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교육 스토리텔링 – 나의 미교 이야기 15화] 


      최근 매체의 다양화와 교육 영역의 확장, 법제화 추진 등으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는 미디어교육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소개하고자 [미디어교육 스토리텔링- 나의 미교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이 글을 통해 전국 각지에 다양한 영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미디어교육자들이 교육 현장의 경험과 고민을 공유함으로써 미디어교육의 오늘을 파악하고 발전적 내일을 위한 담론을 만들어가기를 기대합니다. 

    열다섯 번째 [나의 미교 이야기]에서는 교육의 주체가 교육을 통해 삶의 주체로 함께 성장하는 사례를 소개합니다. 교육의 3주체인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교사는 교육과정을 통해 서로 어떻게 손잡을 수 있을까요? 교육의 시작과 끝은 어떻게 이어져야 할까요? 교육실천으로서 미디어교육의 끝에는 무엇이 자리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질문들 속에는 결국 “미디어교육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고민이 숨어 있습니다. 미디어교육자 이순학 선생님의 교육담에서 그 숨겨진 고민의 답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 이수미 ACT! 편집위원




    [ACT! 112호 나의 미교 이야기 2018.12.14.]


    미디어, ‘짝’이 되다 

    - 성인발달장애인 미디어교육 이야기 


    이순학(미디어교육자)


      2018년은 문화콘텐츠그룹 ‘잇다’가 6살 되는 해이다. 잇다의 여섯 해 역사 동안 늘 함께 ‘짝’으로 생각하는 단체가 있다. 바로, 광주지적발달장애인복지협회 광산구지부이다. 이 단체는 고등학교까지의 특수교육 단계를 졸업한 성인발달장애인들이 청년기와 장년기를 지나도 자신의 일상을 꾸려갈 수 있는 제도 기반이 없자 부모들이 연대해서 직접 성인발달장애인을 위한 기관을 만든 경우이다. 복지사각지대에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데도 민간에서 그 틈새를 메울 수밖에 없는 환경이지만 그 안의 일상은 너무나 풍성했다. 


      잇다와 광주지적발달장애인복지협회 광산구지부와의 인연은 전화 한 통화에서 시작됐다. 도시와 농촌이 함께 공존하는 광산구의 특성 상 평동산단에 위치해 있어서 미디어 접근이 쉽지 않았던 평동중학교, 광주 외곽의 삼도초등학교 등에서 찾아가는 미디어교육 활동을 하다가 직접 수요가 필요한 곳이 있는지 광산구에 문의를 한 것이 계기이다. 그 과정 속에 현재 광주지적발달장애인복지협회 광산구지부장으로 계시는 백순영 지부장님과의 통화를 시작으로 잇다가 첫 출발하던 해부터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광주지적발달장애인복지협회 광산구지부에는 약 25명의 청년기 발달장애인들이 함께 주간보호와 자립생활을 하고 있다. 6년의 시간동안 우리는 교육과 여행, 동반자적 생활 등 전반적으로 두 단체가 ‘짝’이 되어 함께 걸어 나가고 있다. 그 긴 시간동안 쌓았던 작은 변화의 시간과 방법들을 ‘나의 미교 이야기’로 풀어놓고자 한다. 


    ▲“장애라는 단어를 빼면 우리 모두 청년. 가장 아름다운 시절, 청춘”



    교육의 시작- 대상을 깊이 있게 이해하기


      2013년, 우리가 처음으로 성인발달장애인들과 함께하는 미디어교육을 준비하고자  발달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 미디어교육 사례를 찾고 찾아봤지만 <젓가락 두 짝>이라는 제작 결과물의 사례만을 찾을 수 있었다. 성인발달장애인 스스로의 힘과 전문가들의 협력으로 함께 만든 한 편의 영상물이 우리가 거울삼을 수 있는 유일한 목표였다. 하지만 책자나 영상으로는 성인발달장애인이라는 교육대상이 어떤 특성이 있는지 현장에서 직접 느끼고 관찰한 체험의 결과처럼 풍부하지 못했다. 


      교육대상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 성인발달장애인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 ‘가위바위보’ 게임을 이야기 할 수 있다. 수업에서 모둠을 나누거나 교육재료를 분배하기 위해 우리는 쉽게 ‘가위바위보’를 한다. 이 ‘가위바위보’를 성인발달장애인과 함께하는 교실에서 시작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일단 시간이 오래 걸린다. 평균 20-30분 정도 우리는 ‘가위바위보’를 하는 데 시간을 썼다. 가위바위보의 승부가 아주 느리게 난다. 그렇다면 성인발달장애인의 모든 활동들이 오랜 시간이 걸리고, 느릴까? 아니다. 작은 만들기나 그리기, 미술표현, 사진표현은 교사가 2-3시간을 예상하고 설계해 왔다면 20-30분 만에 끝나는 경우다 대다수다. 




      ‘발달장애’의 특성 중에 제일 큰 부분은 ‘언어 표현’의 차이다. 25여명 가운데 누군가는 중고등학생 정도의 의사소통을, 누군가는 초등학생 정도의 의사소통을, 누군가는 유아 수준의 의사소통을, 또 누군가는 아예 의사소통을 거부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언어 표현의 방법을 교육과정에서 어떻게 활용할지 설계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발달장애인 각자가 표현하는 수준이 다르지만 그 수준에서 멈춰있지 않고 계속 언어가 치료되며 언어능력은 느리지만 조금씩 향상된다. 그래서 같이 행동을 묘사하는 활동을 할지, 스토리가 필요하다고 하면 어떻게 모둠을 분배해서 역할을 나눌지, 교육 재료는 무엇을 활용할지, 그 기준점을 고민할 때는 유아부터 고등학생까지 함께 통합 수업을 한다고 생각하고 준비하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사전 준비는 관계기관의 사회복지사 선생님들과 함께 교육대상 정보를 깊이 있게 습득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안경을 쓴 사람을 싫어하고, 누군가는 지저분한 것을 싫어하고, 누군가는 노트에 일자 패턴을 그리는 것에 집착하고, 누군가는 목소리 톤을 맞춰주는 것을 좋아하는 등 개인의 개성, 캐릭터까지 함께 이해해야 수업과정에서 교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돌발 상황을 이해하고 대처해 나갈 수 있다. 그리고 이 사전 과정에서 반드시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이 미디어교육과정에 기관 보조강사로 함께 역할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수업 운영의 안정성과 기관 내부와 외부로의 수업 확장에서 연결지점이 생긴다.


    ▲ 성인발달장애인 미디어교육을 준비하며 발견한 

    다큐멘터리 <젓가락 두 짝>



    교육의 설계- 명료화, 반복, 두터운 지원 


      성인발달장애인 미디어교육 연구를 할 때 제일 도움이 많이 되었던 자료는 특수교육 자료, 유아교육 자료였다. 성인발달장애인과 함께하는 미디어교육에서는 언어를 기반으로 한 시나리오를 함께 만들거나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거나 스토리를 연결하는 등 기획구성 교육은 무조건 ‘시각적’이거나 교구를 활용한 명확한 과정들로 재해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느리더라도 반드시 사진이나 영상을 함께 찍고, 다 함께 그 결과물을 눈으로 확인하고, 다시 일상 속에서 찍어보는 활동들을 무한히 반복하는 과정들이 굉장히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학습자들은 자신의 언어능력이 향상되거나 표현능력이 향상되는 과정을 미디어로 확인할 수 있고, 그 성취감을 다시 자신의 핸드폰을 활용한 일상 미디어 활동으로 연결해서 생활 속 미디어 활용의 변화까지 훈련이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교육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설계는 강사의 인원이다. 보통 2명의 주강사와 3명의 보조강사, 1명의 기획자, 3명의 특별강사가 평균적으로 성인발달장애인과 함께하는 교육과정에 함께했다. 거의 잇다의 인원 총량이 함께 교육을 운영하고, 기획하고, 과정을 기록하는데 공력을 들였다. 우리들뿐만 아니라 광주지적발달장애인복지협회 광산구지부에서도 사회복지사 3명, 공익근무요원 3명 등 모둠마다 기본 2인 이상의 강사인력들이 함께 활동하는 과정으로 대규모 인력이 함께 움직였다. 그렇게 개개인의 특성과 이해과정을 더 넓히고자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 물론, 이러한 설계가 역설적으로 성인발달장애인의 교육환경을 폭넓게 확산시키지 못하는 걸림돌이 되기도 하지만 두터운 교육자원의 투자는 무조건적으로 전제될 필요가 있다.  


    ▲ 수업 중 같이 지키는 작은 약속



    교육의 철학- 다음을 믿고 지금의 실패를 격려한다 


     우리의 교육과정은 당사자, 관계기관, 학부모의 마음이 변화하는 단계를 목격하면서 매년 새롭게 설계되었다. 특히, 1년차와 2년차 때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해서 그 모습들을 결과발표회에서 공유했는데 대부분의 가족들이 뜻밖의 모습들에 감동의 눈물을 흘렸고 소중하게 그 기록들을 간직했다. 그 과정에서 미디어교육자들 역시 스스로 변화시켜 가는 역할에 대한 보람을 느끼고 성장하게 되었다. 그래서 어떻게 교육의 철학과 활동의 계획들을 세울지 서로 자연스럽게 합의점을 찾을 수 있었다. 우리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느리게 자란다.”였다. 지금은 천천히 해서 잘 못해도 다음에는 할 수 있다. 그렇게 서로의 ‘다음’을 믿어주면서 지금의 실패를 격려하는 것이 우리들이 함께 만든 교육철학이었다. 




    교육의 과정- 기록, 응원, 공유, 체험의 확대


      성인발달장애인과 함께하는 미디어교육의 방법 중에 ‘잇다’가 고민해서 만들어 낸 활동법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단순하지만 꼭 필요한 과정이고 누구나 쉽게 함께할 수 있다. 특히, 언어능력과 상관없이 할 수 있는 활동이다. 첫 번째는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활용한 ‘매일찍기’ 활동이 있다. 수업을 시작하면서 각자 안부를 묻고, 모둠별로 서로의 짝을 찍는다. 매일 사진찍기 활동을 20분가량 진행했다. 이 과정을 통해 사진 표현이 일상화되는 결과들이 목격되었는데, 특히 집에서 부모님 핸드폰으로 부모님을 촬영해 주는 등의 교육 효과들이 있었다. 


      두 번째는 함께 ‘축하하고, 응원하는’ 활동이다. 이것은 미디어 활동의 결과물을 ‘같이 볼 때’ 누군가의 사진을 칭찬하고, 연기를 칭찬하고, 촬영을 칭찬하고, 영상을 칭찬하는 활동인데, 더 잘하는 사람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짝’이 되어주는 동기부여를 할 수 있다. 그리고 함께 만든 미디어 결과물을 반드시 지역사회의 거점을 통로로 해서 공유하고, 그 자리에는 성인발달장애인 스스로의 힘으로 타인을 위로하거나 응원할 수 있는 계기들을 만들어서, 성인으로서 자립감이 커질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미디어를 매개체로 성인 스스로 갖추어 나가야 할 자립감과 자존감을 키우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외부 체험 공간을 확대하는 고민들을 시작했고 성인으로서 꼭 해보고 싶었던, 해봐야 할 활동들을 당사자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실행하였다. 






    교육의 끝? 관찰하는 미디어가 아닌 진짜 짝이 되다!


      잇다는 지속적으로 광주지적발달장애인복지협회 광산구지부와 동행하고 있지만 현재 미디어교육을 함께하고 있지 않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미디어와 문화예술 통합교육의 형태로 일주일에 1회 정도 5년간 교육을 매개체로 만났지만 5년차 교육을 마무리하면서 ‘교육’이라는 형태 자체에 질문을 던지게 된 것이다. 

     

      첫 번째 고민은 교육이 아니라 더 쉽고 재미있게 ‘창작’할 수는 없을까? 두 번째 고민은 우리가 없을 때는 누구랑, 어떻게 시간을 보내지? 세 번째 고민은 이제 교육 바깥의 삶을 준비해야할 때가 온 건 아닐까? 청년장애인과 장애부모의 변화과정을 함께하면서 고민은 깊어졌다. 매년 성인발달장애인들은 교육의 경험을 통해 부모를 떠나는 연습을 한 걸음씩 해 나갔다. 게다가 이들은 굳이 ‘장애인’이라는 정책적 용어를 떼고 보면, 우리와 같은 나이였다. 


      성인발달장애인과 함께하는 교육 활동들은 반드시 긴 시간동안 많은 사람들의 진정성 있는 시도와 노력이 더해져야 한다. 특히, 단체와 단체의 결합처럼 미디어교육 과정의 설계가 일회적이지 않고, 장기적인 관점을 갖고 있어야한다. 우리가 제도와 관련 교육 기관들에 기대지 않고 5년의 교육과정을 설계할 수 있었던 것도 장기적인 포커스를 교육 대상과 두 단체와의 관계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다. 


    ▲ 문화콘텐츠그룹 ‘잇다’- 6년차 사회적 기업으로 청년에서 중장년까지 

    자신의 재능과 지역문화자원을 콘텐츠로 창작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였다. 

    조직력과 기획력, 생산력을 바탕으로 공간개발, 영상제작, 홍보마케팅, 

    문화기획과 교육 및 네트워킹 과정을 통합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미디어 소외계층의 미디어 접근권 향상”이라는 표현을 소셜미션으로 하여 잇다는 탄생했다. 그래서 더욱 교육의 기획과 준비, 과정의 기록과 결과에서 그 어떤 사업보다 우리 스스로의 존재의 이유를 찾아야 했다. 6년차에는 파격적인 선택을 했다. 우리는 ‘선생님’을 그만두고, ‘친구’를 선택했다. 함께 자전거 순례를 가거나, 첫 독립생활을 영상으로 기록하거나, 일상의 변화를 응원하거나, 서로의 공간을 오가는 등 일상적 교류로 방향을 바꾸고 서로의 ‘자립’과 ‘독립’을 위한 방법들을 함께 찾아보는 것에 몰두 하고 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동에서 긴 시간동안 함께한 광주지적발달장애인복지협회 광산구지부와의 교육활동을 통해 우리는 처음으로 ‘교육 바깥’으로 나오는 출구를 만들었다. 교육의 시작이 교육 바깥으로 향하는 방법들도 우리들의 교육 현장에서 잘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우리는 미디어 교육현장에서 인생 여정의 ‘짝’을 찾았다. □




    글쓴이. 이순학 (미디어교육자)



    문화콘텐츠그룹 ‘잇다’의 대표 일꾼입니다. 잇다의 교육 사업들은 기획부터 운영과 교육 연구 및 네트워크로 이루어집니다. 미디어 교육과 문화예술의 경계, 학교와 학교 밖 현장에서 일상적 문화로 접할 수 있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미디어를 지향하는 교육활동을 잇다의 구성원들과 함께 기획하고, 인적·물적 시스템을 찾고, 만들어서 실행합니다.

    Posted by ACT! actedi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