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103호 길라잡이 2017.05.19]
매립지, 사막 그리고 바다
권은혜 (ACT! 편집위원회)
5월 5일, 세월호 희생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해가 발견되었다는 속보를 보았습니다. 여드레 후인 5월 13일과 14일에도 유해가 발견되었습니다. 두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패트리시오 구즈먼 감독의 <빛을 향한 노스탤지어>(2010)와 정윤석 감독의 <논픽션 다이어리>(2013)입니다.
△ <빛을 향한 노스탤지어>(2010) 중 한 장면
세계최대의 천체관측소가 있는 칠레 북부 아타카마 사막에는 피노체트 정권하에서 죽임을 당한 이들의 시체가 묻혀 있습니다. <빛을 향한 노스탤지어>에는 사랑하는 이의 작은 뼛조각 하나라도 발견하기 위해 몇 년이고 황량하고 넓은 사막을 돌아다니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논픽션 다이어리>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삼풍백화점 붕괴와 구조작업 이후 그 잔해들이 쓰레기 매립지였던 난지도에 버려졌고, 유족들은 이곳을 뒤져 142점의 유해를 발굴해냅니다. 13일과 14일에 유해가 발견된 곳은 세월호 선체 내부입니다. 그러나 지난 5일, 유해가 발견된 곳은 선체 내부가 아닌 바다였습니다. 바다는 쓰레기 매립지보다, 사막보다 더 망연하고 자실합니다.
지난 연말부터 지금까지 한국사회 지도층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은 웬만한 소설이나 영화의 허구성을 초과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현실은 30년 전보다 많은 사람들을 광장으로 이끌었고, 뉴스의 시청률은 예능 프로그램의 시청률을 웃돌았습니다. 2017년 5월 9일 대선 결과는 지난 12월 3일의 탄핵소추 발의와 3월 10일의 탄핵 인용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 흥미로운 드라마를 또 한 번 일단락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싸움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2014년 4월 16일 7시간 의혹과 세월호 선체 조사를 통한 사건의 진실, 무엇보다 미수습자 아홉 명을 모두 찾아내어야 합니다. 그래야 애도가 가능하고, 비로소 앞날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막무가내로 진행되고 있는 성주 사드 배치를 막아야 합니다. 투명하지 않은 배치 결정 과정, 사람들의 반대를 무시하는 강행. 대추리, 강정, 밀양까지 여러 이미지가 스쳐 지나갑니다. 이를 그냥 지켜보아서는 안 됩니다. 무엇보다 평화는 폭력으로부터는 절대 나올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음을 계속해서 확인시켜야 합니다.
성소수자와 여성을 비롯한 약자들에 대한 혐오와도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혐오가 혐오하는 자에 의해서든 혐오를 받는 스스로에 의해서든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혐오를 반대한다고 이야기하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해야 합니다. 노동절인 5월 1일 거제도 삼성중공업에서 난 크레인 사고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맞은 어이없는 죽음과 정의로웠고 그래서 괴로웠던 젊은 PD의 자살, 구의역에서 죽은, 청년이라고 부르기에도 너무 어린 그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한 번에 바뀌는 것은 없습니다. 깨어난 이들이 계속해서 깨어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증명하고 보여주어야 합니다.
ACT! 103호 ‘이슈와 현장’에는 세 편의 글이 실렸습니다. 2017년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있었던 “두 번째 영화 찍을 수 있을까?” 포럼에서 ‘감독’과 ‘여성’ 사이의 고민을 털어놓은 마민지 감독의 이야기를 더 깊게 들어보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이를 위해 마민지 감독과 주현숙 감독이 함께해 주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공동체마을미디어 활동가이자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이희랑님께서 지난 3월 22일 국회에서 열린 “생활정치 자치분권의 시대, 마을공동체미디어 활성화 방안 세미나”에 대한 성실한 후기를 보내주셨습니다. 이 글을 통해 마을공동체미디어가 공공적 활동이자 서비스로 탈바꿈하기 위해 당면한 과제들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은 지난 촛불 집회 때 미디액트에서 진행된 VR 촬영에 대한 후기이자 대담입니다. 미디어 운동과 독립 다큐멘터리 제작에서 VR이 가진 가능성에 대해 진단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인터내셔널’에서는 최근, 1인 미디어로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는 미국의 퍼블릭 액세스의 현황을 자세하게 전합니다. ‘리뷰’에서는 미군 클럽으로 외국인 여성들이 수입되는 경로를 따라 쫓은 이고운 감독의 <호스트 네이션>에 대한 양주연 편집위원의 날카로운 지적이 담긴 비평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인터뷰’에서는 영화제 자막팀으로 시작하여 전문회사로 성장하고, 자막제작은 물론 상영회와 영화제 기획, 카드뉴스와 뉴스레터 등의 콘텐츠 발행까지 진행하고 있는 21세기 자막단의 김빈 대표를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작지만 큰 영화제’에서는 8회째를 맞이한 대구사회복지영화제를 소개합니다. 성상민 편집위원이 직접 대구로 취재를 다녀온 만큼 더욱 생생한 이야기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나의 미교이야기’에서는 김장훈 미디어교육 활동가가 수원지역 현직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학교 미디어교육의 사례에 대한 상세한 후기를 보내주셨습니다. ‘미,디어’는 최근 페미니즘 분야에서 화제작으로 떠오르고 있는 조남주 작가의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이수미 편집위원의 단상입니다. 이 글부터 읽기 시작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위로와 용기가 됩니다.
생각보다 조금 늦었지만, 그래도 다시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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