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511_액트포럼_미디어운동프레임및전략_자료집및녹취록.pdf


    [ACT! 79호 2012. 6. 25 기획]

    미디어운동의 새로운 프레임과 전략 수립을 위하여
    - 2012 진보적 미디어운동 연구 저널 [ACT!] 포럼 발제문 요약본 -

    박민욱(ACT!편집위원)

      [편집자 주] 지난 5월 11일 [ACT!] 주최로 ‘미디어운동의 새로운 프레임과 전략 수립을 위하여’라는 포럼이 미디액트에서 열렸다. 발제를 맡았던 박민욱 ACT!편집위원은 본인 발제문의 스크롤 압박을 해소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요약본을 만들었다. 전체 자료집은 미디액트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1. 진보적 미디어운동 연구 저널 [ACT!]의 2012년 미디어운동 세미나

      진보적 미디어운동 저널 [ACT!편집위원회는 2012년 3월부터 5월까지 약 세 달간 제3차 미디어운동 세미나를 진행하였고, 이 세미나에 임하면서 논의의 틀로 설정한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다.

      ① 10년 전에 비해 많은 상황변화들이 있었고 그에 따라 운동의 방법론에도 상당한 변화들이 있었다. 하지만, 초기에 상정하였던 미디어 운 동의 본질 및 우리가 추구하는 최종목표의 근간은 변하지 말아야만 할 것이며, 빠른 변화의 속도 속에서도 우리가 항상 간직하고 되새김질 해야만 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대내외적으로 워낙 어려운 상황이다 보니, 생존을 최우선시 하다가, 혹은 기존의 방법론에 관성적이 되어 가다가, 운동의 본질을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② 미디어 운동 진영은 본래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방법적으로는 퍼블릭 액세스, 공동체 라디오, 미디어 교육, 미디어 센터, 공동체 상영, 대안 언론 등 상당히 다양한 분야의 네트워크로 각각 분화되어 발전해 왔으며, 초창기에 이렇게 세팅되었던 데에는 타당한 이유와 그럴만한 당시의 조건들이 분명히 존재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각 네트워크는 대부분 그 활동성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이고, 더 심각하게는 각 네트워크 사이에 원활한 소통 및 협력이 되지 않아 활동의 성과가 각 네트워크 내부에만 축적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③ 현재 미디어 운동 네트워킹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미디어 운동의 본래 목적을 보다 충실히 실현하기 위해 기존에 상정된 프레임을 재편 혹은 수정할 필요성은 없는지,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 것인지를 같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2. 한국의 미디어운동 초기 프레임을 살펴봄

      (1) 미디어운동의 개념이 소개됨

      한국의 미디어운동은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나, 미디어운동이라는 개념이 한국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것은 아니다. 시민이 스스로 미디어를 이용해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표현하고 널리 퍼뜨린다! 아주 거칠게 요약하면 이와 같을 미디어운동의 개념은 이미 1970년대 초반, 북미에서 퍼블릭 액세스란 이름으로 처음 시작(됨과 동시에 실현)되었고, 80년대 초반에는 유럽의 많은 국가들에서 정착, 제도적으로 실천되다. 여기서 실현, 실천되었다는 의미는 단순히 시민들이 스스로 영상, 라디오 콘텐츠를 자유롭게 제작하기 시작하였다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 콘텐츠들이 독자의 채널을 통해 방송되었다는 것까지를 의미하는 것이다.

      (2) 공공영역이 출현함

      2000년 통합방송법 개정으로 (세계적으로도 아주 드문) 공중파에서의 퍼블릭 액세스 프로그램이 법적으로 보장되었고, 퍼블릭 액세스 프로그램들이 다수의 채널에서 1주일 혹은 1달에 정해진 얼마의 시간씩(대개 1시간미만) 편성되기에 이르렀다. 물론 이는 당시 한국의 상황으로서는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볼 수 있지만, 북미와 유럽의 많은 나라들에서 70년대에 이미 독자적인 퍼블릭 액세스 채널을 확보하는 것으로 미디어운동이 제도권에 들어온 것에 비하면, 아쉬운 수준임에는 분명하다. 이처럼 비록 독자적인 채널은 없는 상황이었지만, 퍼블릭 액세스 프로그램을 위한 콘텐츠의 수요는 일단 발생하게 되었고, 이를 위해 시민들의 미디어 제작을 지원하는 미디어센터가 2002년 최초로 개관하게 된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최초의 미디어센터인 미디액트를 설립하면서 미디어운동은 명실상부 제도권 안으로 진입하게 되었다. 이를 두고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미디액트의 김명준 소장은 ‘공공영역’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공적자금으로 설립되는 미디어센터의 의미를 설명하였다. 그가 제시한 공공영역에서의 미디어운동은 “공공적 영역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전사회적인 공공적 서비스를 확대하며, 독립 미디어와 주류 미디어 양쪽의 진보적, 민주적 미디어 운동 역량을 지원하는 것”을 의미하였다. 미디어센터를 주된 대상으로 상정하고 표현한 것이 분명한 이 공공영역은 공공적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는 물론이거니와, 공적자금이 투여되는 보다 공식적인 체계의 공간이라는 의미에서 ‘공공’영역이었다. 또한, 이는 주류미디어와 독립미디어 양쪽 모두의 미디어운동을 지원하는 공간으로서, 사실상 공공영역을 주류미디어와 독립미디어 사이에 위치시키고, [주류미디어 - 공공영역 - 독립미디어] 의 3대 영역으로 구성되는 미디어운동의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프레임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것이었고, 1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미디어운동 진영에서 여전히 유효하고 지배적인 프레임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3) 미디어운동의 각 네트워크가 분화됨

      대부분의 나라에서 미디어운동은 독립미디어를 전문으로 방송하는 독자적인 커뮤니티 채널을 확보하거나 이를 요구하는 것을 운동의 주요 과정으로 하고 있는데 비해, 한국에서는 커뮤니티 채널에 대한 체계적인 요구가 채 정립되기도 전에, 기존 채널 안에 약간의 시간을 분배받는 방식과 독립미디어를 지원하는 미디어센터 설립을 먼저 이루게 되었다. 이에는, 물론 한국의 특수한 상황들이 결부되어 있다. 첫째로는 방송과 전파를 둘러싼 한국 정부와 기업의 뿌리 깊은 보수적, 배타적 의식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는 이미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휩쓸고 있던 당시의 세계 정황상, 북미와 유럽에서 과거에는 비교적 쉽게 쟁취할 수 있었던 독립미디어에 대한 권리가 세계적으로 이미 감소추세에 있었다는 것, 따라서 한국은 미디어운동의 세계적 흐름을 타기에 시기적으로 너무 늦었다는 사실이다. 셋째로는 한국의 미디어운동을 초기에 주도한 세력은 시민이 스스로 미디어 콘텐츠를 제작한다는 측면에 보다 경도되어 있었고, 독자적 커뮤니티 채널에 대해 체계적으로 요구하고 향후 전망을 제시할 수 있을만한 미디어운동 진영 내부의 대승적 합의가 부족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미디어운동 진영은 기왕에 성취한 권리(미디어센터 설립과 퍼블릭 액세스 프로그램 확보)를 보다 확장하고 이에 내실을 기하기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전국 각지에서 미디어센터 설립을 위한 움직임들이 활발하게 진행되었고, 이러한 움직임들이 전국 단위로 모여들며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단지 미디어센터에만 집중하지 말고, 미디어운동 관련 논의들을 심층, 확장하자는 취지에서 각 주제별 네트워크들로 분화되게 되었고, 이에는 크게 공동체 상영, 미디어교육, 공동체 라디오, 퍼블릭 액세스, 인터넷 대안언론, 미디어센터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각각의 논의 주제들은 이 과정에서 새롭게 발생된 것이라기보다는, 기존에 이미 각 주제들에 대해 고민하고 활동하던 주체들이 내부의 역량을 보다 강화하기 위해서 각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분화 방식은 물론 각각의 주제별로 흩어지기 위함이 아닌, 주제별로 내실을 기함과 동시에 각 네트워크 간의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함으로서 시너지를 내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분화방식은 큰 틀 안에서 현재까지도 유효하며, 미디어운동 진영의 또 하나의 프레임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하지만, 이 글 전반부에서 문제의식으로 제기한 것처럼 현재 각 네트워크는 대부분 그 활동성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이고, 더 심각하게는 각 네트워크 사이에 원활한 소통 및 협력이 되지 않아 활동의 성과가 각 네트워크 내부에만 축적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3. 2012년 현재 미디어운동의 제문제

      (1) 미디어센터는 미디어운동의 목적 달성에 기여하고 있는가?

      공공영역으로서의 미디어센터의 문제점에 대해 다음 세 가지를 지적할 수 있겠다.

      첫째, 공공영역의 위상에 대한 문제이다. 애초의 프레임 속에서 주류미디어, 공공영역, 독립미디어 내부에서는 각각의 운동이 이루어져야 한다. 주류미디어에서의 운동은 “주류 미디어 내부에 정치적 긴장을 형성하고, 최대한 그 공간 내에서 진보적 의제를 확대시키는 것”이고, 독립미디어에서의 운동은 “대안적 체계 및 역량을 수립함으로서 주류 미디어의 정치적 변화에 좌우되지 않는 독립적인 목소리, 내용과 형식, 그리고 콘텐츠 생산 주체를 가지는 것”이다. 또한, 공공영역에서의 운동은 “전사회적인 공공적 서비스를 확대하며, 독립 미디어와 주류 미디어 양쪽의 진보적, 민주적 미디어 운동 역량을 지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주류미디어와 독립미디어에서의 운동은 그 자체의 변화와 내부적 역량 강화를 그 핵심으로 하고 있는 반면, 공공영역에서의 운동은 주류미디어와 독립미디어에서의 운동을 지원하는 것을 그 요지로 하고 있다. 따라서 공공영역에서의 운동은 다른 두 영역에서의 운동과 그 위상을 달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독립미디어에서의 운동은 홀로 남더라도 미디어운동으로서의 의미가 있지만, 공공영역에서의 운동은 홀로 남아서는 사실상 그 존재의미가 상실된다고 볼 수 있다. 지원해야 할 주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류미디어 - 공공영역 - 독립미디어] 의 프레임 속에서는 세 위가 나란히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세 영역에서의 운동이 마치 동등한 위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주어 왔으며, 공공영역 자체의 발전, 확대만으로도 미디어운동이 성장하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켜 온 측면이 있다. 즉, 미디어센터가 전국적으로 폭발적인 양적 성장을 했다고 했을 때, 그 자체만으로는 미디어운동의 성장과 직접적 관계가 없음에도, 마치 그런 것 같은 인상을 갖게 했다는 것이다.

      둘째, 공공영역의 지나친 비대화이다. 물론 공공영역의 확대는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공공영역 자체의 확대보다는 공공영역에서의 운동(주류미디어와 독립미디어에서의 운동을 지원하는 것)이 보다 강화되고 확대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지적한 착각의 효과로 인해 미디어운동 진영의 많은 역량이 공공영역의 확대에 투여되었고, 더구나 공적자금의 유입으로 (다른 두 영역에서의 운동에 비해) 비교적 순조롭게 공공영역의 확대가 이루어지면서 이러한 측면은 더욱 두드러졌다. 또한, 공공영역에서의 운동에는 “전사회적인 공공적 서비스 확대”도 포함되는데, 공적자금의 원활한 유입을 위해서 그동안의 공공영역은 이런 부면에 더욱 집중해 온 경향도 있는 것 같다. 이로 인해 공공영역은 놀랄만한 성장을 해왔으나, 이것이 곧 미디어운동의 성장, 발전으로 이어져 왔는지, 공공영역이 주류미디어와 독립미디어에서의 운동을 지원하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 왔는지, 아니면 그저 공공적 서비스 기관의 역할에 만족해 온 것은 아닌지, 그리고 미디어운동 진영의 역량이 지나치게 공공영역으로 투여되어 온 것은 아닌지, 한 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셋째, 시대적 흐름과 여러 상황의 변화에 따라 공공영역이 애초부터 가지고 있던 본질적 불안요소들이 점차 노출되고 있다. 공공영역이 처음 제시되었을 당시에 이미 다음 네 가지의 불안요소가 제기된 바 있었다. “① 공공영역의 주체들이 고립되고 정보를 독점하며 독립미디어와의 긴밀한 연대를 상실하는 것. ② 정치체제의 퇴행적 변화는 공공영역의 생존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도 있다. ③ 공공영역은 순탄한 사회적 변혁만이 가능하고 유효하다는 착각을 부산물로 제공할 수 있다. ④ 독립미디어는 급격한 변화의 시기를 거치며, 주류미디어를 심각하게 위협하거나 그 영향력을 극복할 정도로 성장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 공공영역은 옵션에 해당한다.” 공공영역이 탄생한지 10년이 지난 지금, 위의 네 가지 불안요소는 안타깝게도 그대로 현실이 되어 나타나고 있으며,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미디어센터의 비대화는 일부 미디어센터의 ‘기관화’를 가져왔고, 이는 미디어센터와 지역 내 독립미디어 운동 진영과의 긴밀한 연대를 점차 희석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② 퇴행적 정부의 등장으로 미디액트가 큰 어려움을 겪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며, 심지어 공적자금 투여를 주요 특징으로 하는 기존의 ‘공공영역’이라는 단어는 이제 독립미디어센터가 된 미디액트를 더 이상 지칭할 수 없게 되었다.

      ③ 일부 미디어센터는 공공적 서비스를 주요 역할로 자임하고 있으며, 독립미디어의 확산을 통한 정치/사회적 변혁운동에는 더 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

      ④ 촛불 시위, ‘나는 꼼수다’ 등으로 촉발된 대중적 독립미디어가 주류미디어의 영향력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미디어센터는 이에 대해 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독립미디어를 통한 사회적 변혁의 과정에서 그야말로 옵션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있다.

      (2) 미디어교육의 정체성은 왜 점점 모호해지고 있는가?

      현재 미디어센터를 근거지로 하여 활발히 수행되고 있는 미디어교육은 그 정체성이 점점 모호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데에는 다음 세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 미디어교육의 위상에 대한 문제이다. 우리는 앞서 주류미디어와 독립미디어에서의 운동을 지원하는 것이 애초에 설정된 공공영역의 주된 목적이라고 언급한바 있는데, 그 지원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핵심은 바로 미디어교육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시민이 주류미디어의 폭력적, 일방적인 사회의제 설정에 대한 부당함을 비판하고, 미디어를 통해 스스로 자기의 목소리를 내어 이를 자신들의 무기로 온전히 그리고 올바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디어교육은 어디까지나 주류미디어와 독립미디어에서의 운동을 ‘지원’하는 중요한 수단으로서의 위상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미디어교육이 공공영역의 주요 기능이라는 데서 오는 필연적 결론이다. 하지만, 공공영역의 위상이 [주류미디어 - 공공영역 - 독립미디어] 의 프레임 속에서 양쪽 영역과 동등한 지점으로 자리매김 되고 그 자체의 확대가 미디어운동의 성장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이 되자, 공공영역의 주요 기능인 미디어교육 역시도 그 자체의 확대가 미디어운동의 성장과 직결된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즉, 미디어교육이 전국적으로 폭발적인 양적 성장을 했다고 했을 때, 그 자체만으로는 미디어운동의 성장과 직접적 관계가 없음에도, 마치 그런 것 같은 인상을 갖게 했다는 것이다.

      둘째, 미디어교육의 지나친 비대화이다. 물론 미디어교육의 확대는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미디어교육 자체의 확대보다는 미디어교육으로 인해 이것이 지원하는 주류미디어와 독립미디어에서의 운동이 보다 강화되고 확대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지적한 착각의 효과로 인해 미디어운동 진영의 많은 역량이 미디어교육의 확대에 투여되었고, 더구나 미디어교육이 미디어센터의 주 수입원이 되어 버린 현실적 조건으로 인해 이러한 측면은 더욱 두드러졌다. 또한, 원활한 공적자금 유입을 위해 공공영역이 “전사회적인 공공적 서비스”를 확대하는 부면에 점점 더 집중하면서 미디어교육 역시 독립미디어의 활성화를 지원하기보다는 미디어를 소비하고 향유하는 측면에서의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공공적 서비스에 더욱 치중하고 있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물론 이 또한 무척 보람 있는 일이고 어쩌면 최종적으로는 독립미디어의 활성화와 상당히 맞닿아 있다고도 볼 수 있지만, 지나친 미디어교육의 비대화는 이런 방향성을 체계적으로 추구할 수 없게 하고 있으며 교육 그 자체의 의미와 성과를 부각시키는 쪽으로 귀결되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미디어교육은 지난 10년간 놀랄만한 성장을 해왔고, 많은 미디어센터들이 차라리 미디어교육센터로 불리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정도로 미디어교육은 공공영역의 핵심적 기능이자 심지어는 공공영역의 존재이유로까지 자리매김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미디어교육의 비대화는 결국 공공영역이 주류미디어와 독립미디어에서의 운동을 지원하는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는 데 오히려 방해요소가 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미디어교육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교육이 지나치게 비대화되고 이것이 독립미디어를 지원하는 역할로 수렴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미디어교육은 교육 그 자체의 의미와 성과만 강조되는 순간, 반쪽짜리 교육에 불과하다. 그것은 이것이 다른 교육이 아니라, ‘미디어’교육이기 때문이며 미디어운동의 일환으로서의 미디어교육은 반드시 실천과 행동을 그 결과로 가져와야만 온전한 임무 수행을 다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시대적 흐름과 여러 상황의 변화에 따라 미디어교육이 애초부터 가지고 있던 모호성이 점차 노출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애초에 미디어교육이 공공영역의 기능으로 탑재된 이유는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미디어교육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 여러 부면(장비교육, 주류미디어 읽기, 미디어 이해하기, 퍼블릭 액세스 교육, 미디어를 통한 임파워먼트 교육 등)때문에 쉽게 오해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었다. 여기에 미디어교육이 공공적 서비스로서의 교육으로 그 범위를 확장하면서 더욱 그렇게 된 측면이 있고, 결정적으로 미디어 융합시대를 맞이하여 ‘미디어’ 자체의 범위가 사회적으로 (약간 과장을 보태) 거의 무한대까지 확장되면서 더욱 그렇게 되었다. 미술, 음악, 무용, 사진, 문학 등은 기본이요 스마트폰을 비롯한 통신기기, 각종 놀이들, 심리 치료 등까지 미디어와 결합하여 이해되고 수용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런 시대적 흐름에 발맞춰 미디어교육도 다른 영역과 결합한 여러 형태의 교육들이 시도되었는데, 이로 인해 미디어교육은 더욱 모호한 것이 되었고, 이에 따른 문제점들이 노출되고 있다. 먼저, 미디어교육의 형태가 지나치게 모호해지면, 그 본질과 목적마저 모호해질 가능성이 있다. 물론 다양한 형태의 미디어교육의 출현으로 오히려 다양한 형태의 독립미디어들이 발생, 진화할 가능성도 없는 것은 아니나, 이는 현재의 열악한 독립미디어의 여건을 감안해 봤을 때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둘째로는, 미디어교육 고유의 특성이 손상될 우려가 있다. 실제로 이미 문화예술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여기저기에서 미디어교육, 혹은 이와 유사한 형태의 교육들이 많이 진행되고 있고 이로 인해 미디어교육은 문화예술교육의 하위 개념으로 전락해 버릴 위기에 처해있다. 하지만 미디어운동으로서의 미디어교육은 문화예술교육과는 상당히 다른 특질을 가지고 있고 그 목적 또한 상이하기 때문에 이런 경향은 반드시 극복되어야만 할 것이다.  

      (3) 독립미디어의 활성화를 위한 노력은 왜 성공하지 못하고 있는가?

      앞의 논의에서 우리는 공공영역의 위상이, 다른 두 영역(주류미디어와 독립미디어)과 다르다는 점을 지적했다. 즉, 독립미디어는 미디어운동의 한 주체이되, 공공영역은 운동의 주체가 아니라 그 주된 역할이 운동의 ‘지원’에 있으며, 결국 이 말은 공공영역에 해당하는 미디어센터와 미디어교육은 독립미디어에 해당하는 공동체 라디오와 퍼블릭 액세스를 지원하는 것을 주 역할로 해야 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현재 미디어센터와 미디어교육 진영이 구성하고 있는 네트워크는 각자의 내부 역량 강화에는 일정정도 성공했는지 모르나, 독립미디어 진영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이를 지원하려는 체계를 구축하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로서 독립미디어 진영을 지원하고 이와 반드시 함께 가야 한다는 점에 있어서 내부적으로 합의를 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지 못한 편이다. 한편, 독립미디어 진영 역시 공공영역으로 집중되고 있는 역량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고 있음은 물론, 구체적인 독립미디어 활성화 전략을 마련하는 데 있어서 역시 내부적으로 합의를 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지 못한 편이다.

      각 네트워크의 내부적 역량 강화도 물론 중요하지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각 네트워크 간 유기적 협력 체계이다. 그리고 이에는 미디어운동의 목적과 특히, 이루려고 하는 구체적인 목표에 대한 대승적 합의가 필요하다. 혹시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으므로 미디어운동의 목적도 바뀌어야 한다고, 혹은 미디어운동 자체를 폐기해야 한다고 하는 의견이 상당수 모아진다면, 그것은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가 되겠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이 시점에서 다시 체제를 정비하고 대승적 합의를 이끌어 내어 직관적이고 효율적인 독립미디어 활성화 방안을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너무 복잡하거나 서로의 욕망이 혼재된 상태로서의 방안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 여전히 미디어운동의 성공을 위해서는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고, 여기에는 물론 10년 전과 같은 정치적, 사회적으로 적당한 시기도 필요하다. 그 때를 우리가 만들어내면 좋겠지만, 그것이 요원하다 하더라도 향후 외부적 상황 변화로 그 시기가 찾아 왔을 때, 우리는 우리의 방안 혹은 요구를 명료하게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것은 반드시 쉽게 이해되고 성공확률이 높은 것이어야만 한다. 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각 미디어운동 진영이 자신의 지분을 일부 포기하더라도 독립미디어 활성화를 주요 목표로 설정하고 이를 위해 협의하고 방안이 정해지면 이를 지원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4. 미디어운동의 새로운 프레임을 탐색함

      (1) 공공영역의 의미와 역할을 재설정해봄

      최근에 일어난 일단의 정치적 변화로 인해, 공공영역의 순수성(본래 목적을 수행하는 측면에서)은 크게 위협받았고, 아이러니하게도 양적으로는 계속 증가하였으나, 공공영역의 역기능 또한 이에 따라 증가하게 되었다. 이러한 실제적 경험을 통해 드는 생각은 애초부터 공공영역의 설정이란 과도기적 역할을 수행하는 데 그 큰 의미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다. 공공영역의 최대 성과는 미디어운동을 제도권 안에서 논의하게 만든 구조이다. 공적자금을 유입하여 미디어운동을 지하에서 수면 위로 떠오르게 했고, 끊임없는 요구와 압박으로 미디어운동에 관한 법적, 정책적, 제도적 변화를 사회적 논의의 장으로 끌고 들어왔다. 이런 일을 수행해야 하였기에, 초기 프레임에서 공공영역은 주류미디어와 독립미디어 사이에 위치하여 미디어운동의 주체가 아니면서도 그 중요성이 강조되여야만 했고, 허약하기 짝이 없는 독립미디어를 보호하기 위한 완충 지대 역할을 하여야만 했던 것이다. 공공영역이 거둔 성과로 이제 판은 형성되었고, 그 다음 단계로 본격적인 독립미디어의 활성화가 이루어지길 모두가 기대하였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 다음으로 도무지 넘어가질 못하고 있다.

      이 다음 단계로 성공적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과도기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공공영역을 중심으로 해서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게다가 이미 상당수의 미디어센터들은 이미 공공적 서비스 기관의 성격으로 변모하였고 지나치게 제도화되어 독립미디어를 자유롭게 지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경우가 많다. 이제 미디어운동이 안착한지도 10년이 지났으니, 공공영역을 제자리로 위치시킬 때인 것 같다. 주류미디어와 독립미디어 사이에 애매하게 있지 말고, 순수하게 독립미디어를 지원하는 센터의 역할로 가는 것이다. 이 독립미디어 지원센터는 앞서 지적한 기존의 미디어센터의 역기능을 보완하여 설계되어야 할 것이며,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① 독립미디어 지원센터는 독립미디어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대안적 체계 및 역량을 수립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공공적 서비스의 기능은  축소)

      ② 개별 센터의 규모는 줄이되, 대신 소규모 지역 단위까지 확산하여 양적으로는 증가한다. (중소형 미디어센터 지향)

      ③ 지역의 독립미디어 주체 및 시민과 긴밀한 연대를 유지한다. (지역 공동체 및 풀뿌리 운동과의 연대)

      ④ 공적자금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대안적 운영방식을 개발한다. (협동조합과 같은)

      ⑤ 대중적 독립미디어의 중요성과 그 폭발력을 인정하고 이를 흡수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대안적 채널의 확보)

      (2) 독립미디어의 의미와 역할을 재설정해봄

      ‘주류미디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우리는 단순히 그 콘텐츠만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일단, 방송국이라는 물적 근거가 있는데 이곳에는 장비와 공간과 인력이 배치되어 있고, 교육과 연구도 함께 이루어진다. 다음으로 여기에서 만들어지는 콘텐츠가 있고, 마지막으로는 이를 방송하는 채널이 있다. 이처럼 우리가 주류미디어를 이야기할 때는 방송국, 콘텐츠, 채널을 한꺼번에 지칭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흔히 ‘독립미디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는 콘텐츠만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당연히 독립미디어도 주류미디어와 마찬가지로 세 가지 부면이 모두 필요하며, 우리가 독립미디어를 이야기할 때도 이 세 부면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독립미디어에서 방송국 역할을 하는 것은 미디어센터일 것이다. 현재의 미디어센터도 일정정도 그 역할을 하고 있으며, 독립미디어 지원센터가 현실화된다면 보다 분명히 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곳에는 장비와 공간과 인력이 배치되어 있고, 미디어교육과 미디어운동 정책연구도 함께 이루어진다. 콘텐츠는 미디어센터의 지원을 받은 시민이 스스로 제작하며, 물론 채널은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여기서 채널은 텔레비전 채널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며, 넓은 의미의 플랫폼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콘텐츠의 경우, 그 내용과 방식은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좋다. 기존의 퍼블릭 액세스 프로그램을 위한 독립미디어 콘텐츠는 내용과 방식에서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기에 독립미디어 콘텐츠라고 하면 그 틀 안에서만 상상하기가 쉽다. 방식적인 측면만 보더라도 퍼블릭 액세스 프로그램을 통해 방송된 독립미디어 콘텐츠들은 대개가 일인 제작 다큐멘터리(VJ물)였는데, 몇 십분 길이의 이러한 영상물을 일반 시민이 제작한다는 것은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퍼블릭 액세스 프로그램은 많은 경우 콘텐츠 수급에 어려움을 겪어왔고, (방송채택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퍼블릭 액세스에 방송채택료를 지급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만약 해외의 사례대로 독자적 커뮤니티 TV 채널이 생긴다면 그 많은 시간을 무슨 수로 채울 것인가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독립미디어의 콘텐츠와 채널과 관련해서는 무수히 많은 해결되지 않는 물음표들이 있으며, 이에 대한 답은 앞으로 찾아가야 할 것이다. 다만, 이런 정도의 일례만 생각해 보았다. 우선 독자적 커뮤니티 채널이 생긴다고 가정해 보면, 그것도 서울의 한 구나 지역의 한 군 정도를 시청권역으로 하는 작은 동네 채널이 만들어졌다고 하면, 이 채널에는 상근을 하는 직원이 한두 명 있고, 작고 조악한 스튜디오도 하나 있다. 혹은 인근의 독립미디어 지원센터의 스튜디오를 빌려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채널에서는 지역 주민이 스스로 제작한 영상물을 가져오면 무조건 방송을 한다. 동네의 어떤 이슈가 있을 때는 관련자를 스튜디오에 불러다 놓고 토론을 시킨다. 채널 직원이 다소간의 연출을 하지만, 이는 연출이라기보다는 현장진행 정도이고, 많은 경우 편집도 없이 그냥 방송된다. 지역에 행사가 있다면, 하루 종일 행사 스케치만 내보내고, 미디어센터에서 교육받은 시민이 촬영에 참여한다. 누구나 할 말이 있으면 스튜디오를 찾아오고, 요리 잘하는 누구는 스튜디오에 와서 자신만의 레시피를 뽐낸다. 아는 사람이 텔레비전에 나오니, 몇몇 동네 주민은 관심 있어 한다. 지역에 대형 할인마트가 들어오면, 이 문제에 대한 할인마트 직원과 재래시장 상인의 싸움, 아니 토론이 방송된다. 이와 관련 있는 동네 주민들은 텔레비전을 본다. 동네 주민들은 길가다 우연히 찍어서 보낸 영상들을 채널로 보내고 이 영상들은 모여서 하나의 동네 뉴스가 된다.

      위의 상상은 단지 상상만은 아니다. 미국의 PEG 채널이나 독일의 오픈채널 중 많은 수가, 시민이 콘텐츠를 제작해서 가져오기만을 가만히 기다리기 보다는, 이런 식으로 콘텐츠를 제작, 수급한다. 이러한 동네 채널은, 물론 지역의 소소하고 시시한 이야기들로 채워지겠지만, 그 과정에서 지역 공동체의 유대감은 깊어질 수 있고 사람들은 소통의 기회를 가지게 된다. 또한, 공동체가 공동으로 직면한 어떤 사회적 과제가 있을 때, 이런 동네 채널은 시민의 의견을 한 데 모으고, 소통하고, 함께 행동하게도 할 수 있다. 반드시 사회적 의제를 다룬 퍼블릭 액세스들이 주도적으로 확산되어야만 독립미디어를 통한 사회 변혁의 운동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은 지역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는 작은 규모의 독자적 커뮤니티 채널도 독립미디어 활성화의 한 가지 방식이 될 수 있으며, 이밖에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독립미디어와 채널의 종류와 방식은 상당히 많이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해외의 사례와 지금까지의 경험, 그리고 우리의 상상력을 사용하여 우리에게 최적화된 독립미디어의 활성화 방안을 찾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다시 말하지만, 각 미디어운동 진영이 유기적으로 결합하고 깊은 논의를 하여 대승적 합의점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3) 주류미디어와 독립미디어의 관계를 재설정해봄

      마지막으로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하여 새로운 프레임에 대한 거친 그림을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


      ① 미디어센터로 대표되는 공공영역은 공공적 서비스 기능, 주류미디어 견제 기능, 독립미디어 지원 기능 등의 다양한 부면을 포함하고 있는데, 현재에는 그 중에서도 특히 공공적 서비스 기능에 치중하고 있다.

      ② 이의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기존의 미디어센터보다 규모가 작고, 보다 지역과 밀착하여 지역의 독립미디어를 지원하는 형태의 독립미디어 지원센터를 건립한다.

      ③ 현재 공공영역의 주류미디어 견제 기능은 활발히 작동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이 기능은 기존의 혹은 새로운 주류미디어 감시기구로 넘기되, 독립미디어 지원센터와 주류미디어 감시기구 사이에는 긴밀한 논의와 협의가 항상 있어야만 하며, 이 둘은 미디어운동 전체의 정책을 함께 고민하고 마련한다.

      ④ 기존의 미디어센터들은 공공적 서비스 기능을 더욱 강화하여 미디어문화센터나 미디어교육센터 등으로 변환하던지, 독립미디어 지원센터  화(化) 하던지, 독립미디어 지원센터의 허브기능을 담당하던지 선택할 수 있다.

      ⑤ 시민은 독립미디어 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아 직접 독립미디어 콘텐츠를 제작하고 독립미디어 채널을 통해 확산시킨다. 여기에는 시민이 개인적으로 작업하여 개인미디어를 통해 유포시키는 대중적 독립미디어도 포함된다.

      ⑥ 독립미디어 채널은 독자적 커뮤니티 TV채널에서부터 개인미디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구성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확산되는 지역의 독립미디어 콘텐츠는 주류미디어에 영향을 주어 진보적 의제를 확대시킨다.

      ⑦ 독립미디어 지원센터와 독립미디어 콘텐츠 그리고 독립미디어 채널을 통칭하여 ‘독립미디어’로 지칭할 수 있으며, 주류미디어 역시 세부적으로는 방송국, 콘텐츠, 채널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이 프레임은 사실상 주류미디어와 독립미디어의 1:1 구도를 상정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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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소개] 박민욱

    미국의 어느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고, 지금은 한국의 어느 대학에서 교육학을 공부하고 있다. 간간이 단편 영화도 만들고 있다.

    Posted by ACT! actedi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