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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12호 미디어 인터내셔널] 평화를 위한 목소리, 케냐와 말라위의 공동체 라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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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8. 12. 5.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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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12호 미디어 인터내셔널 2018.12.14.]


평화를 위한 목소리,

케냐와 말라위의 공동체 라디오 


박채은(미디어 활동가)



  아프리카는 우리에게 여전히 낯설고 먼 나라다. 더욱이 아프리카의 공동체 미디어에 대해서는 더 알려진 바가 없다. 공동체 미디어의 역사가 오래된 유럽과 북미와는 달리, 아프리카는 최근에 와서야 공동체 라디오 등 커뮤니티 미디어 활동이 시작되고 있는 지역이다. 반복되는 내전과 부족 갈등, 빈곤, 높은 영아사망률 등 식민지배의 유산과 저발전으로 인한 삶의 위기도 여전하다. 2007년 대선 이후 부족 간 유혈충돌의 고통을 겪은 케냐와 세계 최빈국 말라위의 공동체 미디어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다른 어떤 곳보다도 공동체 미디어가 절실한 아프리카 사람들의 평화를 위한 목소리를 전한다.



1. 평화를 전파하라! 케냐 공동체라디오 코치FM


1) 2007년 대선 폭력사태와 공동체라디오


2007년 12월 27일 대선이 끝난 후, 케냐는 부족 간 유혈충돌로 1,100여명이 사망하고, 66만 명 이상의 주민들이 유혈사태를 피해 피난을 떠났다. 폭력사태는 2008년 3월에서야 코피 아난 UN 사무총장까지 나선 중재로 끝이 났다. 유혈충돌을 부채질한 것은 언론들의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 혐오 발언)와 폭력 선동이었다. 


▲ 2007년 대선 이후 부족간 충돌 당시, 키쿠유 부족들이 

루오 부족 소유의 재산을 불태우고 있다. (사진 출처: 로이터) 

http://blogs.reuters.com/world-wrap/2012/02/15/has-kenya-learned-from-the-20072008-post-election-violence/



  1963년 뒤늦게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케냐는 오랜 독재시기를 거쳐 1991년 다당제가 시작되었다. 정치인들은 부족주의(tribalism)를 선거 국면에 활용해 부족들을 줄 세우기 시켰다. 정치적 폭력은 잠재된 부족주의와 더불어 일상이 되었고, 특히 선거 시기는 더 심각했다. 많은 정치인들은 청년들의 열악한 상황을 이용해, 선거기간에 청년들에게 ‘더러운 일’을 하게 했다. 도시에서 청년 실업률은 높았고, 학교 졸업 후 직업을 구하기까지 5년이 넘게 걸렸다. 선거캠페인 기간 동안 청년들은 당 슬로건을 걸고 춤을 추거나 노래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 반대세력을 협박하기 위한 폭력 사태에 동원되었다.


  2007년 대선 후 폭력사태가 가장 심각하게 발생한 지역은 수도 나이로비의 슬럼가였다. 나이로비 인구의 60~70%가 슬럼 지역에 살고 있는데, 이들 슬럼가는 당시 폭력사태의 영향을 심각하게 받았고, 부족주의 선동으로 인하여 주민들은 출신 부족으로 갈라졌다. 위기 국면에서 갱단 등 범죄조직은 상황을 이용해 약탈, 강간했고, 유혈충돌은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당파적 이해를 대변하는 다수의 언론들이 소요사태에 편승해 부족주의를 선동하고 부족간 갈등을 촉발시킨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러나 폭력이 일어나는 현장 한 복판에서 평화를 외친 미디어가 있었다.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 코치FM (Koch FM)이다.


▲ 나이로비 슬럼가 코로고초의 모습. 

컨테이너 집들 사이에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 코치FM이 있다. (사진 출처: BBC)

http://www.bbc.co.uk/blogs/bbcmediaaction/entries/ee9abec6-6646-4f86-8039-4c41add93893



  코치FM은 2006년 나이로비의 네 번째로 큰 슬럼가인 주민 15만 명의 코로고초(Korogocho) 지역에서 방송을 시작했다. 지역 청년 프로젝트로 시작된 이 방송국은 컨테이너 스튜디오와 가정용 송신기로 ‘비어있는’ 주파수를 이용해 허가 받지 않는 방송을 시작했다. 동아프리카에서 운영되는 최초의 슬럼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이라고 TV에 보도가 되자, 케냐 정보커뮤니케이션부 장관이 방문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불법이라는 이유로 코치FM은 문을 닫아야만 했다. 코치FM은 허가를 받기 위해 당국과 6개월 동안 투쟁했다. 이러한 투쟁은 다른 슬럼 지역에서도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을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고, 2007년 파모자FM(Pamoja FM)과 게토FM(Ghetto FM)이 설립되었다. 코치FM은 슬럼지역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맞서고, 공동체 대화의 장을 촉진시킴으로써 공동체 발전을 도모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에듀테인먼트’(Edutainment, 교육+오락 합성어)를 표방하며, 인권, 보건, 환경 이슈 등에 대해 공동체들을 교육하는 것뿐만 아니라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을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다민족으로 구성된 슬럼지역의 특성상, 공동체 라디오는 2007년 대선 유혈사태의 한복판에서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상황과 마주하였다.


▲ 코로고초 슬럼가에 위치한 코치FM. 

“에듀테인먼트”라는 슬로건이 스튜디오 외벽에 걸려있다. (사진 출처: IWPR)

https://iwpr.net/global-voices/iwpr-radio-debate-addresses-sexual-violence-nairobi-slum



  “우리는 평화를 얘기하는 마을 주민들의 목소리를 담아서 씨엠송을 만들었어요. 우리는 그동안 여러 민족, 부족들이 조화롭게 살아왔죠. 그런데 왜 우리는 지금 싸우고 있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싶었어요.” - 케네디 (코치FM 스탭)


  2007년 유혈사태 당시 나이로비 슬럼가에서 키쿠유족과 루오족 두 커뮤니티가 충돌했다. 이들은 서로 다른 대통령 후보를 지지했다. 개표 결과, 키쿠유족 출신의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부족 간 충돌로 슬럼가는 무법천지가 되었다. 당시 방송을 시작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던 코치FM은 부족 간 폭력을 진정시키고, 적대적 감정을 지닌 두 커뮤니티가 직접 만나서 대화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하였다. 라디오 활동가들은 싸우는 이들과 맞서기 보다는 그들의 동기에 질문을 던졌다. 평화의 메시지를 담기 위해 평범한 공동체 주민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부족주의’가 아닌 ‘평화’라는 공통의 선을 위한 프로그래밍을 통해 슬럼가 주민들에게 키쿠유족과 루오족 커뮤니티가 다시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코치 FM은 혼돈의 시기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뿐만 아니라 폭력의 희생자들을 돕기 위한 일에도 나섰다.


“우리는 주민들에게 이야기 했어요. ‘피난민들이 음식과 옷이 필요하다. 피난민들을 돕기 원하는 사람들은 무엇이든 방송국으로 보내 달라’고요. 공동체는 정말로 응답했어요. 방송국 입구가 음식과 옷들로 가득 찼지요.” - 벤 (코치FM 진행자)


약탈과 방화로 집을 잃은 마을 사람들을 위해 부족으로 갈라졌던 공동체가 작은 행동에 참여하였다. 코치FM은 이러한 공동행동을 조직함으로써 공동체의 연대감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부족 간 긴장이 여전하고, 폭력으로 인한 상흔이 코로고초 슬럼가를 가득 채우고 있었지만, 공동체를 복구하고 희생자들을 도울 수 있는 것은 공동체라는 사실을 코치FM 활동가들은 부단히 알리려 하였다. 이 과정에서 공동체 라디오는 ‘화해를 위한 도구’가 되었다. 



2) 2013년, 케냐 공동체라디오의 평화 만들기


▲ 2013년 선거를 앞둔 시점, 

Solo 7 이라고 알려진 예술가 솔로몬 무윤도(Solomon Muyundo)의 

2007년 폭력사태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평화 메시지. 

(사진 출처 : 토론토 스타)

https://www.thestar.com/news/world/2013/03/03/kenyas_largest_slum_fears_repeat_of_2007_election_violence.html

 


  2013년 선거가 다가오자, 폭력에 대한 공포가 다시 케냐를 엄습했다. 토지와 부에 대한 불평등한 분배, 부패와 부족주의와 같은 내재적 문제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못했다. 코치FM은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폭력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공동체 미디어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공동체 라디오 활동가들은 저널리즘에 대한 공식 교육을 받은 전문가들은 아니었지만, 공동체를 위해 복무한다는 방송국의 목표에 따라 열정적으로 움직였다.


  평화 만들기를 위한 코치FM의 전략은 2013년에는 보다 구체화되었다. 우선, 폭력과 긴장을 야기시키는 헤이트 스피치(혐오발언)와 루머, 가짜뉴스를 차단하는 것이었다. 2007년의 폭력사태가 언론의 혐오발언과 선동 때문이라는 것을 경험한 코치FM 활동가들은 마을 주민들에게 헤이트 스피치의 위험성과 불법성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방송하였다. 청취자 참여가 많은 공동체라디오 프로그램의 특성상, 전화로 참여하는 마을 주민들에게는 혐오발언이 공동체 내에 어떤 긴장과 위협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이해시키려 노력했다. 또한 선거 기간, 잘못된 정보들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지역의 청년들과 정기적인 평화 포럼을 조직했고, 지역 현장에서 유통되는 선거를 둘러싼 루머와 오보들을 확인하였다. 루머의 실체를 조사하는 데 지역 경찰을 참여시키거나 전문가의 참여를 통해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자 하였다. 케냐에서는 ‘선거매수’ 즉 돈이나 음식, 선물을 배포하는 선거캠페인이 관행처럼 이루어지고 있었다. 특히 슬럼가 가난한 사람들은 정치인들이 접근하기 쉬운 대상이었다. 코치FM은 이러한 관행에 대해서 주민들과 토론하고, 잘못된 관행을 비판했다. 


  부정적인 말과 관행을 바꾸는 것을 넘어서, ‘평화’를 장려하기 위한 활동, 주민들의 의식을 일깨우는 ‘시민교육’도 공동체라디오의 중요한 전략이었다. 특히 2013년에는 새로운 헌법에 대한 국민투표가 있었기 때문에 시민교육은 더욱 중요해졌다. 코치FM은 제출된 헌법개정안 3개안에 대해 각각 다른 입장을 가진 게스트를 스튜디오에 불러 각 법안에 대한 설명과 토론을 진행하였다. 또한 코치FM의 아웃리치 부서는 현장에서 시민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다른 기관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시민교육포럼을 개최하였다. 이 현장 포럼에서 마을 주민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경험을 공유하고, 선거를 둘러싼 다양한 이슈에 대한 질문을 제기할 수 있었다. 현장 전문가들은 공동체 주민들이 선거 과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러한 오프라인에서의 토론은 라디오 방송을 통한 토론으로 이어졌고, 코치FM은 온오프라인 모두를 활용해서 공동체 활동과 소통에 적극 참여했다. 



2. 말라위 공동체 배움 프로젝트, ‘푸쿠시 라 모요’


  말라위는 영아사망률, 산모사망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다. 100명 중 14명의 아이들이 5세 전에 사망한다.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 보건시설을 설립하는 등 정부의 노력도 계속되고 있지만, 여성의 절반 정도만 이러한 시설에 접근 가능하며 여성 중 30% 정도만이 산후 케어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보건교육은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한 효과적인 전략 중에 하나였으나, 이마저도 접근할 수 있는 취약 계층들이 존재했다. 특히 말라위는 인구의 대다수가 도시가 아닌 시골에 거주한다. 외떨어진 지역일수록 공동체에 밀착된, 정보 접근을 높이는 전략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를 위해 모자 보건을 위한 공동체 배움 프로젝트 ‘푸쿠시 라 모요’가 말라위 중부의 음친지 현(Mchinji District)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에서 시작되었다.


  음친지는 말라위 중부 고원지대에 위치한 농경 지대이며, 50만의 현 인구 중 80%가 시골에 거주하고 있다. ‘푸쿠시 라 모요(Phukusi la moyo)’는 체와어로 ‘인생 가방(Bag of Life)’이라는 뜻으로, ‘누구나 자신의 인생 가방을 지킬 의무가 있다’는 이 지역 전통 속담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사람이라면 자기 자신의 삶과 건강에 책임을 다해야 하며, 기술, 지식, 경험으로 자신의 인생 가방을 가득 채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푸쿠시 라 모요’ 공동체 라디오 프로젝트는 음친지의 엄마와 아이들의 건강을 지키고 자신들의 인생 가방을 채워 나갈 수 있는 원천이 되겠다는 희망을 담고 시작하였다.


▲ ‘푸쿠시 라 모요’ 프로젝트 워크숍에서 

지역 주민들을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사진 출처 : WikiEducator)

 


  지역 커뮤니티의 협력사업으로 출발한 ‘푸쿠시 라 모요’ 프로젝트에는 지역보건시설인 음친지공립병원과 지역미디어 그룹인 스토리워크숍, 우리마을라디오방송국(Mudzi Wathu Community Radio Station), 커뮤니티 교육 전문가로 구성된 마이음와나 프로젝트(MaiMwana Project)가 공동으로 참여하였다. 2009년 3월, 프로그램 디자인을 위한 첫번째 워크숍이 5일간 열렸다. 이 워크숍에는 파트너 기관들의 실행자들은 물론 음친지 지역 공동체 주민들이 모였고, 모자 보건과 관련한 이슈와 교육을 연계할 라디오 프로그램을 기획하였다.


  워크숍에서 다루어진 구체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 프로그램의 핵심 메시지 찾기 : 모자 보건 이슈 리스트

● 각 이슈와 관련된 메시지 매트릭스 

 a) 부정적 행동과 습관 b) 부정적 행동으로 인한 예상 결과 

 c) 긍정적 행동과 습관 d) 긍정적 행동의 실천이 가져오는 잇점

● 프로그램 매트릭스

  : 토론을 통해 나온 주제 또는 이슈에 대한 시리즈 프로그램 기획

  : 커뮤니케이션 목적(기대효과), 타겟 청취자, 인터뷰 대상 등

● 프로그램 포맷 

  : 매거진(핏처인터뷰), 토론, 복스팝, 드라마, 청취자 편지, 퀴즈, 시

● 프로그램 성공요인 : 각 파트너 기관의 역할과 책임

● 프로그램 청취 그룹의 역할을 위한 전략



  워크숍을 통해 4편의 파일럿 라디오 프로그램이 실제 공동체 현장에서 제작되었고, 13개의 프로그램이 기획되었다. 이 라디오 프로그램은 <푸쿠시 라 모요>라는 이름으로 매주 30분 방송되는 주간 프로그램으로 공동체라디오방송국에 정규 편성되었다. 워크숍 이후에도 2명의 전담 프로듀서와, 라디오방송국 스탭, 지역병원, 지역 커뮤니티 단체에서 프로그램 제작을 계속 이어나갔다. 제작과정은 ‘참여적’, ‘현장기반형’ 프로그램을 지향한다. 음친지 지역 여성들은 3달에 한 번씩 열리는 프로그램 운영회의에 참여하는 것뿐만 아니라, 콘텐츠 제작에도 직접 참여한다. 여성들의 삶의 경험이 프로그램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여성들은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모자 보건과 관련하여 자신들이 직면한 문제를 공유하고, 의제를 제기한다. 프로그램 제작자들은 ‘현장’을 찾아간다. 마을 주민들을 직접 만나기 위해 그들의 집을 찾아가서 프로그램을 제작한다. 그리고 지역 커뮤니티 참여를 높이기 위해 전통음악과 시를 활용했다. 이 자체가 라디오 콘텐츠와 잘 맞는 기획이었다. 지역 병원의 전문가들은 보건과 관련한 정확한 의료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청취클럽’의 존재이다. 공동체 배움 프로젝트는 라디오 프로그램 제작을 통한 일방적인 ‘메시지 전달’에 그치지 않고 보다 상호적이고 참여적인 모델을 설계했다. 이미 말라위 음친지 현에서는 2005년부터 모자 보건과 관련하여 커뮤니티 단위의 학습 클럽이 조직되어 왔다. 이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모자보건 이슈와 관련하여 문제에 대한 인식, 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지역 전략을 마련하는 토론과정에 <푸쿠시 라 모요> 라디오 콘텐츠가 활용되었다. 이 청취클럽에 참여하는 주민들은 라디오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토론을 촉진하고, 메시지를 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을 받았다. 청취클럽은 공동체 구성원들의 태도와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에 있어서 면대면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확인시켜 주었다.


▲ 말라위 라디오 청취클럽

(사진 출처: https://blog.wellcome.ac.uk/2010/06/16/radio-brings-hope-to-malawi-mothers/ )



3. 삶의 평화를 위한 도전은 계속 된다


  말라위 <푸쿠시 라 모요> 프로젝트는 커뮤니티-미디어-공공기관의 파트너십 모델을 바탕으로 공동체의 실질적이고 시의적 문제를 지역 주민들의 참여로 해결하고자 한 시도였다. 프로젝트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단기간의 효과를 위한 프로그램이 아닌 장기적 접근을 중점에 두었다. 개인적인 쇼 프로그램 또는 콘텐츠는 지양하고, 프로그램이 최소 3년 동안 운영되는 것을 전제로 계획되었다. 프로젝트의 시작을 가능하게 한 것은 COL(Commonwealth of Learning, 54개 영연방국가의 원격교육·이러닝을 발전시키기 위해 설립한 정부 간 기구)과 같은 외부의 자원이었지만, 프로젝트의 성과들이 나타나면서 음친지 현 보건기구(Mchinji District Health Office)는 지역사업의 일환으로 이 프로젝트 운영에 필요한 기본 비용을 예산에 책정하였다. 이 예산은 말라위 보건부에서 지원한다. 재정적 지속가능성과 함께 이 프로그램을 매개로 활성화되고 있는 청취클럽을 500여개 이상 조직하려는 지역 커뮤니티 활동가들의 역할도 이 프로젝트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중요한 요인이다. <푸쿠시 라 모요>의 가장 큰 어려움은 말라위의 열악한 경제상황으로 자주 셧다운 되는 전력과 열악한 기술적 환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체 라디오는 다른 어떤 매체보다도 공동체 도달범위가 넓고, ‘정보권’, ‘학습권’의 측면에서도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아프리카에서는 이처럼 공동체 라디오를 활용한 교육 프로젝트(감비아 Power of Radio, 탄자니아 HESAWA 프로젝트)가 확산되고 있다.


▲ 말라위 공동체라디오방송국에서 방송된 

‘Phukusi la Moyo’ 프로그램 소개 영상

(사진 출처 : Kenya Community Media Network)

https://www.youtube.com/watch?v=v66EpUXE27A



  앞서 살펴보았던, 케냐의 부족 갈등과 폭력 사태는 역사적으로 권력과 자원에 대한 불평등한 분배에 기원한다. 슬럼가는 이러한 불평등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는 곳이다. 선거 시기 유혈 충돌이 있었던 나이로비 슬럼가의 코치FM은 폭력에 맞서 평화의 목소리를 전하는 것뿐만 아니라 슬럼가에서 일상처럼 일어나는 사회 불평등과 인권 침해의 문제에 대해서도 침묵하지 않았다. 제대로 된 수도시설이 없어 쓰레기가 쌓여있는 강가에서 물을 길어 사용하는 슬럼 지역 주민들은 오염된 물과 음식으로 고통 받고 있다. 코치FM은 비누로 손 씻기와 같은 아주 일상적이고 소소한 캠페인에서부터, 공중위생과 관련한 라디오 드라마 등을 제작하였다. 또한 슬럼 지역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성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제기하기 위해서 지역 인권활동가들과 지역 주민들이 함께하는 라디오 토론 프로그램을 편성하기도 하였다. 특히 성폭력 생존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공유하고, 슬럼지역의 성범죄자들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며 경찰의 미온한 대응을 비판하는 등 케냐의 어떤 매체에서도 심층적으로 다루지 못한 성폭력의 문제를 공론화하는 플랫폼이 되고 있다.


▲ 케냐 슬럼가 라디오 방송국 소개 영상. (사진 출처 : African Slum Journal)

http://www.africanslumjournal.com/radio-stations-in-the-slums/


  공동체 라디오는 어느 지역, 어느 나라에서 저마다의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아프리카는 뉴미디어 기술 도입이 늦어 라디오가 정보 제공 등에서 주된 기능을 하고 있다. 케냐와 말라위의 사례에서 보여준 공동체 라디오의 가능성은 단지 아프리카의 특수한 상황을 반영하는 것일까. 허가도 받지 못하고 컨테이너에서 방송을 시작한 슬럼가의 코치FM과 10명 중 2명의 아이들이 채 5살을 살지 못하는 말라위의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 시작된 공동체 라디오 프로젝트는 공동체 미디어가 왜 필요한 지에 대한, 그리고 그 필요를 어떻게 조직해야할 지에 대한 실마리를 보여준다. 평화를 위한, 삶의 변화를 위한 도전을 저 멀리 아프리카 작은 마을들에서 계속되고 있다. □


참고자료


한겨레 21, ‘케냐, 거대한 선거 후폭풍’(2008. 1. 10, 제693호)

http://legacy.h21.hani.co.kr/section-021019000/2008/01/021019000200801100693101.html


Jessica Gustafsson(2016), Community radio and peace-building in Kenya, Journal of alternative and community media, Vol 1, 114-127


코치FM : 슬럼가의 라디오 방송국, 2015. 10. 14.

http://www.bbc.co.uk/blogs/bbcmediaaction/entries/ee9abec6-6646-4f86-8039-4c41add93893


IWPR 라디오 토론 프로그램, 나이로비 슬럼의 성폭력 문제를 제기하다.

https://iwpr.net/global-voices/iwpr-radio-debate-addresses-sexual-violence-nairobi-slum


Ian Pringle, Mikey Rosato, Charles Simbi, Community learning: Perspectives on the role of media in non-formal education with a case study from Mchinji District, Malawi

http://wikieducator.org/images/4/48/Community_learning_programmes_-_Mchinji_case_study.pdf


Florida Malamba Banda, An effective community learning process on promotion of IntegratedManagement of Childhood Illness and Safe Motherhood – A case study of aparticipatory radio program (Phukusi la Moyo) – Mchinji district – Malawi, Maimwana Project

http://oasis.col.org/bitstream/handle/11599/1893/2013_Banda_ChildhoodIllnessSafeMotherhood.pdf?sequence=1&isAllowed=y


Sarah Ball, Phukusi la Moyo (Bag of Life), 2011. 3. 21

http://www.comminit.com/global/content/phukusi-la-moyo-bag-life





글쓴이. 박채은(미디어 활동가)

- 공동체미디어, 다큐멘터리, 미디어액티비즘, 운동의 연결과 네트워크가 주 관심사이며, 이론과 실천을 함께 고민하고 있다.




※ 본 원고는 서울마을미디어뉴스레터 ‘마중’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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