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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12호 리뷰] 음란물 카르텔의 종말을 앞당긴 얼굴들, <얼굴 그 맞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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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8. 12. 5.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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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12호 리뷰 2018.12.14.]


음란물 카르텔의 종말을 앞당긴 얼굴들

- 다큐멘터리 <얼굴 그 맞은편>리뷰


꼬리(모난돌 프로젝트 활동가)



  “1 click is 2 many” ‘한 번의 클릭은 너무 많은 피해를 만든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가 외쳤던 슬로건이다. 한국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사건 중 25%가 사이버 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사이버성폭력 피해자의 93.7%가 여성이며 가해자는 그들의 남성지인 혹은 옛 남자친구가 다수를 차지한다. 연인관계였을 때 촬영한 성관계 영상을 이후 동의 없이 유포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sns에 게시되어있는 아무 여성의 사진을 동의 없이 가져가 성희롱의 대상으로 만들기까지 그 방법은 너무나 다양하고, 광범위 했으며 공고히 지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세상은 조용했고, 피해자들은 호소를 듣지 않는 사회에 지쳐 말 그대로 죽어갔다.


 결국 한 사람이 클릭해 보는 영상물 건너에 또 다른 사람, 여성이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 피해자를 외면했던 사회와 싸워 온 이들은 경찰도, 정부도, 사법부도 아닌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한사성)’의 2~30대 페미니스트들이었다. <얼굴 그 맞은편>은 한사성의 초기 모습부터 몇 번의 계절이 바뀐 후 지금에 오기까지 활동가 한 명 한 명의 생각, 감정들을 인터뷰 하고, 이 들이 활동을 지속하며 겪는 고군분투와 변화들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이들이 어떻게 그 모든 일을 해냈는지 그리고 왜 그래야 했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 <얼굴 그 맞은편> (이선희, 2018)



사이버 성폭력의 진실을 전하는 ‘한사성’ 활동의 시작


  “남초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서로를 소라넷 형님이라 부르는 그 소라넷이 어떤 곳인지 알아?” 메갈리안이라 불리는 여성 유저들 사이에서 소라넷의 진실이 물밀 듯이 공유되었다. 남성들을 통해 알려진 것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사이트였다. 나 또한 그 과정을 함께 겪었던 동시대 페미니스트로서 이런 사이버 성폭력의 무법지대가 공고히 존재한다는 것에 충격 받았고, 오직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에 두려웠고, 다수가 유통하고, 다수가 침묵하는 이 거대한 구조에 분노했다. 그리고 언젠가 느꼈던 불안과 불쾌감이 설명되기 시작했다. 영화 속에서 한사성 대표 서랑님은 그 모든 싸움의 시작을 이렇게 말한다. “알아버렸기 때문에 과거로 돌아갈 수 없었어요.”

  한사성 활동의 시작은 참 위태로워 보였다. 돈도 없고, 일할 공간도 없고, 갖고 있는 거라고는 각자의 가방과 그 안의 산더미만한 자료집, 그리고 노트북뿐이다. 언제 어디서 일을 해야 할지 몰라 무거운 노트북을 등에 지고 항상 불안했다는 활동가의 말은 곧 한국에서 살아가는 여성의 삶이 얼마나 철저하게 외면 받아 오고, 불안한 폭력에 노출 되어 있는지를 증명한다. 갖춰진 현재도, 준비된 미래도 없지만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는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에게서 나는 위대함을 느꼈다.


  언제부터 여자 화장실에 수 없이 많은 구멍들이 생겨났는지는 알 수 없다. 너무 익숙해서 혹은 상상도 해본 적도 없어서 그냥 그러려니 넘어갔던 시간들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그 구멍들이 휴지로, 스티커로 일일이 메워져 있는 모습은 최근 몇 년 사이의 일이다. 여기저기 휴지가 꽂혀있는 화장실 칸에 들어 갈 때마다 나는 이 공간을 불안해하며 거쳐 갔을 수많은 여성들을 떠올리게 된다. 동시에 우리가 전처럼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 변화의 중심에 한사성이 있었다. 불안과 공포 속에서도 무언가를 바꿔나가려는 건 오직 여성들이었다. 그래서 위대한 것이다.



‘불법 영상물’ 재유포의 배후, 웹하드 카르텔의 진실을 마주하다


  사이버 성폭력의 실태를 알리고, 피해자를 지원하는 일을 하던 한사성 활동가들은 제 2, 제 3의 소라넷이 부활하는 상황 속에서 도저히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는 사이버성폭력의 벽 앞에 부서지며 그 다음 질문에 도달한다. “사이버 성폭력은 왜 무너지지 않는가? 왜 누구도 이 불법영상물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가?” 그 집요한 파헤침의 과정 후에 결국 파헤쳐버린 진실을 마주하자 서로를 붙잡고 울었다는 한사성 활동가의 말을 들으며 나도 같이 눈물을 흘렸다.


  이미 한사성은 알고 있었고, 한사성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 여성들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 직장인 폭행 영상으로 큰 이슈가 된 웹하드 업체 소유주 양진호의 존재, 아니 그런 사람이 존재할 수 있었던 한국사회의 카르텔을 말이다. 영화 중반부에서는 이미 웹하드 카르텔의 관계도가 등장하며 사회 부조리의 진실을 활동가들이 밝혀내고 있다. 그리고 그것들을 일일이 밝혀내기 위해 단 몇 명의 한사성 활동가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어떤 노력을 쏟아냈는지가 카메라에 담겨 있고, 이를 활동가들이 직접 말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니 어떻게 수백만 개의 사이버 성폭력 유출영상엔 잠잠했던 사회가 단 한 번의 직장 갑질 유출영상에 온통 술렁이며 양진호의 실태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는지 기가 막힐 노릇이다.

 

  헤비 업로더들과 웹하드 사이트 소유주들은 불법촬영과 불법유포로 몇 백억 단위의 어마어마한 수익을 만들어낸다. 여성의 신체를 성애화 하는 시선은 이미 남성들의 문화를 넘어서 한국의 거대산업으로 입지를 굳히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음란물 웹하드 카르텔’이다. 여성들의 죽음을 쌓아올려 만들어진 이 카르텔이 지금 당장 박살나지 않는 이상 제 2의 양진호는 다시 나타날 것이다.


▲ <얼굴 그 맞은편> (이선희, 2018)



마땅한 분노와 반성, 여성들에게도 돌아가야 한다


  <얼굴 그 맞은편>이 풀어내는 이야기를 잘 따라왔다면 이제 사람들은 혜화 시위의 분노와 용기를 알아들어야 한다. 음란물 영상 너머의 여성들이 자신과 같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한다. 그리고 자신의 책임을 돌아보며 두려워해야한다. 양진호의 갑질영상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는 그에 대한 진실을 파헤쳐가는 언론과 함께 발을 맞추어 그를 구속에 이르게 했다. 그러나 웹하드 카르텔과 불법촬영에 대한 또 다른 시민들의 분노에는 제대로 그 이유를 묻는 사람이 없었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이들은 정말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으로 반응하는 이들이 과연 누구인지 알고 있다.


  영화를 다 보고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내 또래였던 한사성 활동가들의 얼굴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성폭력에 대한 변하지 않는 감정과 태도가 있었고, 동시에 많은 것들이 변하고, 그들 스스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돈이 많지도, 권력을 가지지도, 사회적 지위가 높지도 않은 이들이 도대체 정치인 몇 명의 몫을 해내고, 경찰 몇 명의 몫을 해냈는지 모르겠다. 영화 <얼굴, 그 맞은편>은 사이버 성폭력과 웹하드 카르텔의 최전선에서 싸워온 페미니스트들의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나 또한 이들이 앞당겨 온 미래에 부끄럽지 않도록 한 명의 페미니스트로서 함께 싸울 것을 약속한다. □




글쓴이. 꼬리(모난돌 프로젝트 활동가)



가부장제, 육식주의, 자본주의에 저항하며 살아가는 퀴어입니다. 모난돌 프로젝트에서는 소외와 차별의 교차점 위에 서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사는 이야기와 그림을 수집하는 일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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