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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91호 학습소설] (2) 고백(Go back) : 부치지 못한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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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4. 11. 14.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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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91호 학습소설 2014.12. 01]




(2) 고백(Go back) : 부치지 못한 편지

- 텔레그램 망명 사태에 대해 궁금해 하실 그분에게 보내는 편지




주일(창작자)







첫번째 편지


  지난 주에 전철을 타고 오는 길이었어요. 대학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미국 연예인들의 누드 사진이 유출됐다고 신나게 떠들고 있어서 호기심에 인터넷에 들어가봤어요. 먼저 한글로 검색해봤어요. ‘할리우드 스타들의 은밀한 사진들이 해킹으로 유출, 아카데미 수상자 제니퍼 로렌스와 요즘 가장 핫한 가수인 아리아나 그란데의 나체 사진도 포함되어….’ 하지만 아무리 검색해도 그들의 온전한 사진은 나오지 않았어요. 화가 났어요. 역시 뭔가 찾을 때 네이버나 다음을 이용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에요. 하는 수 없이 구글에서 영어로 검색해봤어요. '▒▒▒▒▒▒▒▒▒▒▒’ 라고 입력하니 구글 이미지에 여자 연예인들이 옷을 입지 않은 사진들이 모자이크처럼 주르륵 나왔어요. 더 크게 보고도 싶었지만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입수한 사진이고 그들은 범죄의 피해자이기 때문에 마음 편하게 감상할 수 없어 힘들게 브라우저의 창을 닫았어요.

  그런데 궁금하더라고요. 어떤 경로로 이렇게 많은 유명인들의 사진이 유출되었을까. 금방 나오네요. ‘스타들의 iCloud 계정을 해킹해서 개인적으로 저장하고 있던 사진들을 입수’. 애플 큰일 났네…. 이렇게 생각했는데 또다른 기사가 검색되네요. ‘사진을 유출시킨 범인들은 단순한 방식의 무차별 대입 공격(brute force attack)을 이용하여….’ 거 참. 이 정도 기법은 인터넷에서 해킹이라는 검색어로 조금만 뒤지면 나오는 프로그램들만 있으면 초딩들도 할 수 있는 수준이에요. 다만 요즘 어지간한 사이트는 잘못된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반복적으로 입력되면 자동적으로 접근을 차단을 하고 계정 소유자에게 부적절한 접속 시도가 있었다는 걸 알려주기까지 하는데 애플이라는 거대 IT기업이 이런 단순한 기법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게 놀랍고 황당할 따름이었죠. 

  하긴, 올해 초에 KT에서 천 만건이 넘는 고객정보가 유출되었을 때도 이와 비슷한 기법이 사용됐어요. 보통 인터넷 상에서 주고받는 주민등록번호나 고객번호 같은 중요한 정보는 암호화라는 과정을 거쳐요. 보내는 측과 받는 측의 단말기에서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형태의 코드로 변환해서 전송하는 거죠. 물론 둘 사이에선 암호화/복호화하기로 한 알고리듬(algorithm)과 규약(protocol)이 사전에 공유되어 있고요. 아, 인터넷 쇼핑이나 뱅킹 서비스를 이용할 때 뭘 막 깔라고 시키잖아요. 그게 다 이런 암호화 프로그램들이에요. 악의를 가진 누군가가 중간에서 들여다 보던가 일부를 입수하더라도 암호화 규칙을 모르면 아무 의미없는 글자들의 나열로만 보이는 거죠.

  다시 KT 이야기로 돌아가보면, KT는 자사의 고객번호를 암호화하지 않은 형태로 일련번호를 매겼어요. 예를 들어 제가 제 명의로 된 ID와 비밀번호로 접속하면 주소창에 이상한 문자들이 쭉 뜨는데 그중에 제 고객번호가 포함되어 있던 거죠. 만약 주소 문자 중에 12345678번이 있었다면 마지막 8만 9로 바꾸면 제가 아닌 누군가의 정보가 뜬 거예요. 범인들은 그런 규칙을 발견하고는 컴퓨터를 밤낮으로 돌려서 1200만 명의 정보를 빼낸 뒤 팔아먹었다고 해요. 그들이 한 짓은 나쁘지만 한 컴퓨터에서 그런 엄청난 접속 시도가 있어도 차단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구축한 담당자들이야말로 더 나쁜 짓을 했다고 봐요. 그런 식으로 일을 하고도 월급은 고스란히 받아 갔겠죠?

  애플도 마찬가지였어요. 요즘처럼 종이 서류나 컴퓨터보다 스마트폰과 클라우드 공간에 소중하고 은밀한 정보들을 많이 담고 있는 이 때에 그렇게 단순한 방법 - 사실 해킹이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아요 - 으로도 뚫릴 수 있다니. 그러고도 잘못했다는 사과를 하기는커녕 사용자들이 자신의 비밀번호를 잘 관리해야 한다는 적반하장식의 대응을 하는 모습을 보니 분노를 넘어 허탈하기까지 하더라고요. 하긴, 쉽사리 실수를 인정할 순 없겠지요. 그랬다간 천문학적인 금액의 민사 소송이 들어올 테니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에요. 그래도 말이라도 예쁘게 하면 어디가 덧나나.

  어떤 사람들은 굳이 왜 그런 사진을 찍고 인터넷에 올리냐고 욕을 하더라고요. 단순한 누드 사진이 아닌 은밀한 행위까지 찍어야 되겠냐고. 인터넷에 유출된 몰카 같은 건 결국 찍은 애들이 자초한 일이라고. 언뜻 들으면 맞는 말 같아요. 찍지 않았으면 유출될 것도 없으니까요. 그런데 그건 엉뚱한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는 거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무엇이든 할 자유가 있어요.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아니고 현행법에 저촉되지 않는 이상 뭘하든 그리고 그걸 어떤 방식으로 기록하든 그건 개인의 자유예요. 오히려 공개하기 어렵거나 그럴 의도가 없었기에 은밀하게 보관하고 있던 사진이나 정보들을 부적절한 방법으로 입수하여 당사자의 동의 없이 공개하는 게 더 나쁜 일이잖아요. 피해당사자들을 비난하는 논리는 옷을 야하게 입으니 성폭행을 당하는 거란 몰지각한 시각과 조금도 다를 바 없어요. 정말 저열하죠. 

  한 번 길거리에 다니는 사람들 중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세요. 스마트폰에 깔린 드롭박스, 아이클라우드, 구글플러스의 사진 동기화 설정을 직접 만졌고 원하는 사진만 올리고 있느냐고. 아마 많은 사람들은 그런 게 있는 지도 모를 거고, 설사 안다고 해도 써보니까 편하기 때문에 굳이 꺼놓지는 않는다고 대답할 걸요. 그말은 우리들 중 누구나 이번 유출 사고의 잠재적 피해자라는 거예요.

  아직 할 말이 많이 남아 있어서 다음 편지도 길어질 것 같아요.


액티 올림.





두번째 편지


  8비트, 16비트, 64비트, 슈퍼컴퓨터, 그리드 컴퓨팅…. 전자공학과를 나오셔서 잘 아시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컴퓨터의 속도는 빨라지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컴퓨터의 성능이 부족해서 무언가를 못하는 일은 없잖아요. 심지어는 남들 메신저 대화를 들춰보고 수 년간 주고 받은 이메일을 뒤지고 전화 통화를 엿듣기도 하니까요. 아, 뒷조사를 하는 데에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성능의 컴퓨터들을 사용하는 미국 애들 이야기예요. 에셜론이나 프리즘 같은 이름으로 불리우는 감시 체계요. 이번에는 지난 편지에서 잠깐 언급했던 암호화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해볼까 해요. 저도 배운지 오래 돼서 기억이 희미하니 최대한 쉬운 말로 설명해 볼게요.

  20세기말에 인터넷이 WWW(월드와이드웹)을 통해 폭발적으로 확산될 때 기술 선진국이던 미국은 해외로 수출하는 인터넷 브라우저의 암호화 수준에 규제를 두었어요. 이미 128비트 이상의 보안기술이 적용된 브라우저가 나와있었지만 해외에서는 그보다 낮은 40비트 미만의 보안 기술만 사용하게 허락한 거죠. 이유는 간단해요. 상대적으로 높은 기술력을 갖고 해외에서 오가는 정보들을 쉽게 해독하여 도/감청하겠다는 의도겠죠. 테러범들을 잡거나 무역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는 건 국가 차원에선 범죄가 아닌 당연한 일이니까요. 2000년이 넘어 그런 규제는 사라졌지만 그건 아마도 타국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서가 아니라 이미 자신들은 보급된 기술보다 뛰어난 해독기술이 있다고 생각해서가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너무 삐딱하게 본다고 생각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소비자들에게 보급된 수많은 첨단기술들은 이미 군사분야에서 개발되고 검증된 후에 공개되는 것이 관례니까요. 인터넷이나 GPS 같은 게 좋은 사례죠.

  128비트 암호화는 무슨 말인가 싶으실 거예요. 간단히 말하면 숫자가 높을수록 암호를 푸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단 말이에요. 흔히 쓰는 비밀번호는 숫자 네 자리죠. 거기에 들어갈 수 있는 경우의 수는 10x10x10x10, 즉 10000이에요. 누군가 우리집 현관 도어록을 열고 싶으면 최대 만 번만 숫자를 조합해서 누르면 열 수 있단 소리죠. 여기에 알파벳 26자가 더해지고 특수문자까지 더해지면 어떨까요. 알파벳만 더해도 36x36x36x36…. 계산기가 1679616이라고 알려주네요. 아마 몇날몇일을 눌러도 도둑은 우리집에 들어갈 수 없을 거예요. 이처럼 비트 앞에 붙은 숫자가 높다는 건 해독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말이에요. 물론 요즘처럼 슈퍼컴퓨터나 분산 병렬 컴퓨터(그리드 컴퓨팅)가 보급된 세상에선 이것만으로는 한계가 있긴 하죠. 해독될 때까지 빠른 속도로 모든 숫자를 누르면 되니까요. 손이 엄청 빠른 도둑이랄까.

  암호화란 암호를 입력하는 규칙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가령 조심성 많은 집주인이 하루에 한번씩 암호를 바꾼다고 생각해봐요. 도둑이 운좋게 집 건너편에서 망원경으로 훔쳐 봤다 하더라도 다음날에는 아무 소용이 없게 되는 거죠. 그런데 이 똘똘한 도둑이 매일 바꾸는 암호를 쭉 적다가 일정한 규칙을 발견한 거예요. 2918, 3927, 9109... ‘이 집주인은 구구단 숫자 네 자리 중에서 하나를 비밀번호로 입력한다!’ 매일 비밀번호를 바꾸긴 하지만 그래봤자 81개의 숫자 중에 하나란 소리죠. 결국 집주인이 휴가를 간 틈을 타 도둑은 도어록을 몇 번 누르지 않고(최근에 입력한 숫자들은 제외하면 되니까요) 유유히 들어갈 수 있었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암호를 정할 때 한글자판으로 ‘암호’라고 친 ’dkagh’처럼 의외로 허술한 문자들을 애용하죠. 뭐 영어권 사람들에겐 해독하기 어려운 암호로 보일 거예요. 한 주는 ‘dkagh’, 다음 주는 ‘xhlrmsgkrhtlek(퇴근하고싶다)’라니! 대체 어떤 규칙이 있는 건지 알 수가 없겠죠. 하지만 한글자판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별 거 아니잖아요. 이처럼 ‘나는 알고 있지만 남은 모르는 해독 방식’, 이게 바로 암호화 기법이랍니다. WEP, RSA 등으로 부르는 암호화 알고리듬도 결국에는 위에서 예를 들었던 약속된 형태로 문자를 바꿔치기하는 방법일 뿐이에요. ‘한글자판’ 암호화기법도 일종의 알고리듬인 거죠. 

  어떤 메시지가 당사자간에만 사전에 공유된 방식의 암호화 기법으로 전달된다면 외부인으로선 해독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닐 거예요. 점점 복잡해지는 암호화 기법에 해독 난이도를 뜻하는 128비트, 256비트, 16384비트…와 같은 자릿수까지 늘어나면 중간에서 암호를 푸는 건 점점 더 어려워지겠죠. 물론 뚫으려는 사람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겠지만요. 리만 가설과 양자컴퓨터까지 가면…. 머리 아프실까봐 더는 설명하지 않을게요. (사실 저도 몰라요. ^_^)

  이런 암호화기술은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사용되고 있어요. 인터넷 뱅킹이나 온라인 주문을 하며 각종 번호를 입력할 때처럼 중요한 사안이 아니더라도 인터넷 주소를 입력할 때나 친구와 채팅을 할 때조차 모든 것이 암호화되어 전송된 뒤에 최종 상대방에게 도착했을 때에만 원래의 문구가 나타납니다. 물론 사진이나 동영상을 전송할 때에도 같은 방식의 암호화 기술을 사용할 수 있죠. 목적은 단 하나입니다. 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하려는지 제3자에게 드러내지 말라! 그건 대한민국 헌법 17조에도 나와있어요.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18조에도 나와있네요.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 그밖의 표현의 자유와 행동의 자유에 관련된 조항도 여럿 있어요. 즉 이 모든 건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라는 거죠.

  그런데 말이죠. 이런 모든 암호화 기술도 무력화하는 마스터키를 지닌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바로 수사기관, 대표적으로 검찰을 들 수 있어요. 이들은 헌법이 추구하는 개인의 존엄성과 수많은 가치들을 단숨에 날려버릴 무기를 아무 때나 들이밀 권한을 갖고 있더라고요. 그 무기가 뭐냐고요? 에이, 잘 아시면서. 감청 영장, 압수 수색 영장 모르세요? 


액티 올림.





세번째 편지


  혹시 ‘warning.or.kr’란 사이트에 들어가본 적 있으신가요? 없을 거예요. 왜냐하면 그건 순수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인터넷 사이트거든요. 가령 정식으로 유통되는 국산 성인비디오가 아니라 해외 각국의 음란물을 구하려는 사람이나 북한에서 운영하는 사이트에 접속하려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사이트예요. 누군가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경찰청이 여러 국내법에 의거하여 불순하다고 판단한 사이트에 접속하면 ‘warning.or.kr’라는 경고성 홈페이지가 뜬답니다. 그러니 당신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으시겠죠.

  어딜 가나 말썽꾸러기가 꼭 있듯, 하지 말란 걸 굳이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있어요. 한국의 성인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어떻게든 해외 음란물 다운로드 사이트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좋은 예지요. 그들은 정부에서 막아놓은 ‘불법 사이트’에 어떻게 접속하는 걸까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가장 쉬운 방법은 ‘VPN(가상 사설망) 우회’를 이용하는 거랍니다.

  IP는 잘 아시죠? 네티즌 수사대가 누군가를 털고 싶을 때 아이디(ID) 다음으로 자주 확인하는 네 마디의 숫자인데요, 간단히 말하자면 인터넷을 이용하는 단말기의 주소이자 전화국번입니다. 192.168.0.1 이런 식으로 부여되죠. 지역이나 기관, 통신망의 성격에 따라 서로 다른 숫자들이 부여되는데 완전히 개별적으로 부여되지는 않아도 이용자의 대략적인 위치는 파악할 수는 있습니다. 한국의 인터넷 사용자들은 몇 개의 제한적으로 부여된 IP주소를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데 이를 통해 그들이 한국 거주자라는 것을 알 수 있죠. 반대로 해외의 사이트들도 고유의 IP주소를 갖고 있는데 통신망 사업자들이 이를 판별하여 접속을 허용하기도 하고 막기도 한답니다.

  VPN 우회란 이런 IP 기반 통제의 헛점을 이용하는 방법입니다. 즉, 접근이 허용된 국가에 있는 가상 사설망 업체에 접속한 뒤 그 국가의 이용자인 것처럼 새로운 IP를 부여받아 차단된 사이트에 접속하는 것이지요. 마치 미성년자가 교복을 벗고 사복으로 갈아 입은 뒤 구멍가게에 들러 담배를 사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할까요. 우회를 하면 할수록 원래 접속한 사람의 정체를 알기 힘들어지니 범죄자들이 자신의 신분을 숨기려고 사용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자유로운 인터넷 접속이 불가능한 사람들, 예를 들어 이슬람 지역이나 중국의 반체제 시민들이 흔히 이용하고 있어요. 아무튼 VPN 우회는 의외로 간단해서 유무료의 VPN 우회 사이트에 접속해서 주소창에 차단된 주소를 입력하거나 자신의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Tor브라우저’ 하나만 설치해도 쉽게 차단된 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답니다. 물론 무료로 쓰는 우회 방법들은 속도가 느려서 평소처럼 쓰기는 어렵지만 ‘불순한’ 사람들은 그런 수고로움은 참고도 남을 거예요. 뭔가 수상한 사람들이니까요.

  그런데 요즘 이와 비슷한 사이버 망명이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지고 있는데, 들어보셨나 모르겠어요. 카카오톡은 아시죠? 카톡이라고도 불러요. 예전에는 휴대폰의 문자메시지를 통해 음성 통화를 대신했다면 요즘에는 스마트폰에 메신저앱을 깔아서 글 뿐만 아니라 사진, 동영상, 이모티콘 등 다양한 형태로 대화를 하고 있거든요. 그중에서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게 카톡인데 최근 소식에 따르면 그동안 검찰에서 카톡 본사에 찾아가서 영장을 들이밀고 수사 대상의 과거 대화 내역을 모두 들여다 봤다고 하더라고요. 수사 과정에서 필요하니까 집행했겠지만 거기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하네요. 서버에 저장된 대화내역은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통신이 아닌 종료된 대화라서 압수수색 영장을 들고 와야 되는데 검찰은 매번 감청 영장을 들고 와서 집행했다고 합니다. 물론 영장만 내민다고 개인의 사생활이 담긴 대화 내용을 고스란히 건내 준 업체도 문제가 있겠지만, 법을 집행하는 기관이 법을 우습게 하는 행태는 얼마나 우려스러운가요.

  얼마 전에 당신께서 온라인 상에서 함부로 말하는 것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하신 이후에 정부와 수사기관들이 인터넷의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려는 시도가 있었어요. 그때마다 많은 이들이 걱정을 하고 불만을 갖고 있던 차에 이번 카톡 압수 수색 사건은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지요. 그래서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는 사람들이 대안을 찾았고 그러다가 독일 업체의 메신저인 ‘Telegram(텔레그램)’으로 이주를 시작했어요. 카톡이나 텔레그램이나 둘 다 메신저 프로그램인 건 같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카톡은 대화 내용이 국내 서버에 한시적이나마 차곡차곡 저장이 되기 때문에 지워지기 전엔 언제든 들여다 볼 수 있는 만면, 텔레그램은 대화내용 전체가 암호화되어 전송되기 때문에 서버에 저장된 내용을 들여다 봐도 무슨 내용인지 알 수가 없고, 부가기능 중 하나인 ‘비밀대화’ 기능을 이용하면 지정한 시간이 지나면 아예 메시지 내용 자체가 사라지기 때문에 보안성이 강하다는 점을 들 수 있겠네요. 또 서버에 저장되는 것 자체를 걱정하는 사람은 토런트로 유명한 비트토런트에서 내놓은 P2P 메신저인 ‘Bleep(블립)’이나 TorChat(토르챗)을 쓰기도 해요. 이 메신저들은 서버가 없기 때문에 암호화된 대화 내용이 상대편에게 직접 전달되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중간에서 누군가가 들여다 볼 여지가 아예 사라지는 거죠. 물론 그 사람의 휴대폰을 손에 넣으면 모두 볼 수 있으니 그 역시도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지금까지 나온 메신저 기술 중에선 가장 보안성이 뛰어나다고 해야겠죠.

  이제 할 말은 조금밖에 안 남아 있지만 이번 편지는 여기서 마칠게요. 어려운 기술 관련 이야기를 들으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액티 올림.





네번째 편지


  아마도 이게 마지막 편지가 될 것 같습니다. 부디 표현의 자유를 둘러 싼 최근의 여러 사건에 대한 저의 짧은 의견이 제대로 전달되어 앞으로 큰 결정을 내리실 때 미약하게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뭔가 찔리는 게 있는 놈들이나 겁내는 거지 평범하고 선량한 사람들이 왜 경찰 검찰의 수사에 신경을 쓰냐!”

  길거리를 다니거나 전철을 타보면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보이더라고요. 과연 그럴까요? 첫번째 편지에서 언급했던 나체 사진 유출 사건 기억나시죠? 왜 그런 일이 일어날까요. 단지 유출 당사자인 그들이 별종이라 그런 걸까요? 다른 일반인들은 그런 사태가 벌어졌을 때 아무 문제가 없을까요? 전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네요. 왜냐하면 요즘 시대의 대화는 예전과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에요. 말이라는 게 연기처럼 날아가기 때문에 한 번 내뱉으면 주워담을 수가 없잖아요. 전화기가 도입된 이후에도 한참은 그랬고 지금도 대부분의 대화는 기록되지 않고 사라지는 것이 보통이죠. 그런 발화의 특성 때문에 오히려 사람들은 솔직한 심정을 내뱉을 수도 있답니다. 따로 기록되지 않으니 강한 책임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고 나중에 두고두고 자신을 괴롭힐 일도 적으니까요. 언론의 조명을 받는 유명인이 아닌 이상 과거의 발언이 발목을 잡을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겠죠.

  그런데 요즘의 대화는 전혀 다릅니다. 실제로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전자우편이나 메신저 대화, 게시판을 통해 의사소통을 하죠. 할리웃 스타들처럼 은밀한 사진을 주고 받기도 하고, 점심에 뭘 먹을지 고민하기도 합니다. 사소한 내용, 거창한 내용, 사적인 내용, 공적인 내용 등 주제와 형식을 막론하고 모든 것이 기록되고 저장되고 있어요. 내 컴퓨터와 휴대폰에서 지우더라도 상대방이 갖고 있을 수도 있고, 카톡 사태처럼 서버에 고스란히 모든 내용이 남아 있으니 나중에 딴소리를 할 수도 없죠. 좋게 보자면 이제는 말을 할 때 좀 더 신중해야 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사람이 늘 그럴 수 있나요. 가끔은 충동적으로도 이야기하고 실수도 하는 불완전한 존재잖아요. 모두에게 늘 법조인처럼 정제된 언어만을 구사하길 바라는 건 과한 욕심 아닐까요? 우리가 ‘종심소욕불유구(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라고 말한 공자도 아니고요.

  전 오히려 걱정이 됩니다. 누군가 마음만 먹는다면 나의 모든 발언을 뒤져서 꼬투리를 잡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게 기우가 아니란 게 이번 카톡 압수 수색 사태를 통해 드러났고요. 단지 이건 평소에 문제될 말을 하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란 차원에서 다룰 게 아니랍니다. 만약 누군가 당신을 항시 따라다니며 감시한다면 어떨까요. 모든 행동이 평소와 다를 게 없이 자연스러울까요? 조금이라도 감시자를 의식해서 부자연스럽거나 억지스러운 행동을 하지 않겠어요? 게다가 그 감시자가 나를 처벌할 권한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떨까요. 말과 행동을 할 때 자체 검열을 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설사 그 내용이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자기 생각을 남에게 드러낸다는 것 자체가 화자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CCTV 카메라의 설치 목적을 떠올려 보면 알 수 있을 거예요. 범죄 현장을 기록하는 단속의 목적도 있지만, 카메라가 지켜 보고 있다는 걸 주지시켜서 평소에 조심하게 만드는 목적도 분명히 있잖아요. 그게 바로 심리적인 효과죠.

  반복해서 말하자면, 메신저 대화를 들여다 본다는 건 결국 그 사람의 평소 생각을 들여다 본다는 것입니다. 그건 분명히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고 아주아주 위험하게 사용될 여지가 있기 때문에 법률로 엄격하게 제한된 상황에서만 최소한으로 이뤄져야 할 겁니다. 그런 맥락에 대한 고민 없이 단순히 문제가 될 말을 하지 않으면 될 것 아니냐는 식의 태도는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이라면 지양해야 할 발언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지금 중국 본토에서는 홍콩의 시위에 대해서 제대로 들을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정부가 보여주길 원하지 않는 정보는 방송이나 인터넷에서 철저히 차단되고 있기 때문이죠.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가상 사설망을 이용해서 홍콩시민들이 올리는 소식을 듣거나 해외 뉴스를 통해 소식을 접한다고 해요.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 같지 않으세요? 맞아요. 1980년 5월 광주랑 닮았네요. 세월은 수십 년이나 지났는데 어쩜 세상은 그렇게 변하지 않는 걸까요. 

  텔레그램 이주 같은 대규모 사이버 망명도 이제 시작일 겁니다. 어쩌면 앞으로의 인터넷 정책에 따라 한국에서도 토르 브라우저를 이용해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대단한 반체제 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뉴스 몇 개 보려고 그 고생을 해야 한다면 이 얼마나 큰 시간과 비용의 낭비일까요. 또 개방과 공유의 시대에 발맞춰 열심히 신기술을 개발하던 국내 IT 기업들은 갑자기 대한민국이 인터넷 시대의 갈라파고스가 된다면 얼마나 허탈할까요.

  아무쪼록 현명한 판단을 내리시길 바랍니다. 중국인들이 액티브 엑스를 설치하지 못해 한류 상품을 사지 못한다고 하자 전자상거래에서 불필요한 플러그인을 설치하지 않아도 되도록 결단을 내리셨듯 소통의 광장인 인터넷 공간에 대한 규제도 과감히 풀어주시고 개인들의 은밀한 공간인 메신저에서도 남들이 들여다 볼까 걱정하는 일 없이 마음껏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수사기관들에게 잘 좀 말씀해주세요. 이미 헌법에 보장된 권리니 굳이 새로운 법을 만들고 말고 할 것도 없을 거고, 그저 당신께서 회의 때 말 한 마디만 하시면 되잖아요. 한 번만 더 믿고 기대해보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액티 올림.

 




[참고자료]


* 토르 브라우저 설명 : https://mirror.enha.kr/wiki/Tor

* 128비트 암호화 해독

http://www.zdnet.co.kr/news/news_view.asp?artice_id=00000039147140&type=det

http://www.freescale.co.kr/bbs/print.php?bbs=docu&mode=print&Idx=169

* 홍콩시위소식 기사 : http://newspeppermint.com/2014/09/30/no-news-from-hk



편집자주 : 본 소설은 미나토 가나에의 소설 ‘고백’의 서간문 형식을 차용한 글로써, 특정 인물과 특정 국가의 상황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허구의 이야기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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