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90호 학습소설 2014. 08. 01]
(1) 폰에도 귀가 있다
주일(창작자)
#1. 아마존 파이어폰
무언가 할 말이 많은 사람들로 가득한 카페, 협이가 그 사이에 앉아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다.
매장에 설치된 텔레비전에선 끊임없이 뉴스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삼성전자의 실적 발표를 앞두고 재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기사, 애플의 새로운 제품에 대한 루머, 박근혜 정부가 프로그램 개발을 정규 교육 과정에 도입하겠다는 기사 등.
문을 열고 액티가 들어왔다. 늘 그렇듯 액티는 누런색의 정체 모를 생명체 하나를 끌고 왔다.
- 하이.
- 왔어?
짧고 어색한 인사를 마치자 별로 할 말이 없던 두 사람은 뉴스를 향해 목적 없는 시선을 던졌다.
‘오늘 새벽 세계적인 전자상거래 업체인 아마존은 파이어폰이라는 스마트폰을 발표했습니다. 몇 년 전 킨들이란 전자책으로 미국 전자책 시장을 장악하고 킨들 파이어란 태블릿으로 아이패드의 아성을 위협하던 아마존은 마침내 소문만 무성하던 자체 브랜드의 스마트폰을 출시했습니다. 이 제품에는 그간 다른 스마트폰에서 볼 수 없던 다양한 기능이 탑재되어 있는데….’
재미있다는 듯 뉴스를 보던 협이가 액티를 향해 몸을 돌리며 코웃음을 쳤다.
- 이젠 개나 소나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드네. 이러다간 이제 미국이나 한국 제품 OEM 생산하던 중국 회사들도 스마트폰 판다고 나서는 거 아니야?
액티는 협이에게 한심한 눈빛을 보냈다.
- 이미 중국 회사들도 스마트폰 만들고 있거든? 특히 샤오미란 회사는 중국시장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히트를 치고 있어서 애플이나 삼성도 잔뜩 긴장하고 있거든?
- 진짜? 하긴, 그동안 어깨 너머로 배운 게 있으니 만들려고만 하면 잘 만들겠지. 인건비도 저렴하니 가격 경쟁력은 있겠다.
- 협이! 내가 아무래도 오늘 너에게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액티는 협이가 마시던 커피잔을 빼앗아 절반쯤 들이키며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너 지금 뉴스에서 나온 아마존 파이어폰의 잠재력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어?
- 갑자기 얘가 왜 이래. 스마트폰이 한두 개도 아닌데 그거 하나 나왔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애플이나 삼성 신제품 나오면 바로 버로우 탈 게 뻔한데. 뭐 큰 회사라면 버스폰으로 풀 수는 있겠지.
- 지금 넌 아마존을 지마켓이나 옥션 쯤으로 생각하나 본데, 아마존은 그런 회사들과 차원이 달라. 걔들이 다루지 않는 상품은 없어. 단지 잡다한 물건들을 인터넷 상에서 파는 게 아니라 음악, 전자책, 영화, 방송 등의 문화 컨텐츠 상품까지 모든 걸 다루는 엄청난 회사야. 걔들이 이번에 만든 파이어폰은 그래서 단순한 전화기가 아니라 모든 상품을 소비자들과 연결해주는 통로의 역할을 할 게 분명해.
- 그래서 뭐. 지금도 스마트폰으로 물건 구매하는 건 누구나 다 하는 거 아냐? 옷 사고, 음식점 쿠폰 사고, 영화 다운 받고, 음악 듣고.
액티가 등에 메고 있던 가방에서 태블릿을 꺼내 뭔가 검색하더니 협이에게 내밀었다.
- 여기에 나와있는 이 ‘반딧불 기능’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넌 모르겠지?
평소에 영어 공부라면 자신 있던 협이는 액티가 내민 웹페이지를 순식간에 읽어 내려갔다.
- ‘이 버튼을 누르고 전단지를 찍으면 전화번호와 주소를 자동으로 인식해서 연락처로 저장하던가 전화를 걸어주고, 책 표지나 포스터를 찍으면 책과 영화에 대한 정보가 나오며 바로 구매하던가 예매할 수 있게 해준다, 주변에 흐르고 있는 음악을 인식해서 곡 정보와 구매 페이지로 연결해준다….’ 그냥 지금까지 나왔던 여러 앱의 기능을 하나로 통합한 거네. 문자 인식 기능은 OCR앱이나 명함인식앱으로 나와 있고, 음악 정보 알려주는 건 샤잠(shazam)이나 다음앱 같은 데 다 들어 있던 거잖아.
- 그게 한군데에 모여 있다는 게 무서운 거지. 그동안은 네가 뭘 찍고 검색하든 각각의 기업들이 그 정보를 공유하는 데에는 제약이 있었어. 그런데 아마존 같은 거대 기업이 네가 하는 모든 일에 대한 정보를 한곳에 수집하면 어떤 일이 생길 것 같아?
- 음…. 내가 뭘 좋아하는지, 주로 어떤 상품을 찾아보는지. 그런 걸 알 수 있겠지. 내가 뭔가를 검색하면 웹서핑할 때 옆에 뜨는 광고가 내 검색결과를 바탕으로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고. 빅데이터인가 뭔가. 아마 액트 84호에선가 다룬 적 있던 걸로 알고 있어.
- 잘 알고 있네. 그럼 빅브라더는 들어 봤어?
- 큰형! 아, 큰형은 올더 브라더지.
액티는 한심하다는 듯 잔뜩 찡그린 표정을 지었다. 그걸 보고는 협이는 낄낄대며 손을 내저으며,
- 농담이야, 농담.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왔던 개념으로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누군가를 지칭하는 말이잖아.
- 그래. 이미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빅브라더처럼 인터넷과 통신망을 도감청하고 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야. 그중에서도 에셜론 프로젝트는 아주 유명하지. 게다가 예전엔 누군가를 감시하려면 꽤 복잡한 기술이 필요하고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매번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했다면, 요즘엔 아주 간단한 방법을 사용할 수 있어.
- 그게 뭔데?
- 페이스북과 아마존만 털면 돼.
#2. 너의 목소리가 들려 - 페이스북앱의 소리 인식 기능
재빨리 뭔가를 검색한 액티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협이에게 기사 하나를 내밀었다.
- 아! 페이스북앱에 소리 인식 기능이란 게 들어 있었구나. 주변 소리를 자동으로 인식하면 뭐가 좋은 거야?
- 페이스북측에서 누가 글을 올릴 때 주변에서 들리는 음악이나 방송 소리를 인식해서 관련 정보를 쉽게 공유할 수 있게 도와준다고 하더라고. 가령 ‘나 지금 우울한데 카페에서 들리는 이 노래가 날 위로해주고 있어’라고 글을 올릴 때 사진을 첨부하듯 음악 정보를 첨부하게 도와주는 거지. 지금까진 그 노래를 모르면 구체적인 정보를 공유하기 어려웠지만 이젠 앱 차원에서 알.아.서. 자동으로 정보를 올려주는 거야.
액티는 심각하지 않은 태도의 협이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또박또박 말을 했다.
- 완전 편하겠는데? 굳이 샤잠 같은 앱으로 곡을 찾은 뒤에 관련 주소 링크를 거는 단계를 확 줄여준 거잖아. 그런데 페이스북은 왜 이런 기능을 도입한 거지?
- 결국에 이익이 되니까 하는 거 아니겠어?
- 어떤 이익?
- 아까 말했던 빅데이터의 사례처럼 누군가 내가 올린 노래 정보에 대해 좋아요를 누르거나 클릭해서 해당 노래를 들으면 취향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고, 좀 더 직접적으로는 게시글에 첨부된 노래 정보를 클릭하면 바로 음악 파일을 구매할 수 있게 할 수도 있겠지. 예전 같으면 귀찮아서 굳이 하지 않을 ‘경제 활동’을 좀 더 쉽게 해주게 도와주는 아주 친.절.한. 기능이지.
- 난 또 뭐라고. 그런 거야 이제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 페이스북이나 포털 사이트 같은 서비스 제공자들이 땅파서 장사하는 게 아니라면 요금을 받는 대신 광고 좀 띄우고 구매할 사이트로 연결해주는 것 정도는 이용자가 감수해야 되지 않을까. 마지막에 내가 결제만 하지 않으면 손해보는 건 없는 거잖아.
- 네가 하는 모든 행동, 네가 하는 모든 결정이 너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용되고 분석되는데도? 심지어는 네가 내리는 결정들이 그들의 은밀한 조작에 의해 조장된 것일 수도 있는데?
- 그건 무슨 소리야? 난 늘 이성적이라고. 모든 일을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나 분위기에 따라 어떤 결정을 쉽게 내리지는 않는다고.
- 네가 진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지는 따로 얘기해봐야겠지만, 적어도 인터넷 상에서는 누구나 여러 가지 장치에 의해 조종된 결정을 내릴 수 있어. 페이스북이 2012년에 영어권 사용자 70여만 명에게 한 가지 실험을 했어. 이른바 ‘감정 조작 실험’인데, 어떤 이들은 주로 긍정적인 내용의 글에 노출시켰고 어떤 이들은 부정적인 글에 노출시켰어. 그러자 긍정적인 글을 본 사람은 긍정적인 글이나 댓글을 남겼고 부정적인 글을 본 사람은 그 반대의 행위를 했다고 하더라고. 이게 뭘 말하는 걸까.
협이는 커피를 얼마 남지 않은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 페이스북을 이용하면 알게 모르게 게시물의 영향을 받게 된다는 이야기? 아마도 페이스북이 실생활에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 위주로 돌아가다 보니까 좀 더 상관관계가 높은 게 아닐까 싶은데. 뭘 그 정도 갖고 ‘감정 조작’이라고 까지 말해야 되냐. 유난 좀 떨지 마라.
액티의 옆에 얌전히 앉아 있던 누런 생명체조차 협이의 답변이 실망스러웠는지 고개를 가로저으며 바닥에 찰싹 달라붙었다.
#3. 스파이앱, 은밀하게 위대하게
협이는 커피잔에 남은 얼음만 빨아 먹었고 액티는 말없이 태블릿만 만지작거렸다. 두 사람 주변의 손님들은 어느새인가 다른 얼굴들로 바뀌어 있었다. 텔레비전 뉴스에선 앵커가 사건 사고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경찰은 공사 입찰가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건축과 공무원들의 스마트폰에 스파이앱을 설치한 김모씨 일당을 구속했습니다. 김씨와 동료들은 공무원들의 전화번호를 입수한 뒤 지인들이 보내는 메시지로 위장하여 도청앱 설치 문자를 보냈고, 원격 설치에 실패한 한 공무원에게는 직접 접근해서 전화기를 빌리는 척 휴대폰을 건네 받은 뒤에 짧은 시간 동안 도청 앱을 설치하는 대담함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협이는 자신의 아이폰에 입김을 불고는 안경 닦는 천으로 열심히 스크린을 닦았다. 그리고 액티가 자신의 피처폰을 꺼내서 문자를 확인하는 모습을 보고는,
- 맞다. 네 전화기도 해킹으로부터 자유롭지? 넌 언제 스마트폰으로 바꿀 거냐. 내가 버스폰 하나 알아봐줄까? 내가 또 그런 정보만 올라오는 사이트의 죽돌이잖냐.
- 넌 참 좋겠다. 어떻게 그렇게 태평일 수가 있냐. 지금 나온 저 기사 보고도 그렇게 태연할 수 있냐?
- 도청 앱이나 해킹 앱 같은 건 안드로이드폰에만 있는 거 아니야? 내 사과폰은 그런 일에서 자유롭다고.
- 상대적으로 안전한 건 맞지만 내가 볼 땐 사용자 수가 적어서 해커들이 굳이 안 건드리는 것 같은데? 아무튼,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고 있는 요즘과 같은 때일수록 보안에 신경쓰고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는 기술적 제도적 준비를 해야 돼. 특히 범죄자 뿐만 아니라 국가나 기업도 내 사생활을 들여다 볼 수 없게 필사적으로 저항해야 돼.
협이는 액티를 보며 걱정도 팔자라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아주 익숙하다는 그 눈빛.
- 또또 시작이다. 넌 매사가 부정적이야. 네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라고 국가가 너같은 사람의 휴대폰을 들여다 보겠냐. 혹시 피처폰을 쓰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야?
액티는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바닥에 엎드려 있던 누런 빛깔의 생명체가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 여보세요, 액티 양반. 네가 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런가 본데, 세상 모든 정보기관이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에서처럼 위성으로 감시하고 사방으로 도청하고 그러는 거 같아? 우리 나라 국정원 봐라. 해외 특사단 호텔에서 노트북 하나 훔치지 못해서 적발되고 그러잖냐. 걔들도 그저 평범한 직장인이야.
협이의 그 말이 액티를 자극했다. 차분하게 앉아 있던 액티는 협이를 향해 몸을 기울이고는 열을 내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 너 영화 [감시자들] 봤지? [로보캅] 최근 리메이크작은?
- 다 봤지. 내가 원래 그런 류의 영화 좋아하잖냐. 비슷한 소재의 미드 있잖아. [퍼슨 오브 인터레스트]. 그것도 아주 재미있게 봤어.
- 그걸 다 본 놈이 어떻게 그렇게 태연하게 살 수 있지?
협이는 마지막 얼음을 와작 깨물어 먹으며 소처럼 순진한 눈빛을 액티에게 건냈다.
#4. 감시카메라, 자발적 검열의 시작
- 대도시에 사는 우리가 하루에 감시카메라에 몇 번이나 노출되는지 알아?
- 이삼십 번?
- 최소 100번이야. 그것도 몇 년 전 기준이고 요즘 같으면 그 두 배는 될 걸. 몇 년 전 연구결과에 따르면 감시카메라 천국 런던에서는 하루에 300번 노출된다던데 큰 사건만 터지면 CCTV 찾는 우리나라 보면 곧 영국을 뛰어 넘을 것 같더라. 게다가 각 차에 달린 블랙박스까지 생각하면…. 아휴, 겁난다 겁나.
가까워진 액티의 얼굴이 부담스러워서인지 협이는 드러눕다시피 의자에 몸을 묻었다.
- 한국 경찰의 범인 검거율은 90%에 가깝다고 하더라. 미국 일본에 비해 두 세배 높은 이유가 뭘까.
- 글쎄. 우리 경찰이 다른 나라 경찰들보다 유독 월등한 실력을 갖고 있지는 않을 것 같고. 이유가 뭔데?
- 지문 날인! 모든 성인이 주민등록증을 받으며 열 손가락의 지문을 찍어두니 사건 현장에서 지문이 발견되면 용의자를 추리는 일이 아주 쉬워지지 않겠어? 아무 것도 모른채 수사를 하는 것과 유력 용의자를 지목한 뒤 수사를 하는 건 천지차이지.
- 그런데 그게 여기서 왜 나오는 거야?
- 요즘 경찰들은 사건이 터지면 무엇부터 하게.
- 아…. CCTV 돌려본다고?
- 그래. 현장에서는 지문을 찾고, 현장 주변에서는 감시카메라의 위치를 파악한 뒤 영상 파일의 요청부터 한다더라.
- 잘됐네. 덕분에 순찰 인력을 줄이고도 좀 더 안전해질 수 있는 거 아닌가?
액티는 협이를 만난 뒤 가장 큰 한숨을 내쉬었다.
- 실제로 CCTV와 범죄율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지금 거기까지 이야기하기는 그렇고. 넌 카메라가 사방에서 널 감시하고 있는데도 아무렇지 않을 것 같아?
- 잘못한 게 없는데 뭐가 어때.
- 밤에 술마시고 노상방뇨를 하고 있는데 위에서 카메라가 떡하니 널 보고 있으면?
- 몸을 돌리던가 다른 곳으로 가지.
또다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 액티. 협이를 향해 있던 몸을 뒤로 끌어 당겼다.
- 실내든 실외든 모든 곳에서 카메라가 널 감시하고 있다면?
- 에이. 지금도 카메라를 설치하는 건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지 않나? 적어도 최소한의 프라이버시는 존중하는 선에서 그치겠지.
- 물론 그렇지. 그런데 지금처럼 범죄를 해결하는 데 감시카메라가 뛰어난 활약을 하면 어떨까. 그때도 지금처럼 최소한의 공간을 남겨줄까?
협이는 말이 없었다. 고민하는 것일까 답이 명확해서 할 말이 없는 것일까.
- 요즘 CCTV 기술이 어느 정도냐면, 관리자가 카메라에 잡힌 한 사람을 지정하면 감시카메라를 넘나들며 그 사람의 위치를 찾아주기까지 해. 예를 들어 누군가 홍대에서 신촌까지 걸어갈 때 여러 대의 카메라에 조금씩 찍혔다면, 그 동선을 분석해서 현재 위치를 알려주지. 옛날 영화에서처럼 경찰들이 수십 시간 분량의 비디오를 돌려보는 일은 사라지고 클릭 한 번이면 그 사람의 이동 경로와 현 위치를 알 수 있는 셈이야.
- 그건 조금 무섭다.
협이의 반응에 액티는 처음으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 일거수일투족을 누군가 감시한다고 생각하면 사람들은 의식을 하겠지. 처음에는 범죄나 공중도덕을 어기는 일을 자제하겠지만 나중에는 매사에 조심스러워질 거야. 단지 착해지는 게 아니라 고분고분한 삶을 사는 거야. 일종의 자발적 검열이랄까. 한때 욕설과 음란한 가사를 쓰던 가수가 자꾸 방송정지를 당하게 되자 나중에는 검열 기준을 생각하며 애들이 들어도 되는 노래만 만드는 것과 같은 현상이지.
협이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 그런데 대체 그게 아마존 스마트폰과 무슨 관계야?
▲ 영화 <좋지 아니한가>의 한 장면
#5. 다크 나이트, 음지에서 활동하고 양지를 지향한다
액티가 기다렸다는 듯 만연한 미소를 띠며 질문을 던졌다.
- [다크 나이트]에서 배트맨이 어떻게 조커를 찾았는지 기억해?
- 고담시의 수많은 휴대폰을 소나 레이더처럼 활용해서 찾아냈지. 모든 소리를 분석하고 형상화한 뒤에 원하는 것만 탐색. 죽여줬지.
- 그래. 그런데 만약 페이스북앱이나 파이어폰에 탑재된 소리인식 기능이 빅브라더의 손에 들어간다고 생각해봐. 배트맨에 나온 기술은 약간의 과장되어 있다 치더라도 특정 인물을 지목해서 찾아내는 데는 지금 수준의 기술로도 충분해. 예를 들어 경찰이 너에게 ‘너 몇 월 몇 일에 광화문 집회 현장에 있었지?’라며 감시카메라에 찍힌 흐릿한 사진, 다른 집회 참가자의 인증샷에 우연히 찍힌 사진, 휴대폰 위치 정보 등을 내밀면서 추궁하고 마지막에는 너의 스마트폰으로 녹음되어 페이스북 서버에 자동으로 업로드된 네 목소리들이 증거로 내미는 거지. 혹은 그 당시 근처에 있던 다른 사람들의 휴대폰에 저장된 소리를 분석해서 네 목소리만 추출할 수도 있고. 그럼 어떨 것 같아. 아무리 네가 당당하고 선량한 시민이라 하더라도 너의 모든 일이 감시되고 있다는 것만 갖고도 공포감이 밀려 오지 않겠어?
두 사람은 잠시 말이 없었다. 액티의 발밑에 엎드려 있던 누런 생명체는 협이를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리는 듯 했다. 다시 액티가 말문을 열었다.
- 페이스북에서는 원하면 소리 인식 기능을 끌 수 있다고는 하지만 기업들이 이용자들을 속이면 어떻게 하지? 아니면 수사기관이 휴대폰 소유주가 범죄와 관련이 있다며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서 영장을 들이대면…. 평소에 수집했던 소리 정보들을 건네주지 않고 배기겠어? 처음에는 편하자고 도입한 기술들이지만 결국에는 모든 것을 기록하고 감시하는 데 쓰일 수 있는 거야. 뭐랄까. 동전의 양면이라는 말보다는 차라리 본성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적당할 것 같다.
액티는 가만히 앉아 있었고, 협이는 카페 한쪽에 놓인 얼음물을 가져와 벌컥벌컥 마셨다. 창밖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6. 스마트폰을 부숴라! 만약 그럴 수 없다면…
대화가 거의 끝났다고 생각한 협이가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았다. 메신저에 수많은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지만 협이는 답장을 보내지 않고 스마트폰을 다시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액티에게 물었다.
- 말은 달리고 있는데 말을 세우고 발굽을 가는 일이 가능할까? 아마 다들 위험성은 인정하면서도 편리함 때문에 포기 못할 것 같은데? 나부터도 그럴 것 같고.
- 아마 그렇겠지. 지금에 와서 스마트폰을 버리고 구식 전화기를 들고 다니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한참 고민하던 액티는 태블릿을 만지작거리더니 기사 하나를 내밀었다. 협이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기사를 읽었다.
해킹으로부터 자유로운 스마트폰이라….
▲ 영화 <약관에 동의합니다> 포스터
- 이게 블랙폰이라는 건데 지금의 스마트폰과는 다르게 보안에 엄청나게 신경을 써서 감청을 하거나 해킹을 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대. 물론 언젠가는, 혹은 누군가는 뚫을 수도 있겠지만 모든 제품이 이런 기술을 채택한다면 조금은 안심할 수 있겠지. 그런데 그보다 훨씬 쉬운 방법이 있어.
협이는 액티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과연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지금까지 장황하게 늘어놓았던 디스토피아를 한번에 해결할 대단한 비책이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협이는 앞에 앉은 친구를 바라보았다.
- 약관을 잘 읽어보고 직접 행동에 나서는 수밖에 없어.
이게 무슨 소리인가. 협이는 뜬금없는 액티의 말에 어리둥절했다.
- 어떤 사이트에 가입하거나 앱을 설치할 때 미리 고지하는 약관 있잖아. 수많은 문항으로 이뤄져 있지만 ‘동의’라는 항목 몇 개만 누르면 대충 넘길 수 있는 그거. 그걸 잘 읽어 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동의하지 않아야 해. 또 가끔 앱이 업데이트 되면서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때마다 일일이 그 기술이 뭔지 파악하고 가능성과 위험성을 함께 고려해야 돼. 만약 약관이 나에게 불리하게 바뀐다면 간단히 앱을 지울 수도 있겠지만 직접적인 압력을 행사할 수도 있겠지.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을 인수하면서 이용자들이 찍은 사진을 자기들 맘대로 쓰겠다고 했다가 반발하는 이용자들의 항의에 굴복하고 관련 조항을 삭제한 일이 좋은 사례지.
- 대부분의 사람들은 첨단 기술과는 담을 쌓고 살고, 사용하는 거나 겨우겨우 하고 있을텐데 그런 적극적인 행동까지 할 수 있을까? 너무 과한 부탁 같은데.
태블릿을 가방에 넣으며 액티는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 분명히 어려운 일은 맞는데, 그렇다고 해서 외면하고 살거나 전문가들의 영역에만 남겨두면 결국 피해를 입는 건 나라는 걸 잊어서는 안돼. 아는 게 힘이라는 말도 있잖아.
누런 생명체에게 가자고 말을 한 액티는 마지막으로 협이에게 말했다.
- 잘 모르겠으면 ACT!를 보면 되잖아. 우리에겐 ACT!가 있다고.
그러자 협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7. 에필로그
액티가 카페를 나서면서 누런 생명체에게 퉁명스럽게 말했다.
- 오늘도 협이한테는 커피 한 잔을 못 얻어먹었네. 대단한 녀석. □
필자소개 : 주일
전미협 홍보담당자 / 영상제작자 / 전기로 돌아가는 것들에 관심이 많은 자
* 관련 자료 링크
페북 소리인식 기능 기사
http://m.yna.co.kr/kr/contents/?cid=AKR20140522157000009
페이스북 감정 조작 실험 기사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18471
스마트폰 도청앱 기사
http://www.contentgaller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7
http://www.ytn.co.kr/_ln/0115_201407101901346068
http://www.mbn.co.kr/pages/news/newsView.php?news_seq_no=1893426
국정원 노트북 절도 미수 기사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7920
CCTV 노출 회수 기사
http://act.jinbo.net/drupal/node/7613
CCTV와 생체인식기능 기사
http://www.cctvnews.co.kr/atl/view.asp?a_id=3003
http://w3.sbs.co.kr/news/newsEndPage.do?news_id=N1001821550
다크나이트 감청 장면 동영상
http://www.criticalcommons.org/Members/ccManager/clips/DarkKnightMontage.mov/view
미정부 정보제공요청 기사
http://kr.wsj.com/posts/2013/11/06/애플-미-정부-6개월간-개인-정보-10002000-건-요청
도감청 방지 건의 기사
http://www.zdnet.co.kr/news/news_view.asp?artice_id=20131210091625
블랙폰 기사
http://www.etnews.com/20140612000209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인수 기사
http://www.zdnet.co.kr/news/news_view.asp?artice_id=20121219113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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