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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98호 리뷰] 빅브라더 완전정복 - 소설 <리틀브라더>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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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6. 5. 1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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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98호 리뷰 2016.5.23] 


빅브라더 완전정복

-  소설 <리틀 브라더>(코리 닥터로우) 리뷰


주일(창작자)


* 이 글에는 아주 약간의 미리니름(스포일러)이 있습니다.


학교 전산망 해킹이 주특기이고, 수업 땡땡이가 취미인 삐딱한 열일곱 살 소년 마커스 얄로우. 우연히 게임을 하던 중 친구들과 함께 테러 용의자가 되고, 국가기관으로부터 갖은 고초를 당하고 감시까지 받게 된 소년은 이에 맞서 한판 유쾌한 싸움을 벌인다.

- <리틀 브라더> 줄거리




감시사회, 오래된 미래


 단언컨대 우리는 이미 감시사회에 살고 있다. CCTV 같은 감시 도구나 휴대폰 도감청 같은 수사 방식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편리하고 효율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 개발하고 도입한 많은 장치와 기술들이 어떤 의도에서든 우리 자신을 감시하고 억압하는 도구로 작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소설은 2008년, 아직 제대로 된 스마트폰이 나오지도 않았을 때의 기술을 다루고 있으니 그보다 몇 배 더 진보된 기술이 보급된 2016년을 살고 있는 여러분은 훨씬 많은 감시의 눈 아래에서 살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다음은 소설에 등장했던 몇 가지 기술에 대한 설명이다.




▲ 그림2 전파를 차단해주는 지갑과 주머니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쉽게 살 수 있다



1. NFC, RFID


 NFC(근거리 무선 통신)과 RFID(전파 기반 식별기)는 이미 일상에서 없으면 안 될 정도로 보급되어 있다. 도서관이나 상점에서는 도난을 막기 위해 책과 제품에 RFID 태그를 삽입하고 있다. 정상적인 대출신청이나 결제를 하지 않고 들고 나가면 경보음이 울리는 건 이런 기술 덕분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나 식당에서 밥을 먹은 뒤 카드를 꺼내지 않고 지갑을 갖다 대는 것만으로 결제를 할 수 있는 것도 카드마다 RFID나 NFC칩이 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속도로 하이패스 단말기도 같은 원리고, 집 잃은 동물을 막기 위해 도입한 반려동물 등록제에 참여할 때 동물의 몸속에 넣는 쌀알 크기의 마이크로칩도 같은 원리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 마커스는 책의 위치를 파악할 목적의 감지기가 설치된 학교에서 ‘땡땡이’를 치기 위해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전파 차단 주머니에 넣는다. 이는 책의 이동, 즉 책 대출자의 이동을 기록하고 감시하려는 학교의 시도를 무산시키기 위해서다. 이미 시중에는 카드와 휴대폰을 의도하지 않은 전파 스캔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각종 케이스와 지갑이 판매되고 있다. 이런 제품들은 대중교통 승하차나 비용을 지불하는 때가 아닌 일상생활 중에 벌어질 수 있는 위치 추적이나 카드 복제로부터 이용자를 지켜줄 수 있다. 특히 예전에는 카드 정보를 복사하려면 마그네틱 카드를 단말기에 긁는 절차가 필요했지만 점차 비접촉식 카드로 바뀌고 있는 요즘에는 단말기를 뒷주머니에 슬쩍 갖다 대기만 해도 카드 정보를 복제할 수 있기 때문에 좀 더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소설에서처럼 언제든지 카드의 정보를 빼앗길 수도 있고, 다른 이의 카드 정보가 내 카드에 심어질 수도 있으니까. 마커스처럼 전자레인지에 카드나 책을 넣고 돌리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불이 나지 않을 만큼 짧은 시간만 돌려야 하는 걸 잊지 말자(전문가의 도움 없이 따라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 그림3 이제 감시카메라는 단순히 찍기만 하지 않는다.

출처: http_www.systemindus.com_cctv.htm



2. 감시카메라


 대한민국은 이미 감시카메라 천국이다. 방범용 카메라는 강력 범죄가 터질 때마다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사건·사고를 다루는 뉴스에서는 CCTV나 차량 블랙박스 영상 없이는 보도를 할 수가 없을 지경이다. 카메라의 해상도는 풀HD를 넘어 4K로 가고 있고, 단순히 촬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분석해서 피사체의 얼굴과 체형을 파악하고, 여러 카메라에 찍힌 영상들을 분석해서 자동으로 이동 경로를 파악하기도 한다. 당신이 도시에서 살면서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와 직장을 가고 대중교통을 탄다면 수많은 카메라에 노출되지 않을 방법은 전혀 없다.

 마커스는 걸음걸이 습관으로 사람을 인식하는 시스템을 피하기 위해 신발 속에 이물질을 넣어 이상한 걸음걸이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런 잔머리도 이제 그리 효과를 보긴 어려울 것 같다. 이미 윤곽을 분석해서 복면 뒤 가려진 얼굴을 검출해내거나 원격으로 체온과 심박, 홍채를 촬영하여 개인 정보를 대조할 수 있는 비대면 시스템이 보급되고 있기 때문이다.(*참고1)



▲ 그림4 메신저 보안에서 가장 중요한 종단암호화 기술

출처: http://blog.kakaocorp.co.kr/252


3. 메신저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대부분 문자 메시지로 소통한다. 일반 SMS 서비스를 넘어 메신저를 통해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오가며 문자, 사진, 동영상, 음성 메시지 등 다양한 방법으로 대화를 나눈다. 개인적 대화를 비롯해 업무상의 대화나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자료를 교환하기까지 그야말로 세상은 메신저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메신저 프로그램은 유용하고 편리한 만큼 위험성도 크다. 소리를 기반으로 하는 음성 통화와는 달리 문자를 포함한 멀티미디어 방식으로 저장되고 전달되기 때문에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실록’이다. 모든 형태의 대화가 있는 그대로 기록되기 때문에 누군가 중간에서 들여다 볼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단순히 호기심에서 들여다 볼 수도 있겠지만 범죄자가 볼 수도 있고 수사기관에서도 볼 수 있다.

  마커스는 경찰이나 국토안보부(NSA) 같은 수사기관의 감시를 피해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려고 가정용 콘솔게임기 엑스박스에서 제공하는 대화 기능을 이용했다. 원래는 멀리 떨어진 게이머들이 대화를 하며 게임을 하는 것을 의도해서 만들어졌겠지만, 마커스처럼 감시를 피해 은밀한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대중적인 메신저가 아닌 게임속 채팅창에서 서로만 아는 은어를 이용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3시 방향으로 질럿 세 부대 보내’라는 말이 ‘3시에 쇼핑몰로 3만원 들고와’라는 말인지 알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래서인지 범죄자들이나 테러범들이 엑스박스나 플레이스테이션 같은 게임기의 메신저 기능을 이용한다는 소문도 있지만 정확히 밝혀진 것은 없다.(*참고2) 

  누군가 자신의 대화를 들여다보는 게 싫은 사람들은 강력한 암호화 기능을 제공하는 메신저를 찾기도 한다. 카카오톡 본사 서버에 압수수색영장이 발부된 이후 종단암호화를 적용했다는 러시아산 메신저 텔레그램(Telegram)으로 망명한 사람이 늘어난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 갈수록 암호화에 대한 관심은 커질 것이다. 이후 카카오톡도 종단암호화 기술을 적용했다지만 그것도 못 미더운 사람들은 블립(Bleep) 같은 P2P 방식의 메신저를 쓰기도 한다. 기존의 메신저 대화는 중앙 서버를 거치며 저장되기 때문에 암호화가 되든 안되든 잠깐이라도 가로챌 여지가 있지만, P2P 방식의 메신저는 서로 ‘암호 열쇠’를 교환한 당사자끼리만 대화를 나눌 수 있기 때문에 휴대폰을 입수하지 않는 이상 대화가 유출될 확률은 매우 낮다. 소설 속에서 마커스 일당이 바닷가에서 만나 신뢰할 수 있는 사람끼리만 ‘열쇠’를 교환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밖에 시그널(signal)이란 메신저 텔레그램처럼 보안성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 그림5 ‘스마트보안관’ 실행 화면.



4. 교육용 컴퓨터 감시


 마커스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휴대용 컴퓨터를 제공한다. 학생들의 학습을 돕기 위해 제공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이 게임을 깔고, 이상한 사이트에 접속하고, 친구들과 잡답을 나눌 건 뻔한 일이기 때문에 관리·제어 프로그램이 기본적으로 설치되어 있다. 컴퓨터 실력이 출중한 마커스는 시스템의 헛점을 이용해 뒷문(Back door)으로 들락거리며 자신의 컴퓨터처럼 자유롭게 사용하지만 대다수의 학생들은 사전에 허가된 기능과 프로그램만 이용하며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할 게 분명하다. 이런 학교 당국의 정책이 끔찍하다고 느끼겠지만 이보다 더한 시도가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스마트 보안관’이라는 앱(*참고3)이 있다. 자녀들의 스마트폰에 설치해서 부모가 허락한 앱과 사이트만 접근하게 하며, 모든 활동이 기록되어 부모가 확인할 수 있게 도와주는 앱이다. 의도는 좋다. 아직 어린 자녀들이 음란 사이트에 접속하거나 공부에 방해되는 게임만 붙들고 있는 걸 막아주며, 친구들과 주고받는 문자를 분석해서 학교 폭력이나 집단 따돌림의 징후가 보이면 재깍 알려준다니 부모에게 이보다 더 좋은 앱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미성년 자녀들의 의견이나 인권은 무시된 채 설치되는 것도 문제고, 이런 앱으로 청소년기에 벌어질 수 있는 수많은 문제들을 예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N사의 지식인에 가면 부모 몰래 이 앱을 삭제하는 방법을 찾고 공유하는 많은 게시글을 확인할 수 있는데 부모들은 이런 사실을 알고나 있을까 싶다. 그리고 이런 어이없는 일을 피하고 수업시간에 휴대폰 소지를 막는 정책에 저항하고자 아예 ‘세컨 휴대폰’을 쓰는 학생들도 있다고 하니…. 영화 <인터스텔라>의 대사가 떠오른다.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그림6 스마트보안관을 지우고 싶은 사람들은 한둘이 아니다. 현재는 서비스를 중단한 상태지만 유사한 어플리케이션은 여전히 내려받을 수 있다. 



5. 게스트 모드(시크릿 모드)

 마커스는 국가안보국 요원들에게 감금당하며 휴대폰을 빼앗긴다. 그는 미리 휴대폰에 두 개의 파티션(저장공간)을 나눠놓아 비밀스런 정보를 숨기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쉽게 접근하는 파티션에는 평범한 내용들을 저장하고 비밀 파티션에는 은밀한 정보들을 저장했다면 불시에 휴대폰의 통제권을 넘겨주더라도 안전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결국 협박에 못 이겨 휴대폰 잠금을 풀어준 마커스의 사적 정보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공권력’에게 넘어가고 만다.

 몇몇 스마트폰은 게스트 모드 잠금 해제를 제공한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주로 쓰는 비밀번호를 입력해서 평소처럼 사용하다가 친구나 가족에게 잠깐 휴대폰을 건네줄 때에는 ‘손님용’ 암호를 입력해서 사전에 허용한 곳만 들어갈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기능이다. 당연히 사진첩이나 평소 즐겨찾는 사이트 주소, 비밀스러운 앱에는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스마트폰 소유자의 사생활이 보호된다. 이 기능은 일반적인 컴퓨터 운영체제에서도 구현할 수 있다. 부팅 후 로그인할 때 시스템 관리자와 손님 계정을 따로 만들어서 손님 계정으로 접속한 사람에겐 일부 기능만 허락하면 되는 것이다. 이 방식을 이용한다면 사생활을 지키는 것은 물론 컴퓨터를 잘 못 다루는 지인이나 이상한 게임을 잔뜩 깔고 도망가는 걸로 유명한 조카에게서 내 컴퓨터의 건강을 지킬 수도 있다.  



▲ 그림7 좀비PC가 되면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공격하게 된다.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Botnet


6. 좀비PC


 디도스(DDoS) 공격이라고 들어 봤을 것이다. 여러 컴퓨터가 한 사이트에 동시에 접속해서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부하를 걸리게 만드는 공격 방법인데, 이를 위해서는 사전에 해커가 불특정 다수의 컴퓨터에 악성코드(봇)를 설치해야 한다. 누군가 메일에 첨부된 파일을 열거나 심한 경우에는 특정 사이트에 접속만 해도 봇이 설치될 수 있다. 이렇게 감염된 공격용 컴퓨터들을 봇네트(Bot-net)라고 부르는데 소유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인다고 해서 좀비PC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단 누군가의 컴퓨터나 스마트폰이 악성코드에 감염되면 해커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특정 사이트를 일시에 공격해서 작동을 중단하게 만들 수도 있고, 이용자가 입력하는 암호를 고스란히 받아볼 수도 있고, 감염된 장치와 연결되어 있는 누군가의 장치도 똑같은 좀비PC로 만들 수 있다. 더 무서운 건 평소에는 얌전히 잠복해 있다가 해커가 입력한 조건에 맞는 상황이 되거나 특정 일시가 되면 순식간에 좀비로 변하기 때문에 평소에는 전혀 인지할 수조차 없다는 것이다. 예방법? 의심스러운 사이트에 가지 않고, 아무 메일이나 열어보지 말고, 평소에 보안을 위한 운영체제 업데이트에 신경 쓰며, 반드시 백신 프로그램을 설치해서 늘 감시하는 수밖에 없다.

 마커스는 평소에 자신을 괴롭히던 얄미운 동급생 찰스에게 도망치기 위해 일종의 디도스 공격을 감행한다. 예전에 감염시켜 둔 3천 대의 컴퓨터가 찰스의 전화기로 일시에 전화를 걸고 문자를 보내게 만든다. 전송되는 데이터량은 엄청나서 전화기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기 때문에 정상적인 작동을 멈추고 끊임없이 벨소리와 문자수신음을 뱉을 수밖에 없다. 찰스군, 다음부턴 당장 배터리부터 뽑길…. 



▲그림8 최근에 공개된 인터넷 브라우저 Opera 개발자 버전을 쓰면 VPN을 이용한 우회접속을 손쉽게 할 수 있다. 국가나 기업 내부망에서 막아둔 사이트를 접속할 수 있는 아주 유용한 도구.

 


7. 네트워크 감시


 인터넷망을 통해 흐르는 정보들은 기본적으로 데이터 파일이다. 데이터 파일은 추적할 수 있다. 또 제대로 복사만 한다면 원본과 동일하게 복구할 수 있다. 요즘에는 대부분의 중요한 데이터가 암호화 처리되어 중간에 낚아채더라도(패킷 감청) 내용을 들여다보기가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꼭 내부를 보지 않더라도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은 무궁무진하다. 소설 속에서 ‘베이즈 확률’에 대한 설명을 하는 장면이 꽤 자세히 나온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누군가 다른 사람들보다 암호화된 데이터를 더 많이 주고받는다면 수사기관으로서는 그를 의심할 만하다는 내용이다. 다시 말해 넓은 바다에서 낚시를 할 때 굳이 모든 지역의 바다 속을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바다 새들이 많이 모여 있는 수역에 그물을 던지면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중국 같은 인터넷 감시가 철저한 사회에서 누군가 우회 접속 방식(*참고4)으로 금지된 사이트에 접속한다고 가정하자. 처음에는 일반적인 웹서핑처럼 보여서 발각될 확률이 적겠지만 반복해서 특정 사이트에 접근하거나 유사한 행태를 보이는 사람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늘어난다면 평소에 데이터 흐름을 관리하는 통신망 사업자나 검열기관에서는 곧바로 ‘비정상 징후’를 감지하고 조사 내지는 차단에 들어갈 것이다. 

 이뿐 아니다. 빅데이터 분석(*참고5) 기법을 이용하면 이용자들이 무심코 입력하고 클릭했던 모든 기록들을 바탕으로 세밀한 그림을 그릴 수가 있다. 인터넷 브라우저를 사용하며 쌓이는 쿠키(*참고6)나 스마트폰으로 SNS에 올리는 다양한 자료들은 사소해 보이지만 한 데 모아놓으면 이용자에 대한 많은 정보를 알려줄 수 있는 소중한 증거들이다. 평소에 어딜 가고 누굴 만나고 무엇을 사고 언제 어떤 활동을 하는지 데이터 생산자의 기억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면 범죄자나 수사기관들이 굳이 미행을 하고 뒷조사를 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까지 하다. (그런 점에서 특정 회사의 스마트폰이나 메신저 앱의 보안 수준이 높아서 수사에 어려움을 주니 수사기관에 협조해달라는 엄살을 보면 기만책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이미 뚫을 방법을 마련해둔 뒤 ‘불순한’ 사람들이 대량으로 망명하면 오히려 더 감시를 수월하게 할 수 있으니까 (*참고7) 



8. 도청 장치 찾기


 소설에서 마커스가 국가안보국에 감금당했다가 방면되어 자기 방에 돌아오는 장면이 나온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챈 마커스는 랩탑 안에 숨겨진 소형 도청기를 발견한다. 이후 단돈 3달러짜리 수제 탐지기로 감시 카메라가 없나 수색하기도 하는데 이런 풍경은 한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평소에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는 범죄자나 사기 도박꾼뿐만 아니라 숙박시설을 이용하는 평범한 연인들도 감시 카메라나 이중 거울이 있는지 살펴보는 게 일상이 되었다.(*참고8) 물론 정적이 많은 정치인들도 빼놓을 순 없을 것이다.



▲ 그림9 오픈소스의 의사소통 구조는 쌍방향이다.



9. 오픈 소스

 이 소설의 주된 테마는 ‘열다(open)’다. 이 주장은 사람간의 태도에 있어서도, 국가와 시민 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유효하다. 또한 정보사회의 모든 데이터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암호화 체계에 대해서도 유효한 주장이다. 작가는 주인공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암호 체계가 제대로 작동되는지 알려면 대중에게 공개해야 한다. 그 체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저마다 가진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그 체계를 두드려보고 안전성을 점검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결점을 찾아내지 못할수록 암호 체계는 안전한 것이 된다.’(*참고9) 

 보통은 닫혀 있을수록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광장과 대로변에서 범죄가 자주 발생하는 지, 뒷골목에서 더 발생하는지를. 가끔 보안업체들은 상금을 걸고 해킹대회를 연다. ‘우리 시스템을 해킹하면 얼마를 주겠다.’ 단순하게는 자사 기술을 자랑하고 홍보하기 위한 목적이 크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신들의 모든 것을 공개해서 허점을 찾고 빈틈을 메우려는 시도의 일환일 것이다. 물론 장기적으로 봤을 때도 상금 몇 푼을 주는 게 대형사고가 터진 후 수습하는 비용보다 경제적으로도 이득인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핵심은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볼수록 시스템이 오류를 일으킬 확률이 적다는 점이다.

 작가는 오픈 소스 형태로 운영되는 소프트웨어와 시스템을 찬양한다. 비록 처음에는 완성도가 떨어질 수도 있지만 누구나 참여해서 고칠 수 있고 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점이 민주주의의 가치와 일맥상통해서 찬양하는 것이리라. 또 모든 게 공개되어 있기 때문에 불순한 의도를 가진 세력이 장난을 칠 수가 없다. 가령 미국 국토안보부가 가장 널리 쓰이는 암호화 체계를 리버스 엔지니어링(Reverse Engineering. 역공학. 기계를 뜯어 원리를 이해하기)한 뒤 자기들만 들여다 볼 수 있는 백도어(Back door, 담장에 뚫린 개구멍)를 어딘가에 집어넣었다 치자. 코드를 살펴보던 누군가는 원본과 다른 것을 발견하고 게시판에 알릴 것이고, 누군가는 백도어 코드가 보안에 취약한 부분이라 생각하고는 당장 보안을 강화한 수정 버전을 업로드할 것이다. 열려 있기에 더욱 안전할 수 있다는 역설, 저자는 비단 암호화 뿐만 아니라 사회 체제 전반에 대해서도 이 점을 강조하고 싶어서 이 책을 쓴 것으로 보인다.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이 되다


 언뜻 어려워 보이는 기술이 이야기 곳곳에 섞여 있고 주인공의 주요 활동 무대도 온라인 공간이다 보니 기술에 친숙하지 않은 사람이나 기성세대들은 이 소설이 남의 이야기, 다른 곳의 이야기,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만 집중해보면 나의 이야기, 이곳의 이야기, 바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라고 깨닫게 될 것이다. 어쩌면 테러방지법과 사이버테러방지법이 입법화되고 시행되기 직전인 현재의 대한민국에선 이미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국가는 국민과 국가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한다. 밖으로는 외적을 경계하고 안으로는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불순분자와 선동세력을 감시하며 혹시라도 벌어질 위험한 사태를 미연에 막고 사후에라도 빠르게 수습하기 위해 자신들이 갖고 있는 권력을 이용해서 항상 모든 곳을 지켜보고 있다. 특히 요즘처럼 테러리즘이 전 세계적으로 만연하고 사회 곳곳에서 불만과 갈등이 터져 나오고 있는 시점에서는 갖고 있는 모든 자원을 동원해서 사회 안전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것이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테러와 범죄를 막겠다고 국가가 움직이면 필시 일부 내지는 다수 국민의 기본권에 제한을 가하고 사회 전체적으로 감시와 검열이 일상화될 수밖에 없다. 소설 속 미국이 모습이 그렇지 않은가.

 테러가 발생한 후 알 수 없는 수사기관의 요원들이 현장 근처의 수상한 사람들을 무작정 체포하여 감금한다. 그들을 테러리스트 내지는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가정하고 자백할 때까지 모든 방법을 동원해 수사한다. 이 과정에서 미란다 원칙이나 인도적인 배려는 실종되고 합법적인 법규와 절차 따위는 철저히 무시된다. 애국과 사회 안전을 강조하며 협조를 강요하고, 이를 거절하면 반역자로 몰아세운다. 결국 한계에 이른 무고한 사람들은 감금을 벗어나기 위해 협조를 한다. 형식적으로야 자발적인 협조고 물리적 고문은 없다지만 강압과 겁박, 변호인 없이 제한된 정보만을 제공해서 억지로 얻어낸 협조가 어찌 자발적일 수 있을까. 게다가 사회에서와는 다르게 이름이 아닌 바코드에 박힌 번호로 취급되고, 수갑이 아닌 고작 플라스틱 끈인 케이블 타이에 묶여서 꼼짝도 못하는 상황이라면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것을 너머 자존감마저 사라지고 무력감에 휩싸이지 않을까.

 규정이 예외가 되고, 예외가 규정이 되는 이런 상황이 테러 발생 현장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라 일상 전체로 번진다면 어떨까. 모든 정보는 검열 기관을 통해 관찰·감시될 수 있고, 개인의 사생활조차 수사를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접근이 가능하고, 예측을 벗어나서 자유롭게 움직이고 통제가 어려운 ‘비표준유형’ 존재들에게 이상한 딱지를 붙이고 순순히 길들여지길 바라는 분위기가 확산된다면, 그때도 우리는 자유로운 존재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사회는 민주주의 국가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애석하게도 현재 제출된 테러방지법과 시행령의 독소조항(*참고10)들을 보면 그렇다고 말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테러리스트가 공포와 불안감을 조장해서 이익을 취하는 존재라면, 마찬가지로 테러에 대한 공포를 동력으로 삼아 움직이고 국민들에게 끊임없이 겁을 주며 덩치를 불려나가는 국가나 권력기관은 그들과 무엇이 다를까. 활동 근거가 법조문에 적혀 있다고 해서, ‘합법적으로’ 선출된 권력이라고 해서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가치를 하찮게 여긴다면 그들을 테러리스트라고 부르지 않을 도리가 있나. 국가와 국민을 위해 테러리스트와 싸운다는 명분을 앞세우고 국민 전체와 싸우려는 세력들을 볼 때마다 니체의 이 말이 떠오른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 그림 ‘리틀브라더’의 후속작 ‘홈랜드’의 표지. 주인공들의 대대적인 반격이 예상된다. 



리틀 브라더로 살기


 조지 오웰이 ‘1984’에서 경계한 빅브라더는 이미 우리 곁에 다가와 있다. 하지만 우리는 ‘1984’와는 다른 세상을 만들어 나갈 여지를 갖고 있다. 이 소설의 작가인 코리 닥터로우의 주장처럼 사회 곳곳에서 빅브라더를 감시하고 견제할 존재들이 활약한다면, 아니, 그보다는 우리가 리틀 브라더가 된다면 의외로 간단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시민 모두가 자신의 사생활을 소중히 생각하며 헌법과 기본권은 타협할 성질의 것이 아니란 점을 명심하며 살아가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찔릴 게 없다면, 당당하면 모든 것을 공개해도 되지 않겠냐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한 사람의 사생활이란 건 당사자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서도 최고의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인류 역사 속에서 개인의 존엄이 무너졌을 때 그것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했는지를 상기해본다면 답은 명확하다. 개인이 없는 집단이 존재할 수 있을까. 

 통합과 집중이 만능은 아니다. 권력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데 테러와 범죄로부터 사회를 안전하게 지킨다는 명목으로 소수의 기관에게 힘을 몰아주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다. 삼권분립이란 제도를 도입하거나 군과 종교를 정치로부터 분리시킨 의도를 떠올려보면 알 수 있다. 각 주체들이 서로를 감시하고 견제하며 다양한 시각을 갖고 활동하지 않으면 국가와 사회가 건강하게 작동할 수 없다. 민주주의는 언제나 외줄타기였다. 독재나 전체주의라는 강물이 흐르는 계곡 위 외줄타기.

 광장으로 나가야 한다. 꼭 물리적인 공간일 필요는 없다. 서울 광화문 광장일 수도 있고, SNS 같은 온라인 광장일 수도 있고, 딥웹(deep web)이나 소설 속 엑스넷 같은 은밀한 공간일 수도 있다. 각자에게 맞는 곳에 모여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소통하고 자신이 믿는 바를 실천하면 된다. 핵심은 여럿이 모여 연대해야 한다는 것이고, 권력자들로 하여금 다수의 시민들이 매서운 눈초리로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음을 잊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편리함을 누리기 위해 별 고민 없이 이용해 오던 문명의 이기들로부터 조금은 거리를 두는 것도 필요하다. 국가와 기업들은 개인들이 각종 장치와 서비스를 이용하며 ‘자발적으로’ 제공한 정보들에서 많은 것들을 얻고 있는데, 비록 나쁜 일에 쓰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가 인지하지 못한 채 원하지도 않는 일에 활용되는 건 사생활 침해를 넘어 권한(권력) 남용이기 때문이다. 만약 모든 것이 연결된 사물인터넷 시대에 살며 그런 기술로부터 멀어질 수 없다면 적어도 어떻게 움직이는 지에 대해서라도 관심을 갖자. 무심코 ‘동의’ 버튼을 누르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서 평소에 자신이 이용하는 기술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자. ‘법은 권리 위에 잠자는 자를 보호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기술도 그러하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책 ‘리틀 브라더’를 읽자. 글 솜씨가 부족해서 딱딱하게 설명을 하긴 했지만 이 책은 분명 재미있는 책이니까. 다 읽고 나면 여러분도 리틀 브라더가 되고 싶을 것이다.


※ 영상 리뷰 보기



[필자소개] 주일(창작자)

영상제작자 / 전기로 돌아가는 것들에 관심이 많은 자


* 참고자료


참고1: 지하철에서 몰래 찍은 사진으로 사진 주인공의 SNS 찾기 프로젝트

https://birdinflight.com/ru/vdohnovenie/fotoproect/06042016-face-big-data.html


참고2: 2015 파리 테러범들이 게임기 PS4 채팅 기능을 이용했다는 소문에 대한 칼럼

http://www.khga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86206

http://www.nbcom.co.kr/shop/board/view.php?&id=news&no=109


참고3: 스마트 보안관

http://slownews.kr/47930


참고4: 우회접속 방법 소개

http://smartincome.tistory.com/157


참고5: ‘ACT! 84호 리뷰’ 

http://goo.gl/l1Hu47


참고6: ’ACT! 95호 학습소설’

http://actmediact.tistory.com/273


참고7: 국정원 스마트폰 감청 소프트웨어 RCS 구입 기사

http://www.bloter.net/archives/232939


FBI의 아이폰 잠금 해제 요구 기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2182241535


참고8: 몰카 찾는 법

https://univ20.com/13786


참고9: 오픈 소스 암호화가 더 우월한 이유에 대한 기사

http://www.bloter.net/archives/216614


참고10: 테러방지법 시행령(안) 반대 시민의견서

http://www.peoplepower21.org/Government/1413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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