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106호 특별기획 박종필을 기억하며 2017.9.14]
끊임없는 고민, 계속되는 말
오지수(미디어 활동가)
2016년 9월 초, 4·16연대 미디어위원회(이하 미디어위원회) 활동을 하고 싶어 알음알음 연락을 취해 위원장이었던 박종필 감독님과 첫 통화를 했다. 일단 회의에 참여해보고 천천히 함께하는 것을 결정해보자는 말과 함께 “어렵지 않을 거예요”라는 말에 깜빡 속아 활동을 시작했다.
스스로 먼저 하겠다고 했던 의지도 있었고 미디어위원회가 어떤 일을 하는지 파악하는 동시에 혜화 마로니에 공원으로 촬영을 갔다. 모일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감독님과 둘이 점심을 먹었는데, 아직은 어색해서 나를 ‘지수님’이라고 부르던 감독님께 편하게 부르시라고 했더니 그제야 편하게 대해주셨다. 아마 그때 호칭에 대해 따로 이야기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내게 존칭을 붙여서 대하지 않으셨을까 싶기도 하다. 이후 해주신 이야기 중에 기성세대 남성 활동가로서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하는 여성 활동가를 대하는 것에 대해 고민이 많다며, “어렵지만 공부가 필요한 것 같아”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공부, 배려하고 존중하기 위한 공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활동을 하면서 나를 쉽게 판단하고 대했던 사람들이 떠올랐고 나는 감독님의 그 태도를 반드시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리다는 이유와 아직 경험이 적다는 이유, 여성이라는 이유로 상대방을 괄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감독님은 알고 계셨던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것에 대하여 간단히 넘어가곤 했던 것은 아니었나 고민할 필요가 있다. 나 또한 그 안에 머물며, 후배이기에 감수해야한다는 불편함을 참고 또 참았던 때를 생각해본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 직시해야한다. 감독님이 조금도 쉽게 넘어가려고 하지 않았던 문제에 대해서, 그의 다짐과 마음을 이어받고자 하는 동료로서 말이다.
박근혜정권퇴진행동 미디어팀으로 함께 활동할 때 촬영 중 감독님이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적이 있었다. 별 생각 없이 뒤를 돌았는데 감독님이 보고 계셔서 놀란 표정으로 바라봤을 때, 어떻게 찍나 궁금했다며 짱구같이 장난스레 웃던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날, 감독님과 같은 방향으로 행진을 담게 되었다. 방송차 앞에서 뒷걸음질을 치며 촬영을 하던 중 중앙선에 울룩불룩 튀어나와 있는 블록들이 발걸음을 방해했다. 하지만 REC 버튼을 끊을 수 없었던 우리는 서로의 발밑을 확인해주며 등을 받쳐주었다. 감독님은 알고 계실까? 그때 그 손의 온도가 여전히 나를 받쳐주는 버팀목이 되었다는 것을.
▲ 2017년 1월 서울 광화문에서 촬영중인 박종필 감독과 오지수 감독. (사진 제공: 김재영)
카메라 장비를 참 꼼꼼히 비교분석하던 감독님은 언젠가 나에게 핸드폰에 대해 물으신 적이 있다. 핸드폰을 바꿀까하는데 추천할 만한 기종이 있냐며, 역시 카메라가 좋은 핸드폰이 좋겠다고 하셨다. 내가 쓰고 있는 핸드폰을 강력 추천했다. 후면 카메라가 표준렌즈랑 광각렌즈로 두 가지라고 신나게 자랑을 했다. 그리고 만날 때마다 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몇 장의 사진을 찍으셨다. 사진첩에 퇴진행동 미디어팀 활동 후 뒤풀이 자리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내 모습도 있었고 다큐인 사무실의 모습도 있었다. 같은 핸드폰으로 바꾸신 후, 자주 사진을 찍으셨다. 세월호 선체 사진뿐만 아니라, 본인의 셀카도 찍으시면서 그렇게 담고 또 기록하던 감독님이었다.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고 싶은 만큼 두려움도 커서, 그 두려움을 감독님한테 털어놓으며 고민 상담을 여러 번 했었다. 그럴 때마다 “차근차근 생각을 해보는거야” 하면서 같이 이야기를 하곤 했다. 나조차 스스로를 의심하고 있을 때 너의 마음에는 힘이 있다고 나를 믿어주셨다. 그리고 회식 자리에서 나와 김환태 감독님을 따로 불러 같이 해보자며 의지를 다졌다. 도와줄 테니, 한번 만들어보자고. 너무 겁내지 말고 함께 하면 될 거라고. 막연한 생각만 가지고 있던 나로서는 갑작스러웠지만 또 참으로 감사했다. 이렇게까지 생각해주셨구나 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5월 말에 세월호가족선체기록단으로 합류하고서 기록단 컨테이너 안에서 함께 의지를 다졌던 작업에 대해 물으셨다. 정리를 할수록 걱정이 더 앞선다는 나약한 말을 늘어놓으니 해주셨던 말이 생각난다. “이제 네가 말해야 해.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없을 수도 있어.” 꽤 단호한 표정과 말투가 강렬했고 나는 이 말을 노트에 적어놓았다.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믿음 같은 것, 작업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 그런 것이 필요한 우리들임을 말한 것일지도 모르니까.
6월 17일 토요일, 고 김관홍 잠수사 1주기 추모 문화제에서 마지막으로 만났다. 2주 전까지만 해도 목포에서 함께 세월호가족선체기록단 활동을 함께했기에 오랜만이라는 느낌은 없지만 서울에서의 만남이라 꽤 반가웠었다. 건강을 챙기자는 말을 하다가 감독님이 “재영이랑 잘 하고 있지? 합창단(*주).”하고 물어보셨다. 언제나 후배들의 작업을 궁금해하고 또 응원하는 사람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때 그 질문에 시원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냥 멋쩍은 듯 웃어넘겼고, 8월 초의 어느 날 축축한 밤공기를 맡으며 ‘잘할게요’라고 혼잣말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혼잣말로 감독님이 보고 싶다고, 그립다고 말한다. 그렇게 계속 말하면 어디선가 나타나 짱구 같은 웃음을 지어줄 것만 같아서. □
주) 현재 미디어위원회 소속 김재영 감독님과 함께 416합창단을 담고 있는데, 간혹 응원의 마음을 담아 물어보시곤 했다.
글쓴이 오지수
현재 4·16연대 미디어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오래 오래 카메라를 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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