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106호 특별기획 박종필을 기억하며 2017.9.14]
그는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경순(다큐멘터리 감독)
지난 7월 24일 정오 즈음 나는 다음날 인터뷰하기로 한 박래군 선배에게 확인 차 전화를 걸었다. 그는 오늘 오후 강릉의 한 병원에 있는 박종필 감독 문병을 가야 해서 내일 시간이 어떨지 모르겠다고 했다. 안 그래도 석주 전에 김동원 감독으로부터 종필이 연락이 안 돼서 지금 류미례 감독이 사방으로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아차 싶었다. 박래군 선배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박종필 감독 간암이래. 본인이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지 말라고 해서 지금까지 쉬쉬하다 이제야 알리는 모양이야. 의사가 오늘 내일 넘기기 힘들다고 했대. 그래서 오늘 가봐야 할 거 같아서 말이지.” 그렇게 박종필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병원을 물어봤더니 그저 강릉에 있는 병원이라는 것만 안다고 했다. 나는 강릉에 아는 친구들이 있으니 물어봐서 나도 곧 따라가겠다고 했고, 선배는 강릉에서 보자고 했다.
전화를 끊고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사무실에서 이번 주 잡혀 있는 인터뷰 촬영 메모를 지웠다 다시 썼다 반복하다 강릉에 있는 이마리오 감독과 박광수에게 연락을 했다. 박종필에 대해 물어보니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마음이 점점 불안해졌다. 그들에게 병원이 어딘지 알아보고 자세한 상황을 좀 알려달라고 했다.
9년 전 동생이 죽던 날이 생각났다. 위암 진단을 받고 3주 만에 그는 죽었다. 그가 죽던 날 낮에 나는 동생과 병원에서 같이 영화를 보고 회복이 되면 하고 싶은 일이 많다던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같이 저녁을 먹은 후 사무실로 돌아왔었다. 불과 3시간이 채 안 돼서 병원에서 위급하니 가족들이 오는 게 좋겠다고 연락이 왔다. 그 시간 나는 사무실에서 일본 촬영 준비에 바쁜 스태프들을 뒤로 하고 혹시나 싶어 다른 병원의 전문의에게 편지를 쓰고 있던 참이었다. 쓰던 것을 멈추고 나는 황급히 나갔다. 병원에 도착하니 그는 이미 의식이 없었고 우리가 지켜본 지 10분도 안돼서 숨을 거뒀다.
어쩌면 종필이도 그렇게 황망히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종필이 소식을 궁금해 했던 김동원 감독에게 연락을 하니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갈 수 없고 병원에서 오라고 할 때 가야 한다고 말했다. 전화를 끊자 강릉의 박광수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마리오 감독과 함께 지금 병원에서 박종필을 만나고 있다고 했다. “누나 좀 심각해. 지금은 말을 잘 하는데 오늘이 아니면 보기 힘들 거 같애. 오려면 오늘 와서 보는 게 좋을 거 같아.” 나는 다시 전화를 끊고 김동원 감독에게 전화를 했다. 박광수로부터 들은 상황을 설명하고 지금 가야겠다고 했더니 자기는 김태일과 연락을 해서 내일 출발할 테니 상황만 알려달라고 했다.
6시경 고속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여러 사람들의 전화를 받았다. 보아하니 박종필 감독 소식을 알음알음 전해 듣고 상황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나처럼 다른 통로로 소식을 접하고 황망해 하는 사람들로 나눠져 있음을 알았다. 나는 김일란 감독에 대한 소식도 감독들이 아닌 박래군 선배로부터 들었던 터라 뭔가 감독들 사이의 사발통문이 막혀 있음을 잠시 느꼈다. 다들 김일란 감독을 위해서 한 거겠지만 직접 연락을 삼가달라는 메시지를 받았고 그를 만날 수 있는 통로가 정해져 있다는 게 좀 당혹스러웠었다. 이후 일란이 수술받기 전 병문안이라도 가고 싶었으나 차마 갈 수 없었다. 그런데 영화 취재를 하며 만난 한 인권활동가는 김일란 감독 이야기를 하며 오늘 병문안 간다고 했다. 내가 그처럼 편하게 갈 수 없다는 게 뭔가 불편했다. 그래서 안부만 전해달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강릉으로 출발하기 전에 비슷한 문자를 받았다. 박종필 감독이 힘들어하니 직접 연락하지 말고 하고 싶은 말을 문자를 준 사람에게 하라는 말이었다.
달리는 버스 밖으로는 비가 엄청 쏟아졌다. 나는 불 꺼진 버스 안에서 계속 전화를 받으며 울기만 했다. 가는 동안 그가 가버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고 지난겨울 독립영화인 시국선언을 같이 준비 했던 때도 생각났다. 그리고 7년 전 그는 간경화 진단을 받고 나는 유방암 수술을 했던 때가 생각났다. 서로 만나면 나는 그에게 술 처먹지 말라고 했고 그는 나에게 쉬면서 일을 하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웃으며 안아주고 서로를 격려했었다. 자기는 수지침을 배워서 자기관리를 잘하고 있는데 누나가 걱정이라며 나도 한번 수지침을 배워보라는 말도 했었다. 그런 그가 좋아 보였다. 죽음이 멀리 있지 않다는 경험을 한 사람들이 오히려 삶을 여유 있게 살려고 노력하듯이 가끔 보는 그와 나는 그런 마음을 서로 느끼곤 했었다.
그렇다 해도 오늘 들은 박종필의 소식은 적응이 되질 않는다. 촛불시위가 시작될 즈음 독립영화인 시국선언을 준비 할 때만 해도 그는 밝았고 에너지가 넘쳐 보였기 때문이다. 그때도 우린 사이사이 서로의 건강을 걱정했지만 다큐 감독들이 주축이 돼서 이런 행사를 준비한다는 데 감격했던 것 같다. 그 시국선언이 끝나면 흩어져 각개격투하며 작품을 만드는 다큐 감독들을 한번 모아보자는 이후의 상황공유만 한 상태에서 모든 상황은 촛불광장으로 흡수됐다. 이후 그는 박근혜퇴진행동 미디어팀에서 다른 감독들과 팀을 이루며 광화문을 기록했고 나는 다음 영화를 기획하며 광화문을 기록했다. 그리고 이후 우리는 한 번 더 만났다. 근데 그게 광화문이었는지 인디다큐 때였는지 기억이 안 난다. 그때 그는 뜬금없이 뭐 먹고 사냐고 했었다. 밥 먹고 살지. 근데 왜 이렇게 말랐어, 누나. 지랄한다. 너도 만만치 않거든. 니가 더 걱정이다 인마. 그러는 너는 뭐해서 먹고 사냐. 그래도 나는 단체들과 오래됐잖아. 수익사업은 계속 하니까…… 나는 일란이도 그렇고 단체를 운영하는 니들이 더 걱정이다. 그게 보통 스트레스냐. 수입이 있든 말든 나는 나만 건사하면 되지만 니들이 걱정이야. 우리 팔자지 뭐. 그 말을 하고는 그는 웃었다. 지랄한다 팔자는 무신……
저녁 9시쯤 병원에 도착해 송윤혁 감독을 잠시 만나 종필의 근황을 듣고는 아침에 다시 오겠다고 했다. 그날 연이어 박광수 일행과 박래군 일행을 만나고는 박종필 감독이 힘들어 한다고 했다. 그래서 면회 시간을 정해서 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다음날 2시, 4시를 이야기했고 나는 일단 아침에 병원에 와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병원을 나와 박광수를 만났고 박종필과 만났던 상황을 다시 전해 들었다. 그리고 만나지 못한 박래군 선배에게 전화를 걸어 미안하지만 내일 인터뷰는 취소해야겠다고 말했다.
다음날 일찍 다시 병원을 찾았다. 가보니 나보다 먼저 세월호 유가족 세 분이 와있었다. 송윤혁 감독이 박종필 감독이 바깥공기를 마시고 싶어한다고 그리고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을 전해주었다. 병원 창문 밖 건너편에 종필이가 휠체어를 타고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였다. 세월호 유가족들과 나는 번갈아 가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초췌한 모습에 다들 눈물만 흘리면서 쳐다보고 있었다. 40분쯤 지났을까 그의 형이 휠체어를 밀며 우리가 있는 곳으로 그를 데리고 왔다. 힘들게 고개를 든 그는 나를 보았다. 그리고는 누나 부르더니 울면서 부등켜안고는 대뜸 첫마디가 누나 누나도 언젠가 이렇게 될 거야. 알아 새끼야. 우리는 울면서 코미디 같은 말들을 주고받았다. 그러고는 그가 그랬다. 누나 우린 대체 왜 이래? 왜 그러긴 니가 너무 열심히 살아서 그렇지. 그는 울면서 계속 이야기를 했다. 누나 난 가끔 있잖아 누나의 열정이 참 대단한 거 같아. 미친놈 니가 지금 할 소리니? 니가 이 꼴을 나한테 보이면서 할 소리야. 바보 같은 새끼. 누가 할 소리를 하는 거야.
그렇게 대화를 나누다 세월호 유가족이 생각나 인사하라고 종필에게 말했고 나는 한발 물러나 있었다. 유가족들을 보더니 종필은 갑자기 미안하다는 말을 계속하며 울었다. 세월호 유가족들도 종필이도 서로 미안하다고 죄송하다고 반복하며 한참을 울었는데 불현듯 종필이가 박근혜를 언급하며 울분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나는 순간 겁이 났다. 그래서 얼른 종필이를 진정시켰다. 종필아 됐어. 그것들 지금 감옥에 있잖아. 니 생각만 해. 다른 거 생각하지 마. 그를 달래고 있는데 옆에서 보고 있던 종필의 형과 송감독이 안되겠는지 그를 병실로 데려가야겠다고 했다. 종필아 이제 좀 가서 쉬어 했더니 그가 묻는다. 누나 지금 갈 거야? 가지 마 누나, 나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그래 알았어. 나 병원에 계속 있을게. 좀 쉬고 있다가 니가 말하고 싶을 때 불러. 그는 돌아서서 다시 한번 말했다. 가지 마 누나.
나는 병원을 떠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후 다른 방문객이 줄을 이었지만 사람들은 종필이를 면회할 수 없었다. 대부분 세월호나 장애인 관련 단체 사람들이었는데 그분들에 대한 미안함이라는 마음 때문에 종필이 가진 얼마 안 되는 기력이 급속히 소진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속으로 마음을 비웠다. 그를 다시 만나기 힘들겠구나. 하지만 그가 하고 싶은 말을 다 들어주지 못했다는 게 너무 마음이 아팠다. 4시쯤 김동원 감독과 김태일 부부가 도착했다. 그리고 안창규 감독을 비롯한 젊은 감독들이 왔지만 그들은 이미 면회를 포기하고 나처럼 병원을 배회할 뿐이었다. 젊은 감독들은 박종필 감독의 휴식을 위해 면회 오는 사람들을 막으려고 왔다고 했지만, 방문한 사람들의 마음을 알기에 안창규 감독은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 오히려 위로하고 대화를 하는 듯 보였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각각 박종필을 보호하려는 자,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은 자, 그의 이야기를 들으려는 자로 갈려 있었지만 결국 모두 박종필을 아끼는 사람들이었다.
그가 기다리라 했지만 그를 만나기 힘들 거라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 결국 면회를 못한 김동원, 김태일, 주로미와 병원을 나왔고 우린 식사를 하며 술을 한잔 했다. 종필이가 하고 싶은 말이 많다고 했다는 걸 전해들은 김태일 감독은 종필이가 뭔가 쌓인 게 많은데 다 풀지 못하고 가는 거 같아서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그 말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너인 거 같다고 꼭 종필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내가 들어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이대로 가는 게 맞는가 싶어 마음이 무거웠다. 어쩌면 그가 하고 싶은 말이란 게, 그저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던 건 아닐까, 책임감과 의무감을 벗어던지고 그저 욕하고 싶고 딴지 걸고 싶고 편하게 우리 이야기만 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우리는 서로 종필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을까를 이야기하는데 동원 형이 그런 말을 했다. 사실 내가 종필이랑 좀 풀어야 할 일이 있는 거 같은데 그게 뭔지 잘 생각이 안 나네. 하며 허허 웃었다. 그리고는 이어서 말했다. 나는 오늘 종필이 얼굴 못 본 거는 아쉬운데 그것도 다 그 사람의 팔자인거 같아. 아무리 막아도 볼 사람은 보는 거고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사람이 있는 거고. 그러고 보니 요즘 김동원 감독의 입에서 팔자타령 하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리고 이렇게 사는 게 팔자지 뭐 라고 했던 종필의 말도 생각났다. 독립영화의 열악한 제작환경과 현실 앞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이 고작 팔자라니.
며칠 후 종필이는 세상을 떠났다. 많은 사람들이 장례식장에 모였고 고인이 된 박종필 감독의 장례식을 인권사회장으로 하기로 했다. 그가 걸어왔던 길에 만났던 많은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장례식이었다. 하지만 나는 불편하고 아팠다. 광화문 영결식에서 ‘미안하다’가 그의 유언이었다고 말한 박래군 선배의 말도 아팠고, 그를 금관예수로 비유한 박경석 노들학교 교장의 말은 그의 헌신과 노력이 받아낸 최고의 대가가 그것인 거 같아 또 아팠다. 마지막 가는 길까지 그 찬사를 들으며 미안해 할 종필이가 떠올라 더더욱 아팠다. 그리고 나는 끝내 박종필이 하고 싶은 말을 들어주지 못했다는 자책에 마음이 쓰라리게 아팠다. 영상 활동가로 그가 마지막 가는 길에 받는 찬사보다 한 사람의 독립영화 감독으로 그가 온전히 헌신과 희생으로만 작업해야 했던 이 현실이 나는 너무나 지긋지긋하다. 그리고 이 지긋지긋한 현실은 이제 살아남은 자들이 대면해야 할 과제다. □
글쓴이 경순
1999년 <민들레>를 시작으로, <애국자 게임>(2001),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2003) 등을 제작했다. 최근에는 여성의 몸과 노동을 새롭게 질문하는 <레드마리아>(2011), <레드마리아2>(2015)를 선보였고, 현재 통합진보당 해산 과정의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을 다시 보는 <지록위마>를 제작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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