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110호 리뷰 2018.09.30.]


    물거품이 아닌 모든 삶을 위하여

    - 영화 <어른이 되면>


    강봉수 (시네마달 해외배급팀원)



      누군가 말했다. 왕자를 사랑해 세상으로 나온 인어공주는 물거품이 되어버렸다고. 그래서 이렇게 말하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바다에 남아 있지 왜 험한 세상으로 나왔느냐고. 많은 사람들은 이 질문에 침묵으로 동조한다. 물거품이 된 인어공주가 불쌍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극은 언제나 불편함을 동반한다. 그런데 여기 ‘인어공주가 물거품이라고 누가 그래?’라며 이 침묵에 반문을 제기하는 영화가 나타났다. 장애인 수용 시설에서 사회로 나와 살아가기 시작한 장혜정 씨의 이야기를 담은 장편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2018)이다.


    ▲ <어른이 되면>(장혜영, 2018)



      중증발달장애가 있는 혜정은 열세 살이 되던 해 가족들에게 이런 통보를 받는다. “너는 이제 가족들과 떨어져서 평생을 살아야” 하며, 이 결정을 “거절할 권리는 없”다고, 이 모든 게 “네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정말로 혜정은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외딴 산꼭대기의 장애인 수용 시설에서 살게 된다. 혜정을 18년 만에 시설 밖으로 나오게 한 건 둘째언니 혜영이었다. 유투브에서 ‘생각많은 둘째언니’라는 채널을 운영하며 장애인권과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있는 장혜영 감독은 탈시설 이후 동생과 함께 시작한 6개월간의 동거 생활을 영화 <어른이 되면>으로 만들었다.



    질문하며 조금씩 나아가는 삶


      <어른이 되면>은 많은 질문으로 채워진 영화다. 두 자매는 명료한 한 가지 질문을 계기로 탈시설을 선택했다. 누군가의 인간적인 삶을 억압하여 얻어진 삶은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시설은 기본적으로 장애인을 비장애인의 세계로부터, 비장애인이 누리는 삶의 조건과 행복으로부터 격리하는 공간이었다. 장혜영 감독은 동생 혜정의 인간적인 삶 없이는 자신에게도 인간적인 삶이 불가능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동생과 함께 서울로 이사를 나온다.


      그러나 새로운 공간에서 출발하는 두 사람 앞에는 또 다른 질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장애인에 대한 활동보조 및 공적 지원 프로그램을 이용하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여러 조건들이었다. 두 사람은 여러 가지 자격과 증명을 요구받는다. 서울에 거주한 지 6개월이 넘었는지, 시설에서 나온 이유가 무엇인지, 혜정이 글자를 읽을 수 있는지, 혼자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밥을 지어 먹을 수 있는지 혹은 밥을 떠먹여줘야 하는지, 위험물이 다가오면 피할 수 있는지 등. 세상이 이들에게 던진 질문은 결국 한 가지 근본적인 물음을 낳는다. 이 사회는 탈시설 장애인이 살아갈 수 있는 곳인가?


    ▲ <어른이 되면>(장혜영, 2018)



      장혜영 감독은 동생 혜정이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이에 답하기로 한다. 그리고 새로운 질문을 꺼낸다. 세상 밖으로 나온 장애인들과 함께 살기 위해 비장애인이 가져야 할 삶의 태도는 무엇인가? 이 질문이 가장 먼저 향하는 대상은 비장애인인 감독 자신이다. <어른이 되면>에는 자주 고민하고 흔들리는 혜영의 모습이 나온다. 그는 동생 혜정을 돌보면서도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혜정에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요구하는” 자신과의 시간을 동생이 좋아하는 걸까 걱정하고, 더 넓은 세상을 만나게 해주고 싶어 찾아간 노들야학에서 잘 적응하지 못한 혜정을 보며 동생의 삶에 “어디까지 개입해야” 옳은지 망설인다.


      그런데 이 혼란은 정말 혜정에게 장애가 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일까? 만일 혜정의 장애가 아니었다면 18년 만에 다시 함께 살게 된 두 자매는 아무런 문제도 고민도 없이 지낼 수 있었을까? 장혜영 감독은 조금 더 솔직해지기로 한다. “오랜 시간을 떨어져 지내다가 이제야 막 같이 살기 시작한 우리가 서로를 모르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 아닐까?” 그렇다면 일단 같이 살아보는 것, “지금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때부터 두 자매는 제주도로 여행을 떠나고,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고, 결혼식과 시상식에 참석하고, 잠깐 동안 서로 떨어져 지내보기도 하며 세상을 경험한다. 그리고 서로를 조금씩 알아간다.



    함께, 무사히 살아가는 일


      <어른이 되면>에 담긴 중요한 진실은 여기에 있다. 이 영화는 중증발달장애인이 탈시설 이후 이뤄낸 놀라운 성장을 보여주지도, 시설 밖으로 가족을 데리고 나온 보호자 겸 부양자가 감내해야 하는 고충을 전시하지도 않는다. 장혜영 감독과 제작진 또는 그의 친구들이 하는 일은 한 가지다. 혜정과 함께 살며, 서로를 이해하는 관계를 만드는 것. 그래서 그들은 혜정과 밥을 먹고, 노래를 부르고, 스티커 사진을 찍고, 캠핑을 간다. 그 과정에서 혜정은 발달장애가 있는, 그로 인해 24시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있고 자신과 타인의 관계를 인식하며 소중하게 여기는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진실이 비로소 드러난다. 너무나 당연하지만 결코 온전히 이해받은 적 없었던 누군가의 존재. 그것을 알아가는 첫 번째 길은 일단 함께 살아보고 마음을 나누는 데 있었다.


    ▲ <어른이 되면>(장혜영, 2018)



      시설에 있는 동안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했던 혜정은 늘 이것이 궁금했다. “어른이 되면 할 수 있어?” 혜정의 언니 혜영은 고백한다. ‘나중에’라는 말로 혜정의 호기심과 욕망을 미루었던 자신조차 그것이 언제인지를 알지 못했다고. 그런데 어쩌면 시설 밖의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도 자의로든 타의로든 혜정처럼 현재의 행복을 유예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안정된 삶이란 정말 세상과 분리된 시설 안에, 앞과 뒤가 정해져 있어 차분하게 계단을 밟아나가면 되는 인생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영화 속 장혜영 감독의 말처럼 “내 길을 만들어나가”는 데 있을까? 이 질문 앞에서 <어른이 되면>은 현명한 답을 내놓는다. 어느 쪽이든 우리의 삶은 적어도 누군가의 삶을 물거품으로 만들지도, 물거품이 되어버리지도 않는 것이어야 한다고. “죽임당하지 않고 죽이지도 않고서” 무사히 할머니가 되는 꿈처럼.



    세상의 모든 ‘에리얼’들에게


      이제 겨우 1년이 된 혜정과 혜영의 동거 생활은 앞으로도 많은 어려움과 갈등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앞으로의 시간만큼 그들은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을 것이고, 해보지 못한 일들에 도전할 수 있을 것이며, 이건 그들의 친구들인 우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른이 되면>은 단지 '생각 많은' 비장애인의 무모한 시도가 아니다. 장애 유무에 관계없이 모든 이들이 어울려 저마다 꿈을 이루고 살아가는 세상을 상상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까지 세상의 모든 ‘에리얼’(*주1)들에게 노래로 희망을 전하는 이 영화가 올해 극장에서 더 많은 관객들과 만날 수 있길 바란다.


      인간이 된 인어공주는

      정말 알고 싶었어 

      바다처럼 신비로 가득한

      세상 모든 것들을

      인어공주는 물거품이 아니야

      인어공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가고 싶은 곳에 갔다네. □



    * 편집자 주1. 에리얼(Ariel),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의 주인공 이름




    글쓴이. 강봉수

    사회인. 영화를 자주 보고 매일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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