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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12호 이슈와 현장] 미누, 미노드 목탄 그리고 블랙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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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8. 11. 15.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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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12호 이슈와 현장 2018.11.15]


미누, 미노드 목탄 그리고 블랙리스트


이병한 (이주민방송 MWTV 운영위원)


[편집자주] 지난 10월 15일 우리에게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네팔에서 온 이주노동자로서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열심히 투쟁하다 2009년 강제추방 당한 미누 활동가가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숨졌다는 소식입니다. 지난 9월 DMZ 영화제에서 그를 다룬 다큐멘터리 <안녕, 미누>(2018) 상영차 한국을 짧게 방문한 적 있는 그이기에 이 소식은 많은 사람들을 더욱 안타깝게 했습니다. <ACT!>에서도 미누님을 기리기 위해 그와 오래동안 함께 활동한 바 있는 이주민방송의 이병한 님께 추모글을 요청드렸습니다. 미누님이 가고자 했던 길 함께 갈 수 있도록 오래오래 기억하겠습니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지난 10월 15일 쾌활했던 우리의 벗 미누가 세상을 떴다. 그가 없는 세상이 벌써 한 달이 지났다. 미누는 소위 “불법체류자”였다. “미등록이주민”으로 대체된 지 오래된 이 차별적 용어는 아직도 한국의 보수언론에 의해 주로 쓰이고 있다. 집 앞에 잠복한 출입국 직원들에 의해 표적단속되어 18년간을 머물렀던 한국에서 강제추방된 것도 2009년의 10월이었다. 그가 저지른 “불법”은 명목상 미등록(undocumented)상태로 한국에 머물렀던 것이었고 그로 인해 강제 추방되었다. 그가 한국사회를 위해 했던 어떤 행위도 인정되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미등록체류보다는 보다 나은 한국사회를 위해 그가 했던 일들 때문에 추방되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가 했던 음악, 영상, 노동운동, 다문화교육 등의 다양한 활동들은 정부에게는 불온한 것이었고 “불법체류자”가 감히 넘보지 말아야할 선을 넘은 것이었다.



▲ 영화 <안녕, 미누>(2018) 중 한 장면


내가 미누를 처음 만난 것은 지금의 ‘이주민방송’의 초기, ‘이주노동자의 방송(MWTV)’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2005년 4월 쯤으로 기억하는데, 함께 하고 싶다며 찾아 온 그는 생긴 것도 그렇고 한국말도 너무 잘해서 처음엔 한국사람인 줄 알았다. 미누는 다국어뉴스 네팔어 앵커로 시작해서 나중엔 상근자로 남았고 공동대표를 지내기도 했다. 미누는 건조하기 쉬운 이주노동관련 영상들을 좀 더 부드럽고 활력있게 보여 주고 싶어 했고 그 때문에 밤샘 편집이 잦았었다.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MWTV의 방송이 너무 이주민의 어두운 상황을 다루는 주제가 많다보니 제작하는 우리도 힘들고 시청자인 이주민들도 좋아하지 않는다는 현실에 대해 함께 고민하다 이주민들의 다양한 문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한 것도 미누였다. 이주노동자 농성현장에 자신의 밴드 ‘스탑크랙다운’을 불러주지 않으면 섭섭해 했던 미누지만 기본적인 성향은 문화와 예술의 다양성을 매개로 한국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꿈이 있었다. 


늘 밝은 얼굴에 분위기 메이커이기도 했던 그는 외견상 큰 걱정없이 사는 듯 보였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전화에 다급한 미누의 목소리가 들렸다. “형, 빨리 좀 와줘요.”라고. 바로 가서 만나보니 평소의 그의 얼굴이 아니었다. 지금껏 그렇게 침통한 미누를 본 적이 없어서 무슨 일이냐 물었고, 동대문 근처에서 출입국 직원한테 갑자기 검문을 당해서 무조건 도망쳤다고 했다. 자기도 어느 순간 갑자기 여기서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게 두렵다고 했다. 밝은 그의 표정들 뒤에는 항상 그런 두려움도 함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보낸 시간이 18년이었다.


그러나 결국 미누는 아침 출근길에 표적단속에 걸렸고 우리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추방만은 막아보려 했지만 정부는 모든 과정을 무시한 신속한 강제추방으로 마무리 지어버렸다. 그 후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네팔에서 지역사회를 위한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었고 가끔 메신저 주고받는 것이 전부였다. 그랬던 그가 작년 그가 활동하는 단체에서 제작한 공예품들을 들고 서울국제핸드메이드페어에 참석하기 위해 왔다가 공항에서 입국을 거부당해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강제출국 된 사람은 5년 동안 입국이 금지(출입국관리법 제11조 제1항 제6호)되지만 법무부는 그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었던 것이다. 그랬던 미누가 추방 뒤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안녕, 미누>(2018)가 DMZ국제다큐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면서 영화제 사무국과 경기도의 요청으로 2박3일만 조건부 입국이 허용됐다. 여전히 그는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



▲ 영화 <안녕, 미누>(2018) 중 한 장면



나는 영화제 사무국의 배려로 2박3일 중 하루 저녁에 미누와 만날 수 있었다. 그간 못만났던 여러 친구들과 즐거운 저녁식사와 노래방까지 오랜만에 회포를 풀었다. 미누는 다음 날 비행기로 돌아간다고 했고 그 비행기 시간이 자신이 쫓겨날 때 탔던 때와 같은 시간이라고 했다. 보통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비행기 시간이 트라우마로 그의 기억에 각인되어 있었던 것이다. 살면서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을 것 같은 한 선한 존재에게 깊고 깊은 상처를 주는 이런 일들은 여전히 법무부의 관료들에 의해 별다른 의식 없이 기계적으로 처리되고 있다. 미누는 그런 한국사회를 원망하지 않았다. 단지 그의 활동에 대한 명예를 되찾고 싶어 했다. 하지만 이는 한국 정부에 의해 차단당했고 그는 갔지만 그의 이름은 아마도 여전히 법무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을 것이다.


지난 달 14일에 막을 내린 제12회 이주민영화제에서 상영된 영화 중 <아직도, 우리는 이주노동자다>(2018)라는 다큐가 있었다. 한국에서 노동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강제추방된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조국에서 벌이는 활동들이 주 내용이었다. 영화 속에서 방글라데시에서 사회운동을 벌이고 있는 비두 씨도 한국에 들어오고자 했으나 거부당했다고 했다. 그는 그래도 다시 들어오고 싶어 했다. 한국에서 살고 싶은 것이 아니라 “불법체류자”라는 딱지를 붙여 강제추방한 나라에서 자신의 명예를, 자신이 했던 행동들에 대한 인정을, 자신의 이름을 다시 찾고 싶기 때문이었다.


마붑 알럼 감독의 다큐 <쫓겨난 사람들, The Deported>(2007)에서 이주노동자 운동을 앞장서서 이끌다가 역시 표적단속에 의해 강제추방 당했던 샤말 타파의 인터뷰가 인상적이다. 그는 “사람들 사이에는 따뜻함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없으니까 이걸 위해 우리가 뭔가를 해야 한다. 이런 문제는 한국사회에 있으니까 우리가 한국사회를 바꿔야 한다. 이주노동자가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를 알려야 한다.”며 이것이 활동의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이는 미누나 비두도 마찬가지였고 “한국사회를 사람들 사이에 따뜻함이 있는 사회”로 바꾸고자 한 것이 그들이 강제추방당한 실제 죄목이다.


대한민국은 불법행위는커녕 미디어활동, 공연 등을 통해 이주민과 선주민들이 한국 사회에서 평등하게, 서로 존중하면서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이에게 “불법”체류자라는 불명예를 씌워 불법표적단속을 통해 강제 추방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그리고 이보다 더 나쁜 것은, 이들이 자신의 명예와 이름을 다시 찾기 위해 방문하는 것마저 막아버리는 데 있다. 그리하여 미누는 이제 그의 명예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미누에게, 이제 우리 사회는, 우리의 잘못을 사과할 기회마저 잃어버렸다. 앞으로도 영원히.



▲ 영화 <안녕, 미누>(2018) 중 한 장면



미누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 그는 이제 없지만 그의 명예는 다시 회복되어야 한다. 미누와 마찬가지로 비두, 샤말, 안와르, 마숨, 샤킬 등 수많은 이주노동활동가들이 이주노동자들의 평등과 존엄을 위해, 보다 나은 한국사회를 위해 노력했다는 이유로 강제추방 당했고 같은 이유로 재입국이 불허되고 있다. 그들의 이름이 블랙리스트에 있다는 것은 그들의 활동을 범죄행위로 보고 있다는 인식을 보여주며 관료들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지난 정부시절 문화예술인들 블랙리스트를 작성해서 피해를 주던 행위와 다름이 없다. 차이가 있다면 가해자들이 처벌을 받지는 않았더라도 이들 문화예술인들은 명예를 회복 했고, 강제추방되어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들은 아직도 블랙리스트에 갇혀 불명예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불명예는 결국 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에게 속한 것임을 인식하여야 한다. 지금은 이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지만 언젠가 우리 사회가 조금 더 나아졌을 때 우리는 오늘 날의 일을 부끄러워할 것이다.


미누가 가고 난 후 남은 사람들은 말했다. 그는 열성적으로 살았고 남들보다 훨씬 압축적으로 살았으니 여한이 없을 거라고 했다. 그의 누이는, 그래도 그가 죽기 전에 네팔로 돌아와서 몇 년간이라도 가족과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부재한 지금, 우리에게는 한 가지 일이 남아있다. 그와 그들의 이름과 명예를 되찾아 주는 일이다. 훗날 그와 그들,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하여. 또한 후회 없이 쾌활한 미누를 추억할 수 있기 위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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