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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06호 특별기획] 다녀올게 - 송윤혁(다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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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06호 특별기획 박종필을 기억하며 2017.9.14]


다녀올게 


송윤혁(다큐인, 다큐멘터리 감독)



첫 번째 회식


  2009년 늦은 겨울. 다큐인 멤버가 되었다. 처음으로 작업실에 들어섰던 날이 아주 어렴풋이 기억난다. 군자역 근처에 있는 대여섯 평 크기의 원룸이었다. 너댓 명의 사람이 벽을 따라 책상에 앉아 있었다. 오래된 책상과 컴퓨터들, 쌓여 있는 6mm 테이프들과 돌아가고 있는 데크, 카메라, 널려 있는 온갖 문서들과 포스트잇, 벽지에 밴 담배 냄새, 입구에 쌓여 있는 소주병들. 하지만 분명히 자신의 자리를 잡고 있었고 어지러워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어떻게 나를 맞아줬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책상이 하나 배정되었고 컴퓨터를 가지고 왔고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함께 먹을 때면 반주가 따라붙었고 반주는 회식을 불렀다. 아침까지 마셨다. 그날 아침 역할이 정해졌다. 박종필 감독의 조연출. 조연출이 뭔지 몰랐다. 지금도 잘 모르지만. 어떤 작업의 조연출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음 날 출근 이후에도 일상적인 생활이 반복되었다. 일하고, 점심 먹고. 일하고, 저녁 먹고. 저녁에는 반주, 반주 후에는 회식.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밤 새워 술을 먹던 어느 날 아침 역할이 변경되었다. 연출. 그는 다큐인은 자신의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역시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진지한 그의 모습에 다른 이야기를 붙일 수 없었다. 그가 너의 관심은 무어냐고 물었다. 나는 홈리스라고 대답했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웃었다. 그 웃음의 의미를 여덟 해가 지난 지금 깨닫는다. 


  그렇게 첫 연출을 시작했다. 평소에 만나던 거리 노숙인들을 촬영했다. 낮에는 형들을 만나고 밤에는 그와 이야기했다. 다시 고정된 삶이 반복되었다. 그는 내가 전하는 형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었다. 그리고 형들을 만날 때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이듬해 이른 겨울 작업이 완성되었다. 그가 말했다.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고. 그가 의미 있다고 하면 의미 있는 것이었다. 백지상태인 나는 그렇게 배웠다. 카메라 앞에 서기를 허락해 준 사람을 만나는 태도, 그리고 다큐멘터리의 의미가 무엇인지. 일주일간 밤샘 편집으로 동공이 풀려버린 나에게 완성된 파일을 받아 어떤 영화제의 사무국으로 전달하기 위해 출발하던 그는 문 앞에서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밀가루, 다녀올게 눈 좀 붙여요.’ 그렇게 그는 다녀왔다. 그리고 회식을 했다.

▲ 다큐인 다락방을 채운 1500개 가량의 테이프들.



두 번째 회식


  다음해 다큐인은 종로의 어느 한적한 곳으로 작업실을 옮겼다. 낮에는 노동하고 밤에는 회식하는 일상은 변하지 않았다. 그 어떤 사람들보다 다큐인들은 서로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당시 나는 집이 없었다. 졸업한 학교의 사람이 없는 동아리방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다. 종로작업실이 생긴 이후에는 작업실에서 먹고 자는 날이 더 많아졌다. 열 평이 되지 않는 다큐인 작업실에는 주방이 있고 화장실에 샤워기도 있고 잠을 잘 수 있는 다락방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집을 대신 할 수는 없었다. 내가 눈 뜨고 못 볼 몰골로 작업실에 앉아 있으면 그는 자신의 집에 다녀오라고 했다. 그의 집에서 눈을 붙이기도 하고 몸을 씻고 밥을 먹기도 했다. 그의 집에서는 작업실에서 나는 냄새와 똑같은 냄새가 났다. 살림은 단출했다. 작은 책상, 책장과 식탁, 그리고 옷을 걸어두는 행거가 가구의 전부였다. 옷장에 걸려 있는 옷들은 영화제나 집회의 수익사업에서 구입하거나 선물 받았던 것들이었다. 간혹 아름다운가게에서 오천 원, 만 원 정도를 주고 산 옷들이 섞여 있었다. 모든 물건들은 항상 있던 자리가 있고 언제나 어지럽혀지지 않았다. 그의 모습을 닮은 공간이었다. 


▲ 서울 종로구 다큐인 사무실 내부.



  어느 회식 날 그가 말했다. 너의 관심사는 무엇이냐고. 나는 대답했다. 여전히 홈리스라고. 그가 다시 한번 웃었다. 그가 작업을 시작하자고 했다. 나도 그러겠다고 했다. 그렇게 두 번째 홈리스 작업이 시작되었고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모든 것을 함께했다. 그는 아무런 조언도 하지 않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했다. 내가 촬영지에서 숙식을 해결하기 시작하면서 회식이 줄어들었다. 가끔씩 작업실에 와서 데이터를 백업하는 날에는 어김없이 회식을 했다. 그 어귀 언제부터인가 그와 나 둘이 다큐인에 남아 있었다. 이번 작업은 정말 잘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그는 술이 취해 고개가 떨어지면 반복했다. 반복하고 반복했다. 그 말이 싫지 않았다. 가끔은 그 말을 듣고 싶어 그에게 술을 먹자 청할 때도 있었다. 


  그렇게 몇 해가 가고 첫 번째 편집본이 나왔을 때 그가 입을 열었다. 우리 작업이 왜 이렇게 되었지?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다시 편집했다. 2차 편집본을 보고 그는 입을 다물었다. 다시 편집했다. 그게 일곱 번 쯤 반복되었을 때, 그가 말했다. 이번 작업은 의미 있는 작업이었던 것 같아. 여전히 그가 하는 의미 있다는 말이 참 좋았다. 마지막 편집을 하고 이제 어떤 결과물이 나와도 서로 편집은 그만하자고 약속했던 마지막 날 밤 회식을 했다. 그냥 언제나 하던 회식을 그날 종편 기념 회식으로 잡았던 것 같다. 그 때는 나는 서울에 작은 집을 얻어 살고 있었다. 한 잔만 더 먹고 가겠다는 나를 남겨 두고 그는 집으로 가면서 말했다. 다녀올게. 그에게 다큐인은 집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어김없이 돌아왔다.



하지 못한 회식


  언제부터인가 그가 말했다. 슬럼프가 온 것 같아. 술의 양이 늘었다.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경력이 오랜 작업자, 미디어와 운동 사이에서 바람에 아니뮐 뿌리 깊은 나무, 캐논이자 정경 같았던 그의 입에서 나온 슬럼프라는 단어는 그의 입 밖으로 나오자마자 나의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둘이 함께 다시 취한 어느 날 밤 같은 단어가 그의 입 밖으로 나왔다. 나는 불안했다. 그리고 술을 마실 때 마다 그 몹쓸 단어가 반복되었고 나는 당연히 아무런 위로도 대안도 내놓지 못했다. 노동하고 밥 먹고 술 먹던 우리에게 언제부터인가 술 먹다 노동하고 밥 먹는 일상이 시작되었다. 


  한두 해가 가고 내가 결혼을 하고 다큐인 활동을 고민 할 즈음 그가 말했다.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다. 지속적인 운동을 하려면 최소한의 기반이 있어야 할 것 같아. 다큐인은 조직의 구조를 바꾸는 일을 시작했다. 출근시간을 정했다. 퇴근시간도 정했다. 지각을 하면 벌금을 냈다. 벌어온 돈을 다큐인으로 귀속시키고 활동비를 지급하기로 했다. 그가 벌어온 수입이 대부분이었고 일은 나눠서 했다. 활동비는 똑같이 지급했다. 통장이 빌 때 쯤이면 그가 사비를 털어서 채웠다. 아슬아슬한 실험들이 계속되었다.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그는 활동가를 재생산하는 구조를 만들자고 했다. 주간회의 때마다 함께 미디어로 운동할 사람을 찾아보자고 했다. 그렇게 사람이 들어오고 나갔다. 하지만 그것으로 슬럼프가 극복되지는 않았다. 세월호를 만나기 전까지는. 


  우연한 기회에 4․16연대 미디어위원회에서 활동하게 된 그는 내가 처음 그를 보았을 때보다 역동적이었다. 슬럼프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잠시 다큐인은 잊은 것이 아닌가 하는 서운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 2015년 겨울 그와 함께 세월호 부표가 손에 잡힐 것 같은 동거차도로 들어갔다. 그는 일주일 동안 유가족들과 동거하면서 <인양>을 만들었다. 인터뷰를 하던 어머니가 울었다. 그도 따라 울었다. 그는 울음을 감추려고 했으나 그럴수록 소리는 더욱 거세게 새어 나왔다. 


  세월호들과 함께 하면서 민간잠수사 김관홍을 만났고 그의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잠수사>라는 이름으로 두 번째 세월호 영화를 만들었다. 슬럼프라 불리는 것은 극복된 듯 보였지만 많이 지쳐갔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세월호 인양 현장으로 가겠다는 결심을 했다. 최소한 반년은 있어야 할 거라고 했다. 가지 않기를 권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러지 못한 나는 소심하게 그 곳에서의 계획을 보여달라고 했다. 그는 문서로 정리하겠노라 했다. 목포신항에서 갑작스럽게 연락이 왔다. 짐을 싸두고 있었던 그는 급하게 출발했다.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그가 말했다. 다녀올게. 하지만 이번에는 돌아올 수 없었다. 



보내드릴게요


  병이 그를 잠식했다. 우리는 서로 돌아갈 길이 없다고 느꼈을 때 희망을 멈추었다. 어느 요양원에서 그는 녹음기를 꺼내라고 말했다. 가족들에게 짧은 작별인사와 정리를 부탁했다. 그리고 다큐인에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십분 삼십초 동안 그는 남겨야 할 말을 남겼다. 이번에는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가능할지는 물음표다. 그가 존재하지 않는 우리의 삶은 어떤 것일까? 아직도 그는 다녀올 것 같다. 다큐인 작업실의 저 회색 철문을 벌컥 열고 다녀왔노라고 이야기할 것 같다. 오늘 그의 묘소를 찾았다. 비어 있을 것 같은 그의 무덤은 그를 똑 닮아 반듯하고 묵직하게 버티고 있다. 언젠가 보내드리겠노라 약속하고 돌아선다. 참 그립다. 그를 그리는 모든 이들에게 곧 올 위로를 전하고 싶다.   


▲ 박종필 감독의 작업실 책상.




 

글쓴이 송윤혁


2009년부터 지금까지 다큐인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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