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 간 많은 사건들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미디액트가 영상미디어센터 위탁운영선정에서 탈락하고, 방송통신위원회는 공동체라디오 지원을 모두 중단, 알티비(RTV)는 피피(PP)공모제와 예산삭감으로 인해 대부분의 기능을 상실했다. 그리고 “좌파방송 청산”을 벼르고 있던 이명박 정부와 언론재벌들은 케이비에스(KBS)사장을 해임하고, 엠비씨(MBC) 방송문화진흥회에 낙하산 인사들을 투입하며 공영방송을 장악했다. 언론 독립을 지키자는 언론인들의 수차례 저항에도 정부는 종합편성채널을 강행하고 낙하산 사장들은 너무나 당당히 버티고 있다.
정권이 바뀐 뒤 4년 동안 벌어진 풍경 치고 너무나도 냉혹하다. 국회의원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권이 바뀌면 낙하산 사장들이 해임되고, 그러면 해직 언론인들이 다시 복직해서 피디(PD)수첩을, 돌발영상을, 9시 뉴스를 다시 “국민의 품”에 되돌려 줄 거라는 기대의 목소리가 넘친다. 하지만 정권을 교체해서 공영방송이 ‘정상화’된다면, 그때는 안심할 수 있을까?
나는 안심하긴 어렵다고 생각한다. 지금 ‘여야 나눠먹기’식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에 대한 개혁 없이는 어느 정권이라도 다시 지금과 비슷한 사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지금 상황만큼 최악인 적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길 바라지만, 어느 정권 때나 방송사 낙하산 사장 논란은 있었고, 그 문제는 공영방송이 국회가 아닌 시민들이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무시한 결과였다.
언론이 지켜야 할 원칙은 죄다 무시하고 지나치게 정권에 편향된 방송들에 대안이 될 소통의 장에 대한 열망이 높아졌고, 특히 인터넷(SNS)은 방송보다 훨씬 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다급해진 정부는 갖가지 방법으로 블로그 게시물, 트위터 멘션들을 차단하기 시작했지만, 방송과 신문이 말하지 않는 수많은 사건들과 진실들이 인터넷에서 널리 공유되고 또 새로운 공론을 만들어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정권을 감시하는 새로운 매체로 자리매김했고, 팟캐스트와 해직 언론인들이 만드는 프로그램은 새로운 대안언론으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정부는 낙하산 사장들로 입맛에 맞는 정보들만을 뿌리는 데 성공했지만, 발 빠른 공유와 다양한 생각들의 집합으로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는 공간까지 장악하는 데는 실패했다.
페이스북과 무한알티(RT)를 통한 새로운 담론 생산에 이어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해직 언론인들이 제작한 <뉴스타파>, 그리고 언론인들의 공동 파업 등 표현의 자유를 향한 새로운 행진이 벌어지고 있다. 이 새로운 행진에는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한 소통을 할 권리가 있다’는 원칙이 바탕이 되고 있다. 최근 들어 표현의 자유는 개인의 의견을 표명할 권리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 인종적 불평등으로 인한 소통장벽을 제거하는 권리로까지 해석되고 있고, 대안미디어를 통한 시민들의 표현을 보장하는 “커뮤니케이션 주권론”이 제기되기도 했다.(*주1)
커뮤니케이션 권리의 목표는 개인의 자유로운 표현뿐만 아니라 타인이 그 표현을 수용하고, 변환하여 새로운 정보를 생산하는 순환과정을 사회적으로 승인하는 데 있다. 이 권리에는 기존의 표현의 자유권과 정보의 자유, 자신의 문화에 참여하고 모국어를 사용할 권리 등에 다양한 독립 미디어에 대한 권리와 미디어 접근권이 포함되어 있다. 물론 권리로서 폭넓은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논의들이 필요하다.
커뮤니케이션 권리는 신자유주의에 대항해서 더욱 더 적극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자유’를 우선시한다는 신자유주의 철학은 ‘디지털 양극화’를 더 심화시키고 있으며, 상업 미디어들이 교차 소유와 정부와의 은밀한 거래를 통해 산업을 독점하도록 방조하고 있다. 또한 저작권 침해범위를 확대해서 다양한 형태의 정보교환을 강력하게 차단하며 정작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
커뮤니케이션 권리는 단호하게 신자유주의 철학에 반대하며, 자유로운 정보공유를 추구하고, 접근하기 힘든 대형 언론 대신 진정한 소통을 위해 풀뿌리미디어들에 접근할 실질적인 기회를 권리로서 이야기한다. 하지만 커뮤니케이션 권리는 아직 논쟁 중이다. 단지 목소리를 낼 표현의 자유뿐만 아니라 우리가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고 반응할 의무가 있는가? 강요되어야 하는가? 등 아직은 합의되지 않은 내용들이 있고, 나라마다 처한 상황이 달라 커뮤니케이션 권리의 내용이 큰 틀에서는 같지만 세부 내용은 다르다. 우리도 현재 상황을 분석하고, 한국에 필요한 커뮤니케이션 권리 내용을 조금씩 만들어나가야 한다. □
* 주1
「커뮤니케이션 주권론을 제안한다」 전규찬, 2012, 미디어커뮤니케이션네트워크 정책 보고서
기분에 따라 사람 사는 세상에 출몰했다 사라지는 보일랑 말랑한 뺀질이입니다. 좋아하는 활동은 열심히 하니까 걱정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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