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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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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424일 오후 7시 서울 종로구 인디스페이스에서 이강길 감독 추모식이 열렸습니다. 현장에서 추모사를 해주신 분들 중, 두 분의 허락을 얻어 추모사를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ACT! 이강길을 기억하며 2020.4.24.]

많이 그립습니다.

지성희 

  강길이 친구로서 추모식을 준비하신 가족 분들과 강길의 독립영화 동지들께 고맙습니다. 더불어 별 도움을 못 드려 미안합니다. 강길이를 아꼈던 분들이 많고 그들 중에는 유명한 사람들도 꽤 있을 텐데 아무것도 아닌 제가 추모사를 하는 게 지금도 부담스럽습니다. 먼저 가버린 친구에게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그저 보고 싶을 뿐입니다.

  작년 10월인가 11월인가 강길이가 전화로 우울증이 있다고 했어요. 다큐를 만드는 일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웠던 것 같아요. 결국은 이 고통이 죽음에 이르게 한 것 같아서 <설악, 산양의 땅 사람들>을 보는 일이 강길이 살아 있을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힘듭니다.

  작년 12월 말 카톡에서 미안하다 궁상떠는 친구라서... 작품으로 보답해야 하는데 장수는 늙고 칼날은 무디다.”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너 여자친구 없어서 그러는 거지?”했더니 날카롭다. 소개팅 준비 만땅. 언제든지 준비 완료”. 이게 강길이와의 톡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리고 1월 중순경 전화로 저희 아버지께 드릴 뼈다귀를 싸게 구입해 주겠다며 빨리 확답을 달라고 재촉했어요. 명절 지나서 이야기 하자고 했는데 그깟 뼈다귀가 뭐라고 나를 재촉하고 그렇게 가버린 겁니다.

  강길이 사라진 지 4개월이 되었네요.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는 눈물에 당혹스러웠던 날들이었습니다. 죽음을 처음 대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플까 자주 생각합니다. 살아 있을 때보다 더 자주 강길이를 생각합니다.

  강길이는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 활동 현장에서 한 동안 딴 사람 같았어요. 무섭게 인상 쓰고 다니고 무척 냉소적이었어요. 화를 자주 냈었죠. 어쩌면 부안과 새만금 투쟁의 경험이 더 그를 그렇게 만든 것 같았어요. 기자회견만 많이 한다고 비판했어요. 말만하는 방식이라 생각한 거죠. 저도 강길이에게 자주 화를 내곤 했고요. 그냥 촬영하면 되지 왜 니가 짜증내고 오버하냐고. 그런데 사실은 강길에게 화를 내면서도 미안했습니다. 강길이 만큼 간절하지 않았고 고통스럽지 않았거든요.

  <설악, 산양의 땅 사람들>은 이런 아픈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겁니다.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설악산을 오르내리는 일은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아니었죠.

  죽으면 끝인데 다시 만나자느니 잊지 않겠다느니 하는 약속은 하지 않을 겁니다. 강길이 뜻 이어받아 열심히 뭘 하겠다는 약속도 못합니다. 강길이 덕분에 삶은 더 무서워졌고 죽음은 더 생생해졌습니다. 애 쓰지 않고 살기로 했습니다. 강길이는 이런 나를 보고 어휴, 잘났다!” 할 겁니다.

  오늘처럼 뜨거운 햇살에, 흘러가는 구름에, 스치는 바람결에, 그리고 49제날 우리 집 베란다에서 이례적으로 오래 머무르며 서성이던 비둘기에, 강길이가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지성희답지 않다고, 너 왜 그러냐고 강길이는 비웃겠지만, 살아 있으니 이런 날이 오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되네요.

  자신이 찍은 영상을 홀로 추스르며 보냈던 시간들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제야 헤아려 보게 됩니다. 제게 그러더군요. 영상 편집하는데 제가 하도 떠들어서 목소리 지우느라 애먹었다고.

  많이 그립습니다. 늘 카메라를 들고 그 자리에 있었던 이강길 감독이 너무 보고 싶습니다.


글쓴이. 지성희

-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활동가, <설악, 산양의 땅 사람들> 출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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