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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20호 뉴미디어] 압축성장 -- 압축적 정보화의 문제 --뉴미디어 정책의 기본성격

이전호(78호 이전) 아카이브/뉴미디어

by ACT! acteditor 2016. 8. 17.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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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축성장 -- 압축적 정보화의 문제
--뉴미디어 정책의 기본성격

 

 

김 평 호 ( 단국대학교 방송영상학부 교수 )

 

‘알파벳 숩’(alphabet soup)이라는 표현이 있다. 정보통신 분야의 발전이 워낙 빠르게 진행되면서 등장하는 각종의 새로운 매체와 기술들의 이름을 약칭으로 정리하면 수많은 글자모음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는 이미 우리 주변에도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BCN, DMB, DMC, HDTV, ICOD, IPTV, IT839, TPS, VoIP, WCDMA, Wi-bro, Wipi 등등. 도대체 이것들이 무엇인가? 왜 이런 것들이 수도 없이 계속적으로 등장하는가? 어떻게 이들을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뉴미디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차원의 논의가 가능하겠지만 여기에서는 뉴미디어 정책을 주제로 해서, 먼저 우리나라 뉴미디어 도입정책의 기본성격을 짚어보고, 이어서 뉴미디어 정책집행(policy practice)의 사례로 DMB, 그리고 뉴미디어 정책논의(policy discussion)의 사례로 방송통신 융합 이 두 가지를 이야기해보기로 한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 뉴미디어 도입정책의 근본적 문제는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대안이 필요한지 등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한다.    


1. 뉴미디어 난개발  

DMB를 포함해 새로운 매체를 도입하는 이유로 정책당국자나 일부 학계 그리고 관련 산업계에서 거의 예외없이 내세우고 있는 것은 방송의 디지털 전환, 새로운 서비스의 제공, 침체된 유료방송시장의 활성화, 방송·통신 유관산업 (콘텐츠 제작, 콘텐츠 서비스, 단말기 산업 등)의 발전 및 영역확장 기회의 제공, 세계적인 추세 등으로 요약된다. 더 요약하면 기술발전을 중심에 놓고 1)수용자 복지; 2)산업적 경제적 가치창출 등이 각종의 뉴미디어 도입 근거로 제시되는 것이다.  

그러나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지난 1995년의 케이블이나 2002년의 위성방송이  도입되면서 수용자의 복지가 어느 만큼 달성되었는지, 또 산업적 경제적 가치창출은 어느 정도의 성과를 이룩했는지에 대해 전문 기관들의 보고서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오히려 각종의 매체는 풍성하게 도입되고 채널은 대폭 증가했지만 정작 그 공간을 채울 콘텐츠는 지상파 방송 부분을-흔히 한류로 대변되는-제외하면 매우 빈곤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매체-기술’은 풍성하면서 정작 ‘매체-문화’는 빈곤한 것이다.

한편 IT 기술산업을 통해 우리 경제가 성과를 거둔 것은 분명하지만 그 이면에는 원천기술 미비에 따른 지적재산권과 특허료의 엄청난 부담, 부품소재의 해외의존도 심화 등으로 실질적인 내용과 의미를 갖춘 IT산업기술의 성과인지는 다시 한번 짚어보아야 한다. 예를 들면 방통융합형 매체로서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다는 성과를 무색케 할 정도로 DMB 관련 방송장비시장, 단말기 관련 시장, 칩 시장 모두 대부분 외국업체에 의해 이미 장악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뉴미디어 도입상황을 두고 ‘매체 난개발’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은 지나친 것이 아니라 당연한 평가이다. 추상적으로 말하면 난개발이란 내용없는 외형 갖추기를 뜻한다. 우리나라의 뉴미디어 도입정책을 난개발이라고 평가하는 이유는 외형은 커졌지만 내용은 부실하면서 기대효과가 발생하기보다는-물론 긍정적인 측면도 있으나-오히려 우려했던 결과를 빚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압축성장-압축적 정보화’로 요약될 수 있는 뉴미디어 정책의 문제는 ‘부작용’ 수준의 것이 아니라 매우 근본적인 차원의 것이다.    

 


2. 뉴미디어 관련 정책 사례

1) DMB = 뉴미디어?

뉴미디어란 말 그대로 새로운 가능성, 새로운 잠재력을 구현하는 매체란 뜻이며 또 그러할 때 진정한 의미에서의 뉴미디어라고 할 수 있다. 반드시 긍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인터넷이나 이동전화와 같은 매체가 거둔 폭발적인 성공의 이유중 가장 근본적인 것은 정보의 생산과 유통, 교환과 공유 등의 측면에서 수용자들에게 새로운 행위의 자유를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제공/부여해주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한편 새로운 매체는 기술과 산업의 변화는 물론 사회문화적인 변화를 추동하며 매체가 가져야하는 궁극적 차원의 유용성은 하드웨어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수준과 내용, 즉 문화적 생태환경을 제고하는 것이다. DMB는 그러면 어떤 성격의 매체인가? DMB는 수용매체와 전달기술, 사용방식만 다를 뿐 변형된 형태의 방송매체로서 흔히 방송통신 융합매체라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확대 재생산된 방송매체’이다. 명목상의 뉴미디어일 뿐 본질적인 차원에서 방송인 DMB는 결국 시청취율에 의탁하고 있는 기존 방송매체와 마찬가지로 구조적으로 그러한 방식의 콘텐츠를 선호하고 보편화시킬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진다.

한편 매체의 수용측면에서 DMB는 이동수신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의 모든 공간과 시간에 수용자들을 TV에 노출시키는 매체이다. 연구자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DMB라는 매체에는 인간 시청각 기능의 ‘상시적 과잉가동’ 또는 ‘여가시간의 TV식민지화’ 등의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다. 또 개인미디어의 형태를 띠면서 고립적 단자들의 수동적인 TV 시청행위로 나타날 DMB의 소비양상은 사회와 유리된 ‘고독한 군중’의 전형적인 모습을 예견케한다. 이러한 때 DMB와 같은 새로운 매체의 도입은 사회 전체의 문화적 역량제고와는 거의 무관한 결과를 낳지 않을 수 없다.  

2) 방통융합의 실제적 양상과 그 함의

뉴미디어 정책분야에서 최근 가장 큰 관심의 화두가 되는 것은 방송과 통신의 융합관련 문제이다. 방통융합 현상이 벌어지는 근본적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용어에 따르면 방통융합은 마치 방송과 통신이 상호균등한 비중을 가지고 동일한 평면에서 융합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방통융합 환경이 조성되는 것은 방송시장 내부의 동력에 의해 추동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통신시장의 구조적 변화에 의존한다.

즉, 통신 산업을 뒷받침하는 유무선 음성시장의 수익률이 하락하면서, 새로운 시장 진출 모색의 결과로서 방송과 통신의 융합이 가속화되는 것이다.  현재 시장포화상태에 있는 통신산업이 지금과 같은 성장세를 장래에 유지할 수 없다면 성장동력을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영역으로의 진입이 요구되는바 이것이 통신사업자의 방송영역 진입으로 나타나고 이것이 방통융합 현상을 가져오고 있는 보다 직접적인 원인이다.

방통융합 법제개편에 대한 논의 중 상당수가 방송과 통신의 융합을 강조하면서 방송규제의 논리를 이후의 융합환경에도 적용할 수 있는가를 따져보는 형식으로 나타나는 것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즉, 공익성에 입각한 ‘방송의 정책논리’보다 시장과 경쟁론에 입각한 ‘통신의 정책논리’가 방통융합 환경에서는 더욱 타당하다는 주장으로 논의의 축이 편향되어 있는 것이다. 규제완화와 경쟁 원리의 도입, 경제적 효율성이 중시되는 규제원칙을 적용하는 것을 가장 적절한 방통융합 정책의 기조로 제시하는 논의나 더 나아가 방송 공익성이라는 개념을 축소화하고 이의 적용 역시 최소화해야한다는 주장, 또 문화적 예외논리 또는 산업의 국적성 논리가 적용되는 방송산업도 이제는 과감히 개방할 태세를 갖추어야한다는 주장 등에서 이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경제중심적 시각에 치우친채 매체의 공공성과 문화에 대한 논의가 경시되면서 시장과 경쟁을 강조하는 통신논리가 지배적인 정책규범으로 자리잡을 경우 이는 결국 기업들의 융합을 통한 미디어 산업의 고도집중현상을 가져올 수도 있으며 ‘방통융합’ 관련 논의는 이를 정당화하는 담론의 수단으로 기능할 위험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또 하나 통신규제논리의 적용시 방통융합 서비스, 나아가 방송산업에 대한 해외자본에의 개방까지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3. 대안과 관련하여

1) 정책수립과 집행의 틀 문제

지금 우리 사회가 신속하게 그리고 기술적으로 가능한 모든 매체를 도입하고자 하는 ‘압축성장-압축적 정보화 정책’의 틀을 바꾸고 매체정책의 진정한 의의를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하나의 대안은 정부가 먼저 엘리트주의적 전문주의를 벗어나는 것이다. 매체정책에 시민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것은--합의회의, 시민배심원, 대안포럼, 포커스 그룹 등 그 형태는 여러 가지가 가능하다--효율적인 정책수립과 집행을 위해 오히려 비용이 적게 드는, 그러면서도 성과는 더욱 좋은 방식이다. 뉴미디어 도입정책에 이러한 시민참여의 틀이 적극적으로 도입될 때 뉴미디어가 가진 잠재력, 즉, 보다 많은 민주주의의 실현,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논의의 성숙, 문화적 생태환경의 제고 등과 같은 희망의 가능성은 높아진다.

2) 수용자의 조직화 문제

뉴미디어 정책과 관련 DMB와 방통융합 논의에 대해 지적해보았지만 이 중 그 어디에도 수용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우선은 이러한 움직임의 주동자들인 자본과 국가의 생각속에 수용자는 뉴미디어를 들여오면 들여오는대로 받아들이는 극히 수동적인 집단 정도로 상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왜 수용자들의 위상이 이렇게 낮아졌을까? 그 책임의 절반은 성장과 개발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상의하달식으로 정책을 밀고 나가는 정부와 거기에서 철저하게 이득을 보고 있는 일부의 지배적인 가전, 전자, 통신, 방송 사업자들에게 있다.  

그러나 책임의 나머지 절반은 수용자들 스스로에게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우리나라의 수용자들은 세대와 성별을 가릴 것 없이 극히 무절제한, 너무나도 공격적인 ‘뉴미디어-기술 소비행태’를 가지고 있으며 이런 행태가 결국 스스로의 위상추락을 자초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무분별한 기술소비는 정부와 사업자들이 각종의 매체도입정책과 매체사업에 마구 뛰어드는 하나의 바탕이 되고 있다. 철저하게 소비자로 훈련되는 수용자들이 깨어나 스스로 조직화되지 않고는 사실상 뉴미디어를 통한 건강하고 수준높은 문화적 생태환경을 구성하기는 난감한 일이다. 또 ‘행동의 정치’에는 익숙하지만 ‘참여의 정치’에는 정작 준비가 미진한 시민사회 영역도 여기에 일정한 책임을 지고 있음은 물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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