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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98호 연재-나의 미교 이야기] 내가 나일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성평등 미디어교육 ‘나는 나다 동화책 만들기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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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6. 5. 12.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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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98호 연재 - 나의 미교 이야기 2016.5.19] 



[미디어교육 스토리텔링 – 나의 미교 이야기] 2화


<ACT!>에서는 최근 교육 영역의 확장과 매체의 다양화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는 미디어교육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발굴하고 소개하고자 [미디어교육 스토리텔링- 나의 미교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미디어교사들이 자신이 체험한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이 코너를 통해 직접 들려줍니다. 이번은 그 두 번째 순서로 해영 선생님이 성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청소년들과 함께 진행한 성평등 미디어교육 ‘나는 나다 동화책 만들기 프로젝트’를 소개합니다. 


<내가 나일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성평등 미디어교육 '나는 나다 동화책 만들기 프로젝트' 



해영 (우야)




 2007년, 시민 누구나 방송을 통해 말 할 수 있는 공동체라디오를 알게 됐다. 주파수는 시민의 것, 누구나 미디어를 통해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지금까지 활동해왔다. 라디오를 통해 나의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했고 그와 함께 다른 공동체와 만나는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내가 공동체 라디오를 알게 된 계기는 마포공동체라디오에서 진행하는 레즈비언라디오프로그램 ‘L양장점’ 때문이었다. 라디오를 통해 나의 목소리를 내고, 그 목소리를 누군가에게 전하고, 이러한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커뮤니티의 경험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기 위해서 미디어 교육을 시작했다. 미디어교육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처음으로 내가 내 입으로 레즈비언이라고 말 해 본 경험, 그리고 그 방송을 통해 많은 성소수자를 만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은 그 어디서도 할 수 없었다.



수많은 나 


 나라는 사람은 굉장히 다양한 정체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부모님의 딸이자, 만 서른 살 청년, 혼자산지 10년이 넘은 독립생활자, 강아지를 키우는 견주, 서울 시민이자 마포구민, 기획자이자 창작자이자 교육자, 어디서는 노동자, 누군가의 친구, 동료 등등... 정말 많은 정체성이 있다. 아마 이 글을 보고 있는 여러분들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내가 레즈비언이라고 하는 순간 사람들에게는 ‘수많은 나’는 사라지고, ‘레즈비언인 나’만 남았다.


 그래서 다양한 공간에서, 거기에 어울리는 이름에 각기 다른 정체성으로 나라는 사람을 분리하며 살았다. 부모님이나 학교친구들, 직장동료들과의 관계에서는 ‘해영’이라는 이름으로, 미디어교육이나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할 때는 ‘곰아’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성소수자 활동을 할 때는 ‘우야’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삶을 분리하며 살아가는 것이 훨씬 편했지만 늘 헛헛했다. 하지만, 삶터, 일터, 배움터, 놀이터, 활동터를 합쳐가는 과정에서 분리했던 ‘나’의 교집합이 점점 넓어지며 정체성도 합쳐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그 과정 중에 있고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이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다음세대재단 유스보이스 미디어교육자 프로젝트로 진행한 

성평등 미디어교육 <나는나다 동화책 만들기>



“나는 나다!” 


 작년 한해는, “나는 나다”를 외친 한 해였다. 이 수많은 정체성이 모두 ‘나’라는 것을 저 스스로가 알아가는 한 해였다. 특히, 나는 여자인지 남자인지, 여자도 남자도 아닌지, 나의 성정체성을 다시 한 번 깨닫는 시간이었다. 


 그러면서 진행한 것이 다음세대재단 유스보이스 미디어교육자 프로젝트 <나는나다 동화책 만들기 프로젝트>이다. “나는 왜 여자일까?” “나는 왜 남자일까?” 나 자신에게 질문하지도 못한 채 여자로-남자로 태어났으니까, 여자니까 여자답게, 남자니까 남자답게, 여자/남자 두 가지 삶 밖에 없는 세상에 물음을 던지기 위해 성평등 미디어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되었다. 


 내가 10대 때, 이런 고민을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는 친구들뿐이었다. 서로의 고민을 이야기하면 속은 풀리지만 어딘가 풀리지 않는 무언가가 여전히 남았다. 그 때는 서른 살 넘는 레즈비언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나이가 들면 모두 결혼을 하고 레즈비언으로서의 자신은 없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때부터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어떻게 레즈비언으로 살아남을 것인가.


 그러다가 레즈비언 라디오 방송을 하게 되고 처음으로 서른 살 넘은 멋진 레즈비언 언니들을 만나며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하게 됐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고 싶었다. 그래서 성별/성정체성을 고민하는 청소년들을 찾고, 만나는 미디어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되었다. 그것이  ‘나는 나다 동화책 만들기 프로젝트’이다. 




<나는나다 동화책 만들기 프로젝트> 교육계획서



 ‘나는 나다 동화책 만들기 프로젝트’에는 성별, 성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4명의 청소년이 참여했다. 사는 곳도, 학교도 모두 다르지만 우리는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었기에 만날 수 있었다. 익명이 보장되는 트위터를 통해 만났고, 8차시의 교육을 통해 성별, 성정체성, 성평등과 관련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최종 결과물로 ‘너도 이런 적 있어?’라는 제목의 소리그림책을 만들었다. 그리고 후속활동으로 북 토크 콘서트를 진행했다.  



교육장소, 만남의 의미 찾기


 첫 수업시간, 학생들과의 첫 만남은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가졌다. 처음 만남을 집에서 갖게 된 것은 학생들이 교사로서 나를 신뢰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였다. 나에게 가장 안전한 공간이라고 생각하는 집을 공개하면서 내가 안전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두 번째 만남은 친구의 결혼식이 열리는 결혼식장 근처의 스터디룸에서 가졌다. 여성과 남성이 만나서 결혼을 하는 결혼식장 옆에서 성정체성에 관한 어떤 의미를 찾고 싶었다. 

 세 번째 만남은 이태원에서 가졌다. 다양한 인종, 그리고 그들의 음식과 패션을 매개로 한 문화들이 뒤섞여 또 다른 문화를 이루고 있는 이태원은 성소수자 관련 장소들이 많아지며 게이힐로 불리기도 한다. 이슬람 사원을 지나서 쭉 올라오다 보면 한국 최초의 LGBT*(주1)를 위한 서점, 햇빛서점이 있다. 모두에게 보여줄 수 있는 쇼윈도가 있는, 낮에도 올 수 있는 게이 업소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가진 햇빛서점의 사장님을 만났다. 



▲ 집에서의 첫 만남. “나에게 가장 안전한 공간이라고 생각하는 집을 공개하면서 내가 안전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 “세 번째 만남은 이태원에서 가졌다. 그곳에는 한국 최초의 성소수자를 위한 서점인 햇빛서점이 있다.” 




▲ 3차시 수업. 성정체성과 관련한 각자의 경험을 나누고 이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보았다. 



 다음 만남은 성평등 동화책 제작모임 꼬막과 교육 참여자들이 함께 우리 집에서 만났다. 서로의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여섯 번째 교육은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든 미디어카페 후에서 진행했다. 팟캐스트를 녹음할 수 있는 녹음실이 있고, 책과 신문 잡지들이 많이 놓여있는 공간이라 ‘나는 나다 동화책 만들기 프로젝트’에 많은 영감을 줄 수 있는 장소일 것 같아서 그 곳을 교육 장소로 정했다.  

 그리고 일본에 있는 재일동포들이 만들고 가꿔가고 있는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몽당연필’이 운영하고 있는 카페 연필 1/3에서도 만났다. 일본 내 조선학교와 우리 동포들의 평등한 권리를 위해 다양한 교류활동을 진행하고 있으며 권해효 배우님이 대표를 맡고 있다. 누군가 평등한 세상을 위해 활동하는 공간, 그 공간에서 7번째 만남을 가졌다. 

 마지막 만남은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6월에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가 열린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만났다. 

 그리고 서울시립청소년미디어센터에서 출판기념회 및 북 콘서트를 열었다. 




▲ ‘몽당연필’이 운영하는 카페 ‘연필 1/3’ “누군가 평등한 세상을 위해 활동하는 공간, 그곳에서 일곱 번째 만남을 가졌다.”  




 마지막 만남은 6월에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가 열리는 서울광장에서 가졌다.



교육과정,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공감 


 ‘나는 나다 동화책 만들기 프로젝트’의 몇 가지 교육내용을 소개하자면, 먼저 서로 전신사진을 찍어주고 자기 자신의 몸을 보며 내가 하고 다니는 스타일,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아왔는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하얀 전지를 펼쳐놓고 여자/남자 기호를 그리고 여자니까 여자답게, 남자니까 남자답게, 남자다움 여자다움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눴다. 여자가 여자답지 않으면, 남자가 남자답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이 되는 세상. 우리는 이런 여자다움과 남자다움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 수업에는 이상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러나 진짜 이상한 것은 이런 세상이 아닐까. 



 성별, 성정체성 인생곡선을 통해 삶에서 스스로를 남성 또는 여성이라고 정체화 했을 때, 그리고 지금의 나의 정체성은 어떤지를 이야기 나누었다. 그리고 이전부터 왜 정체성에 대한 고민들을 해왔는지에 대해 서로의 경험들을 나누며 공감할 수 있었다. 비슷한 경험들에 대해서는 발표가 끝나고 서로 덧붙이며 이야기를 나눴다. 교육을 진행하며 우리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어떤 책을 만들어야 할지를 알아갔다. 그것은 나의 이야기가 담긴, 서로가 공감하는 경험이 담긴 그림책, 청소년이 청소년에게 전하는 이야기가 담긴 책이었다. 



“그동안 나는 여자도 남자도 아닌 사람들도 있다고 이야기 하고 다녔지만, 실상 여자/ 남자의 스펙트럼밖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성평등 소리그림책, ‘너도 이런 적 있어?’


 우리는 소리 그림책을 만들었다. 제목은 <너도 이런 적 있어?> 이 소리그림책은 나와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한 청소년들과 성평등 동화책 제작 모임 꼬막 멤버들의 경험담을 담고 있다. 나는 왜 치마를 입을 수 없는지, 내 머리는 왜 내 마음대로 자를 수 없는지, 체육시간에 왜 스탠드에 앉아서 응원만 해야 하는지, 이런 질문들을 던진다. 그리고 자신의 에피소드를 자신의 목소리로 낭독하고 QR코드로 담아냈다. 



▲ 성별/성정체성에 관련한 자신의 이야기를 8컷으로 담기 



▲ 소리그림책 초안 



▲ 소리그림책 각 에피소드 별 주인공 캐릭터 



▲ 소리그림책 그림 작업 



▲ 소리그림책 만들기 수업 장면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교육에 참여한 청소년들은 서로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갔다. 처음에 만났을 때,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르겠다고 여자도 남자도 안하고 싶다던 친구는 여자라고 스스로를 정체화 했고, 긴 생머리를 찰랑이며 왔던 친구는 머리가 점점 짧아지며 이제는 자신이 하고 싶은 스타일로 다니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연애를 한 번도 한 적은 없지만 자신을 레즈비언이라고 확실하게 정체화한 친구도 있었다. 


 이번 성평등 소리그림책 만들기 프로젝트는 내가 성소수자 청소년들을 만나 진행한 두 번째 미디어교육이었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하면 좋겠다고 생각만 했던 교육을 만나고 싶었던 청소년들을 만나서 진행 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마음속에 담아둔 이야기가 많은 성소수자 청소년들을 만날 수 있는 ‘교육의 장’을 연 것 자체에 의미를 둔다. 이런 자리가 마련해야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나 그런 자리가 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 청소년들이 제작한 성평등 소리그림책 [너도 이런 적 있어?]



▲ 청소년들이 제작한 성평등 소리그림책 [너도 이런 적 있어?]



내가 나일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살아오면서 정말로 나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고민을 많이 했다. 여자가 아닌 것 같아 남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알게 됐다. 세상에는 나 같은 여자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또 한 가지 깨달은 것도 있다. 그동안 나는 여자도 남자도 아닌 것 같다고, 여자도 남자도 아닌 사람들도 있다고 이야기 하고 다녔지만, 실상 여자/ 남자의 스펙트럼밖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여자, 남자 이 전에 나는 사람인데, 우리는 같은 사람인데, 왜 그것을 몰랐을까? 그리고 왜 이런 것들을 어릴 때 배우지 못했을까? 왜 누구도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주지 않았을까?


 ‘여자답게, 남자답게’가 아니라, 누군가가 정해놓은 고정적인 성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부터 정한지 모를 ‘평범’한, ‘정상’적인 삶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답게, 누구나 평등하고, 누구나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꿈꾸며, 나답게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런 교육을 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삶을 스스로 선택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교육.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찾아가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미디어교육을 계속 해나갈 것이다.  


 누군가의 기준에 나를 맞추기 위해 스스로 선택하기를 포기한 적이 있는가? 또는 자신을 선택 할 기회조차 없었던 적이 있는가? 당신도 이런 적 있는가? 만약 없다면, 누군가를 나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그가 선택하기를 포기하게 하거나 선택할 기회조차 주지 않은 건 아닌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  



[필자소개] 해영(미디어활동가)



 내가 나일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소리 미디어를 중심으로 확장하여 다양한 미디어교육을 하고 있다. 어린이, 청소년, 여성, 노인, 장애인, 성소수자, 마을주민 등 다양한 공동체를 만나 배움을 나누고 있다. 지금은 문화예술교육, 평생교육, 성평등 교육을 미디어교육과 어떻게 연계할 수 있을지 고민 중. ‘나’와 ‘남’을 알아가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주1 : LGBT는 성 소수자를 의미하는 말로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바이섹슈얼(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의 첫 글자를 따 만들었다.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과 관련된 성 소수자를 일컫는 말로 쓰인다. (Daum백과사전) 


*첨부1 : 너도 이런적 있어? 에피소드1 




*첨부2 : [나는 나다 동화책 만들기 프로젝트] 커리큘럼 

(아래 버튼을 누르시면 전체 커리큘럼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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