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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의 세월, 간절한 바람”을 이야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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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24. 4. 16.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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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원고는 인디&임팩트미디어뉴스레터에도 게재됩니다.


 

[ACT! 이슈와 현장 2024.04.16.]

 

“10년의 세월, 간절한 바람을 이야기하다.

- 다큐멘터리 <바람의 세월>(문종택, 김환태, 2024)

 

김환태(<바람의 세월> 공동연출)

 

세월호 가족들의 걸음에 함께 연대했던 우리들

 

202437일 밤, 대구의 어느 모텔.

전날 서울에서 사운드 작업의 마스터링을 마치고 대구로 내려와 대구영상미디어센터에서 최종 DI 작업 모니터링 후 DCP를 출력했다. 그리고 어느 모텔에서 종필 형에게 약속 지켰지라는 혼잣말을 되뇌였다, 그날, 작업기간 동안 쉽게 잠들지 못했던 날들이 무색하게 숙면을 취했다. 세월호 가족들의 10년의 걸음과 마음을 담은 다큐멘터리 <바람의 세월>을 마무리하고 내 안에 꾹꾹 담아 두었던 마음을 토해냈던 날이다.

 

20221014, 지성 아버님 - 문종택 감독을 만났다.

아버님은 세월호 10년의 기록을 중심으로 가족협의회(우리) 이야기를 하며, 광장에서 만났던 촛불시민에게 감사를 전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하셨다. 두 가지 고민이 중첩되었다. 다시 세월호를 들여다 봐야 하는 것, 여러 해전 세월호 현장에서 겪은 감정의 진통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다가올 시간에 대한 걱정이 생겼다. 더불어 그 여러 해전 안타깝게 세상을 등진 종필 형에게 다짐했던 마음의 빚이 떠올랐다. 고민 끝에 아버님과 각별하게 세월호를 기록했던 박종필 감독을 대신해, 세월호 가족의 10년을 정리하기로 했다. 그것이 내 마음속의 약속을 지키며, 미디어 활동으로서의 연대를 실천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아무런 걱정 없이, 계산 없이 환하게 웃을 수 있는 때가 다시 있을까세월호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안전사회 건설이라는 구호가 도돌이표처럼 맴돌지 않기를 바라는 이유는, 뜨거웠던 광장의 공기, 따스했던 광장의 기억과 바람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 <바람의 세월>(문종택, 김환태, 2024)

 

<바람의 세월>은 세월호 참사의 피해 당사자이신 지성아버님의 기록을 토대로 하고 있다. 50TB 분량의 촬영본 중 선별된 7TB 분량을 전달받아 프리뷰하고 주요 장면을 녹취했다. 2014년 참사 초기 자료가 부족해 재수집이 필요했는데 미디어몽구님 본인이 촬영한 4TB 분량의 영상을 아버님께 전달해 주었다. 그의 촬영본과 지금은 해산한 4.16연대미디어위원회 아카이브자료를 서치하며 이야기의 얼개를 짰다. 세월호 참사 직후의 쟁점은 특별법 제정, 특조위 구성과 파행, 시행령 폐기 운동 등이었다. 가족들은 법과 제도를 통해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안전사회건설을 요구했다. 하지만 국가와 정부는 가족들의 외침을 외면하고 모진 탄압으로 일관한다. 문종택 감독의 카메라는 가족들의 투쟁현장에 늘 같이 했고 우리 카메라로 존재했다. 그 우직한 기록은 2017년 이후 세월호가 지워지고 잊혀져 갈 때도 당사자로서 가족들 옆에 있었다. 그렇게 촬영된 영상에는 투쟁의 현장뿐 아니라 가족들 내부의 희노애락을 담은 장면 또한 많았다. 우리 주변의 이웃들, 일상을 살아가는 똑같은 존재들의 모습. 영화의 전체적인 구성을 고민하면서 가족들이 제도개선을 요구하며 투쟁하는 모습과 일상의 모습이 어떻게 조화를 이뤄야 할지는 큰 숙제였는데 결과적으로 세월호 가족들의 10년의 시간이라는 의미를 구축해야 했기에 가족들의 일상의 모습을 충분히 담는 것에는 부족함이 있었던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 <바람의 세월>(문종택, 김환태, 2024)

 

 

세월호 가족들의 10년의 시간을 정리할 때 영화적으로 공들였던 첫 번째 장면은, 오프닝 시퀀스의 아이들 등교 재연 장면과 201612월 박근혜 탄핵소추안 가결 장면의 연결이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시간속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아프지만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촬영되길 바랐고 그 마음으로 컷을 골랐다. 그리고 탄핵안 가결이후 가족들의 웃음, 참사 전의 웃음을 만난 그 순간의 기억은 문종택 감독의 강렬한 기억이며, 세월호 참사이후 처음이자 마지막 만난 기쁨과 성취의 순간이다. 이 두 장면을 연결시키고 무언가를 기대하고 바라는 촛불시민들의 눈빛으로 감정의 흐름을 이어지게 했다. ‘바람의 세월타이틀이 등장하며 오버랩되는 거친 바람소리는 세월속에 바람(Wish)이 상실될 것을 암시한다. 이 오프닝 씬은 영화 중반 꼭지점이라 할 수 있는 박근혜 탄핵가결 이후 가족들의 웃음이 사라져간 이유와 맞닿는다.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파면결정에 세월호 참사의 책임은 없었다. 이에 가족들은 마냥 기쁠 수 없었고 그렇게 세월호 가족들의 걸음은 차츰 지워져 간다.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촛불정부라 일컫는 문재인 정부에서였다. 많은 국민들은 세월호의 진상규명이 되겠지, 해결되겠지라고 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진실버스로 전국을 돌며 세월호 진상규명을 외치고, 영하 18도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가족들은 또 다시 노숙투쟁을 한다. 가슴 아픈 걸음이 계속되었다.

 

두 번째 영화적으로 공들였던 장면은 화면이 흔들리는 장면의 배치였다. 이는 문종택 감독의 강력한 의지였다. 다큐를 만들어 왔던 나에게 너무 자의적인 이미지의 표현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화면을 흔들리게 하자는 아버님의 말씀에 당혹감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영화의 포인트를 잘 짚은, 세월호 가족 당사자의 마음이 담긴 장면이 되었다. 배 멀미가 날 정도의 감정, 세월호 안에 타고 있는 것 같은 감정을 느낀다는 평가를 들으며 당사자만이 느낄 수 있는 그 참담한 시간의 감정, 여전히 우리는 세월호에 타고 있다는 메시지, 다음세대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질문까지 아버님의 마음을 담은 영화적 표현은 여러 가지로 꼽씹어 볼만한 지점이 있다.

 

세 번째로 공들였던 일은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세월호 가족분들의 마음이 온전히 전달될 수 있는 이야기의 방식과 톤을 잡는 것이었다. 모진 탄압의 시간 안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고조되어 있는 촬영본의 톤을 절제하면서 자극적이지 않게, 피해자성만을 부각하지 않도록 다듬는 노력을 했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모습을 넣지 않는 것, 가족분들이 극단적으로 우는 장면이나 사지가 끌려 나오는 장면 등은 넣지 않는 것 등 사건과 시간의 흐름을 따라 가면서 톤을 조절하는 것이 숙제였다. 그리고 가족 분들의 인터뷰는 일대일 방식이 아닌 그룹인터뷰를 택하였다. 우리 영화라는 기조에 맞춰 가족 분들이 모여 이야기함으로서 서로간의 감정이 교류하고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해 가면서 10년의 기억과 사건을 돌아보고 회상하는 방식이었다. 영상의 톤 앤 매너와 인터뷰가 정리되었고 마지막으로 가족분들이 왜 싸우는지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많은 설명이 필요했다. 이에 아버님의 내레이션으로 ‘10년을 회상하며 돌아보는 담담한 톤으로 많은 양의 정보를 담아냈다. 사실 담담히 말할 수 없는 그 시간을 그렇게 말한다는게 고통스러운 일인데, 감정적인 부분을 조절하며 끝까지 소화해 주신 아버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 <바람의 세월>(문종택, 김환태, 2024)

 

 

세월호 참사를 통해 확인한 ‘국가의 두 얼굴’

“국가는 구조에는 한없이 무능하다가도 책임 회피와 여론 조작에는 놀랄 만큼 유능했다.”

“책임자를 위한 보고는 많았지만 책임 있는 조치는 없었다.”

“무책임은 조직적이었고 책임 방기는 집단적이었다.”

“위로 대신 탄압하고 지원 대신 감시했다.”

 

20229,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종합보고서의 내용 중 국가의 두 얼굴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이것은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영화 말미 5.18 어머님들이 세월호 가족들을 위로하고 세월호 가족들은 이태원참사 가족들에게 힘내시라 응원한다. 피해자가 피해자를 위로하는게 반복되고 피해자들 스스로 본인들이 제대로 활동하지 못해 참사가 이어진다고 자책한다. 이는 국가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음을 반증한다. 처참하게 무너진 현실, 국가의 존재 이유에 대해 또 다시 생각하게 된다. 세월호 참사 이후 책임자를 위한 보고는 많았지만, 책임있는 조치는 없었고, 가족들을 위로하기는 커녕 탄압하고, 지원보다는 감시했다는 사실은 국가의 어두운 뒷모습, 추악한 민낯이다.

 

2024416일 즈음.

세월호 참사 10주기, 열 번째의 4월이 다시 찾아왔다. 누구는 1년에 한번인 416일이지만, 가족들에게는 3654번째의 416일을 맞이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고통스럽게 하루 하루를 견디며 진실을 찾기 위해 싸워 온 세월호 가족들에게 잊지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라고 함께 외쳤던 우리들이 여전히 연대하고 함께 행동하겠습니다라는 외치는 시간으로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마주했으면 한다. <바람의 세월>이 그런 우리를 위로하고 응원하며 더불어 세월호 가족들에게도 힘을 드릴 수 있는 영화로 잘 자라나길 기대하고 소망한다. □

 


글쓴이. 김환태

現 다큐이야기 감독 / 前 4.16연대 미디어위원회 4기 위원장. 반전(反戰), 평화, 소수자 인권 문제에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다큐멘터리 제작과 미디어활동을 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 금기에 도전>, <망각과 기억2 - 세월 오적>, <핵마피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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