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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72호 리뷰] 영화는 어떻게 현실에서 살아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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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 acteditor 2016. 1. 20.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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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72호 리뷰 2010.12.22]

 

영화는 어떻게 현실에서 살아남는가?
- 영화 [변방에서 중심으로]를 보고 -

달로 (인디다큐스페티발 집행위원)

 

 

 

 

창밖으로 굵디굵은 솜털들이 온 공기를 뒤덮고 부유한다. "아, 12월이구나" 작은 탄성을 내뱉으며 오지 않을 것 같던 한 해의 끝을 실감한다. 지구는 공전에 따라 늘 규칙적으로 계절의 변화를 보여주었지만 2010년에는 유난히 이상한 날들이 많았다. 폭우는 너무 길고 지루했으며 가을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우리는 그 봄과 여름과 가을에 자주 '미친 날씨'와 '미친 세상'에 대해 이야기 했다. 어쨌든 저건 그 미칠 것 같던 2010년의 끝을 향해 다가오는 첫눈이라고.

 

 

2010년 독립영화계 또한 이상한 날씨만큼이나 생경한 일들을 무수히 경험했다. 2009년 말 영화진흥위원회가 ‘영상미디어센터'와 ‘독립영화전용관'의 재계약을 앞두고 사업의 운영주체를 공모제를 통해 불공정하게 심사, 선정하였고, 2010년 2월에는 전체예산 30% 지원으로 공모권리 조차 없는 ‘시네마테크'의 사업자를 공모하기에 이른다. 이어 5월 조희문(전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의 독립영화제작지원 심사과정에 외압 사건, 7월 한국 독립?예술영화 제작의 근간이 되었던 ‘독립영화제작지원'과 ‘예술영화제작지원'등이 전액 삭감된 2011년 영화발전기금 예산안 발표, 그리고 11월 조희문 위원장의 해임에 이르기까지..


 

 

 
2010년 영화인들은 ‘영화진흥위원회'의 정상화를 촉구하며 뜨거운 퇴약볕에서, 차디찬 콘크리트 바닥에서 동분서주 했다. 그야 말로 이상한 아니 수상한 계절에 미친 시간이 아니었던가.

 

 

미래보다 가까운 과거 이야기, 영화 <변방에서 중심으로>

 

 

영화 <변방에서 중심으로>(감독 홍형숙, 1997)는 현 독립영화 형국에 비추어 많은 것을 반추하게 만드는 영화다. 제작된 지 무려 15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났지만, 64분의 길지 않은 이 영화는 15년 전의 과거가 우리의 내일보다 얼마나 더 가까이 있는지 통렬히 보여주고 있다.

 

 

5개의 단락으로 구성된 영화는 1990년 대 말의 시선으로 1980년 그 이후의 독립영화사를 증언하는데, 그 첫 번째 서문은 서울영상집단이 제작한 <두밀리, 새로운 학교가 열린다>(감독 홍형숙, 1995 : 교육부의 소규모 학교 통폐합 정책에 맞선 경기도 가평군 두밀리 주민들과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변방에서 중심으로> 제작팀은 <두밀리, 새로운 학교가 열린다>가 완성된 지 2년이 지나 다시 '변방'의 현장을 찾아 두밀리 주민들(그리고 현실을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묻는다. 당신들에게 '변방'은 어디고, '중심'은 어디인가?

 

 

첫 번째 _ 고민, 충돌은 희망이다.

 

 

영화는 '변방'과 '중심'에 대한 질문에 꼬리를 물고 그것을 만들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기 시작한다. 한국의 대표적 독립영화 단체인 '노동자뉴스제작단'과 '푸른영상'의 대표의 격렬한 의견차를 숨죽여 들어보기도 하고, 독립영화의 모태를 이루었던 대학 영화패 '얄라셩'과 '서울영상집단'의 무수한 사건과 무용담 같은 에피소드들을 함께 회상해보기도 한다. 갈등과 애정, 고민이 묻어 있는 영화 속 순간들은 모두 독립영화에 대한 각기 다른 의미와 정체성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을 던져 준다. '독립영화란 무엇인가', '나는 독립영화를 만들고 있는가', '나는 독립영화인인가' 끊임없는 질문은 다시 '우리는 왜 독립영화를 시작했는가'라는 물음으로 귀결된다. "나는 왜 독립영화를 시작했는가" 
 

 


 
두 번째 _ 열정, 시대를 품고 출발한다.

 

 

영화는 충돌하는 에너지들로 혼란스러워지는가 싶더니, 독립영화인들의 현실에 대한 고민과 열정을 영화 속 영화로 재탄생 시킨다. 1980년대와 90년대는 79년 유신체제의 몰락과 함께 가장 거센 민주화 운동과 변혁운동의 시기였고, 1988년 올림픽과 강제철거의 모순된 현실을 폭로한 <상계동 올림픽>(감독 김동원, 1988), 국내최초의 노동영화 <파업전야>(감독 이은, 장동홍, 장윤현, 이재구, 1990) 등이 제작된 시기이기도 하다. 그렇게 영화는 <상계동 올림픽>, <파업전야> 등 80년대와 90년대를 대표하는 독립영화의 장면들을 연이어 보여주며, 독립영화가 시대의 현장을 증언하는 기록물로, 한국사회의 제반문제를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하는 저항의 도구로 시대와 함께 했음을 설파한다.

 

 

세 번째 _ 영화, 때로는 전사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영화는 다시 무섭게 현실이 되어 영화와 영화인들을 더 거세게 죄어 온다. <파업전야> 상영 저지 및 '푸른영상' 김동원 대표의 구속, 서울다큐영상제 상영작 중 <레트헌트>(감독 조성봉, 1996)의 검열 그리고 이어진 상영 취소, 관의 방해로 중단되는 인디포럼97. 그들이 만들었던 영화에서 제도의 검열에 피 흘리며 저항하는 사람들, 자본과 전투하는 노동자들의 날선 모습들은 현실 속에서 표현의 자유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독립영화의 현장과 마치 하나의 뉴스릴 같아 보이기도 한다. 이쯤 되면 관객은 자신도 모르게 걱정이 앞서지만, 영화인들과 그들이 만들어낸 영화 모두 현실에 한 발 물러섬 없이 없다. 영화인들의 부서지지 않고 인디포럼97을 재개하며 다시 거리로 나선다.
 

 

 


네 번째 _ 사람, 온전한 세상을 꿈꾼다.

 

 

결국 현실과 영화 모두 중심이 되는 것은 사람이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과 영화는 서로의 존재로 인해 살아가고 살아남는다.

 

 

'상계동 올림픽'으로 인생이 바뀌었다는 김동원, 강덕경 할머니의 죽음 앞에서 '지금은 아무 생각도 안하기'라며 눈물을 머금은 신명화, 자신의 영화가 혁명의 일부가 된다면 사는 보람이 있을 것 같다는 이지영, 영원한 장산곶매를 꿈꾸는 이용배, 나설 자격이 없다며 인터뷰를 거부하는 낭희섭, 좋은 세상이 오면 낚시를 하고 싶다는 김명준, '한줌의 무리도 안 되는' 독립영화인들의 자성을 촉구하는 최진아, 그리고 그들을 관찰하는 홍형숙. 독립영화인들의 자성과 딜레머, 긍지와 신념. <변방에서 중심으로>는 관습으로 고정된 독립영화의 현재를 아프게 드러내고, 조금씩 길을 가고 있는 희망을 얘기하며, 서로에게 믿음을 발견하기 위한 독립영화 내부의 성찰이다. (<변방에서 중심으로> 시놉시스 중)

 

 

 

다섯 번째 _ 희망, 충돌의 끝에서 다시 시작이다.

 

 

<변방에서 중심으로>는 마지막 단락에 다다라 지금까지 영화 속에 각계로 존재하던 사람들을 현실의 한자리에 불러 모은다. 어려운 시대를 극복해 온 많은 '다른' 사람들은 그래도 그것(독립영화)이 올바른 선택이었으며, 앞으로도 그것이 우리의 치유가 될 것이라 말한다. 영화는 그렇게 독립영화의 역사를 정리함과 동시에 다시 시작된다.

 

 

변방에서 변방으로, 끈질기게 현실에서 살아남기

 

 

한국의 독립영화는 2000년대를 넘어서면서 몇몇 영화의 상업적 흥행과 각종 해외 유명 영화제에서의 수상으로 그리고 고단한 현실에서 치열하게 싸워온 수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더불어 제작환경과 상영 환경 또한 많이 달라졌다. 그럼 이제 독립영화는 변방보다 중심이 가까워진 걸까?

 

 

그러나 시대는 여전히 현실에 보다 현실적으로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듯하다. 서두에 정리한 것처럼 독립영화는 2010년 오늘도 고난의 행군을 계속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 고난의 행군은 변방에서 중심이 아닌 변방에서 변방으로 계속되고 있다. '변방'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이고, '중심'이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세상이라면, 사람과 영화는 언제나 우리가 변방의 어딘가에서 중심으로 가는데 필요한 실존의 산물이 되어 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1997년 <변방에서 중심으로>가 보여주었듯이, 그 둘을 믿는 것이 언제나 우리의 올바른 선택일 것이라고!

 

 

* 키워드: 독립영화란, 독립영화계의 내부적 성찰, 시대적 갈등과 저항, 우리는 어떻게 싸워왔는가, 싸움의 안과 밖 그리고 차이, 제도적 억압, 민주화와 운동 그리고 영화, 이것만은 꼭 챙겨주세요. 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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