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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13호 리뷰] 기록의 성찰, 그 너머의 가능성 - 다큐멘터리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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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9. 3. 7.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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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이번 ‘ACT!’ 리뷰에서는 박주환 감독의 다큐멘터리 <졸업>을 소개합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기 상지대학교 투쟁을 기록한 영화 <졸업>은 지난 해 인디다큐페스티발을 통해 처음 소개되었습니다. 이후 영화는 여러 영화제와 기획전을 거치며 관객을 만났고 그들의 호응을 발판 삼아 서울독립영화제2018에서 최우수장편상을 수상하였습니다. 2019년에는 <졸업>이 보다 다양한 경로로 더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있길 희망합니다. - 임종우 (ACT! 편집위원)




[ACT! 113호 리뷰 2019. 3. 14]


기록의 성찰, 그 너머의 가능성

- 다큐멘터리 <졸업>


장준혁(다큐멘터리 영화감독)



  상지대학교는 과거 김문기 전 이사장과 구재단의 파행적 운영으로 한때 비리사학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다. 이후 학내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1993년 김문기 전 이사장이 구속되면서 상지대학교의 분규와 사학비리의 논란은 일단락 되어가는 듯 했다. 그러나 2007년 대법원의 ‘임시이사의 정이사 선임 무효’ 판결을 기점으로 비리 사범 김문기 전 이사장과 구재단의 상지대 귀환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이에 반발한 상지대 구성원들은 연대와 투쟁을 시작한다. 영화 <졸업>은 이 투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 다큐멘터리 <졸업> (박주환, 2018)



  영화의 시작과 함께 시간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그 시간은 상지대 학생의 학교 정상화 투쟁 과정을 따라 다시 선형적으로 흐른다. 이 긴 시간에 대한 기록은 그 자체로 관객을 압도한다. 촬영을 위협하는 사람들로부터 끝내 지켜낸 감독의 카메라 속에는 거대한 투쟁의 역사가 남았다. 그 현장을 스크린을 통해 목격한다는 것은 뜨거운 영화적 경험이다. 사회운동을 중심으로 피어난 기존 한국 독립다큐멘터리가 그렇듯 <졸업> 또한 기록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이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 문제를 제기하며 자기 나름의 민주주의 실현의 의지를 품고 있다. 그것은 직장 내 수직관계에 대한 것일 수 있고, 성평등, 혹은 사회적 약자 차별 문제일 수도 있다. 상지대 학생들이 마주한 문제는 김문기 전 이사장과 비리재단의 복귀였다. 학생들은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의 민주주의를 세상에 보여주었다. 박주환 감독 그들이 겪은 지난한 싸움을 한 편의 영화로서 세상 밖으로 이끌어 내었다. 위에서 언급한‘기록’으로서 영화 <졸업>의 가치는 여기서 나온다. 영화 도입부에 삽입된 내레이션으로 ‘학교의 문제를 학교의 주인인 학생들이 그저 지켜볼 수는 없었다.’는 말이 때로는 상투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되는 말이기도 하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민주화 아래 피어났듯, 우리는 민주화를 외쳤던 사람들의 목소리 위에서 지금을 살고 있다. 


▲ 다큐멘터리 <졸업> (박주환, 2018)



  영화 내 주요 인물들의 태도는 다소 반항적이거나 거칠게 보이기도 한다. 전후 상황이 어찌됐든 교수와 학생 혹은 교직원과 학생의 관계 안에서 보았을 때 ‘하극상’으로 인식되는 갈등이다. 이 투쟁과 관련 없는 사람이 보면 다소 거북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관객에게 위화감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영화는 이를 위해 긴 시간 관객을 설득한다. 영화는 이 사태가 사회적 혹은 개인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사안이고 이 안에서 다루어지는 시간이 당사자에게 얼마나 절박한 것이었는지를 다년간의 푸티지와 인터뷰를 활용해 설명해나간다. 이 과정을 통해 학생들의 다소 강경한 태도는 스크린 너머로 자연스러운 유대와 공감대를 형성한다. 


▲ 다큐멘터리 <졸업> (박주환, 2018)


  졸업 후에도 수년 동안 학교에 남아 촬영을 계속했던 감독의 의지와 굳은 표정으로 학교 건물 옥상으로 올라간 전종완 전 학생회장의 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사학비리 전과자의 학교 복귀’라는 중대한 사건을 마주한 대다수의 학생들 또한 비통함을 느꼈지만 그들을 이끌며 투쟁을 주도했던 사람으로서 느끼는 책임감의 무게는 조금 달랐을 것이다. 무엇이 이승현 전 예술체육대학 학생회장을 경찰들로 둘러싸인 도로 위에서 눈물 쏟게 했을까. 무엇이 윤명식 전 총학생회장이 머리를 밀고 단식을 하며 아무리 싸워도 쌓여가는 불안감에 술로 날을 지새우게 했을까. 이들이 공유하고 있던 그 뼈아픈 감정은 그것이 해소되는 순간까지 영화를 가득 채운다. 


  투쟁이 끝나며 영화는 이승현, 윤명식, 전종완 전 학생회장들의 비교적 최근 모습을 에필로그 형식으로 비춘다. 극 후반부에 들어서야 처음으로 (투쟁 외) 이들의 일상을 볼 수 있다. 남모르게 흘렸던 눈물이 지나간 자국은 아직 남아있을 수 있다. 그러나 긴 투쟁의 역사에서 조금 벗어나 한 명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존재하는 그들의 모습은 이전보다 한결 평화로워 보였다. <졸업>은 상처 받으며 긴 시간은 견딘 그들에게 건네는 작은 위로일 것이다. □




글쓴이. 장준혁(다큐멘터리 영화감독)



- 2016년 DMZ국제다큐영화제 청소년다큐멘터리제작워크숍 수강을 계기로 다큐멘터리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성남미디어센터 시민영화기획단과 인디다큐페스티발 관객평론단 등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현재 장편 다큐멘터리 연출작 <사계> 후반작업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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