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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이 주도권을 가지는 시스템 만들기- 미국 ITVS의 사례와 주목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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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24. 7. 5.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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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원고는 인디앤임팩트 뉴스레터에도 공동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ACT! 이슈와 현장 2024.07.05.]

영화인이 주도권을 가지는 시스템 만들기

- 임팩트시네마포럼#4 ITVS 사례를 통해 보는 미국 독립다큐멘터리 지원기구 설립 운동의 역사와 성과 후기

 

정리 : 이세린

 

 

포럼이 열리는 날, 40여명에 달하는 많은 이들을 미디액트 강의실에서 만날 수 있었다. 주로 독립 다큐멘터리 작업에 진입하는 단계의 감독들이 많았지만, 이미 여러 작품을 경험한 감독이나 관련 학계 인사 등 다양한 이들이 포럼을 찾아 주었다. 많은 이들이 행사를 찾아온다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이날의 자리를 찾게 된 이들에게는 오랜만에 누군가를 만나는 반가움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동력이 있었음을 말하고 싶다. 어떤 절실함과 위기감. 지금의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어떤 돌파구에 대한 갈증. 대부분 자력으로 이루어지는 자신의 작품 활동을 기반으로 생존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독립 다큐멘터리스트들의 고민과, 점차 축소되고 있는 영화제나 정부 기관을 통한 소수의 기회를 놓고 영화인들이 경쟁해야 하는 현재의 상황을 생각하게 된다. 이번 포럼의 내용을 소개하기 전에 동시대 다큐멘터리스트들이 처해 있는 현재의 상황을 다시 한 번 떠올리기를 요청하며 글을 시작하고 싶다

 

▲ 임팩트 시네마 포럼#4 현장 사진 (2024.6.13)

 

 

‘임팩트 시네마 포럼’은 영화 창작 주체 간의 교류와 토론이 점차 정체되어가는 상황 속에서 새로운 의제들에 대한 논의를 촉발하기 위해 기획된 자리이다. 독립미디어연구소와 미디액트의 기획으로 2023년 8월부터 ‘뉴 내러티브’, ‘기후위기와 영화’, ‘OTT 시대의 독립영화(서울독립영화제 연계)’를 주제로 포럼을 개최했으며, 네 번째 자리인 이번 ITVS 포럼은 독립미디어연구소, 미디액트, 한국독립영화협회의 공동주최로 열리게 되었다. 

 

왜 지금 ITVS의 사례에 주목해야 할까? 포럼의 제목처럼 ITVS 독립 다큐멘터리를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기관인데, ‘독립영화만을 위한 정책이나 지원 논의도 익숙하지 않은데, ‘독립 다큐멘터리를 특정하는 지원 기구를 상상하는 것이 낯설게 다가온다. 한편 ITVS는 독립 다큐멘터리스트들이 회원이자 이사로서 운영하는 민간 기구인데, 민간이 주체가 되는 상근자 70여명 규모의 지원 기관이라는 형태 또한 한국에서는 낯설게 느껴지는 듯하다. 지금의 고착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에게 부족한 어떤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미국 ITVS의 사례를 소개하게 되었다. 이 날 포럼은 최근 한국을 방문한 ITVS의 이사 패트리샤 아우프데하이드의 발제가 주된 내용으로 진행되었으며, 고두현 감독, 언론개혁시민연대 권순택 사무처장,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허은광 사무국장의 토론을 통하여 한국에서의 시사점과 한계에 대하여도 다루었다. 패트리샤 아우프데하이드의 발제문 번역본은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

 

 

포럼 발제문 보기(번역본)

 

 

ITVS에 대한 패트리샤 아우프데하이드의 발제를 몇 가지 시사점을 중심으로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공영방송이 독립 다큐멘터리를 지원하는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점, 이러한 지원을 이끌어내는 데에는 시의적인 영화인들의 개입이 유의미하다는 점이다. 공영방송은 독립 다큐멘터리를 방영하는 것뿐 아니라, 독립 다큐멘터리 제작의 재원으로서도 기능한다. 연간 CPB(미국 공영방송공사)를 통해 2024년 현재 기준 미국 연방세금 1,600만 달러가, 타 민간 재원으로부터 오는 600만~1000만 달러가 ITVS에 들어오며 이는 ITVS가 공동 제작하는 연간 약 40편의 독립 다큐멘터리 작품에 지원된다. ITVS의 지원 작품은 PBS(미국 공영방송사 연합)의 프로그램 <POV>, <Independent Lens>, <Frontline>을 비롯한 시리즈에 편성되어 공영방송에서 방영된다(ITVS 지원작이라고 하여 의무 편성되는 것은 아니지만, 타 매체가 아닌 공영방송이 지원작 방영의 우선권을 가져가 방송사에 의해 선택될 수 있다). 이러한 지원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은 공영방송 도입 초기 영화인들의 투쟁 덕분이었다.

 

민영방송과 교육방송만 존재하던 미국에 공영방송이 도입되던 시기, 영화인들은 방송사에 소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만들어진 작품들 또한 공영방송에 방영되어야 함을 주장했다. 민영방송에서는 그러한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보수계의 반대가 없지 않았으나, 공영방송을 차별화할 고품질의 콘텐츠에 대한 방송사들의 욕구와 자신이 속한 지역을 드러내는 콘텐츠를 원하는 의원의 욕구 사이에서 접점을 찾는 데에 성공했다. 때문에 정부의 세금이 CPB와는 분리된 독립제작자들이 운영하는 기구에 지원되는 것을 명시하는 법제(퍼블릭 텔레커뮤니케이션법)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세금을 조달하는 것, 이를 법제화하는 것”이 ITVS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의 핵심이라고 발제자는 밝히기도 했다. 

 

 

▲ 임팩트 시네마 포럼#4 현장 사진 (2024.6.13)

 

 

두 번째, ITVS가 방송사와 영화인 사이에서 자처하는 매개자의 위치와, ITVS가 독립영화인의 기구로 남아있을 수 있도록 하는 거버넌스적 장치에 대한 것이다. 패트리샤 아우프데하이드는 독립제작자들을 문젯거리로 생각하는 CPB와 방송사에 분노하는 독립영화인 사이에 놓인 ITVS의 정치적 역할에 대해 언급했다. 예를 들어, 퀴어 섹슈얼리티를 다룬 <풀어헤쳐진 말들 Tongues Untied>이 POV에 방영되고 이로 인한 논란과 백래시가 뜨거웠을 때, 방송사와 독립영화인의 갈등이 어떻게 격화되었을지를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ITVS는 양측을 친구 삼아 현재의 지원 방식을 유지해야 하는데, 상대적으로 권력이 있는 방송사 측의 입장에 포섭되기 쉬울 수 있다. 발제에서는 이러한 포섭을 피하기 위한 노력들이 소개되었다. ITVS 이사회는 영화 제작자와 공영방송국 임원을 모두 포함하지만, 정부 측 추천 인사를 포함하여 구성해야 하는 등의 조건이 없으며(ITVS의 신임 이사는 현 이사회에서 선정하며, 이는 ITVS가 공영방송과 독립된 기구여야 한다는 것을 관련 법제에 전제하여 명시할 수 있었던 덕분에 가능하다) 모든 이사회 멤버는 민주주의에 대한 헌신과 여기에 있어서의 다큐멘터리의 역할에 대한 이해를 선정 조건으로 한다.

 

<POV> 폐지 등이 논의되며 ITVS가 위기에 처한 순간에 독립영화인들이 조직한 투쟁이 프로그램과 ITVS를 지켜낸 두 차례의 주요한 경험 또한 ITVS의 가장 큰 자산으로서 독립 다큐멘터리 진영에 복무하게 하는 이유가 된다. 발제자는 또 ITVS는 1988년 설립된 조직으로, 신진 독립 다큐멘터리스트들의 경우 영화인들 스스로 요구하여 만들어낸 ITVS의 역사와 맥락을 모르고 기능적인 부분만 접할 수 있기 때문에, ITVS라는 조직의 존재와 의미를 알리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한다는 점을 질의응답에서 밝히기도 했다. 독립영화인 스스로가 이러한 체계를 만들고 또 여러 갈등 속에서도 이를 유지할 수 있는 정치적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 그러한 결과로 스스로 만들어진 지원 체계가 ‘현장’과 잘 호흡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진정성 외에 어떤 장치들이 필요한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패트리샤 아우프데하이드 토론 모습 (가운데)

 

 

세 번째, ‘다양성’, ‘민주주의가 어떻게 독립영화인들의 방패가 되며, 이것이 ITVS의 지원 체계에 실제로 어떻게 적용되는지에 관한 문제이다. 공영방송에 대한 투쟁 당시, 독립 다큐멘터리 진영이 역설한 주요 논거는 “현재의 공영방송이 복잡한 미국 현대 사회의 모습을 재현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곧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것이었다. 사회 현실에 기반하여 창작자의 주도로 만들어진 고밀도의 결과물인 ‘독립 다큐멘터리’는 이러한 측면에서 주목되고 기회를 얻을 가치가 있다. 이러한 논거는 법제에 반영되어 있는데, 이 덕분에, “ITVS를 공격하기 위해서는 의회에 가서 민주주의를 문제 삼아야 하게 되었다”고 발제자는 밝혔다. 다양성과 민주주의에 대한 기여도는 ITVS의 운영의 성과지표이며, 실제 ITVS의 지원 체계 등에도 반영되어 있다. ITVS는 펀딩 및 공동 제작 지원 시, 주제의 정함이 없는 ‘Open Call’과 함께 ‘Diversity Development Fund’와 같이 다양성 개발을 목적으로 하는 슬롯을 동일한 비중으로 보여주고 있다. ITVS 이사회는 다양성과 민주주의에 대한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는지 측정 지표를 통해 분기별로 보고받고 있다. ITVS의 지원작 리스트를 보면 이러한 노력이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발제자는 미국에서 1970년대~80년대에 벌어졌던 다양한 사회운동의 자장 속에서 독립영화인들의 투쟁이 있었고, 현재도 ITVS가 인종 정의와 미투 운동, 노동 운동에 활용되며 독립 제작자들이 보다 사회운동과 연계되도록 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런데 미국 사회 또한 최근의 퇴행으로 가장 기본적인 인프라인 도서관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조차 무너져가고 있다고 한다. 시민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가 낮고, 온라인과 극우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 백래시가 심화되고 있는 한국에서는 이러한 전략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ITVS 또한 가지고 있는 권한의 한계와 레거시 미디어로서의 한계 등 여러 고민을 마주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 날의 논의는 현재 한국에서 어떤 측면에 주목할 수 있을지를 중심으로 삼고자 했다. 이 날 발제에서 소개되지 못한 ITVS의 보다 자세한 정보가 궁금한 경우 기사 하단의 기사들을 통해 확인하기를 권하며, 위의 발제 요약 또한 아래 기사를 일부 참조하여 보완되었음을 밝힌다.

 

 

▲ 왼쪽부터 허은광, 고두현, 권순택 토론자 모습

 

 

발제 당일 3인의 토론자는 한국의 맥락에서 위 발제의 내용이 어떻게 다가오는지와 추가적으로 필요한 논의를 밝혀 주었다. 고두현 다큐멘터리 감독은 한국에서 독립영화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서두를 시작했는데, ‘미디어 활동가로서 스스로를 독립영화인으로 정의하든, 혹은 외주프로덕션의 다큐멘터리 제작자로서 그러하든 결국 외부의 권력으로부터 자유롭게 창작을 지속할 수 있는 경제적 조건을 확보하는 것이 독립을 유지하게 하는 쟁점이라 느낀다며 발제에서 이러한 지점을 중심으로 주목하게 되었음을 밝혔다. 관객을 만나는 통로로서 여전히 극장을 통한 배급과 공영방송이라는 통로가 의미 있었음을 느꼈던 자신의 경험, 그리고 다양성을 중점으로 한 ITVS의 지원 양식을 살펴본 경험을 언급하며 미국 사례에 대한 부러움을 밝혔으나, 이를 한국의 토양에 어떻게 적용해야할지에 대해서 여전히 고민으로 남아있음을 밝혔다.

 

 

▲ 고두현 다큐멘터리 감독 토론 모습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KBS <독립영화관> 폐지 반대 운동 등의 경험도 있지만, 한국 공영방송의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EBS <다큐프라임>의 박환성˙김광일 독립PD 사망과 관련한 투쟁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밝혔다. 방송사 측의 불공정 거래와 권력 행사로 인한 무리한 촬영 조건이 결국 두 PD를 사망으로 내몰았던 원인이었고 이는 방송 비정규직 투쟁의 주요한 문제의식으로 자리잡게 되었는데, 저작권, 송출료, 제작비, 심지어 계약서 미작성까지 기본적인 권리에 대한 투쟁을 지속하는 이러한 상황에서 독립영화와 지상파 공영방송의 결합에는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 짚어 주었다. 또한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특정 방송사 뿐 아니라 수신료 등 기반이 약화되는 상황 속에서 종편 도입과 OTT와의 경쟁으로 기반을 잃어가고 있는 공영방송의 위치 등 구조적인 측면에도 주목해야 함을 밝혔다.

 

 

▲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 토론 모습

 

 

허은광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사무국장은 한국의 독립 다큐멘터리가 정부 재원에 대한 의존도가 상당하며 이는 곧 정치적 변화에 독립 다큐멘터리 진영이 타격을 입는 현재 상황의 원인임을 밝혔다. 이러한 측면에서 현재 공적 지원을 담당하는 정부 기관들이 적절한 지원을 하고 있는지를 따져보는 것이 필요하며, 독립 다큐멘터리 제작의 재원을 기업 또는 민간 재단의 펀딩과 시민 중심의 크라우드 펀딩 등 다양화하는 것이 필요한데, 누가 어떻게 그러한 변화를 만들고 역할을 수행할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특히 한번 만들어진 지원 기관들이 지속적으로 관료화되는 현실인 만큼 어떻게 현장 중심의 판단을 하는 거버넌스를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했다.

 

 

▲ 허은광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사무국장 토론 모습

 

 

이어진 토론과 질의응답 또한 어떻게 이러한 논의들을 현실화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으며, 영진위의 다양성 지표가 위협받는 현실, 다양한 재원을 확보하는 것의 어려움과 이러한 재원이 곧 독립성을 위태롭게 하는 문제 등이 언급되었는데, 이에 대해 추가적인 토론을 나누거나 공동의 문제의식을 합의하지는 못하는 아쉬움을 남기고 포럼은 마무리되었다.

 

최근 미디액트는 독립미디어연구소와 함께 독립미디어세미나를 기획하여 독립 다큐멘터리 네트워크와 지원 체계를 시작으로 공부를 이어나가고 있다. 공부를 계속할수록 그래서 어떻게 현실에 개입할 수 있는지의 문제는 다소 멀고 어렵게 느껴지곤 한다. 현실의 다양한 주체들과 함께 만들어야 하는 변화이기에 실제로 무언가를 해내려는 시도는 이상과는 멀고 또 지지부진하게 느껴지리라 짐작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자신의 자리에서 꼭 필요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영화인들에게 연대의 마음을 보낸다. 미디액트 또한 고민하고 있는 많은 이들과 포럼 또는 세미나를 통해 지속적으로 만나고 함께 호흡할 수 있기를 바란다. 무거운 현실 너머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작은 실마리가 그러한 노력에서 시작되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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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이세린 

SNS 중독자. 인터넷 인간. 종종 혼자 벅차오른다. 마을공동체미디어에 참여하다가 2018년부터 미디액트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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