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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01호 이슈와 현장] 포스트잇과 해시 태그, 개인에서 공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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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6. 12. 22.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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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01호 이슈와 현장 2016.12.23]


포스트잇과 해시 태그, 개인에서 공공으로


성상민(ACT! 편집위원회)



 2016년 5월 17일 새벽 한 시, 한 여성이 세상을 떠났다. 강남역 10번 출구 근방에 위치한 한 대형 노래방의 남녀 공용 화장실에서 계속 잠복하고 있던 한 명의 남성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화장실에 들어간 여성을 무참히 흉기로 찔러 살해한 것이다. 많은 이들은 그저 매일 매일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수많은 살인 사건 중 하나라고 여겼다. 하지만 대체 누가 알았을까. 이 ‘강남역 10번 출구 살인사건’이 2016년 한국 사회를 상징하게 되리라는 것을 말이다.


 마치 2014년의 세월호 참사가 한국 사회 전반에 많은 영향을 미쳤던 것처럼, 강남역 10번 출구 살인사건 역시 한국 사회에서 무수한 충격파를 남겼다. 본격적으로 한국 사회 전반에 도사리는 여성 혐오(misogyny) 문제를 상기하는 계기가 된 것은 물론, ‘해외에 비하면 한국의 치안은 무척이나 우수하다’는 믿음이 남성 위주의 사고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주목해야 할 흐름이 있다. 바로 ‘포스트잇’과 SNS의 ‘해시 태그’로 대표되는 개인 미디어가 주목을 받았다는 점이다.




[사진 1] 강남역 10번 출구가 근방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에 대해 추모하거나 사건에 얽힌 여성 혐오를 비판하는 포스트잇으로 가득히 덮여 있다. (사진 출처=사회진보연대)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끔찍한 여성 혐오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들은 SNS를 통해 ‘#당신에게도_꿈이_있었을텐데’ ‘#살女주세요_살아男았다’ 같은 해시 태그를 붙이며 사건을 추모하는 한편 사건이 담고 있는 함의에 주목했다. 사건이 일어난 부근인 강남역 10번 출구는 추모와 규탄의 글이 담긴 수많은 포스트잇들로 뒤덮였다.


 이후에도 포스트잇과 해시 태그는 계속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전면에 나섰다. 강남역 10번 출구 근방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구의역에는 서울메트로에서 수리 하청 업무를 보던 20대 비정규직 노동자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다 그만 스크린도어에 끼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노동자가 사망한 구의역은 곧 다양한 색깔과 주장의 포스트잇으로 뒤덮였다. SNS에서도 강남역 10번 출구 살인 사건과 구의역 사망 사고를 동일 선상에서 살펴보는 해시 태그를 많이 찾아 볼 수 있었다.


 성우 김자연이 SNS에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발언을 남겼다는 이유로 넥슨 사의 온라인 게임 <클로저스>와 계약이 해지된 사건에서는 많은 개인들과 문화 노동자들이 ‘#성우_김자연을_지지합니다’ ‘#나는_페미니스트입니다’ 등의 해시 태그를 사용하며 성우 김자연을 비롯해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표명했다는 이유로 각종 폭력과 불이익에 시달린 이들을 지지하는 일이 있었다. 한국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성폭력이 만연하다는 사실을 드러낸 ‘#OOO_내_성폭력’은 해쉬 태그 자체가 전면에 섰던 사건이다. 이렇게 2016년 한 해는 포스트잇과 해시 태그가 새롭게 미디어의 역할을 수행한 시기가 되었다.


 물론 이러한 흐름이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니다. 포스트잇은 일상생활은 물론 각종 현장에서 개인적인 의견을 간단하게 남기는 용도로 많이 활용되어 왔다. SNS 역시 한국에 트위터가 본격적으로 소개된 2009년 즈음, 이미 대다수의 온라인 공간과는 달리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알릴 수 있는 매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올해 이 두 미디어가 각종 사건/사고의 전면에 등장한 것에 주목해야 하는 것일까.



‘올드 미디어’의 퇴조, ‘뉴 미디어’의 지지부진


 이제 더 이상 신문이나 잡지, TV 방송 채널을 비롯한 소위 ‘올드 미디어’가 사양세에 접어들었다는 말은 새롭지 않다. 2015년 기준으로 일간 유료 판매 부수가 100만부를 넘긴 신문 언론은 <조선일보>가 유일하다. 잡지로 넘어가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소위 4대 시사 주간지사 불리는 <시사IN>, <한겨레21>, <시사저널> 모두 2015년 기준으로 5만부 이하로 판매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공중파 TV 역시 종편 채널의 등장, 케이블 방송과 미디어의 다양화 등으로 인해 20%가 넘어가는 시청률을 기록하는 것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뉴 미디어’로 분류되는 미디어들이 ‘올드 미디어’의 영향력과 기능이 점차 줄어들며 생기는 빈자리를 적절히 메꾸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것은 물론, SNS나 ‘유튜브’나 팟캐스트 같은 최근 인터넷 상에 등장한 사이트를 활용하는 인구도 무척이나 많지만 아직까지 뉴 미디어는 올드 미디어의 기능을 보조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SBS의 ‘스브스뉴스’나 한겨레의 ‘한겨레TV’ 같이 많은 언론사들이 유튜브 계정이나 SNS 계정을 만들며 인터넷 사용자들에게 친숙하게 접근을 시도하는 것이 그 예시다.


 분명 이러한 시도는 많은 인터넷 유저들에게 호평 받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례는 뉴 미디어가 자생적으로 또 하나의 미디어 매체로 주체적인 기능을 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리기에도 어렵다. 앞서 계속 영향력이 감소하는 중이라 말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인지도나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기존 매체들이 이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콘텐츠를 재편집하여 온라인에 맞춰 다시 올린 것이기 때문이다.


 뉴 미디어의 기반에 입각해 기존의 미디어들과 새로운 모습을 보이는 시도가 완전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언론사에 소속되지 않은 개인들이 직접 글이나 영상을 만들어 배포하는 ‘1인 미디어’는 여전히 대세가 되고 있다. 하지만 1인 미디어가 각광을 받는 흐름 속에서 ‘미디어몽구’와 같이 시사 현안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게임이나 예능 등 오락적인 기능에 치중하는 1인 미디어가 대다수며, CJ E&M이 오락적인 1인 미디어를 끌어 들여 만든 MCN(Multi Channel Network의 약자, 1인 미디어들을 묶은 네트워크를 이르는 말) 기업 DIA TV가 탄생하는 등 1인 미디어가 받는 주목은 대기업의 경제적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사진 2] 공중파 방송사 SBS의 뉴 미디어용 언론 서비스인 ‘스브스뉴스’의 페이스북 페이지. ‘스브스뉴스’는 재치 있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호평받고 있지만, 동시에 뉴 미디어가 어떤 식으로 활용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 중 하나이다.



 SNS 역시 마찬가지이다. 블로그나 트위터는 한동안 한국에서 대안적인 미디어로 여겨졌다. 블로그는 1인 미디어의 기반이 되기에 딱 좋은 특성을 지녔고, 트위터는 한국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고 알려지기 시작한 2009 ~ 2010년 한창 정부의 압력으로 지상파/케이블 언론의 공공성이 서서히 무너지던 시기에 대다수의 언론에서는 다루지 않은 사건을 유통한다는 측면에서 많이 활용되었다. 하지만 둘 모두 2016년 시점에는 활용도나 주목도가 많이 떨어진지 오래다. 블로그와 트위터의 자리를 메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의 SNS도 어느 정도는 대안적인 미디어의 역할을 수행하고는 있지만, 이전보다는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이상의 뉴 미디어 시도들은 공통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대안 미디어’를 추구하든, 기존의 미디어들을 뒤에서 보조하는 역할을 하든 모두 전통적인 형태의 미디어가 계속 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저 미디어에서 콘텐츠를 생산하는 이와 독자의 거리가 무척이나 가까워졌을 뿐, 여전히 대다수의 개인들은 무수히 제작되는 미디어를 소비하거나 설사 미디어에 참여한다고 해도 의견을 남기는 수준에서 그치고 만다. 올드 미디어에서 뉴 미디어로 흘러도, 개인들은 여전히 수동적으로 미디어를 수용하고 있다.


 물론 누군가는 뉴 미디어의 시대로 접어들며 미디어를 제작하는 시간적, 경제적 문턱이 낮아졌으니 직접 만들면 되는 게 아니냐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턱이 낮아졌다고 해서 미디어가 뚝딱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미디어를 구성하는데 필요한 중심 콘텐츠를 만들어야 할 수고는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볼 목적이 글을 쓰는 것은 결코 쉽지 않으며, 영상을 만드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다.


 마치 SNS의 흐름이 개인 홈페이지에서 블로그로, 다시 트위터로, 또 다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으로 바뀌었던 것에서 알 수 있듯 사람들은 미디어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 직접 제작하는 것에 있어서도 가급적이면 허들이 낮기를 바란다. 하지만 짧은 단문과 사진 만으로 주장을 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으며, 설사 남긴다 하더라도 생각만큼 쉽게 불특정 다수에게 퍼지는 것도 아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올드 미디어의 형식과 유사한 틀을 갖추고 있는 뉴 미디어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그러한 틀에 익숙한 것도 있지만, 풍부한 정보량과 주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렇게 뉴 미디어를 새롭게 활용하고자 하는 시도는 많았지만 다양한 한계나 현실적인 어려움에 봉착하며 기존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수준에 머물러 왔다.



개인이 주체가 된 미디어, 공공으로 발을 뻗다


 이런 상황에서 2016년 포스트잇과 SNS의 해시 태그가 미디어로써의 기능을 수행했다는 것은 무척이나 의미심장한 일이다. 특히 포스트잇은 굳이 미디어의 기반으로 특성을 구분한다면 오프라인에 기반을 두고 있으니 일종의 올드 미디어고, 해시 태그가 활용되는 SNS는 앞서 계속 언급했든 전형적인 뉴 미디어이다. 하지만 미디어의 기반이 오프라인이냐, 온라인으로 올드와 뉴를 가리는 것은 올해 전개되었던 미디어의 흐름을 말하기에 크게 유효하지 않아 보인다. 영향력이 줄고 있다고 해도 여전히 올드 미디어의 영향력과 틀은 여전하고, 다수의 뉴 미디어들은 올드 미디어를 모방하는 수준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더욱 주목해야 할 특징은 포스트잇과 해시 태그가 다분히 개인적이고, 동시에 쉽고 간편하게 의견을 남길 수 있는 매체라는 것이다. 물론 약간의 수고로움은 존재한다. 포스트잇으로 사건에 대한 주장을 남기기 위해서는 사건의 현장으로 직접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해시 태그를 만들고 남기는 것은 쉽지만, 지금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사건에 대한 해시 태그를 찾는 것엔 약간의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은 기존의 올드 미디어나 올드 미디어가 되고 싶은 뉴 미디어에 의견을 표출하고 남기는 것의 어려움에 비교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한 것이다. 이렇게 등장한 미디어들은 분명 하나 하나 뗴어 놓고서 판단하면 너무나도 초라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포스트잇 한 장은 작은 정사각형 쪽지에 불과하며, 소위 ‘파워 트위터리안’이나 ‘인기 페이스북 페이지’가 아니고서는 대다수의 SNS 사용자들은 주변의 몇 안 되는 사람들만 존재를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뭉치는 순간, 영향력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방면으로 폭발하고 말았다.




[사진 3] 2016년의 포스트잇과 해시 태그가 주목받았던 흐름에서는 2013년 겨울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가 호응을 받았던 사례를 떠오르게 만든다.



 물론 이러한 흐름 역시 어느 정도는 우발적이다. 마치 지난 2013년 겨울, 철도 민영화 문제로 시끄러울 당시 고려대학교 후문을 시작으로 갑작스레 확산되었던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처럼 말이다. 분명 그 이전에도 개인적이고 진솔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말하는 대자보는 있어왔다. 학생 운동이 갈수록 예전보다는 못해도, 몇몇 학교에서는 꾸준히 대자보를 통해 학내나 학외의 이슈에 대해서 주장하고 있었다. 그러다 2013년 겨울부터 2014년 새해 무렵까지 한 장의 대자보가 수많은 관심을 낳으며 전국으로 퍼졌던 것이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지금 다시 대자보의 영향력은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하지만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 열풍은 단순히 올드 미디어인 대자보가 주목을 받았다는 현상 자체에서 그치지 않는다. 특정한 단체, 개인이 아니라 사안에 공감한 모두가 저마다의 장소와 각자의 고유한 어법으로 사건에 대한 의견과 주장을 남길 수 있었다. 그리고 오프라인으로 모인 수많은 대자보들은 다시 온라인에 소개되며 퍼지며 학교나 지역의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단초가 되었다.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오프라인과 온라인 모두를 아우르며 개인도 참여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든 미디어 운동의 성격을 지녔던 것이다.


 포스트잇과 해시 태그 역시 마찬가지이다. 포스트잇은 각종 시위나 집회 현장에 있어서 개인의 의견을 쉽게 남길 수 있는 용도로 활용되어 왔었다. 해시 태그 역시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이 보편화되면서 개인의 의견을 빠르게 남기고, 다시 자신과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를 확인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올해만큼 폭발적인 형태로 사용되거나 확산된 적은 없었다. 그러다 2016년 초 강남역 10번 출구 살인 사건을 시작으로 갑작스레 포스트잇과 해시 태그가 사건의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무척이나 우발적인 확산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포스트잇과 해시 태그의 겉으로 보이는 형태가 아니다. 오프라인에서 포스트잇을 남기고, SNS에서 관련된 해시 태그를 붙이며 참여하는 행위는 개인적이지만 비슷한 주장과 의견을 담아 붙인 포스트잇과 해쉬 태그가 늘어나는 모습은 단순한 개인의 총합에 머무르지 않는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 그저 한 명의 생각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공유하고 있는 의식을 확인하는 과정이자, 다시 그 의식을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퍼트리는 것이 반복하는 과정이다. 개별적인 미디어 자체는 개인적이어도, 사회적인 이슈와 만나고 뭉치면서 공공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셈이다.


 포스트잇과 해시 태그가 일종의 미디어로써 수행했던 모습은 앞으로의 미디어가 어떤 식으로 재구성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개인이 어떻게 미디어의 수동적인 객체가 아니라 능동적인 주체로 활약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그 고민에 같이 머리를 맞대고서 새로운 미디어를 함께 상상하며 만들어 나간다면, 그것이야 말로 포스트잇과 해시 태그로 상징되는 2016년 미디어의 모습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며 성장하는 길이 될 것이다. □



[필자소개] 성상민(ACT!편집위원회)


 지금은 사라진 만화언론 [만]에 2005년 얼떨결에 객원필진으로 데뷔해 한 10년 이상 팔자에도 없을 줄 알았던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 빨리 졸업하려고 다짐했던 경희대학교 사회학과는 2010년 입학한 이래 졸업 학점은 아직 한참 많이도 남았지만 이젠 뭐 언젠간 졸업하겠거니 하고 만다. 지금은 [ACT!]와 [미디어스]를 중심으로 만화, 영화, 미디어 등 각종 문화에 관련된 글을 줄창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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