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110호 이슈와 현장 2018.07.31.]
2018년 7월 1일 "시간은 체크하고 있습니까?"
- 근로기준법 개정 이후 영화 현장의 변화
이상길(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
2018년 7월 1일로 개정 근로기준법(이하 근기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다. 남북 관계와 적폐청산에 관한 압도적인 뉴스 더미를 뚫고, 비공식이라면 1위를 했을지도 모를 공식 세계 2위 ‘장시간근로의 나라’ 한국은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또는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란 식의 부정적 뉘앙스로 근로시간 단축 뉴스를 쏟아내고 있다. 얼마 전 러시아 월드컵에서 한국팀의 모든 골이 ‘한국은 초과근로의 나라여서 초과시간에 넣는가 보다’라며 자조 섞인 농담으로 얘기될 때 모두가 심정적 공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지금 한국 사회는 ‘살자고 하는 일이, 죽자고 해야 되는 일’이 되어버렸다.
이런 정서 속에서, 한국영화산업이 시작된 이래 최근까지도 영화를 만드는 일은 노동으로서의 ‘일’도 아닌 좋아서 하는 ‘여가 생활’ 정도로 취급받으며 ‘근기법’ 밖에 놓여 있었다. 영화노조(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와 소수 영화노동자의 노력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약 4년 전 영화산업 내 ‘표준근로계약서’ 사용의 시작은 ‘행운’과 같은 일이었다. 그 행운의 씨앗을 통해 ‘영화노동자’로서 근기법의 실제적 보호 속으로 겨우 들어왔다. 하지만 막상 들어간 근기법 내에서 영화노동자는 별종 취급을 받고 있었다.
근기법 개정 전 영화는 59조의 특례업종으로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하면 사실상 ‘무제한 노동’을 ‘정당하게’ 할 수 있는 산업이었다. 노동자에게 정당한 무제한 노동은 다름 아닌 '살인면허'와 같은 것이다.
▲ 영화를 특례 업종으로 규정한 개정 전 근로기준법 59조는
무제한 노동을 양산했다. (출처: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그래서 영화산업 내 노동자에게 영화가 더 이상 특례업종이 아니게 된 2018년 7월 1일은 특별한 날이다. 근로시간의 한계, 영화노동자의 최소한의 건강권이 출발한 날이기 때문이다.
영화산업 내에서 제작자를 중심으로 개정 근기법은 추가인력고용에 따른 예산 증가,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저하 그리고 근로시간 한계로 인한 제작의 어려움 등을 중심으로 현재 논의되고 있다. 한마디로 ‘영화 만들기 힘들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의 실체는 ‘영화를 정당하게 만들기 힘들다’일 것이다. 영화가 엔터테인먼트라는 지극히 자본주의적 상품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회문화적 가치가 중요시 된다. 그 가치는 과정을 뺀 결과물로서의 가치만을 말할 수 없다. 누구나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싸지만 맛있는 초콜렛이 아동노동 착취를 통해 가능한 것이라면, ‘초콜렛 만들기 어렵다’거나 ‘이제 누구나 초콜렛을 먹을 수 없어서 안타깝다’고 할 수 있는가. 이처럼 영화의 가치는 최종의 결과물에만 국한될 수 없다.
장시간근로처럼 계속 사람을 갈아서 만들 것이 아니라면, 추가고용에 따른 예산 증가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다. 그도 아니면 적어도 원소스 촬영컷을 30~40%씩이나 날려서 사전 계획한 2시간 영화를 만들고 있는 비효율적인 제작을 우선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그만큼 임금이 준다는 것은 상식이다. 하지만 ‘일한만큼 주기나 하는지’부터 전제되어야 한다. 촬영 후 숙소에서 하는 편집, 일정표 작성, 의상 세탁, 수염 정리, 회계 그리고 카메라 정비는 물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진행되는 예정 세트 준비, 소품 준비 등 그 많은 시간을 임금으로 주고는 있는가. 또는 그 많은 시간을 다 지급하겠다면서 ‘한 달에 얼마 받고 싶어요?’라는 친절한(?) 말투로 월급을 거꾸로 일하는 시간으로 나눠서 만드는 시간급은 또 뭐란 말인가.
예를 들어 400만원으로 한 달 받는 금액은 고정인데, 320시간을 일하면 시간급이 12,500원이고 400시간을 일하면 시간급이 10,000원이라면 ‘긴 시간 일할수록 낮아지는 임금’인 것이다. 여기까지도 제작사가 갑자기 근로계약 쓰고 법 준수 하느라 맘고생 많을 거라는 맘에 협력했더니, 이렇게 만들어진 ‘끼워 맞춘 시간급’ 10,000원을 이젠 280시간 밖에 못하니 280만원을 주겠다는 게 당연하다니 ‘임금’이 ‘엿’도 아니고 엿장수 맘인가.
2016년 영화스태프 근로환경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1주 평균 69.2시간(1개월 평균 300.7시간)으로 2016년 OECD 국가 1개월 평균근로시간 146시간, 2016년 한국 1개월 평균근로시간 172시간보다도 100시간 이상이 높게 조사 되었다. 반면 같은 조사에서 최근 1년간 영화 총수입 평균은 1,970만원으로, 한국경제연구원이 고용노동부의 ‘고용 형태별 근로실태 조사’ 자료를 토대로 2016년 근로소득세를 납부한 임금근로자의 평균 연봉인 3,387만원에 비해 30% 이상 낮은 수준이다.
일한 만큼 받지 못했으며 받은 임금마저 수준 미달이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많이 부족했으니 조금이라도 올려보자는 것도 아닌데, 지금 상태에서 근로시간만큼 더 줄이자는 것은 억지스럽다. 차라리 모든 영화노동자에게 최저임금으로 맞춰 주겠다고 말하면 솔직하기라도 하지, 파편적 논리로 본질을 흐리는 ‘개정 근기법’의 변화에 맞춘 ‘어쭙잖은 제작 합리화’는 용납할 수 없다.
2003년 개정된 40시간제는 오간데 없지만, 연장근로를 포함한 52시간이든 한시적이지만 68시간 근로이든 준수만 해달라는 ‘노동자의 궁지에 몰린 포용’을 능욕하지 않았으면 한다.
영화는 근무일정 예측이 어려운 업무, 휴일이 부족한 업무, 유해한 환경(한랭, 폭염, 소음)에 노출되는 업무 그리고 시차가 큰 출장이 잦고 정신적 긴장이 큰 업무이다. 그리고 이런 업무 특성의 근로시간 조건은 1주 52시간 초과근로 하에서 이뤄진다. 이는 고용노동부 고시 제2017-117호 「뇌혈관 질병 또는 심장 질병 및 근골격계 질병의 업무상 질병 인정여부 결정에 필요한 사항」과 딱 맞아 떨어진다. 지금 영화제작 조건은 산업재해 발생 요건에 일치하는 요건의 일인 것이다. 직접 때리고 찔러야 폭력이고 살인이 아니다. 사용자는 자신이 하는 말의 의미를 진정 알고 있는 것인가. 아니 이미 알고 있다면 더 솔직하게 내보였으면 한다.
‘제발’ 시간만큼은 줄여야 하는 것 아닌가! 에둘러 임금 줄인다는 협박을 토론회 자리마다 사용자단체 이름 걸고 뭐가 그리 당당하여 달고 다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오히려 개정 근기법의 논의는 어떻게 52시간으로 실제 근로시간을 줄여서 영화를 만들 수 있는지가 논의되고 토론되어야 한다. 우리 영화노동자는 불법 신장 판매도 아닌데 생명을 담보로 일터로 향할 수 없다. 입에 풀칠하며 생명유지 장치 같은 임금이 아닌 시민사회의 평범한 일원인 공동체 생활이 가능한 임금 수준의 노동자이고 싶다.
▲ 지난 7월 1일, 영화를 특례업종에서 제외한 근로기준법이 시행되면서
‘무제한 노동’이 제한될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출처: 전국영화산업노조)
그럼에도 사용자는 사용자이다. 상대의 심장과 양심을 움직이는 것이 현대사회에서는 ‘돈과 벌’ 정도이다. ‘공감’은 같은 처지끼리 하는 거다. 사람의 도리를 아무리 얘기해도 변하지 않을 것이 뻔하다.
그래서인데 한 가지 부탁이 있다. 나의 친구 나의 동료 우리 영화노동자에게 최소한의 것을 부탁하고 싶다. 2018년 7월 1일이 시작되었다. 자신이 일한 시간을 체크하자, 근거가 될 수 있게 확인받자. 자신이 얼마나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는지, 얼마나 무리하게 일하고 있는지 알고는 있자. 알고만 있기엔 너무 억울하다면 그 근거를 가지고 ‘고소’를 할 수도 있고 노동조합 등을 통해 ‘고발’도 할 수 있다. 혹시라도 시간체크의 결과가 너무 잘 지킨 좋은 제작현장의 증거가 된다면 그 또한 널리 알려주면 좋겠다. “누가 불가능하다고 했냐? 이렇게도 좋은 영화 만들 수 있다!”고 말이다. 난 그 영화가 결과물로서 부족하다고 할지라도 환한 얼굴로 볼 것이다. □
글쓴이. 이상길
- 영화제작현장 촬영부서 노동자로 일하고 있으며, 현재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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