 비평한다.
  2장에서 그는 자신의 라디오 작업을 통해 ‘손’에 주목한다. 그는 “손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손에 기계와 인간의 관계가 달려 있다고 한다. 이러한 생각은 그가 철학 석사학위 때 주요한 근거가 되었던 학자 후설과 메를로-퐁티에 영향을 받은 것인데, 그는 메를로-퐁티(Mauice Merleau-Ponty)를 따라 이렇게 이야기한다. “신체를 신체답게 보여 주는 기관이 바로 손이다. 신체는 ‘지각하는 주체’인 동시에 ‘지각되는 객체’이기도 한 이중성을 품고 있다. 오른손으로 왼손을 잡을 때 오른손을 주체이며 왼손은 잡히는 객체다. 물론 왼손으로 오른손을 잡을 때는 관계가 역전된다. 어떻게 같은 신체가 이러한 위상 변환을 일으키는가? 신체에 대한 사고는 이러한 물음에 도달한다.”(125). 뿐만이 아니다. 그는 “인간의 진정한 조건을 손으로 생각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드니 드 루즈몽(Denis de Rougemont)의 말을 인용하며, ‘머리로 사고하고 손으로 행동한다.’는 기존의 통념을 전복시킨다. 이렇게 그의 손에 관한 인문학적 성찰과 라디오 작업에 대한 단상들을 따라가다보면, 자신의 활동 일지를 담은 3장에 다다른다. 여기서는 이리저리 유랑하는 “손의 여행”기를 볼 수 있다. (한국의 SFX와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참여, 용산과 세운상가의 방문일지는 꽤 소소한 재미를 준다.) 

 

▲ 『아키바 손의 사고』의 저자 코가와 테츠오 라디오 퍼포먼스 


2010년대, 지금 가능한 ‘무선적 상상력’은 무엇인가?

  이렇게만 나열해 보면, 『아키바 손의 사고』는 제목 그대로 아키하바라랑 손의 사고에 대한 에세이처럼 보인다. 하지만 언제나 핵심 자유라디오 운동 또는 미니FM 운동, 나아가 라디오아트에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미디어 운동가로서 그의 정치적 실천에 주목해봐야 한다. 그런 면에서 테츠오 활동의 핵심은 송신기 조립 과정을 보여준 뒤 전파를 송신하는 퍼포먼스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그는 1980년대 초부터 라디오 송신기를 실험하면서 1992년에서야 송신기 제작 퍼포먼스를 하게 되고 이는 그의 활동에 큰 전환점을 가져다준다.
  이는 라디오 송신기를 자기 통제 도구로 간주하여 새로운 유형의 의사소통을 실험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는 일방향적인 수신만 가능한 전통적인 라디오 청취 방식을 넘어 각 개인이 라디오 송신과 수신을 통제하면서 커뮤니케이션을 확장하고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시도을 펼치려 한다. 그가 처음 라디오 송신기 퍼포먼스를 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압축한 글인 <다형성의 라디오를 향하여>(1992)에 따르면, “자유라디오는 (...)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 안에서 발화자와 청자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본질을 바꿀 수 있게 유도하는 것”(351)이라는 의도를 밝힌다. 이 이유는 다음과 같다. “전파는 모두를 위한 것이다. 국가가 독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책에서 간간이 언급되고 있는 ‘무선적 상상력(wireless imagination)’이라는 개념을 주의깊게 살펴봐야 한다. 그는 글의 곳곳에서 손의 사고와 분자정치 등 자신에게 영향을 준 여러 사상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 중에 그의 사상과 활동을 잘 대변할 수 있는 용어는 바로 이것이다. 그는 미래운동의 창시자 마리네티를 따라 자신의 퍼포먼스의 핵심을 ‘무선적 상상력’이라고 지칭하고, 또한 이반 일리치를 참고하여 송신기 제작 행위를 공유를 통해 해방감과 기쁨을 가져다주는 ‘공생적 도구(tools for convivial)’라고 언급한다. (‘무선적 상상력’ 개념과 역사는 화이트헤드와 칸이 공저한 『무선적 상상력: 사운드, 라디오, 그리고 아방가르드(wireless imagination: sound, radio, and avant-garde)』를 참고하라.) 테츠오의 라디오 활동을 관통하는 목표는 일방향의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청취자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서로 상호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술적 조건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즉, 그는 라디오 송신기 제작을 통해 커뮤니케이션의 지리적 제약과 한계의 극복을 시도하는 무선적 상상력을 발휘한다. 이는 전자 커뮤니케이션의 물적 조건인 전파와 수신기가 가진 권력에 균열을 내고자 하는 기술-정치적 해킹(hacking)이자 연대와 공동체를 구성하고자 하는 사회운동이다.
  하지만 한계 또한 짚고 넘어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정치에서 공동체와 연대는 최소한의 전제 조건이기 때문이다. 라디오 송신기 제작과 이를 활용한 자유라디오 혹은 공동체라디오 운동이 개인들로 파편화되어 있는 사회적 관계를 회복하고 서로를 공동체로 결속시켜줄 수는 있지만, 그러한 형식만으로는 새로운 정치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즉 연대와 공동체의 결속이 어떠한 적대적 정치적 전망을 가질 것인지와 직결되는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라디오 운동은 연대와 공동체를 구성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 기반으로 어떤 정치적 싸움으로 나아갈지 그 전망에 대해 계속 물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철학자이자 미디어활동가이자 예술가의 테츠오는 그리고 『아키바 손의 사고』는 이러한 현실 정치적 전망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츠오가 말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발상”으로 보자면) 『아키바 손의 사고』가 우리에게 요청하듯 자유라디오, 공동체라디오, 라디오아트 등의 미디어 운동은 공동체와 연대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개입의 지점들을 끊임없이 모색해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시작은 손을 이용한 제작 또는 해킹을 통한 새로운 미디어 조건의 창출이다. 이를 통해 연대와 공동체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은 정치의 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이 조건을 확보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대항 커뮤니케이션도 적대적 정치도 가능해질 수 있다.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이 질문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지금의 기술·미디어 환경에서의 ‘무선적 상상력’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미디어는 어떻게 ‘공생적 도구’가 될 수 있을까? 첫 번째 독법에 따라 그의 경험과 생각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면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공동체의 결속과 적대의 정치를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기술·미디어의 조건들을 계속 탐문해봐야 한다. □



글쓴이. 최혁규 /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 문화연대 활동가를 거쳐 기획·실무·연구를 병행하며 먹고 살고 있다. 학부에서는 공학과 철학을, 대학원에서는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했지만, 인류학적 현장연구에 가장 흥미를 느낀다. 현재는 몇몇 동료들과 함께 청계천·을지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이 일대의 기술문화와 도시 상공업을 조사하고 있다. 연구를 업으로 삼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재개발을 막는 데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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