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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77호 리뷰] 홀릭이 추천하는 올해의 독립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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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6. 1. 18.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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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77호 / 2011년 12월 15일

 

 

홀릭이 추천하는 올해의 독립영화

 

 

홀릭(서울LGBT영화제 프로그래머)

 

 

 

[편집자 주] ACT! 77호 리뷰는 올해 제작 배급된 독립영화를 돌아보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보다 다채로운 독립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담기 위해 지난 75호 서울LGBT영화제 원고로 인연을 맺은 홀릭님의 리뷰를 싣습니다.

 

[종로의 기적]

 

이혁상/ 다큐멘터리/ 한국/ 115분/ 2010년

 

 

▲ [종로의 기적] 포스터

2011년 한 해 동안 가장 인상 깊게 본 영화를 꼽으라고 한다면,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말하겠지만, 난 주저 없이 [종로의 기적]을 고르겠다. 이 영화는 네 명의 게이(남성 동성애자)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이다. (이 영화가 더욱 특별한 건 “게이가 만든 게이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게이’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 패션리더이거나, 미소년 모습의 꽃게이 이거나, ‘어머머’ 하면서 호들갑을 떠는 수다스런 모양새-의 게이들만 있는 줄 알지만 [종로의 기적]의 네 주인공은 사람들 머릿속의 게이의 전형성을 벗어나 현실 속에 평범한 사람들과 닮아 있다.

 

 감독의 백일사진을 보여주며 자전적인 내레이션으로 이혁상 감독이 먼저 커밍아웃의 문을 여는 영화는 네 주인공의 삶을 차례로 보여준다. 잔뜩 움츠려 있고, 스텝들과의 소통을 어려워하는 영화감독 소준문, 일터에서 핑크를 허하기를 외치는 인권활동가 장병권, 10년동안 게이친구 하나 없다가 게이 코러스 지(G)보이스를 만나 지금이 내 인생의 황금기라고 말하는 최영수, 그리고 직장을 다니고 자신의 삶을 변화시킨 애인을 만나면서 사랑을 확인하고 사랑의 정치를 펼치는 정욜. 이 네 사람이 주인공이다.

 

 영화 속 네 사람의 인생이 각기 다르지만 하나의 주제로 통하게 된다. 바로 “커밍아웃”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종로라는 공간을 보여주긴 하지만 적극적으로 활용하진 못했다는 한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명의 주인공이 이끌어 가는 각각의 에피소드는 그 약점을 충분히 커버할 만큼의 힘을 지니고 있다. 아직 이 영화를 보지 못했다면, 어떻게 해서든 꼭 보길 원한다. 이미 영화는 막을 내리긴 했지만 공동체 상영도 하고 있기 때문에 작은 인원이라도 모여서 ‘연분홍치마’에 신청을 하면 볼 수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부문 대상에 해당하는 ‘피프(PIFF) 메세나상’을 수상하였고, 한국독립영화협회가 선정하는 ‘올해의 독립영화’로 선정되었다.

 

[그을린 사랑]

 

드니 빌뇌브/ 극/ 캐나다/ 130분/ 2010년

 

 

▲ [그을린 사랑] 포스터

대단한 반전이네 최고의 결말이라는 말들이 많았던 영화이다. 그 탓인지, 같이 보러간 친구는 머릿속에 반전 반전만 생각하다 알아차리기도 했지만, 영화의 결말은 외신들의 호들갑이 아닌 충격임은 틀림없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영화의 강렬함은 쉽게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전쟁을 통해 겪어온 한 여자의 인생은 그 세대의 고통으로만 머무르지 않고 그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오프닝부터 흘러나오는 라디오헤드의 음악 [You and Whose Army?] 는 영화의 우울함과 묘한 홀리는 느낌을 잘 표현해 준다. [그을린 사랑]에서 특정 시대와 장소를 가늠하긴 어렵다. 기독교와 이슬람 세력이 싸움이 일어나고 있는 중동지역으로 예상할 수 있지만 정확하게 나오진 않는다.

 

 어머니 나왈이 죽게 되면서, 남겨진 유언을 듣게 되는 쌍둥이 남매 잔느와 시몽은 심한 혼란에 빠지게 된다.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와 알지도 못하는 형제를 찾아 자신의 편지를 전하라는 것이 유언이기 때문이다. 유언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과거를 마주해야 하고 몰랐던 어머니의 과거를 되짚어 가면서 밝혀지는 겹겹이 쌓여진 비밀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쉽게 드러나지 않고 양파를 까듯이 하나씩 하나씩 벗겨지면서 머릿속에 퍼즐이 맞춰진다.

 

 스포일러를 말하지 않으려고 에둘러 이야기 하고 있지만, 전쟁은 한 여인의 삶을 고통스럽게 찢는 칼이 되어 죽음까지 이르게 되고 그 고통은 다음세대까지 이어지게 된다. 하지만 이 영화가 희망적인 것은 한 여자가 자신의 증오와 분노를 다음세대까지 물려주고 싶지 않고자 하는 소망을, 사랑과 용서로서 끊고자 하는 열망을 영화가 끝까지 가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그것이 너무나도 억지스러우면서도, 한편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랑과 용서를 말하지 않으면 자신의 비극적인 인생의 어느 한 순간도 살기 힘들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전쟁을 다룬 영화들이 대부분 남성적인 시각이 강했지만 이 영화는 한 여성의 시선에서 낱낱이 파헤치는 영화이다.

 

[쓰리]

 

톰 티크베어/ 극/ 독일/ 119분/ 2011년

 

 

▲ [쓰리] 포스터

아무런 정보 없이 극장 문을 두드렸고, 결국 두 번 보게 된 영화이다. 지레짐작으로 프랑스영화일 거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독일영화였다. 옴므파탈계를 주름 잡을 새로운 미중년 아담과 그에게 흠뻑 반해버린 20년 동거 커플 한나와 시몬 이렇게 세 명의 사랑이야기가 [쓰리]의 주된 내용이다.

 

 하지만 단순하게 성적환타지로서 쓰리 섬에 대한 영화라고 말하기에는 시몬의 어머니의 죽음, 결혼에 대한 생각 등의 인생의 문제를 보여주는 만만치 않은 영화다. 영화는 시종일관 다양하고 진지한 주제들을 다루면서(유전자 복제 관한 윤리, 성정체성, 안락사 등) 유머를 잃지 않는다.

 

 사건은 한나와 시몬의 권태로부터 시작이 된다. 둘 다 동시에 자유로운 영혼 아담을 만나면서 맞바람을 피지만 둘이 동시에 한 남자를 만난다는 것을 서로 모른다. 그래서 흔히 관객들은 이쯤에서 한나와 시몬의 관계가 깨질 것을 예상하지만 오히려 아담을 만나는 두 사람의 관계는 권태를 벗어난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사이로 변해간다.

 

 영화의 노출 표현의 수위는 사실적이며, 섹스의 행위들이 많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야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그 이상의 고상하게 그려지는 것 또한 이 영화가 잘 만들어진 이유 중에 하나이다. 마성의 바이섹슈얼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아담이라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세 사람의 관계에서 인물들이 고뇌하는 질문들은 또 하나의 축으로 한나가 출연하는 TV 프로그램의 패널들을 통해 관객들에게 철학적인 질문들을 끊임없이 던진다. 마치 너희도 한 번 생각해 보라는 것처럼. 스피노자의 자유와 억압의 관계, 주어진 틀과 소외된 감정들, 틀밖에 존재하기를 권하기도 하고 역설적으로 고정관념이나 틀이 과연 존재하는지에 대한 물음들을 말이다.

 

 그 밖에도 영화장면 곳곳에 현대예술을 감각적으로 함께 보여주는 것이나, 두 남자가 만나는 야외와 실내 중간에 놓여있는 환상적인 수영장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나도 한번 저기서 수영하고 싶다’는 욕망이 일어날 정도로 시각적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다. 세 명의 주연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 [쓰리]는 2010년 베니스 영화제 경쟁부분에 진출했고 2011년 저먼필름어워즈에서 감독상, 여우주연상, 편집상을 받은 올해의 대단한 문제작이라고 생각한다.

 

[리코더 시험]

 

김보라/ 극/ 한국/ 28분/ 2011년

 

 

▲ [리코더 시험]의 한 장면

 초등학교 때 준비물을 챙겨오지 않아서 수업시간에 벌을 섰던 기억이 있다. 다른 아이들은 집에 전화를 걸어 엄마에게 준비물을 가져다 달라고 할 수 있었지만, 엄마가 돈을 벌어야 하는 형편상 그럴 수 있는 아이들이 부러울 뿐이었다. 그냥 준비물을 잘 챙기지 않은 오롯이 내 탓이었다.

 

 [리코더 시험]은 나의 어렸을 때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아련하고, 쓸쓸한 관심 받지 못한 어린 여자 아이의 성장 영화이다. 우연한 기회에 우연치 않게 보았지만 훌륭한 단편영화다.

 

 영화의 배경은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88년도쯤 이고, 영화의 주인공은 9살 소녀 은희이다. 학교에서 리코더 시험을 보기 위해 연습해야 하지만 집에서는 누구도 도와주지 않으며, 가족들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바람피우는 아버지를 감시하는 어머니, 오빠는 툭하면 은희를 괴롭히고, 함께 방을 쓰는 언니는 남자친구를 방에 데려오기도 한다. 가족의 무관심 속에서도 꿋꿋이 리코더 시험 준비를 하는 9살 은희. 과자를 사먹으면 나오는 모형 집으로 작은 마을을 꾸미면서 혼자 노는 아이의 외로움의 모습이나 새 리코더를 갖고 싶으나 사지 못하는 가난 등을 어린아이의 시선을 담아 잘 표현한 작품이다.

 

 주인공의 연기가 참 좋았고, 장편으로 만들었어도 좋을 영화이다. 국내 미장센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 대구단편영화제 등에서 대상을 수상했으며, 최근에는 미국 영화감독조합(DGA)이 주는 권위 있는 영화상을 수상했다. 12월에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영된다고 하니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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