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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88호 이슈와 현장] 예술적인, 보다 인간적인 - 카메라 어시스턴트 사라 존스 사망사고를 보며 떠오르는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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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4. 4. 3.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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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88호 이슈와 현장 2014.03.31] 


예술적인, 보다 인간적인

 - 카메라 어시스턴트 사라 존스 사망사고를 보며 떠오르는 생각들

 

신새벽(예비 예술노동자)

 

 

[편집자 주] 2014년 2월, 할리우드의 한 영화 촬영 현장에서 카메라 어시스턴트 한 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불과 한 달 전에 일어난 일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상식 밖의 환경에서 일하던 그녀의 이야기가 할리우드 리포터 지의 보도를 통해 전해졌고, 현지 영화계에서는 추도의 물결이 일었습니다. 이 글은 한국과 미국에서 공부하며 일해 온 한 예비 예술노동자가 남일 같지 않은 사라 존스의 안타까운 상황을 지켜보며 적은 글입니다.


 

1895, 시네마토그래프(Cinématographe)라는 카메라를 발명한 뤼미에르 형제는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La Sortie des Usines Lumière)>이라는 영화를 대중에게 선보인다. 이렇듯 영화의 역사는 연출된 모습일지언정 노동자의 모습을 담으며 시작되었다. 이렇게 출발한 영화 산업은 자본주의 하에서 눈부시게 발전했고, 이제 우리는 영화관까지 찾아가지 않고도 전 세계에서 만들어진 영화를 안방TV로 관람할 수 있게 되었다.

온종일 각종 매체들은 어떤 연예인이 어느 영화에 얼마를 받고 출연할 예정이며, 무슨 할리우드 영화의 촬영이 한국에서 이뤄질 거라는 등의 자잘한 기사가 수도 없이 쏟아낸다. 하지만 이런 화려한 영화산업의 그늘에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영화산업의 화려함과 위대함을 뽐내는 연예기사가 스크린을 도배하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서 영화를 만들어내는 노동자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 뤼미에르 형제,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 중 한 장면 (출처 : 네이버 지식사전)



지난 2, 미국 조지아 주의 기차선로 위에서 영화 <미드나잇 라이더(Midnight Rider)>의 촬영 현장에서 스태프 한 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사망한 여성은 27세의 카메라 어시스턴트 사라 존스(Sarah Jones). 사건 당시 촬영하던 장면은 등장인물이 철로 위에서 잠자며 꿈을 꾸고 있는 상황으로, 매트리스와 카메라 등 장비를 철로 위에 설치하고 작업이 진행되었다. 미국 노동 안전 위생국은 기차선로 위에서 촬영을 할 때에는 제작사가 반드시 지역 당국 및 철도청과 사전협의를 거치도록 정하고 있다. 하지만 사건 당일 촬영은 어떤 관리부서와의 협의도 없이 진행되었고, 스태프들은 기차가 보일 경우 대피할 시간은 60초 뿐이라는 경고를 받았을 뿐이었다. 경찰의 초기 수사 당시 진행 프로듀서는 촬영 허가를 받았냐는 질문에 복잡한 상황"이라고만 대답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사라 존스는 달려오는 기차를 보면서도 설치된 카메라 장비를 회수하다 그대로 치여 사망했다.

 

 

▲ 사라 존스와 그녀가 사망한 현장 (출처: The Hollywood Reporter)


할리우드 리포터(The Hollywood Reporter)지의 보도에 따르면 현재 지역과 주, 연방경찰이 합동 수사를 벌이고 있으며 사고의 결정적인 원인이 누구에게 있는가에 중점을 두고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사고의 책임을 져야 할 이들 모두가 변명에만 급급한 상황이다. 미국 감독 협회는 노동자의 안전이 고용주의 최대 의무라는 형식적인 성명을 발표했을 뿐이고, 해당 영화의 감독인 랜달 밀러(Randall Miller)는 사고 직후 전담 변호팀과 PR팀을 꾸렸다고 한다. 현장의 책임자이자 스태프들의 소속사 사장 닉 간트(Nick Gant) 역시 어떠한 절차도 거르지 않았다.”는 답변만 내놓고 있다. 간트는 존스의 죽음에 대해 비키니 왁스 시술을 받다가 죽은 여자의 죽음과 다를 바 없다는 발언을 개인 SNS에 게시했다가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곧바로 삭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이후 존스의 아버지는 웨스트 할리우드에서 열린 딸의 추도식에 참석했다. 그는 이것이 절대 끝이 아니다. 이 일은 보다 안전한 제작현장을 만들어가는 움직임의 시작일 뿐이다. ... ... 더 이상 이런 발언을 하는 아버지는 없어야 한다.”고 전했다.(* LA타임즈) 영화인들 사이에서는 그녀의 안타까운 죽음을 추모하며 촬영 현장에서 슬레이트에 명복을 빌어요, 사라 (RIP(Rest In Peace), Sarah)’라는 문구를 적어 작업하고, 인증샷을 SNS에 업로드하는 ‘Slates for Sarah (사라에게 바치는 슬레이트)’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 Slates for Sarah 페이스북 페이지(https://www.facebook.com/slatesforsarah)



한국의 영화 제작 현장도 할리우드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최고은씨의 자살 사건을 이후로 영화인들의 연이은 안타까운 소식이 계속되었다. 그로 인해 이른바 최고은법’(예술인 복지법)이 만들어졌지만, 혜택을 받기 위한 조건도 까다롭고 고용보험조차 보장되지 않아 당장 생계가 위험한 예술인들에게는 실효성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올해 2월에는 예술인을 대상으로 한 긴급복지지원제도가 만들어졌지만, 정작 대다수의 영화인들은 이런 제도가 생겼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다.

물론 제도와 더불어 영화제작자협회와 영화산업노동조합 등이 함께 영화산업표준근로계약서'를 만드는 움직임도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이 계약서를 시행하고 있는 현장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유일하게 알려진 경우는 최근 영화 관능의 법칙' 팀이 영화 제작 내내 4대 보험, 월급제, 추가근무수당, 4시간 작업마다 30분 휴식들의 표준근로계약서 내용을 이행하여 영화인들의 좋은 평가를 받은 사례다.

하지만 지난 9, 생활고와 우울증을 견디다 못한 배우 우봉식씨의 안타까운 자살 소식이 들려왔다. 고인은 다양한 작품을 통해 연기 생활을 이어왔지만, 생계를 유지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아 2년 넘게 심각한 우울증을 앓아왔다고 한다.

 


▲ 故우봉식(좌), 故최고은(우) (출처 : YTN)


 

이런 안타까운 일들을 지켜보며 영화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회의가 느껴진다. 인간 사회를 넉넉하고 너그럽게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할 예술의 한 장르인 영화가 이익만을 추구하는 상품으로 변질되었을 때, 그 제작 현장이, 그곳의 노동자가 창조와 예술로부터 얼마나 멀어지는지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또한 그 근본적 원인을 파헤치고 바로잡지 못하고 극단적인 비극을 계속 반복하고 있다.

 

사라 존스의 죽음과 최고은, 우봉식씨의 죽음은 동일한 시대에 각기 다른 장소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이 사건들은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더 이상 영화를 포함한 문화 예술이 인간보다 이윤 추구를 우선으로 하는 기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나아가 인간이 인간의 삶을 담는 문화예술은 그 제작에서 배포까지의 과정 모두가 온전히 인간적이어야 한다. 따라서 그 작품을 함께 만드는 모든 영화인들의 노동권과 생존권이 최우선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인간이 존중되는 제작과정이 담보되어야 그 예술의 진정성을 보여주고, 수용자에게도 진정한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관객 수나 흥행이라는 결과만을 보고 달려가는 현대 영화 산업의 세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영화의 시초가 그랬듯 인간을 위한, 인간의 삶을 담은 영화 산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이런 비극을 반복하지 않는 근본적인 대책이 될 것이다.

 


*참고자료 

- ‘Midnight Rider’ Accident: Who will be blamed for Sarah Jones’ Death?

http://www.hollywoodreporter.com/news/midnight-rider-accident-who-will-687468

 

-‘Midnight Rider’ crewmember recalls Sarah Jones’ final moments

http://abcnews.go.com/blogs/entertainment/2014/03/midnight-rider-crew-member-recalls-sarah-jones-final-moments/

 

- Multiple investigations are looking into the Sarah Jones ‘Midnight Rider’ death

http://www.thewire.com/entertainment/2014/03/multiple-investigations-are-looking-sarah-jones-midnight-rider-death/359062/

 

 

*1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49806&cid=342&categoryId=342

 

 

 




[필자소개] Dawn Shin


- 순수미술을 전공했지만 추상화만 그리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하고 싶은 것이 없는 게 아닌지 고민하고 있는, 홍대 지역에 자주 출몰하는 25세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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