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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8호 미디어센터ING] 강서영상미디어센터의 파행에서 얻은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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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18호 / 2005년 2월 28일 

 

 

 강서영상미디어센터의 파행에서 얻은 교훈
 
  
  이 주 훈 ( 미디액트 사무국장 )   1.
우려했던 일이 현실화 되었다. 짐작은 했지만 충격은 컸다. 지역에 건물하나 덜렁 짓는 것으로 미디어센터 설립을 사고해서는 안된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이야기하고 다녔지만, 실상 우리 자신도 그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던 듯하다. 최초로 설립된 지역미디어센터인 강서영상미디어센터의 파행은 지역미디어센터 설립과 운영 전반에 걸쳐서 무서운 교훈을 안겨주었다. 강서영상미디어센터의 문제는 현 시기 미디어운동의 한계이자 관 주도 문화정책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내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강서구청에 3억원의 돈을 던져주었고, 한독협과 미디액트는 역량있는 전문가를 스탭으로 추천하였다. 그리고 강서시설관리공단은 이 훌륭한 조건의 센터를 단 9개월만에 황폐화시켜 버렸다. 영진위는 팔장끼고 앉아서 훈수만 두고 있고, 한독협과 미디액트는 발만 동동 구르고, 전문 스탭들은 거리로 내앉았다.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처참하게 무너질 줄은 몰랐다. 우리가 너무 상대를 얕봤다. 2.
강서시설관리공단은 간교한 세치 혀로 영진위를 농락하고, 무지와 무시로 한독협과 미디액트를 배제하고, 가당찮은 권위로 전문 스탭들을 찍어 눌러서 모두를 다운 시켰다. 실로 놀라운 능력이다. 그러는 사이 미디어센터는 파리를 날렸고, 강좌들은 줄줄이 폐강되었으며, 막 피어나던 지역 공동체와의 연결도 끊어졌다. 미디어센터는 고립무원의 처지에 놓여 졌고, 그렇게 대중의 감시망에서 벗어난 미디어센터는 투자대비 수익을 걱정하고 3년 내에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는 공간으로의 탈출을 꿈꾸고 있다. 참여적 미디어 민주주의를 실현한다는 원대한 계획의 실현은 커녕, 센터내부의 민주주의마저도 압살당하고 말았다. 우리는 강서영상미디어센터의 파행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것인가? 그리고 도대체 문제의 원인은 뭔가? 왜 기분좋은 출발을 하고 전문단체라 일컬어지는 한독협과 미디액트가 보장한 강서영상미디어센터가 현재와 같은 파행사태를 맞이했는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이 바로 당면한 문화정책의 현주소를 알아가는 과정이자, 현시기 미디어운동 진영의 한계를 알아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3.
미디어센터에 대한 첫 번째 구상은 2000년에 출발한다. 한독협이 영진위에 제출한 문서를 통해서 미디어센터(당시에는 독립영화지원센터의 개념)의 구상을 제시한 후에 약 2년간의 연구와 토론을 걸쳐서 21세기 새로운 공공문화 기반시설로서의 공공영상서비스를 제공하는 미디어센터 개념으로 탄생하였다. 그러나 2002년 5월 9일 미디액트의 개관은 지난 20년간의 미디어운동과 독립영화 운동의 결실이자 변화된 미디어지형의 대응책이었다.미디액트는 비교적 성공적으로 출발하였고, 우리는 이러한 미디어센터의 전국적 확대를 고민하고 있었다. 이미 2001년부터 지역미디어센터 설립을 위한 전국네트워크 회의를 개최하여 지역차원에서의 센터 설립을 촉구하여왔다. 물론 그 결실은 지역이 아닌 서울에서 찾게 되었다. 영진위가 시범사업의 하나로 추진하였던 지역미디어센터 사업에 강서구청이 낙점을 받게 된 것이다. 4.
미디액트가 강서영상미디어센터에 개입한 것은 영진위 공모가 진행되기 훨씬 전인 2003년 1월이었다. 우리는 지역에서의 미디어센터 설립을 위한 새로운 모델을 고민하고 있었고, 강서시설관리공단은 자신들이 모든 돈을 댈테니 전문가들이 운영을 책임져달라고 했다. 강서영상미디어센터 성명서에 자주 등장하는 이성한 전무이사의 철썩 같은 약속이었다. 미디액트는 그 이후 수차례에 걸쳐서 강서영상미디어센터의 컨셉에서부터 운영내용, 사업내용, 사업방식, 운영방식 등에 대한 전문적인 조언을 하였고, 강서시설관리공단의 의뢰를 받아 이를 구체화하여 문서로 제출해 주었다. 그 내용은 고스란히 영진위 심사에 제출되었고, 강서구청을 계약당사자로 한 강서시설관리공단이 최초로 3억원의 자금을 받게 되었다. 5.
강서시설관리공단으로 결정을 할 때 핵심적인 문제는 과연 강서영상미디어센터가 민주적이고 자율적이며 전문적인 운영이 가능할 것인가? 더불어서 공공적이고 공익적인 운영원칙에 충실하게 운영되고 지역민들에게 봉사할 수 있을 것인가에 모아졌다. 강서시설관리공단은 이에 대해 한독협의 추천을 받아서 전문 스탭을 선발할 것이며, 미디액트의 전문적인 운영 노하우를 배울 것이라고 답했고, 심사위원단은 이에 덧붙여 전문적이고 자율적인 운영형태를 보다 구체화하고 독자적인 운영자문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전제로 하여 강서구청을 선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 약속은 선정 이후 모두 지켜지지 않았거나 혹은 무시되었다. 6.
강서영상미디어센터가 파행에 이른 것은 핵심적으로 위에서 언급한 모든 약속들이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문적이고 자율적인 운영을 보장하지 않았으며, 공공적이고 공익적인 활동들은 공단측의 비전문가들과 이른바 상급라인에 의해 철저하게 짓밟혔다. 체육센터와 주차장을 성공적으로 운영하였던 그들은 미디어센터도 그렇게 운영할 수 있을 것이며 그러면 3년 내에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을 것이라는 열망에 불타있었다. 준비기간 내내 우리가 강서시설관리공단에 그렇게 주의를 환기시키고 설득하고 설득하고, 주장하고 주장했던 이야기들이었다. 이런 현실이 오리라는 불길한 예감에.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운영권자가 되자마자 간단하게 이 모든 전제들을 무시해버린 것이다. 아주 쉽게. 무서운 사람들이다. 7.
이들에게는 공공의 자산이라는 개념이 들어설 여지는 별로 없다. 몇 년을 고생해서 만들어놓은 이 공간이 구청과 구의회와 시설관리공단과 몇몇 명망가들의 파워게임의 장으로 변질해버리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미디어센터가 어떻게 지역민들과 함께 미디어에 대해, 표현의 자유에 대해,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의 권리에 대해 고민할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빨리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뭔가 생색을 내는 것만이 중요할 뿐이다. 물론 우리는 이런 행태를 이해한다. 충분히 이해하고 심지어는 그 노력을 존중해줄 의지도 있다. 그러나 강서에서의 그 노력은 너무 천박했고 구태의연했으며, 20세기적이었다. 디지털 시대에 20세기적 조직관과 19세기적 세계관으로 뉴미디어를 다룰 수는 없는 것이다. 8.
2005년은 지역미디어센터가 전국적이고 광범위하게 구축되기 시작하는 원년에 해당한다. 방송위의 부산시청자 미디어센터가 10월에 개관할 것이고, 문화관광부에서는 지역에 2개관을 개소하고 2006년에 개소할 4개관을 역시 올해 결정할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여 매진해 온 지역 미디어센터 건립 활성화가 구체적 정책으로 입안되어 시행되는 이 시점에서 터진 강서영상미디어센터의 파행은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과제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싸움은 바로 지금 부터인지 모른다. 9.
핵심은 이렇다. 좋은 공간 만들면 뭐하느냐는 것이다. 지역마다 존재하는 문화공간과 문예회관들이 없어서 지역문화가 황폐해진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가 건설하려는 것은 화려한 디스플레이를 자랑하는 공간-체계가 아니라 일상적 삶을 실천으로 조직할 수 있는 새로운 생활공간이다. 이 새로운 생활공간은 수직적이고 일방적이며 비대칭적 의사소통에 기반한 전문가 문화의 전파가 아니라 한나 아렌트의 표현대로 "차이의 활성화"+"참여의 개방성"+"말하고 보고 듣는 행위의 무제한성"으로 압축할 수 있는 새로운 공공영역의 구축인 것이다. 이러한 공간의 구축은 공공영역 구축의 일차적 책임을 지게 되는 국가에 대한 전면적인 개조작업과 더불어서 새로운 공공영역을 운영하고 관장할 시민사회운동의 재구조화 작업이 동시에 일어나야 한다.강서의 예를 들면, 영화진흥위원회의 사업방식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성찰과 강서시설관리공단의 관행적인 사업운영에 대한 비판적 개입과 개조작업이 있어야했으며, 강서지역 시민사회영역의 아래로 부터의 조직화 작업이 있었어야 했다. 그리하여 강서영상미디어센터를 공단과 전문스탭간의 다툼의 장에서 강서시민들과 공단과의 투쟁전선으로 재편했어야 했다. 10.
우리는 그동안 문화적 공공영역이라는 새로운 영토를 개척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 새로운 문화적 공공영역은 과거 관주도 문화가 낳은 일방성, 폐쇄성, 계몽성, 전문가 집단주의의 폐해로 인한 생활세계의 문화적 빈곤을 넘어서는 새로운 실천의 공간으로 설계되었다. 그런데 설계에서 시공으로 넘어가는 순간 국가/관료/자본 혹은 정치인/재력가/권세가/지역유지/엘리트들로 대표되는 아날로그적/권위주의적 체계에 의해 주도권을 찬탈당할 수 있는 혹은 찬탈당하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강서영상미디어센터는 그들에 의해 탈영토화 되었고, 문화관광부가 추진하는 지역미디어센터 설립 사업은 그럴 가능성을 매우 농후하게 내포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설계도를 제출했다고 할지라도 제대로 된 감리 작업을 하지 않는다면 불 보듯 뻔하게 부실공사로 이어질 상황인 것이다. 지금까지의 싸움이 제대로 된 설계도를 만들고 가다듬는 과정이었다면 이제는 현상공모에 당선된 설계안을 어떻게 그 설계의 정신에 입각해 현실화시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11.
자 그래서, 우리는 문화관광부와 지자체에게 몇 가지를 물어봐야만 할듯하다.미디어센터가 만만하게 보이는가? 편집실 만들고 카메라 대충 몇 대 들여놓고 다달이 줄줄이 강좌 엮어서 홍보전단 만들어 시민들에게 배포하면 미디어센터가 돌아갈 것으로 믿는가? 혹은 미디어센터 몇 년 운영하면 인건비라도 충당할 정도의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으리라 믿는가? 혹은 촬영기술, 편집기술 교육하고, 카메라와 녹음기 저렴하게 대여하여 많은 시민들이 이용하면 그것이 성공한 미디어센터라고 생각하는가?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은 모두 부정적이다.중앙정부와 지역정부가 지금까지 한 것처럼, 문예회관 만들어서 아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 영화 가져와 틀고, 몇몇 상업영화 저렴하게 틀고, 한달에 한 두 번 문화강좌하는 식으로, 혹은 지역에 도서관 달랑 하나 지어놓고 몇몇 프로그램 유치하는 식의 활동으로 미디어센터를 이해한다면 결단코 미디어센터는 지역에서 성공할 수 없는 사업이다. 단선적이고 시혜적이며 일방적인 이러한 인식의 그물망으로는 결코 지역민들의 마음을 사로 잡을 수 없는 시대에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괜히 21세기 디지털 시대라고 일컫는 것이 아니다. 그냥 사족으로 쓰는 조어가 아니라는 말씀이다. 12.
저렴한 영상교육센터를 만들 요량이라면 애시 당초 손을 떼야한다. 괜히 지역에서 힘겹게 꾸려나가고 있는 영상교육기관들 파산시켜 안그래도 힘든 지역경제를 더욱 주름지게 하는 짓이다. 엄밀히 말한다면 지역미디어센터의 핵심적 역할은 '공동체 개발'이다. 20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사회가 고도화되고 복잡화 되면서 파편화되고 원자화된 개인이 제도화된 집단(국가, 학교, 병영, 미디어 등)의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의사소통 체계에 맞서 개인의 사회적/정치적 욕망과 개인과 개인간의 합리적 의사소통을 가능케할 물리적/정서적 공간을 창출해내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제로 등장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의사소통이 가능한 물리적/정서적 공간을 이미 일정한 사회적/정치적/경제적 기득권층이 장악하게 되면서 정보와 의사소통 체계 자체의 불평등이 생겨나게 되었다. 13.
페미니스트인 아이리스 영은 '보편적'이라는 이름으로 차이를 억압하고 여성을 배제하며, 특수성을 억압하고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그런 공공영역이 아니라 이에 의해 배제되고 억압된 특수한 집단들의 차이를 모두 포함하는 "이질적 공공(heterogeneous public)"을 건설하자고 주장한다.  그가 주장하는 이질적 공공은 첫째, 자신들의 경험과 이익을 반영할 수 있도록 그런 집단 간의 자기조직화를 지지하는 공적 지원이 사용가능할 것, 둘째, 그럼으로써 이 집단들이 사회정책에 기여할 수 있게 될 것, 셋째, 이 집단들이 자신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특수한 정책들에 대해 거부권을 가질 것 등의 요소들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본다 (배은경, 「여성과 공공영역」, 『21세기 한구사회와 공공영역 구축의 전망』). 차이가 차별이 되는 공간이 아니고, 소수자가 구조화되는 사회도 아니며, 정보가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시스템이 아니며, 미디어에 제한적으로 접근하는 구조가 아닌 새로운 공공영역의 개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14.
지역미디어센터는 이러한 이질적 공공영역의 하나이며, 21세기 소통체계의 핵심인 미디어 활용능력을 높이는 공간이며, 원자화된 개인과 개인간의 소통체로 기능하며 미디어를 통한 공동체 개발이라는 목적을 갖는 곳이다. 국가권력과 자본권력에 의해 수동적인 시민이자 문화의 단순 소비자로 전락한 현실을 극복하고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문화 생산자로 거듭나야하며 거대 담론체계를 생산해내는 국가자본 시스템과는 다른 의미생산체계로서 기능해야 한다. '공동체 개발'이라는 명제는 미디어를 통해 소통의 체계를 개발하는 것이고, 주류미디어에 의해 배제되어왔던 목소리를 살려내는 일이며, 잊혀졌던 시민들의 권리를 복권시키는 일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이는 참여 민주주의를 외치는 현정부의 국정과제와도 전혀 배치되는 정책이 아니며 오히려 더욱 권장하고 장려해야 하는 일이다. 다만 이러한 과제를 과거 박정희 정권처럼 초가지붕 없애는 방식이 아닌 아래로부터의 참여가 보장되고, 민주적이고 자율적인 운영을 전제로 한 정책집행이 되어야 한다. 15.
따라서 지역미디어센터는 어떤 사람들이, 어떠한 내용을 교육받을 것이며, 교육 이후에 개인들의 삶은 어떻게 변화되어 갈 것이며, 지역사회는 이런 개인의 삶의 변화를 어떤 방식으로 수용할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문화 혹은 미디어'가 '상품'으로 거래되는 것이 아니라 내밀한 '삶'의 고백과 격정적인 '예술'의 향취와 '불평등'에 대한 날카로운 고발이 사람들 사이에서 공유되고 토론되며 사회적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기나긴 여정의 하나로 인식되어야 하는것이다. 정부 혹은 공공기관은 이러한 새로운 사회적 문제해결의 패러다임을 지지하고 보장하며 권장해주어야 한다. 지역미디어센터는 이러한 역할을 담당하는 중요한 공간이 될 것이다. 제대로 된 지역미디어센터라면 말이다. 16.
강서영상미디어센터 사태가 주는 교훈은 우리 사회가 문화적 공공영역의 역할과 의미에 대한 철학적이고 실질적인 논쟁에 들어가게 되었음을 의미함과 동시에 정부와 시민사회단체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부디 부탁컨대, 문광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과거 무수히 저지른 오류를 반복하지 말라. 지금 지역에 골칫거리로 방치되고 있는 수많은 수십억짜리 문화공간이 어디 한 둘이란 말인가? 공간이 사람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자본투자를 요청하고 있는 비효율적 문화공간에 대한 전철을 밟지 말고 설계에서 기초공사 그리고 완공과 이후 운영에 이르기까지 제발 홀로 독야청청하지 말고 시민사회와 전문가 집단의 의견을 잘 살피고 관과 시민사회가 함께 지원과 감시 활동을 하는 공동경비구역으로 설정하자는 말이다. 이제는 관에 의한 독단적 운영도, 시민사회단체에 의한 비효율적 경영도 아닌 지원시스템의 체계화와 운영의 전문화 및 자율적 운영의 새로운 모델들을 찾아나가야 하는 시점에 온 것이다. 17.
그런 점에서 가장 비민주적이고 권위적이라고 평가되었던 방송위원회의 최근의 행보는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2005년 10월 개관을 목표로 공사가 진행 중인 부산의 시청자미디어센터는 초기의 문제점들을 극복하고 전문가와 시민사회단체의 참여로 방송위원회와 공동의 테이블을 구성하여 8개월에 걸친 논의과정을 통해 방송위와 지역민들에 의한 새로운 형태의 운영모델을 합의했다는 것은 큰 성과이다. 방송위의 전폭적인 지원과 지역 전문단체와 시민들에 의해 추천된 운영위원회가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의 운영을 전면적으로 책임지는 구조로서 관주도의 직영모델도 시민사회단체의 위탁모델도 아닌 제3의 모델로 평가할만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떠한 모델이냐가 아니라 어떤 논의구조 속에서 지역에 적합한 모델을 찾느냐 하는 과정의 문제일 것이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문광부와 지역미디어센터를 설립할 의향이 있는 지자체는 다시 한번 미디어센터 설립의 취지를 이해하면서 아래로부터의 논의를 조직화하라. 지금은 관과 시민단체가 대립하는 시기가 아니라 서로의 장점을 수용하고 단점을 보완하는 보족적인 관계로 이미 진입해있다. 결코 주어져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기를 바란다. 더불어 지역의 시민들과 관련 단체들은 지역미디어센터 설립 운동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혈세가 낭비되지 않도록, 그리고 우리들의 미디어를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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