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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은 영화의 미래다 - 최초이자 최후의 예술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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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20. 8. 3.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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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과 영화의 가장 큰 차이는 몰입감이다. 영화관에서 나오며 며칠 동안 감동이 이어지는 경우는 있지만 게임처럼 이야기에 빠져 현실을 잊을 정도로 살아가는 사람은 보기 힘들다. 이유가 무엇일까."

[ACT! 121호 액티피디아 2020.8.14.]

 

액티피디아 3

 

게임은 영화의 미래다

(최초이자 최후의 예술 '게임')

주일(창작자)

 

2019년에 출시된 오픈 월드 게임 '데스 스트랜딩'. 줄거리를 요약하면 어딘가로 짐을 가져가야 하는 택배기사의 수난기라고 할 수 있다. 

1. 오픈 월드 게임 Open world game

기존 게임과 다르게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조작을 하거나 공간 제약 없이 어디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말그대로 ‘열린’ 게임을 부르는 장르.

  기존 게임의 주인공들은 개발자가 설계하고 직접 그려넣은 공간에서만 정해진 시나리오대로만 활동할 수 있었다. 요즘 나오는 이른바 ‘오픈 월드 게임’의 주인공들은 실제 세계의 우리가 그러하듯, 아주 넓거나 무한한 공간을 활보하고, 사전에 설정된 시나리오를 벗어나 하고 싶은 일(심지어 범죄와 섹스까지)을 하고 ‘살아갈 수’도 있다. 극단적인 현실성을 추구하는 게임에서는 오프라인 세상과 동일한 시간이 흐르기 때문에 우리가 일상에서 걸어서 움직일 수 있는만큼만 움직이기도 하고, 우주 배경 게임인 ‘No man’s Sky’에서는 2^64 (약 154경)개의 항성을 만날 수도 있다(일부 무작위 변형이긴 해도 매번 다른 환경의 별과 생명체를 만난다는 설정). 뻔한 패턴에 질린 게이머들에게 오픈 월드 게임은 또다른 ‘오프라인’ 삶의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1994년작 '윙 커맨더 3'의 게임 속 영상. 스타워즈 주인공을 맡았던 마크 해밀이 출연했다.

2. 인게임(컷신) 영상 In game video, Cut-scene 

게임 스토리가 진행되는 도중에 나오는 영상. 

  보통 컴퓨터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지만 1990년부터는 유명 배우들이 출연한 실사 영상이 도입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유저가 조작할 수 있는 범위 내의 게임 속 영상을 캡처/편집하여 만드는 ‘인 게임’ 방식의 영상이 대세가 되고 있는데, 별도로 작업한 애니메이션만큼의 완성도를 지니고 있진 않지만, 게임 영상의 품질이 애니메이션이나 실사 영화 못지 않다는 기술력을 과시할 수 있어 유명 제작사 중심으로 속속 도입하고 있는 추세다. 인 게임 영상의 품질을 확인하고 싶으면 유튜브에서 ‘인 게임 트레일러’나 ‘game play trailer’를 검색하면 된다.   

오픈월드 게임 'GTA5'의 게임 속 영상을 짜깁기 해서 만든 머시니마. (출처 : 유튜브 DMVE Studios)

3. 머시니마 Machinima

게임 속 캐릭터를 조작하여 원하는 이야기대로 연기를 시키고, 그렇게 만든 영상을 소스 삼아 제작한 동영상 장르. 

  단순하게는 게임 속 상황과 상관 없는 목소리를 더빙해서 만들지만 게임 속 자유도가 높은 게임일수록 실사 영화에서 감독이 배우에게 연기를 요청하듯 캐릭터를 시나리오에 맞게 직접 조작해서 원하는 영상을 얻어낼 수 있다. 영화 같은 멋진 영상을 직접 만들어 보겠다는 수요 때문에 ‘HALO’를 비롯한 액션게임이 주로 제작 도구로 사용되긴 하지만 ‘Sims’나 ‘Second Life’ 같은 자유도 높은 프로그램도 일상적인 드라마부터 엽기적인 개그물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어 많은 이들에게 애용되고 있다. 

 

수많은 게임 엔진들. 게임 제작자들은 자기가 만들 게임에 어울리는 게임 엔진을 고르기만 하면 된다. 심지어는 영상 프로덕션에서도 게임 엔진을 사용하고 있다.

4. 게임 엔진 Game engine

게임 속 움직임과 시각화를 담당하는 프로그램 속 프로그램. 처리하는 작업에 따라 현실적인 움직임을 구현해주는 물리 엔진과 사실적인 영상을 즉석에서 그려주는 렌더링 엔진 등이 있다.

  도트 그래픽 게임 시절부터 게임 속 모든 에셋(배경, 캐릭터, 소품, 소리 등)은 개발자가 직접 만들어야 했다. 게임을 돌릴 장치(컴퓨터)와 네트워크의 성능이 뛰어나지 않아서 온갖 기술과 기법(과 잔머리)을 동원해 있어 보이기 위해 발버둥쳤다.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1바이트라도 더 줄이려고 새로운 압축 기법을 동원했고, 방송국 세트장처럼 눈에 보이는 곳만 신경써서 시각화했기 때문에 가끔 버그가 발생하면 끔찍함과 우스꽝스러움이 공존하는 무대 뒷모습이 드러나기도 했다.

  21세기 들어 CPU와 GPU의 연산능력이 늘어나면서 게임 제작자들은 자신들이 모든 것을 제작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특히 유니티 UNITY나 언리얼 UNREAL처럼 개방된 게임엔진이 보급되며 저예산으로도 대자본 게임에 못지 않은 화려한 그래픽과 현실적인 물리 기반 모델링/렌더링이 가능해져 아이디어만 좋으면 1인 게임 제작자라도 앱스토어 차트에서 상위에 오를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다.    

  

후면 스크린 속 영상은 카메라의 위치와 화각에 맞춰 실시간으로 생성된다. 요즘 <스타워즈> 시리즈도 이렇게 촬영된다. (출처 : Unreal Engine)

5. 버추얼 프로덕션 Virtual Production

모든 걸 사전에 계획한대로 그려야 하는 기존 컴퓨터 그래픽 제작 방식과 다르게 영화 속 공간, 경우에 따라서는 인물을 포함한 모든 시각적 요소를 그려놓은 세계 속에 카메라를 들이대서 실시간으로 원하는 그림을 찾아가는 제작 방식.

  과거에는 대규모 블럭버스터 영화를 제작할 때나 썼을 컴퓨터 그래픽(CGI)이나 시각효과 합성은 이제 저예산 영화에서도 흔히 볼 수 있을 정도로 대중화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실감나는 영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더 좋은 컴퓨터와 소프트웨어를 써야 하고, 더 실력 있는 그래픽 전문가가 참여해야 한다. 문제는 그렇게 그려낸 영상을 수정하려면 여전히 수많은 시간과 자원이 소모된다는 점이다. 카메라와 피사체, 배경의 위치를 바꾸면 그때마다 매번 새로운 그림을 그려야 하기 때문이다.

  게임 엔진의 성능이 향상되면서,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래픽 연산 장치(GPU)의 성능이 좋아지면서 고해상도의 그래픽을 거의 실시간으로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최근 공개된 언리얼 게임 엔진 홍보영상이나 디즈니의 스타워즈 드라마인 <만달로리언> 제작 영상을 보면 배우들이 더이상 그린 스크린 앞에서 연기하지 않는다. 배우를 찍는 카메라가 움직이면 배경에 있던 스크린 속 그림이 실시간으로 바뀐다. 그래픽 자체가 변하기도 하지만 색온도나 노출, 초점 등이 현장에 있는 카메라나 조명과 연동되어 즉각 바뀌기 때문에 최종 결과물에 담길 내용 그대로 연기하고 촬영할 수 있다. 고전 헐리우드 영화에서 쓰이던 후면 투사 기법(rear projection)이 첨단 기술을 만나 몇 단계 업그레이드되니 시간과 비용을 절감해줄 구세주가 된 것이다.

  그린 스크린 앞에서 연기하며 자괴감을 느낀 간달프옹은 더이상 씁쓸함을 느끼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구걸에 게이미피케이션을 도입한 홈리스.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자존심을 이용한 이 사람의 시도는 성공할 것인가

6. 몰입 FLOW

주변에 대한 관심을 차단한 채 모든 정신을 한 곳에 집중하는 상태.

  게임에 빠져서 식음을 전폐하고 일상과 등진 사례는 많다. 영화에 빠져 중독 증세를 보이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영화 중독이란 단어나 영화 중독을 병명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움직임도 본 적은 없다. 게임과 영화의 가장 큰 차이는 몰입감이다. 영화관에서 나오며 며칠 동안 감동이 이어지는 경우는 있지만 게임처럼 이야기에 빠져 현실을 잊을 정도로 살아가는 사람은 보기 힘들다. 이유가 무엇일까.

  첫째로 현실성이다. 게임 속 그래픽의 수준은 점점 현실과 유사해지고 있다. 비행기 조종 시뮬레이션 게임인 ‘Flight Simulator’의 최신 게임 영상을 보면 실사와 구분이 어렵다. 앞으로도 한없이 현실에 가까워질 것이다. 단순히 현실을 복제하는 것을 넘어 현실감 넘치는 게임 속 이세계(異世界)가 무한히 늘어난다면? 게임과 영화의 구분이 무의미한 것을 넘어 게임이란 다른 세상으로 입국하는 사람들을 막을 방도가 있을까?

  둘째로 자유도다. 시나리오 작가나 감독의 의도대로 이야기를 즐기는 것은 충분히 재미있는 체험이지만 관객의 개입 여지가 없다는 건 온통 하이퍼 텍스트로 도배된 21세기에는 큰 단점으로 다가온다. 게임에서는 유저가 직접 캐릭터를 조작해서 이야기를 따라가고, 오픈 월드 게임에 이르러서는 현실 세계와 유사한 혹은 정반대의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도 있다. 인터랙티브 무비 속 소수의 선택지로는 무한한 가능성을 선사하는 게임을 이길 수가 없다. 설사 이야기 끝에서 죽음을 맞이해도 동전만 다시 넣으면 부활할 수 있는 게임의 능동성을 영화가 능가할 수 있을까?

  셋째로 놀이란 형식이다. 예로부터 인류는 놀이란 형태로 지식과 문화를 전승했다. 얼핏 보기에는 아무 목적 없이 유희를 즐기는 것 같지만 동물들의 샤냥 훈련에서 볼 수 있듯 어린 세대들의 놀이 안에는 미래에 성체가 되면 해야 할 일들이 미니어처처럼 반영되어 있다. 또 그 과정에서 생존에 필요한 경쟁심까지 생기니 생명의 존속이란 절대 가치에서 바라본다면 문학, 음악, 미술, 영화 등과 같은 여러 예술 장르 중 가장 생활밀착형 예술 형식이기도 하다. 오프라인 놀이냐 온라인 게임이냐의 구분도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 우리 일상의 많은 행위들이 온라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대니까. 결국 이런 흐름을 따라잡고 더욱 효과적인 사회 변화를 위해 곳곳에서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을 도입하고 있는데 이는 놀이를 즐기는 인류 유전자의 특성을 뒤늦게 이해한 결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가 꼭 게임을 ‘이겨야’ 할 필요는 없다. 예술이나 창작 활동이 경쟁이나 전쟁은 아니니까. 하지만 영화나 방송 같은 전통적인 매체들이 언제까지 게임에 길들여진 신세대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착각하는 순간 사람들은 멀어질 것이고, 결국에는 소수의 마니아만 즐기는 ‘탑골공원’용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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