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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려난 것들에 대해서 - 영화 <개의 역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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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21. 4. 2.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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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본 리뷰는 퍼플레이와 미디액트가 진행한 온라인 워크샵 <자기만의 글 - 페미니즘 영화 비평 쓰기> 1, 2차 강좌 (주강사 : 김소희, 정지혜)의 수강생이 작성한 비평 수료작입니다. 교육 수료작으로서 수정없이 게재합니다.
* 총 8편의 비평 수료작은 매주 2편씩 4주에 걸쳐 여성영화 온라인 매거진 퍼줌(PURZOOM)과 진보적 미디어운동 연구 저널 ACT!에 공동 게재됩니다.

 

[미디액트X퍼플레이 '페미니즘 영화비평' 수료작]

 

 

밀려난 것들에 대해서

<개의 역사> 리뷰

 

홍지혜

 

 

  백구는 죽었다. 그러나 살아있다. 물리적으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영화 끝에 우리는 마음 속에 백구를 슬며시 품게 된다. 사람들의 무심함과 혀 차는 소리를 피해 이리저리 옮겨 다니던 그 개는 슈퍼 아저씨의 눈에 띄어 어느 옥상 모퉁이에 자리 잡는다. 보통의 시민들은 그저 다리를 절뚝거리는 불쌍한 개정도로 생각하며 지나치지만, 감독은 그저 그 개를 응시하고, 카메라 프레임 안에 담는다.

 

▲ <개의 역사> (2017, 김보람) 스틸컷

 

  뒤이어 혼재되는 감독 김보람의 이야기를 통해 백구는 그저 개이고 우리는 사람,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시선에서 벗어나게 된다. 김보람 감독은 여러 번 이사하며 자신만의 온전한 둥지를 틀기 어렵고, 새로 들어선 곳에서는 주민이 아니란 이유로 동네 할머니와의 대화조차 거부당한다. 이는 백구의 모습과 닮아있는 듯하다.

이렇게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서 밀려난 존재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밀려남이라는 것은 주류로 작용하는 일반적인 기준에서 동떨어진 것에게 붙일 수 있는 말이다. 김보람과 백구. 이 둘이 상통하는 흐름은 마치 우리에게까지 전해진다. 단지 이 둘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말하고자 한다. 우리 또한 어떠한 기준에서 밀려나 자꾸만 모퉁이로 향해야하는 순간들이 있었으리라, 싶다.

 

  또 비중있게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김보람 감독과 이웃인 것으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다. 그는 한때 에스테틱 전문가로 활동하며 활개 치던 과거를 회상하다가도, 현재의 무력함을 깨닫고는 절망한다. 심지어 자신이 사는 이 집에서 죽을 것 같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김보람은 딱 거기까지의 모습이 아닌, 전신 성형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해주는 방송 프로그램에 지원하는 그의 모습을 비춘다. 비록 낙방하더라도, 그럴 줄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의 모습과 늙은이가 열정 하나로 해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게 웃긴다는 본인을 향한 해학적인 말들까지 모두 담아낸다.

자신은 몇 번의 이사 끝에 돌고 돌아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고, 이리저리 맴돌던 백구가 결국 세상을 떠나 하늘에 둥지를 튼 것까지. 김보람은, 밀려났지만 결국은 밀려난 것이 아닌 자신의 자리를 찾은 모습들을 담아낸다. 이 영화의 전반적으로 그녀의 섬세한 결이 엿보인다.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밀려난 이도 있다. 캐나다로 떠난, 김보람의 친구이다. 자신이 스스로 떠난 동네를 친구 김보람이 당시 모습에 대해 캐묻자, ‘네가 물으니 그제야 기억을 헤집게 된다라며 애써 상기시키고는 대답해준다. 그는 추억을 회상하며 떠나온 한국에 대한 아쉬움 내지 아련함을 그득하게 담아낸다. ‘엄마 아빠가 사진 찍어도 나는 없잖아. 그게 아쉬운 거지. 한국이 아쉬운 게 아니라.’라는 말에서는 캐나다에 살게 되었으니 한국이라는 공간 자체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함께 살아가던 가족, 친구, 추억에 대한 아쉬움이 느껴진다. 김보람 감독은 그 친구와의 소통을 통해 자발적으로 밀려나기를 원한 이까지도 비춘다. 이렇듯, 우리는 이 영화로 밀려남에 대해 생각해본다. 밀려난다는 것, 다소 수동적인 단어라 부정적으로 비치기 일쑤이지만, 우리는 밀려난 것의 설움뿐만이 아니라 밀려나고 난 이후의 삶. 그것을 극복해낸 모든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개, 친구, 이웃 등과 같이 밀려난 것들을 비춤과 동시에, 자전적 이야기도 함께 풀어낸 감독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카메라를 들어 백구를 프레임 안에 담으면서, 자신의 가감 없는 일상도 함께 병치한다. 처음엔 감독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에 대해 이질감을 느꼈다. <개의 역사>라는 제목과 상반되게, 자신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는 듯해 보였다. 허나 제목이 <개의 역사>라 하여 단지 백구만을 담은 영화는 아니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김보람의 아버지는 가족이 살 집을 마련하느라 집을 떠나 있는 날이 많았다. 그가 한국에서 밀려나 타지생활을 할 때도 어머니를 향한 마음을 종종 편지에 담아 전달했더랬다. 감독은 이후 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해 바뀌어버린 관계성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그때의 편지는 남아있지만, 그 마음은 남아있지 않다고 말이다.

 

▲ <개의 역사> (2017, 김보람) 스틸컷

 

  김보람은 말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늘 마음속에서만 맴돌았다. 그가 영화로 목소리를 낸 순간, 이 영화는 거창한 의미의 역사가 쓰이고 있기보다는 그저 우리 주변으로 밀려난 것들의 사소한 일상을 비추고 이것이 비로소 역사로 조망되고 있었다.

 

  아버지가 싱가폴, 베트남, 모로코로 한국에서 밀려나 타지생활을 할 때 김보람의 가족은 각자의 방식으로 외로움을 극복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집에서 나와 혼자 살고, 이사를 다니다 삶을 사랑하는 법을 찾고 싶어졌다고 고백한다. 빨래를 널면 항상 비가 오더라도, 그 비를 기꺼이 맞아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 싶었다고 말이다.

 

  새해가 되어 폭죽이 터지는 장면과 함께 백구는 내 이야기 속에서 사라지는 대상이었다라는 내레이션이 함께 깔린다. 우리는 쫓겨나고 밀려나는 것들에 얼만큼이나 눈길을 돌리고 있었는가. ‘백구라는 떠돌이 개를 찍어보려는 시도에서부터, 사라져버린 것 그리고 그리운 것들까지 둘러볼 수 있는 눈을 감독은 이 영화 전반적으로 담아낸다.

 

  묻히기 전의 죽은 백구가 가감 없이 드러나고, 슈퍼 아저씨의 큰 한숨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흙먼지가 폴폴 날리며 무덤이 만들어지고, 그저 감독은 저 멀리서 곡괭이질인 아저씨를 관전한다. 그렇게 백구를 묻고 온 날, 아저씨는 김보람에게 생각하기 보다 잊음이 중요함을 갖겠습니다라는 메시지를 한 통을 보낸다. 감독은 결국 백구의 역사를 알아내는 데 실패했지만 백구는 죽지 않고 다시 살아 돌아왔다. 마지막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또 다른 백구를 등장시킴으로써 우리는 과거의 백구를 동시에 떠올리게 된다. 백구는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있었다. 처음 마주했던 떠돌이 백구는 관객의 안쓰러움을 샀다면, 엔딩에서의 백구는 그저 주변부에 맴도는 존재가 아닌 독립체로 거듭난다.

 

  백구를 품어준 슈퍼 아저씨가 한 말이 있다. 김보람 감독이 선생님에게 개는 어떤...?’ 이라고 묻자 개는 개, 나는 나지 뭐.’라고 답한다. 어찌 보면 그는 주인에게 밀려난 존재인 백구를 품어준 사람인 셈인데, 그 개를 연민의 시선으로 보기보다는 그저 등을 쓸어주고, 하나의 독립체로 존중해준다. 나는 부끄럽게도 맨 첫 장면에서 보았던 백구와 마지막으로 껑충대는 지하철의 백구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랐다. 슈퍼 아저씨처럼 처음부터 개는 개 나는 나라는 마인드로 백구를 바라보았는지 묻는다면 그렇다고 쉽사리 답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밀려난 것들을 다시 바라보는 눈을 가졌다는 것. 그리고 이따금 백구를 떠올릴 것만 같다는 것만으로도 김보람 감독은 <개의 역사>를 성공적으로 만들었다는 방증이 아닐까. 백구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백구는 죽었다. 그러나 살아있다.

 

 


글쓴이. 홍지혜

- [자기만의 글 - 페미니즘 영화 비평 쓰기] 수강생

- 제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는, 여성 영화인 홍지혜입니다. 아주 작은 극영화 제작에 참여했다가 이 수업을 통해 많은 다큐를 접하고, 자연스럽게 저와 세상을 향해 카메라를 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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