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97호 이슈와 현장 2016.03.07.]
마을미디어에서 음악이 사라진다고?
- 저작권 문제, 팟캐스트 시대에 다시 부활하다
글 : 성상민(ACT! 편집위원회)
2005년 초, 네이버에서는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1997년 처음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자사의 사이트를 사용하는 누리꾼들이 자발적으로 하나의 캠페인에 동참하기 시작한 것이다. 캠페인의 이름은 ‘No Music No Blog’, 음악이 없이는 블로그 역시 할 수 없다는 뜻이 담긴 의미였다.
[사진 1] 현재까지도 남아있는 네이버 이용자가 주체적으로 움직인 ‘No Music No Blog’ 캠페인의 흔적.
비록 이제 활동하는 사람은 남아있지 않지만, 당시의 흐름을 개략적으로나마 확인이 가능하다.
캠페인의 단초는 2004년 10월에 국화를 통과해 2005년 1월부터 발효된 개정 저작권법 때문이었다. 이미 저작권법은 저작권자의 행위를 받지 않은 불법적인 복사, 공유, 전송 등을 범범 행위로 규정하고 있었지만 2005년 개정 저작권법에는 음원 저작권자의 인정 범위를 작곡가 · 작사자뿐만 아니라 가수나 음반제작자 등 관련인으로 확대되면서 음원 저작권을 행사할 수 있는 범위 역시 늘어나게 되었다. 기사는 이를 ‘더 이상 인터넷에서 음악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는 식으로 선정적으로 보도했고, 이에 문제를 느낀 누리꾼들은 자신들이 자유롭게 음악을 사용할 수 있기를 요구하는 캠페인을 벌이게 된 것이었다.
운동은 잠시 호응을 얻었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이미 일각에서 ‘저작권을 침해하는 범법자 주제에 자신들의 범죄를 옹호하려든다’는 식으로 비판이 가해졌고, 누리꾼들의 분노와 움직임만으로는 저작권법의 흐름을 쉽게 바꿀 수 없었다. 빠르게 타올랐던 ‘No Music No Blog’ 운동은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작가나 음악가 같이 창작을 생업으로 삼는 몇몇 이들은 가끔씩 이 당시를 회고하며 그 운동에 참여하는 이들을 비판하며 한국인들이 너무나도 저작권에 무지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이렇게 한국인들 대다수가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낮아서 한국 음악 시장은 물론 창작물 시장이 발전하지 못했다는 식으로 논리가 흐른다.
마냥 틀린 말은 아니다. 지금은 ‘저작권’이라는 말이 너무나도 익숙하지만, 한국인들에게 저작권이라는 인식이 처음으로 퍼지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 본격적으로 경찰의 단속과 저작권자의 고소가 이뤄진 시기였다. 그리고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지 않고 불법 공유를 통해 창작물을 구매하는 바람에 기대한 것만큼의 수익이 돌아오지 않는 것 역시 사실이다. 문제는 저작권 준수를 소리 높여 부르는 이상으로 실제로 창작자에게 그 권리로 인한 수혜가 얼마나 돌아가는지는 잘 바라보지 않으며, 동시에 법적으로 저작물의 ‘공정 이용’을 규정하고 있음에도 강도 높은 저작권 준수 요구는 정당한 행위마저 어렵게 만든다는 점이다.
2016년, Back to the 2005?
그리고 2016년 벽두부터 다시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다. 한국 최대의 팟캐스트 제공 사이트인 태그스토리(코리아센터닷컴) 사의 ‘팟빵’이 2016년 1월 1일부로 음악 카테고리에 속한 팟캐스트 중 저작권 침해 소지가 있는 방송들은 일괄적으로 차단할 것이라고 공지한 것이다. 2005년과 비슷한 상황이지만 반응은 너무나도 달랐다. 이렇다 할 여론이 불지도 않았고, 언론사에서도 이 소식에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사진 2] 팟캐스트 포털 ‘팟빵’이 지난 2015년 12월 18일에 내건 음악 팟캐스트 차단 공지.
하지만 팟캐스트들에 피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딴지라디오에서 서비스하던 음악 팟캐스트 <하이 피델리티>는 팟빵의 방송 차단으로 인해 팟캐스트 서비스를 팟빵에서 해외의 음원 포털 ‘사운드클라우드’(Soundcloud)로 옮겨야만 했다. 이외에도 팟빵 음악 카테고리에 존재하던 개인들이 만든 팟캐스트 대부분은 사라진지 오래다. 현재 음악 카테고리에 남아있는 팟캐스트들은 KBS, MBC 등 기존 공중파 방송사의 라디오 프로그램 다시보기 서비스(물론 음악은 제외하고 업로드된다.) 정도를 제외하면 저작권이 소멸되거나 출연하는 게스트들이 직접 연주해 저작권 문제에서 자유로운 음원을 사용하는 것들 뿐이다.
마을미디어 역시 팟빵의 방송 차단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다만 3월 10일 기준으로 팟빵이 차단한 프로그램은 아직까지는 도봉N에서 진행하던 프로그램 하나에 불과하다. 음악이 사용되었다는 이유로 마을미디어 팟캐스트 채널 전체를 차단하기에는 대부분의 마을미디어 프로그램이 각 마을미디어의 공식 채널 한 곳으로만 업로드되고,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한 채널 안에서 서비스되기에 이 채널들은 팟빵 음악 카테고리에 속해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심할 수는 없다. 팟빵이 먼저 칼을 꺼내든 것이 음악 카테고리에 속한 팟캐스트일 뿐 팟빵은 분명 공지에서 ‘저작권법에 위배되는 팟캐스트는 차단할 예정’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음악 카테고리가 아니더라도 저작권단체의 모니터링 등을 통해 추후 문제가 된다면 마을미디어의 음악 프로그램 역시 차단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다른 마을미디어들 역시 차단을 염려하여 자율적으로 음원 사용을 하지 않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만약 본격적으로 음악을 사용하는 마을미디어 프로그램에 팟빵이 적극적으로 차단하거나 음원 저작권자의 고소가 진행된다면 어떻게 될까. 대다수의 마을미디어나 팟캐스트 이용자들이 팟빵에 익숙해진 상황에서 마을미디어가 팟빵 송출이 불가능해지고, 설사 유튜브나 애플 아이튠즈 등으로 서비스 플랫폼을 옮긴다 하더라도 이전보다 접근성이 더욱 떨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여기에 본격적으로 법적 고소가 진행된다면 영세한 마을미디어의 상황상 마을미디어 제작 자체가 중단 위기에 놓일 수도 있다. 아직 마을미디어에 차단과 고소의 손길이 미치지는 않았지만 그다지 밝지 않은 미래가 서서히 다가오는 중이다.
거대한 플랫폼이 아니면 저작권 계약도 안 된다?
이렇게 위기가 서서히 다가오는 순간에서 마을미디어는 어떤 행보를 취해야만 하는 것일까. 마을미디어를 비롯해 공동체라디오, 정보인권 활동가 등 다양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하였다.
관악FM의 안병천 대표는 마을미디어가 처한 음원 저작권 문제의 해결책에 대해서 너무나도 간명하게 정리했다. “절대로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단순하지도 않고요.” 그는 마을미디어 대부분이 ‘팟캐스트’라는 형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말했다. “공동체라디오 같은 경우는 일반 지상파와 똑같습니다. 음원 저작권 수탁기관과 계약을 맺고, 각 공동체라디오마다 미리 계약에 명시한 수익 비율대로 저작권료를 내는 것이죠. 하지만 마을미디어는 다릅니다. 공동체라디오와 같이 일반적인 방송이라면 시청자가 듣는 즉시 바로 사라지지만, 팟캐스트는 듣는다고 해서 사라지는 게 아니니까요.”
[사진 3] 한국음악저작권협회는 2010년 구글 유튜브와 음원 사용 협약을 체결한 이래 다음 tv팟, 네이버 tvcast 등과 계약을 맺었다. 협약을 맺은 사이트 내에서는 음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지만. 동시에 앞서 두 곳 같은 거대 플랫폼이나 매체에서만 가능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사진제공=한국음악저작권협회)
하지만 해결책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한국에서 가장 큰 음원 저작권 수탁기관인 한국음원저작권협회(이하 음저협)는 이미 2010년 구글 유튜브와 광고 수익 일부를 저작권료로 지불하는 조건으로 음원 사용 협약을 맺은 이후 다음 tv팟, 네이버 tvcast 등의 플랫폼과 계약한바 있다. 마을미디어의 경우에도 대다수의 마을미디어가 사용하는 플랫폼 ‘팟빵’이 음저협과 계약을 맺거나, 정 안 된다면 ‘서울마을라디오 동네방네’같이 마을미디어들이 서로 연합해서 저작권료를 함께 지불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음저협과 팟빵 양자의 의견을 듣기로 하였다. 음저협은 ‘유튜브’나 ‘팟빵’과 같은 플랫폼 사업자와 계약할 뿐 개별 콘텐츠 제작자와는 계약을 체결할 수 없다고 답했다. 마을미디어들이 서로 연합하여 저작권 계약을 맺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왜 정당히 계약을 하겠다고 나서는데도 음저협은 거부하는 것일까. 음저협은 저작권료 정산을 이유로 들었다. “저작권료를 정산하기 위해서는 음악에 대한 상세 정보, 음원을 사용한 팟캐스트의 조회수 같은 정보가 필요합니다. 이런 것들은 개별 콘텐츠 제작자가 줄 수 없는 것들입니다.” 팟빵 역시 음저협과 음원 저작권 계약을 협의 중에 있으나 이는 실시간 방송에 대한 계약일 뿐, 팟캐스트에 대해서는 쉽지 않다고 답변을 보냈다.
이런 상황에서 결국 팟캐스트나 마을미디어는 고래등 싸움에 새우등이 터진 꼴이 되고 말았다. 음저협은 유튜브나 다음, 네이버 같이 이미 음원 저작권 계약을 맺은 플랫폼에서 팟캐스트를 진행하면 된다고 하지만, 이들 플랫폼은 동영상 중심이라 라디오 프로그램을 위주로 흘러가는 대다수의 마을미디어에는 적합하지 않아 시청자의 접근이 더욱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앞서 저작권 위반을 이유로 팟빵에서 프로그램 하나를 내려야 했던 도봉N의 박영록 PD는 이런 상황에서 마을미디어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음악을 소개하기 위해 방송을 했는데 방송을 원활히 할 수 없게 되어 참 안타깝습니다. 저작권 문제에 대응하는 것도 참 힘들고 복잡하더군요.” 하지만 동시에 팟빵의 입장을 이해한다고 박 PD는 이야기했다. “저작권협회에서 대응을 하겠다는데 어쩌겠습니까. 하지만 음저협도 너무 형식적이고, 사무적으로만 대응하는 것 같습니다.”
그나마 현재로써는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로 잘 알려진 힙합 가수 UMC/UW가 같이 관리하는 팟캐스트 <요즘은 팟캐스트시대> 정도만 라디오 형식의 팟캐스트 중에서는 사실상 유일하게 저작권 문제에서 자유로운 상황이다. 음원 플랫폼 ‘banil’(바이닐)과 직접 음원 사용 계약을 맺어 저작권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매우 예외적인 사례일 뿐이다. <요즘은 팟캐스트시대>는 음악 가수가 직접 제작하는 팟캐스트이기에 계약을 맺는 것이 수월하지만, 대다수의 음원 플랫폼은 팟캐스트와 직접 계약하는 것은 염두하고 있지도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저작권, 정말 ‘공정’하게 지켜지고 있습니까
취재를 하던 도중 문득 해결책 하나가 생각이 났다. 분명 저작권법에서는 저작권 보호를 최우선적인 가치로 두고 있지만, 동시에 예외 규정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법 제35조의3에서는 ‘보도 · 비평 · 교육 · 연구’와 같이 비영리적 목적으로 저작물을 이용하는 경우에는 합법적으로 이용이 가능하다. 저작권을 이유로 이러한 사유의 저작물 이용에 제한을 두면 궁극적으로는 공익을 실현하는 것에 제한을 줄 수 잇기 때문이다. 신문이나 지상파 방송의 뉴스에서 자유롭게 음원이나 영화 장면을 사용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규정 때문이다. 이러한 저작물 이용 방법을 ‘공정 이용’(fair use)이라 부른다.
대다수의 팟캐스트는 물론이고 마을미디어는 마을 소식을 전달하고 알리는 비영리적인 목적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마을미디어나 팟캐스트의 음원 사용 역시 ‘공정 이용’으로써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관악FM의 안병천 대표는 이 역시 결코 쉽지 않다고 답변하였다. “저작권 단체들은 그저 돈을 버는 것에 몰두해 있습니다. 아무리 법에 공정 이용 규정이 나와 있어도 좀처럼 받아들일 생각을 안 해요. 정부에 문의해도 상황은 같습니다. 그저 원론대료 저작권료를 납부하면 된다고 말할 뿐입니다. 공동체라디오도 사실 상황은 비슷해요. 매번 협상할 때마다 비영리적이며, 이렇다 할 수익 역시 나오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지지부진한 회의 끝에서야 겨우 협상을 맺습니다. 공동체라디오도 이렇게 어려운데 마을미디어는 더 어렵죠.”
진보네트워크센터의 오병일 활동가는 저작권 단체들이 공정 이용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물론, 개별적인 저작권 계약을 막는 현재의 상황이 중대한 문제라 주장했다. “저작권자들이 권리만 주장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않아요. 이런 상황에서 저작권만 주장하는 것은 일종의 권리 남용입니다. 저작권법에서는 저작권의 보호를 규정하고 있지만, 동시에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규정하고 있습니다. 어떤 점에서는 법의 취지에도 맞지 않는 태도인 것이죠.”
분명 저작권은 중요한 권리이다. 특히 창작자에게 있어선 자신이 공을 들여 만든 작품의 가치에 대한 보상을 규정하는 권리라는 점에서 단순히 무시할 수는 없다. 문제는 공익적, 비영리적인 사용에도 사사건건 문제를 제기하며 어떻게든 저작권료를 타내려고 하고, 동시에 그렇게 받아낸 돈이 온전히 창작자에게 돌아가느냐다. 최소한 한국의 상황으로만 따져 보았을 때는 아무리 저작권료를 강도 높게 받아내도 창작자에게 노동의 가치가 온전히 지급되지 않아 보인다. 이를 반증하는 사례들이 너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한국 최대의 음원 저작권 단체인 음저협은 작년 10월 큰 논란에 휩싸였다. 매년 방송국으로부터 수백억대의 음원 저작권료를 받지만, 정작 이를 분배하는 과정에서는 각 저작물이 얼마나 사용되었는지 제대로 파악하는 대신 주먹구구로 대충 분류하며 각각의 저작권자나 창작자에게 분배한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또한 비슷한 시기엔 음원제작사 ‘로이엔터테인먼트’(현, 쿵엔터테인먼트)가 대형 방송사들과 OST 제작 계약을 맺으면서 큰 수익을 올려도 실제 OST를 만드는 소속 작곡가들에겐 월급도 제대로 주지 않는 것은 물론 음원 저작권자 역시 회사 대표의 이름으로 등록한다는 사실이 폭로되며 큰 파장을 낳았다. 절대 저작권료는 창작자들에게 공정하게 전달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저작권, 단순히 ‘수단’으로 남지 않기 위하여
저작권 문제는 저작권료로 지급된 금액이 제대로 저작권자에게 돌아가고 있느냐의 문제에서 그치지 않는다. 저작권은 때로는 새로운 작품을 제작하려는 창작자에게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감이 되기도 하고, 또 때로는 저작권이 탄생한 본래의 목적을 넘는 식으로 오용되어 다른 누군가의 목을 조르는 식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앞서 오병일 활동가가 지적한대로 이는 저작권법의 목적과 취지에 무척이나 어긋나는 상황들이다.
누군가는 마을미디어나 팟캐스트가 다른 누군가 힘들게 제작한 음악을 공짜로 사용하는 것인 합당치 않으며, 자신들이 사용한 분량에 맞는 금액을 납부하면 끝날 것이라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미 앞서 살펴봤듯 음저협을 비롯한 저작권 단체들은 자신들이 정성들여 관리해야 할 저작물의 사용 횟수조차 제대로 기록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저작권 협회는 자신들의 내부 규정을 개선하는 대신 더 많은 돈을 받아내려다 결국 법정까지 가고 나서야 겨우 문제가 일단락된 전적을 가지고 있다.
[사진 4] 2015년 7월 9일, 유럽의회는 저작권 규정의 디지털 환경에 맞는 조정과 공정 이용의 우대 조치 활성화, 캐리커처-패러디 목적의 저작물 사용의 공정 이용 인정 등의 내용이 담긴 저작권 지침 개정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이렇게 한국에서 저작권법이 역설적으로 창작자의 권리를 제약하는 상황에서 2015년 7월 9일 유럽의회가 채택한 저작권 지침 개정 결의안은 한국에 많은 생각할 거리를 불러 넣어준다. 결의문에는 저작권 규정이 발전하는 디지털 환경에 맞게 조정되어야 하며, 공중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서 공정 이용의 우대 조치를 활성화하는 것은 물론 민주적 토론의 활성화를 위해 캐리커처나 패러디 목적으로 저작물을 사용하는 것 역시 공정 이용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비록 처음 제기된 결의안에 담긴 시청각 저작물의 공정 이용에 대한 조항이 누락되면서 몇몇 사람들은 이를 비판했고 아직까진 ‘결의안’에 불과하기 때문에 법률적인 효력은 없으며, 유럽연합 전체의 저작권법이 결의안에 맞춰 개정되어야만 효력을 지닌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기초적인 수준의 공정 이용마저 큰 제한을 겪어야만 하는 한국에 비교하면 무척이나 혁신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정부를 비롯해 신문, 방송 등의 매체에서는 저작권을 ‘불법 공유’에 한정지어 이야기해왔다. 간혹 가다 ‘로이엔터테인먼트’의 사례처럼 불공정 계약으로 저작권을 갈취한 사례 정도가 회자될 뿐이다. 이러한 차원들에서 저작권은 그저 ‘이권’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저작권은 그저 돈을 낳는 권리에 불과한 것일까. 작품을 만들면 자동적으로 창작자에게는 작품을 활용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긴다. 그 권한을 통해 창작자는 단순히 작품을 복제해 판매할 수도 있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방법대로 매만질 수도 있고, 비슷한 위치에 있는 무수한 창작자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활용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설정할 수도 있다.
이러한 권한과 범위를 규정하는 것이 ‘저작권’이다. 물론 함부로 자신이 만든 작품을 도용하거나 표절하는 일을 막기 위한 처벌 규정도 있어야 하지만,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여지는 반드시 제공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앞서 음저협이 개별 창작자들에게 사용권 계약을 막고 있는 현실에서 드러나듯, 최소한 한국에서 저작권은 저작물을 활용하고 이를 기반으로 창작할 수 있는 권한을 의미하지 않는다. 음저협을 비롯한 저작권 단체들에게 저작권은 그저 돈이 오고 가는 창구에 불과하고 만다.
진정으로 저작권 단속의 강화가 창작자를 위해서라면 실제 창작자가 처한 노동의 현실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저작권법이 단순히 저작물을 사용하면 돈을 내라는 수준의 법안이 아니라 저작물의 원활한 활용을 위한 것이 본래 목적이라는 사실도 인식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진정으로 저작권의 가치를 되살리는 길이 아닐까. 물론 마을미디어나 팟캐스트 같이 단순히 크기가 작다고 지나치기에는 너무나도 소중한 방송들을 가꿔나가기 위해서도 말이다. □
저작권 문제, 마을미디어와 팟캐스트만의 것일까?
: 한국 영화, 그리고 SF 팬진 <alt. SF>의 사례
지난 2012년부터 2016년까지 한국 영화계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이하 음저협)와 치열하게 법적 공방을 펼쳐야 했다. 음저협은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한국독립영화협회 등이 음원 저작권 문제에 대응하여 결성한 ‘영화음악저작권대책위원회’와의 협상에서 오직 음저협과 음원 저작권 계약을 맺어야 하며, 영화음악 감독과 영화 제작자와 계약하는 경우에도 무조건 음저협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음저협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음원 저작권료인 ‘음악사용료’ 외에 극장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것을 ‘공연 행위’로 간주해 영화의 극장 상영시 ‘공연사용료’의 명목으로 별도 비용을 납부해야 하며, 2010년 10월부터 극장에서 상영된 모든 영화는 이 규정에 소급해서 미지급된 저작권료를 납부할 것을 요구했다.
당연히 영화계는 음저협의 이러한 요구에 반발했다. 이미 정당히 영화에 음악을 사용하는 대가로 저작권료를 지급했는데, 음저협의 주장대로라면 극장에서 영화를 상영할 때마다 별도로 저작권료를 지급해야하기 때문이다. 특히 독립영화의 경우에는 제작진들이 직접 음원을 만들어 사용해도 무조건 음저협과 다시 계약하고, 영화를 상영할 때마다 돈을 납부하라는 요구가 사실상 음악을 사용하지 말라는 이야기나 다름이 없는 주장이기에 더욱 문제가 되었다.
음원 저작권자의 권익을 더욱 높이기 위해서 이런 요구를 주장했다고 보고 싶어도 음저협 만을 유일한 음원 저작권 계약 당사자로 규정하도록 했기에 오히려 실제 음원을 제작하는 창작자의 권한을 무시하는 행동이었다. 결국 협상은 결렬되었다. 그러자 음저협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저작권료 징수 규정에 자신들의 주장을 반영할 것을 요구했고, 그로 인해 논란은 계속 커져갔다.
결국 2016년 1월 대법원까지 가고 나서야 문제는 최종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대법원은 음원이 사용된 영화를 극장에서 상영하는 행위를 ‘공연’으로 볼 수 없다고 판결을 내렸다. 동시에 음저협과 같은 저작권 수탁기관을 거치지 않고서도 음악을 실제 만든 창작자와 직접 저작권 계약을 맺을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음저협의 음원 저작권 주장이 너무 과했다는 것을 법원이 인정한 것이다. 저작권 문제에 있어 긍정적인 판결이었으나, 영화계는 이 판결을 듣기 위해 4년이라는 세월 동안 지지부진한 법정 논쟁을 벌어야만 했다. 그마저도 소송의 주체가 CJ CGV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웬만한 기업이나 단체로써는 결코 쉽지 않은 싸움이다.
이렇게 다른 창작자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저작권료를 요구하는 모습은 그나마 최대한 이해해보자면 자신들이 제작한 (또는 관리하는) 저작물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한 조치라고 해석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1인 SF 팬진 <alt. SF>가 겪은 사례는 저작권료 요구가 단순히 권리 보장을 넘어 건전한 비판마저도 봉쇄하는 도구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지난 2010년 11월에 창간한 <alt. SF>는 SF를 비롯해 많은 장르소설 팬들에게 주목과 호응을 받았던 웹진이다. 비록 한국의 SF 독자수가 그리 많지 않아 절대적인 영향력은 결코 다른 매체에 비교할 수 없었고, 혼자서 운영하는 매체인 동시에 ‘팬진’을 자처하는 곳이기에 이따금씩 매체의 방향에 불편함을 느끼는 이도 있었지만 한국에서 SF를 다루는 이렇다 할 매체가 없는 상황에서 <alt. SF>는 해가 갈수록 업데이트 주기가 길어지는 중에서도 날카로운 비평으로 SF 팬들의 지지를 얻어왔었다. 하지만 2016년 초, <alt. SF>는 갑작스럽게 대형 사태에 휘말리게 되었다.
시작은 출판사 은행나무에서 최근 창간한 격월간 문예지 <Axt>(악스트) 2016년 1월호에서 SF 소설가 듀나(djuna)와 가진 인터뷰가 인터넷 상에서 문제가 되면서 부터였다. <Axt>의 편집위원이자 소설가인 배수아, 백가흠, 정용준이 가진 이 인터뷰는 듀나가 처음 데뷔하면서 계속 가져왔던 익명성이나 SF 소설가로써의 정체성을 이해하지 않고 자신들의 편견에 입각해 무례하게 인터뷰를 나눴다는 점에서 논란이 되었다. 이후 <alt. SF>는 2월 8일 발간한 2016년 1월/2월 합본호에서 해당 논란을 다루었다.
그리고 2월 13일 <Axt>를 발간하는 출판사 은행나무는 <alt. SF>의 운영자에게 인터뷰 논란을 다룬 글이 <Axt>의 인터뷰 전문 일체를 게재했으니 저작권법을 위반했다는 메일을 보냈다. <alt. SF>는 <Axt> 인터뷰 인용이 저작권법에 명시된 공정이용에 따라 활용하였다고 답변을 보냈으나, 은행나무는 2월 15일 한국저작권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의 상담 내용을 인용하며 <alt. SF>의 인터뷰 기사 전제가 진정한 공정이용인지 법정에서 가릴 수 있다는 의사를 간접적으로 전달했다.
결국 2월 18일, <alt. SF>는 무기한 운영 중단을 선언했다. <alt. SF>는 운영 중단을 알리는 공지에서 은행나무의 문제 제기가 저작권법에서 그치지 않고 명예훼손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우려했다. 동시에 이런 일을 겪고 난 이후에도 자신이 그간 자유롭게 <alt. SF>로 펼쳐왔던 글들을 계속 쓸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드러냈다. <alt. SF>의 이 무기 휴간 사태는 저작권법이 언로를 제약하는 방향으로도 충분히 쓰일 수 있음을 드러내는 단적인 사례가 되었다. 그나마 CJ CGV는 KOMCA의 부당한 요구에 법적 소송으로 계속 맞설 수 있었지만, <alt. SF>는 그럴 수도 없었다.
● 참고자료
<글로벌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와 음악저작권 보호를 위한 협약 체결>, 한국음악저작권협회, 2010년 5월 18일
<“방송 배경음악 ‘주먹구구’식 저작권료 분배”>, 뉴스1, 박창욱 기자, 2015년 10월 7일
<[2015-15 유럽] 유럽의회, 공유 저작물의 확대와 저작권 제한 및 예외의 현대화를 골자로 하는 유럽연합 저작권 지침 개정 결의안 채택>, 한국저작권위원회, 임기현, 2015년 8월 5일
<드라마 OST의 비밀>, MBC <시사매거진 2580> 965회, 2015년 10월 25일
<[토요기획] 이름없는 작곡가들의 싸움>, 경향신문, 박은하 기자, 2015년 12월 25일
<음악 저작권, 협상은 끝났다 : ‘음저협 사태’ 진행 경과와 향후 과제>, 월간 <한국영화> 2012년 9월호, 전종혁, 영화진흥위원회
<현장이 원활히 돌아가는 것, 이를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 황경일 영화음악저작권대책위원회 법률단>, 월간 <한국영화> 2012년 10월호, 전종혁, 영화진흥위원회
<영화음악 공연료 요구할 수 없다>, <씨네21> 1039호, 이예지 기자, 2016년 1월 15일
<악스트 사태>, <alt. SF> 2016년 1월/2월호, 2016년 2월 8일
<휴간 안내>, <alt. SF>, 2016년 2월 18일
● 인터뷰 및 자료 정리 : 최은정(ACT! 편집위원회)
[필자소개] 성상민(ACT!편집위원회)
지금은 사라진 만화언론 [만]에 2005년 얼떨결에 객원필진으로 데뷔해 한 10년 이상 팔자에도 없을 줄 알았던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 빨리 졸업하려고 다짐했던 경희대학교 사회학과는 2010년 입학한 이래 졸업 학점은 아직 한참 많이도 남았지만 이젠 뭐 언젠간 졸업하겠거니 하고 만다. 지금은 [ACT!]와 [미디어스]를 중심으로 만화, 영화, 미디어 등 각종 문화에 관련된 글을 줄창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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