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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97호 학습소설] (7) 숫자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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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6. 2. 24.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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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97호 학습소설 2016.03.07]



ACT! 학습소설 (7) 숫자의 반란


주일(창작자)





어느날 세상 모든 숫자가 사라졌다.

처음엔 인쇄된 숫자가 사라졌다.








아침에 일어난 사람들은 시간을 몰라 허둥댄다.

버스와 전철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무엇을 타야 할지 몰라 걸어가기로 한다.

운전자들은 속도에 대한 감을 잃어 툭하면 과속을 저지른다.

하지만 단속 경찰도 스피드건을 읽지 못하니 그냥 놓아줄 수밖에. 

그 덕분에 교통사고가 폭증한다.


상점들은 아예 문을 닫았다.

가격도 읽을 수 없고 재고 파악도 안되는데 어떻게 영업을 하란 말인가.

여차저차 직장에 간 직장인들은 정전을 만난 듯 평온한 시간을 보낸다.

전화번호를 모르니 통화를 할 수 없고 숫자가 없으니 엑셀을 다룰 수 없고 문서에서 숫자가 안 보이니 일을 할 수가 없다. 

쪽번호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회의는 할 수 있을까.







학교도 난리다.

매번 번호가 아닌 이름으로 학생을 부르느라 수업시간이 모자라고 책 쪽수를 몰라 교사와 학생들이 제각기 딴 곳을 펴들고 있다. 

그러고 보니 한 교실에 두 명의 교사가 들어와 있기도 하다.

몇 교시인지 알 도리가 없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

이 와중에도 성적이 나쁜 학생들은 웃음을 잃지 않는다. 

시험이 사라졌으니.

주관식 시험을 보면 되지 않겠냐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면 뭐하나. 

점수를 매길 수 없는데.


식당과 주방에선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재료를 계량화할 수 없으니 오로지 눈대중으로 요리를 한다.

너무 짜고 너무 맵고 가끔은 먹을 수 없는 음식까지 식탁 위에 올라온다.

그 덕에 평생 손맛으로만 요리하던 식당의 문턱이 닳아 없어질 지경이다.


가장 심각한 곳은 금융권.

모두들 지구 종말을 앞둔 사람들처럼 멘붕에 빠져 있다.

모든 종이 위에 금액이 사라지니 글자와 초상화 인물로 액수를 판별해 보지만 이윽고 포기하고 만다.

몇 장인지 일일이 세어 기억하는 것도 한계가 있지. 

쓰기만 하면 지워지는 숫자 앞에선 모든 금융 거래는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이체나 주식 거래 같은 전산망을 이용한 업무는 말할 필요도 없고. 


결국 모든 곳에서 손가락 발가락까지 동원해서 물건을 세고 교환하는 풍토가 확산된다.

당근 하나 둘 셋 넷 다섯 개 주세요.

여기 퇴계 이황 그려진 천 원 짜리 하나 둘 세 장이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숫자 개념조차 사라지고 만다.

무엇이 많고 적은 지조차 비교할 수 없게 되니 모든 거래가 중단된다.







교통수단을 믿지 못하게 된 사람들로 거리가 가득 찬다.

전화를 걸 수 없으니 직접 두 발로 걸어서 말을 전하러 가야 한다.

단축다이얼을 쓰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생각이다.

숫자가 없는데 컴퓨터와 전화교환기는 작동하고 있을 것 같은가. 


해 뜨자마자 일어나 걷던 한 사람은 정오 무렵 친구에게 찾아가 밥 한 끼를 함께 하며 단순한 안부를 묻는다.

친구가 몇 동 몇 호에 사는지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 사람은 술취한 사람들의 본능을 떠올려보시라.

안부를 물은 후 다시 한참을 걸어 해질 무렵에 집에 도착한다.

자연스레 이동 범위가 줄어들게 되어 소수의 가까운 사람들과 친밀해진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결혼식을 치르는 사람들이 있긴 하다.

그런데 결혼식장 풍경이 재미있다.

축의금은 사라지고 저마다 집에 있는 소중한 물건들을 선물로 들고 온다.

예전에 상대방의 잔치에서 얼마 냈는지 따져볼 수조차 없으니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그냥 받을 수밖에.


스포츠에 대한 태도도 달라진다.

야구나 농구 같은 점수를 내야 하는 종목들의 인기는 시들고 씨름이나 쇼트트랙처럼 승부가 명쾌한 종목만 인기를 얻게 된다.

하지만 그러면 뭘 하나.

수당이 안나오니 경기를 하는 보람이 없고 경기장을 열어 봐야 입장료를 걷을 수 없는 걸.

그러고 보니 애초부터 말이 안되긴 하다.

숫자에 대한 개념이 없는데 누가 이기고 지는지 어떻게 따질 수 있겠나.

혹시 유전자에 깊게 새겨진 경쟁에 대한 본능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건강을 위한 운동 말고 대부분의 스포츠는 자취를 감춘다.







참. 잊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일은 귀여운 수준이었다.

병원에서는 끔찍한 사태가 벌어졌다.

맥박과 혈압도 재지 못하고 주사를 놓지도 못한다.

가끔 감으로 투약하고 수술하는 간 큰 의사도 있었지만 적지 않은 환자가 적절한 조치를 받지 못해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음식이야 조금 맛이 없어도 먹고 죽지는 않지만 약의 양이나 마취제 분량 조절을 실패하면 어떻게 될까.

숫자가 사라져 목숨까지 사라진 모든 이들에게 애도를. 


진작 이 모든 상황을 해결하겠다고 나선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대표성을 얻지 못했다.

선거를 해봐야 누가 다득표자인지 누가 다수당인지 알 수 없는 건 물론이고 기호 일 번인지 이 번인지 구별도 안 가니 정치할 맛이 나지도 않는다.

물론 오래 전부터 월급이 지급되지 않았기에 이미 입법 사법 행정부 공무원들은 자발적인 휴가에 들어간 상태다.

자연스럽게 정치인들은 정책 그 자체로 평가를 받게 되어 다행이긴 하지만 숫자가 없으니 비교를 못하고 비교를 못하니 무엇이 더 나은 건지가 애매해졌다.

결국 진정으로 돈과 권력에 무심했던 소수의 정치인들만 시민들의 곁에서 사소한 봉사들을 하며 지낸다.

거리 청소. 장애인 이동보조. 간병.  도배. 급식.


얼마나 지났을까.

사람들은 숫자 없이 사는 건 지옥 같다고 생각했지만 이내 깨닫고 만다.

사는 게 뭐 별 건가.

그냥 이렇게 살 뿐이지. 

죽지 못해 살고 악하지 못해 선할 뿐.


거의 모든 사람들이 숫자 없는 삶에 길들여 질 무렵 갑자기 숫자들이 돌아왔다.

아라비아 숫자. 한자 숫자. 한글 숫자.

모든 숫자들이 생각과 말과 글에 돌아왔다.

다시 셀 수 있고 다시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원시인처럼 하루하루 연명하던 인류는 순식간에 원래 생활 습관을 되찾고 문명을 되찾았다.

하지만 모든 이들의 머릿속에서 여전히 한 가지 생각이 떠나지 않고 있었다.


세상은 숫자가 지배한다.






- 이 글은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영감을 받아서 썼습니다. -




[필자소개] 주일(창작자)


전기로 돌아가는 것을 좋아하고 라면을 좋아하는 혼자 사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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