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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05호 길라잡이] 비밀의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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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7. 8. 29.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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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05호 길라잡이 2017.9.11]

 

비밀의 나무

 

양주연(ACT!편집위원)

 

 

3년 전, 온 몸에 투명한 호스관을 두르고 있던 나무를 본 적이 있다. 호스관 안으로는 알 수 없는 노란 액체가 흘렀다. 중증환자였다. 나무도 아플 수 있구나, 무심한 생각만이 스쳤고 나무 뒤쪽으로 펼쳐져있던 공사장이 기괴하다고만 느껴졌다. 공사장 앞에서 주사를 맞고 있던 나무. 그 나무는 80년 5월, 전남도청 앞을 지키고 있던 회화나무였다.



 

△사진. 2014년의 회화나무(Ⓒ양주연)

 


1년 뒤, 공사장은 ‘국립 아시아문화전당(이하 전당)’이란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전당은 공모를 통해 선정된 우규승 건축가의 ‘빛의 숲’이라는 이름의 설계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회화나무는 ‘빛의 숲’의 정문을 지켰다. 노란 액체가 흐르던 호스관도, 가지마다 지탱하고 있던 지지대로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저 언제 자신이 죽을 뻔 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다는 얼굴을 하며 나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생과 사를, 빛과 어둠을 오가는 시간 속에서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느꼈는지 말이 없었다. 


나무의 구체성들이 사라져버린 숲은 이름을 잃는다. 회화나무의 구체성은 단지 80년 5월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는다. ‘광주’라고 하는 사건은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재와 충돌하며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재구성된다. 기억과 망각의 사이를 오가고 전남도청이 전라남도 무안으로 이전하고 전당이 들어서는 긴 시간동안 나무와 나무를 둘러싼 풍경들은 계속해서 달라져왔다. 그 유동하는 시간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해석할 것이냐에 따라 ‘빛의 숲’ 역시 구체적인 ‘빛’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은 결코 선명하지 않을 수 있다. 어느 것 하나도 쉽게 ‘빛’이라고 혹은 ‘어둠’이라고 말하기 힘들어지는 순간일 수 있다. <택시운전사>의 관객 수가 천 이백만을 넘어선 지금, 이 영화의 흥행은 ‘5.18’이라고 하는 사건의 진상규명에 있어 위기일까, 기회일까. 아시아문화전당이 개관 2주년을 맞이한 지금, 아직도 개관하지 못한 구 전남도청의 본관은, “옛 전남도청을 복원하여 5·18을 영원히 기억해야 합니다”라는 붉은 글씨가 한 층을 가린 별관은, 어떤 질문들을 던져주고 있을까. 말하지 않는 것은 비단 회화나무 뿐이 아니다.  


액트 105호의 기획 역시 선명한 답을 제기하기보다는 각자의 조건 앞에 놓인 나무들을 구체적으로 마주하고자 노력했다. 이번호의 ‘이슈와 현장’은 일곱 개의 현장을 찾아간다. 첫 번째 현장은 성주와 김천이다. 성주와 김천에서 진행된 “미디어로 행동하라”의 기획자, 오재환 씨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고민들을 풀어냈다. 투쟁현장에서 미디어로 행동을 한다는 것의 의미와 관계에 대한 고민들이 시간 순으로 잘 정리된 글이다. 두 번째 현장은 대구로 가보았다. 광화문에서 시작되었던 국민 마이크가 지역으로 갔을 때 어떤 풍경들을 만들어내는 지, 안정록 대구MBC시청자미디어센터 운영팀장이 간략히 설명해주었다. 


다음 현장은 성상민 편집위원이 전하는 독립영화가 유통되는 시스템으로 넘어가보았다. 독립영화의 배급이 처음으로 논의되던 시점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독립영화의 배급을 둘러싼 방대하지만 유의미한 쟁점들을 잘 다루고 있다. 이어 부천국제영화제에서 열린 독립영화포럼을 취재한 권진경 씨의 글이나 방송통신위원회 초청 토론회를 취재한 권순택 씨의 글, 미디어교육 교강사 집담회를 취재한 이수미 편집위원의 글 모두 현장의 중요한 이슈들을 잘 전해주고 있다. 미디어교육 교강사 집담회 취재기사는 이번 호 ‘나의 미교이야기’를 써주신 경희령 선생님이 발제자로 참여하기도 했으니 연이어 정독해도 좋을 듯하다.


‘인터뷰’에서는 강릉의 독립영화의 집, 인디하우스에 대하여 차한비 편집위원이 이마리오 미디어협동조합 이와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디하우스의 설립과 설립이후의 고민들이 잘 정리되어있는 글이다. ‘미디어인터내셔널’에서는 박채은 미디어활동가의 남미의 미디어 민주화 사례를 연재하는 첫 번째 글이 소개되고 있다. 평소 접하기 힘든 남미의 사례들을 통하여 한국의 미디어조건에 대한 고민을 각자 이어나가길 바란다. 


‘페미니즘 미디어’에서는 이세린 객원 편집위원이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의 여경 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세린 객원 편집위원의 미디어운동본부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시너지효과를 발휘한 인터뷰를 다들 읽어보길 바란다. ‘나의 미교이야기’는 경희령 미디어교육 강사의 미디어교육 현장에서 교사로서의 역할에 대한 고민들이 잘 정리되어있다. 그동안 쉽게 들을 수 없었던 미디어교육 현장에서의 경험과 미디어교사의 노동조건에 대한 문제제기가 제시된 소중한 글이다. 


이번 호를 끝으로 작별인사를 드리는 ‘작지만 큰 영화제’의 마지막 인터뷰 주인공은 인디애니페스트의 최유진 집행위원장이다. 장르·지역 등의 구분을 넘어서서 최대한 발 넓게 다양한 영화제들을 소개하려고 했던 성상민 편집위원의 고민은 ‘영화제’를 ‘영화관’으로 바꾸어 새롭게 시작되는 ‘작지만 큰 영화관’에서 계속될 예정이다. ‘작지만 큰 영화관’은 인디스페이스의 안소현 사무국장이 스타트를 끊었다. ‘리뷰’에서 다루는 영화는 올해 인디다큐페스티벌에서 관객상을 수상한 ‘플레이온’과 올해 환경영화제에서 한국환경영화경선 대상을 수상한 ‘개의 역사’이다. 이도훈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회원과 차한비 편집위원의 각각 특색 있는 리뷰를 영화와 함께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미디어’에서는 김주현 편집위원의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시작되는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다. 몇 달간 유럽여행의 여운이 고스란히 담겨진 창작자 주일의 학습소설도 기대하시라.



영원히 가지 않을 것만 같던 여름이 가고 가을의 형태가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지난여름을 ‘비밀의 숲’에 빠져 살다보니 길라잡이 제목도 ‘비밀의 나무’가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아니면, 숲을 생각하다보면 나무를 잃고 나무를 생각하다보면 숲을 잃는 딜레마 속에서 그 둘 중 어느 것도 놓칠 수 없다는 무의식의 발현이었을 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나무가 없이 숲은 불가능할 테니깐 말이다. 


일단 이번 105호를 찬찬히 보며 각자의 앞에 놓인 비밀의 나무부터 마주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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