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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97호 연재] 나의 미교이야기(1) 510일의 로맨스 -단원고 방송반 극영화 제작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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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 acteditor 2016. 2. 24.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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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97호 연재 2016.03.07] 나의 미교이야기



510일의 로맨스

- 단원고 방송반 극영화 제작교육 <카메라로 꿈꾸자>


류미례(푸른영상)



편집자주 <ACT!>에서는 최근 교육 영역의 확장과 매체의 다양화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는 미디어교육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수집하고 축적하여 미디어교육 발전을 위한 연구의 바탕으로 삼고자 [미디어교육 스토리텔링- 나의 미교 이야기]를 기획했습니다. 이 코너에선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활발하게 미디어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미디어교사들이 자신이 체험한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직접 들려줍니다. 이번은 그 첫 순서로 류미례 선생님이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들과 함께한 미디어교육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2014년 4월 16일은 인디다큐페스티발 폐막일이었다. 폐막식이 끝난 후 찾은 식당에 있던 여러 대의 TV에서는 배가 가라앉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주었다. 에어포켓이나 골든타임과 같은 기대는 부질없었고 간절한 희망을 품었던 그 시간이 사실은 죽음의 관전이었다는 뒤늦은 깨달음은 많은 사람들을 극심한 무력증에 빠져들게 했다. 나는 조문도, 헌화도, 촬영도 못한 채 몇 개월을 보냈고 푸른영상 정일건 감독의 권유로 뒤늦게 힘을 내어 단원고 미디어교육에 참여할 수 있었다.



봉인된 기억, 기억의 멸균지대

 2014년 9월부터 12월까지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단원고 방송반 1, 2학년 학생들을 주축으로 영화와 미디어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참여하는 미디어 교육 <카메라로 꿈꾸자>를 진행했다.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에서 활동하던 푸른영상 정일건 감독이 기획을 했고 정일건 감독과 내가 팀티칭 방식으로 교육을 진행했다. 그리고 한국예술종합학교 김지혜 감독이 메이킹다큐를 만들기 위해 교육과정을 기록했다. 방송반원 모두가 웃고 있는 단체사진이 크게 붙어있는 방송부실에서 일주일에 두 번씩 수업을 했다. 



△ 단원고 방송반 극영화 만들기 <카메라로 꿈꾸자> 



  잦은 만남이었지만 3개월 동안 세월호 이야기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방송반에 2학년은 두 명만 남은 상태였고 그 중 한 명만 교육에 참여했는데 그 학생 또한 정기적인 심리치료 때문에 자주 수업에 빠졌다. 어디서나 세월호 이야기를 하던 대한민국에서 단원고 미디어교육시간은 유일하게 세월호 이야기를 하지 않는 곳이었다. 모두가 의견을 모아 만들게 된 영화는 <510일의 로맨스>라는 극영화였다. 토론을 할 때면 2학년 학생의 의견이 적극 반영되었는데 1학년 학생들은 그렇게 나름대로 선배에게 힘을 주고 싶어 했다.   


  학교는 어수선했다. 교육을 시작할 땐 스튜디오였던 곳이 교육 중간에 다른 용도로 바뀌었고, 또 어느 날은 교육을 끝내고 나와 보니 운동장에 자동차가 가득 주차되어 있기도 했다. 그렇게 돌아온 날 SNS에는 방금 내가 보고 온 풍경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알게 해주는 글들이 올라와있었다. 2학년 교실의 존치 문제로 학부모회의가 있었다거나 교실을 지켜달라는 희생 학생의 부모들의 글이 올라와 있곤 했다. 방송실에서 한 발짝만 나가도 세월호 문제로 어지러운 풍경들이 펼쳐지는데 교육 참여자들은 입시 스트레스와 로맨스를 어떻게 영화에 담을까를 고민했고 SF나 호러물을 만들게 해달라고 조르곤 했다. 그래서 절충한 장르가 로맨틱 스릴러였다. 모두들 열심히 연기하고 즐겁게 촬영했다. 


  시사회 날에는 친구들과 가족들이 객석을 꽉 메웠다. 학교에서 시작해서 정신병원에서 끝나는 <510일의 로맨스>, 편집을 하는 동안 초고속으로 만든 방송부 홍보영상, 그리고 메이킹 영상이 상영되는 동안 객석은 화기애애했고 모든 상영이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되었다. 진행을 맡은 학생이 “궁금한 거나 아쉬운 점, 그리고 옥의 티 같은 게 있으면 말씀해주세요”라고 하니 부모님 중에 한 분이 “이토록 티가 많은 걸 어떻게 한 번에 말할 수 있냐?”고 해서 폭소가 터졌다. 관객과의 대화 현장은 관객과 제작진과의 대화 보다는 관객의 장기자랑이 주로 펼쳐지는 특이점을 보였다. 그렇게 즐겁게 상영회를 마치고 다음 교육 땐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자는 말을 하며 헤어졌다. 



△ 교육을 통해 단원고 학생들이 만든 영화 [510일의 로맨스] 포스터 




영화라는 판타지

  어떤 사람은 고통스러운 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상처와 관련된 기억을 빨리 잊는 것이라 말하지만 망각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상처와 관련된 기억을 공공의 장에서 증언하여 기억을 공유하는 것이 상처를 치유하는 또 다른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만든 교육이었지만 단원고 미디어 교육은 기획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후일담처럼 의미를 부여한다면 참여자들에게는 그 장이 현실로부터 벽을 칠 수 있는 안식처였던 것 같다. 미디어교사들은 완벽한 타자이자 이방인이었고 그들이 구축한 영화 속 세상에 단원고의 현실은 1%도 섞여들지 않았다. 소품으로 잠깐 등장하는 핸드폰에 노란 리본이 붙어 있어서 ‘저것만이 이 영화가 2014년 4월 16일 이후라는 것을 드러내는 유일한 소품이겠다’ 싶었지만 문득 그것을 깨달은 학생이 다른 핸드폰으로 얼른 바꿨다. 그들은 현실이 조금이라도 섞여드는 것을 못 견뎌했다. 긴 시간이 지난 지금에야 아쉽다. “왜 그러니?”라고 가볍게 물어볼 수도 있었는데 우리는 아무런 말도 못한 채 아이들의 그 현실 지우기 의식을 바라보기만 했다. 


  교육기간 내내 사무적인 대화만 나누었던 방송반 선생님은 마지막 날에야 마음을 드러내었다. 자신도 참사 이후에 부임해서 임시로 방송반을 맡게 된 거라고. 선생님과 아이들의 관계가 끈끈해서 전혀 눈치재지 못했었다. 선생님은, 아이들은, 일상을 복구하기 위해 참 많은 노력을 했을 거라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아이들은 깔깔 웃으며 영화를 만들었고 연기를 할 수 있어서 재미있다는 말을 하며 그 시간을 즐겼다. 자기 표현, 객관화, 치유…… . 그것은 그 시공간에서 실현될 수 있는 것들은 아니었던 거다. 교육의 주 참여자인 1학년 학생들이 떠난 학생들과 지낸 시간은 한 달 반 정도였다. 한 달 반은 떠나간 선배를 그리워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아이들에게는 그리움이나 상실감보다는 온 세상이 주목하고 있는 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부담감, 하루가 길게 느껴질 정도로 새로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 변화무쌍한 현실, 그리고 자신들이 이어가야할 학업에 대한 고민이 더 컸을 것이다.  


  세월호 200일 추모행사에서의 어떤 만남을 잊을 수 없다. 나는 안산분향소 앞에서 참여자 중 한 학생을 우연히 만났다. 학교 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친근한 표정으로 반가워하던 그 학생. 그러니까 그날 우리는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사람’이라는 동등한 자격으로 만난 것이었다. 나는 그 때 그 아이가 보여줬던 표정이 우리들의 시간을 설명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그 죽음의 진실을 알고 싶다는 바람은 동일하게 갖고 있지만 영화만들기 시간만큼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던 참여자들. 참여자들에게 영화는 판타지의 세계였던 거다. 


  참여자들이 세월호 사건에 대해 무관심했다는 오해를 받을지도 몰라 노파심에 덧붙인다. 참여자들은 방송반이라 매일 음악을 선곡하고 학교 행사는 빠짐없이 기록했다. 자신들이 책임 맡은 일이 아니었어도 세월호 추모행사에 가보면 참여자들은 거기 있었다. 우리들의 교육에서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는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지만 나는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을 위로와 안식의 의미로 기억한다. 나 또한 단원고 미디어교육 덕분에 안산분향소를 방문할 수 있었고 그 힘으로 세월호 미디어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으니까. 


  교육이 끝난 후 참여자 중 몇몇은 영화 쪽 일을 하고 싶다며 진로에 대한 문의를 해 와서 관련 책을 선물하기도 했다. 하지만 후속작업을 하지는 못했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단원고 영화만들기 교실은 2014년 세월호 사건 직후 단원고에 집중되었던 국민적 관심이 동력이었고 그 관심이 해를 바꿔서까지 이어지기는 힘들었던 게 그 중 한 가지 요인이다. 학생들과 개인적인 인연은 있었지만 교육이 끝나고 나니 단원고는 여전히 먼 곳, 조심스러운 곳이라서 가까이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도 후속모임을 꾸리지 못한 요인 중 한 가지였던 것 같다. 비록  후속모임으로 이어지지 못해서 아쉽지만 어려운 시기,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다는 말로 그 시간을 정리한다. □


* 하단 교육 개요 및 계획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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