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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76호 리뷰] 봄날에 겨울을 준비하자-『소금꽃나무』는 겨울을 보는 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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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6. 1. 19.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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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76호 / 2011년 9월 30일


 
 
 
봄날에 겨울을 준비하자
-『소금꽃나무』는 겨울을 보는 창이다-





심명진 (미디액트 독립다큐멘터리 제작 과정16기)

 

일주일에 두 번 케이티엑스(KTX)를 타고 서울과 부산을 왕복했다. 한 여름, 나는 영도와 서울의 공기가 외국과 한국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 사이 단지 100일 즈음이 지났을 뿐인데, 오늘의 나는 한진 해고자분들과 함께하는 영도의 보도블록 위가 서울 어느 카페보다 편안하다. 그들과 함께한 초여름부터 가을이 오는 지금까지, 내가 사는 세상은 많이 커졌다. 내가 지금까지 창을 통해 세상을 봐왔다면, 지금 내가 보는 세상은 창 너머의 진짜 세상쯤 될 것 같다.

 

 

 

한진 사태는 한국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거시적으로는 국제화와 신자유주의로 인한 병폐를 막아보고자 하는 작은 움직임이며, 미시적으로는 해고노동자의 삶과 가정을 파괴하는 자본, 권력에 대항하는 연대를 통한 저항이다.

 

 

2010년 말, 한진중공업이 경영난을 이유로 400여명 정리해고자 명단을 발표하면서 투쟁이 시작됐다. 이후 트위터를 통해 전 세계로 한진 사태가 알려졌다. 그리고 지금 가을소풍이라 명명된 5차 희망버스가 준비 중에 있다. 희망버스는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철회를 목적으로 전국규모로 구성된 자발적인 연대모임이다.

 

 

희망버스1차부터 5차까지 수만 명의 투쟁 동반자가 생기는 동안 몇몇 해고노동자는 자식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러 떠났고, 다른 몇몇은 여전히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철없는 남편, 무책임한 아버지가 되어 하루하루 고되게 투쟁하고 있다. 무엇을 해도 상처가 되는 지난한 투쟁의 정점에 85호 크레인의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있다.

 

 

나와 당신이 몰랐던 우리의 위치

 

김진숙의 『소금꽃나무』는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들도 정리해고 전에는 몰랐을 그들의 위치 그리고 나와 당신도 모를 우리들의 위치를 가늠할 창문을 제시한다. 우리가 보고 싶은 모습이 아닌 진짜 모습 그대로 불편하지만 그렇게 존재한다. 오케스트라 단원부터 대형병원 직원, 철도 비정규직 노동자, 중공업과 자동차 노동자까지 폭넓게 노동자를 다루는 그의 손끝엔 따뜻한 애정이 서려있다.

 

 

뼛속까지 노동자인 김진숙의 『소금꽃나무』에는 그의 노동인생이 오롯이 담겨있다. 김진숙은 버스 안내양시절과 봉제공장 노동자 시절을 회고하며 말한다. “그 시절을 생각할 때 스스로에게 가장 부끄럽고 화가 나는 일은 열여덟 시퍼런 나이에 어찌 그리 모든 걸 빨리 체념하고 왜 그리 당당하지 못했을까.”하는 것이었다.

 

 

그런 그가 『전태일 평전』을 읽으면서 바뀌었다. 체념하는 삶이 스스로에게 부끄럽다는 생각을 했다. 김진숙의 『전태일 평전』은 나에게 『소금꽃나무』이며, 한진중공업 사태이다.

 

 

이 세상은 어떤 불합리한 상황에도 당사자만 참으면 되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말한다.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개인은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 하지 못한다. 한 가족의 삶이 걸려있더라도 사회에 의해 규정된 다수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면 불순분자라는 오명이 굳어지고 그렇게 무기력해진다.

 

 

이에 대해 “무력하기 짝이 없다보면 타협하게 되고, 타협에 길들여지다 보면 그게 사는 요령이라 믿게 된다고.” 김진숙은 말한다. 그렇게 권력, 자본과의 싸움 뿐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내는 것이 그가 말하는 노동자의 투쟁이다.

 

 

대한민국의 노동역사에서 노동자는 노예만도 못한 삶을 살아왔다. 그들은 자존감을 찾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 노동환경을 지켰다. 그들의 피맺힌 삶엔 현재를 사는 우리의 평안이 담보 되어있다. 우리가 이미 주어진 권리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의도하지 못하고 놔 버린 신념과 소신, 정의들이 오롯이 더 큰 빚이 되어 다가올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김진숙은 본인의 삶을 통해 말을 한다.
 
 
겨울을 견디는 푸른 옷의 노동자

 

『소금꽃나무』 속 노동자의 면면은 속상하리만치 내가 아는 푸른 옷을 입은 노동자들과 닮았다. 영도에서 생전 만나지 못할 것 같았던 그들과 술을 나누고 말을 나누면서 그들의 진짜 이야기를 들었다.

 

 

 

자식에게 선글라스와 장난감자동차를 못 사주는 현실에 힘들고, 앞으로의 하루하루가 걱정스럽다. 하지만 연대해 주는 시민들이 고마워 다시 힘을 낸다.

 

 

그들을 상징하는 낡고 바랜 푸른 작업복만큼 그들에게 익숙한 것은 예상외로 스마트폰이다. 25살의 젊은 해고노동자에서부터 정년이 얼마 안남은 어르신까지 거의 대부분의 해고노동자들의 손엔 트위터가 가능한 스마트폰이 있다. 85호 크레인의 김진숙이 트위터를 통해 전국의 팔로워와 소통하듯 그들도 트위터를 통해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소통이 필요한 회사 내 동료들과의 소통은 힘이 든다. 9년을 함께한 동료들에게 자존심을 내려놓고 도와 달라 말해도 나서는 사람이 없어 좌절하고 괴로워한다.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냈던 동료들을 갈라놓는다.

 

 

한진의 해고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사지로 내몰린 현재, 안정 속에서는 생각하지 않았던 부채감을 느낀다. 민주노조가 건재했을 당시 함께 일했던 비정규직을 돌아보지 않았다는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는 것이다. 해고노동자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봄에, 날이 잔뜩 선 겨울의 모습을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가, 해고자와 비해고자의 연대가 지푸라기들이 뭉쳐져 동아줄이 만들어지듯 견고한 힘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해고자들은 알고 있다.
 
 
그들을 만나는 가장 쉬운 방법

 

 

추석 연휴가 시작되던 9월 초순 그들을 다시 만났다. 해고노동자들이 정리해고투쟁위원회 사무실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전을 부치고 있었다. 금요일 5시가 되자 전원이 퇴근하는 동료들을 배웅하기위해 한진중공업 정문으로 모였다. 해고자들은 추석을 보도블록위에서 지내지만 비해고자들은 가족과 함께 명절을 보내기위해 각자의 고향으로 내려가기 때문이다.

 

 

“추석 잘 보내고 돌아와라. 그리고 잘 부탁한다.”고 말하는 해고자의 모습은 당당했고 말없이 인사를 받는 비해고자는 고갤 숙였다.

한진의 해고노동자들과 함께하면서 묵중한 삶의 무계를 외면하

 

고 그들에게 감정만 동화되어 이해한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는 것을 배운다. 아는 척하고 이해하는 척 하는 것이 아닌 진짜 그들의 삶에서 사회를 읽고 변화의 당위성을 찾고, 방법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노동자의 삶을 알기위한 시작이 『소금꽃나무』가 되면 어떨까. 그의 펜 끝을 따라가기만 하면 당신은 울산의 조선소 앞 선술집에서 노동자와 이야기 하고, 엉엉 우는 봉제 노동자를 위로하기도 하면서 그들의 삶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정리해고 철회를 위한 싸움은 승리한 적이 없다. 하지만 그들은 정리해고 철회를 위해 싸운다. 복직이 아닌 정리해고 철회를 외치는 이유는 전국의 노동자들이 정리해고를 더 이상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 이미 한진의 해고자들은 우리 모두를 대표해 싸우고 있다.

 

 

그런 그들이 자신에 대한 자존감을 잃지 않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같은 시대를 사는 우리들이 해야 하는 일이다.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권리를 쟁취하고, 나와 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더욱 따뜻해 질 유일한 방법일지 모른다.

 

 

김진숙은 가장 밑바닥까지 다다라 본 사람은 희망을 안다고 말한다. 우리는 한진 사태에서 그들이 보여준 희망을 따라갈 일만 남았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곳곳에 위치한 사업장에서 묵묵히 일하는 『소금꽃나무』를 볼 수 있다. 거리에도 그들은 있다. 시청 앞 재능에도, 평택의 쌍용자동차 공장 앞에도, 영도의 85호 크레인 앞에도 그들이 있다. 그들은 우리의 싸움을 대신하고 있다. 김진숙은 투쟁을 성장한 만큼 몸에 맞는 옷을 갈아입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아직 우리의 옷이 뜯어지지 않았더라도 그들의 찢어진 옷에서 우리에게 올 겨울을 본다. 김진숙의 『소금꽃나무』는 겨울을 보는 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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