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111호 리뷰 2018.10.05.]


    <더 블랙>이 기억하는 이름 ‘이남종’ 


    구보라


      사람들이 잘 기억하지 못 하는 이름이 있다. ‘이남종’. 그는 2013년 당시 18대 대선을 앞두고 벌어졌던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품었다. 뻔히 보이는 잘못된 일에 대해 분노했다. 그리고 행동했다. 그 해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고 이남종 씨는 ‘국정원 특검 실시,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서울역 고가도로 위에서 분신자살했다. 그는 유서에서 “두려움은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일어나십시오.”라는 말을 남겼다. 


      그 일이 있은 지 4년이 지난 2018년, 다큐멘터리 <더 블랙>이 개봉했다. 9월 14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더 블랙>은 ‘이남종씨는 왜 자살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해서 국정원의 대통령 선거 개입 사건을 들여다본다. 그렇기에 <더 블랙>은 그동안 국정원 댓글 공작사건을 다뤘던 여느 언론 보도(뉴스, 시사프로그램)와는 접근이 다소 달랐다. <더 블랙>의 이마리오 감독은 ‘그가 느낀 분노와 두려움은 무엇이었을까?’, ‘그의 목소리가 이후 일어난 촛불 혁명의 시작은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영화는 다시 그의 죽음으로 끝난다. (‘블랙요원’은 국정원 요원 중에서, 신분을 밝히지 않고 은밀하게 활동하는 자를 칭한다.) 


    ▲ <더 블랙>(이마리오, 2018)



      국정원 댓글 개입 사건. 이미 당시 언론을 뜨겁게 달궜던, 국민들의 관심을 받았던 사건인데 더 새로울 게 있나? 하는 시선도 있을 수 있다. 박근혜 정부는 촛불 혁명에 의해 탄핵당했다. 새로운 정부가 탄생했고, 댓글 공작 사건을 비롯한 수많은 국정원의 의혹에 대한 조사도 실시됐다. 댓글 공작 사건에 관련된 자들도 실형을 선고받았거나 재판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더 블랙>은 아직도 모든 실체가 다 규명된 게 아닌만큼 끝난 사건은 아님을 강조한다. 


      <더 블랙>은 국가정보원이라는 국가권력이 저질렀던 대선 개입과 여론 조작이 경찰, 검찰 등 또 다른 국가권력을 통해 은폐됐음을 충실히 기록하고 조망했다. 2012년과 2013년, 당시 숨 가쁘게 진행되던 진실 은폐의 과정들을 드러냈다. 이를 위해 1시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5개의 챕터를 통해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 수사대 내 설치된 CCTV 영상, 국정원 심리정보국 팀장이 김 씨에게 보낸 문자 기록, 경・검찰의 내부감찰보고서, 특별수사팀에 속했던 전직 검사와의 인터뷰 내용 등이 촘촘히 등장한다. 


      18대 대선을 8일 앞둔 2012년 12월 11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오피스텔 607호. ‘국정원심리정보국 소속 요원이 정치 관련 커뮤니티와 포털 사이트에 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비방하는 내용의 댓글을 달고 있다’는 제보를 받은 민주통합당 의원들이 급습했다. 선거관리위원회 직원, 경찰도 출동했으나 607호 문은 굳게 닫혔다. 607호 바깥은 경찰, 국회의원, 기자들 등으로 인산인해를 이뤘고, 국정원은 그곳은 국정원 직원의 개인 거주지라며 댓글 활동을 한다는 주장은 사실 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후 국정원 직원은 12월 12일 오피스텔 문을 나왔고, 서울지방경찰청은 분석팀을 꾸려 댓글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 챕터 ‘디지털 포렌식’에서는 당시 국정원 댓글 개입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이, 디지털 포렌식을 통해 조사하는 장면을 녹화한 CCTV 영상이 등장한다. (<더 블랙> 제작진은 2013년 국정감사 당시 제출된 127시간의 CCTV 영상을 6개월에 걸쳐 풀어냈다고 한다.) 경찰은 디지털 포렌식 방식으로 국정원 직원의 닉네임을 확인하고, 어떤 게시글을 올렸는지, 어떤 글에 ‘추천’을 눌렀는지 등을 확인했다. 


      “이 사람이 ‘북한 핵실험’에 대한 글을 쓰고, 정치적인 글을 추천했었네요”, “오유(오늘의유머 사이트)에도...근데 오유에 들날락했다고 말하는 순간 국정원이 그 사이트를 사찰했다고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에요”, “어렵게 가지 말고 쉽게 가자구요”, “일단 발견된 건 적자. 적고, 윗선에 어떻게 할지 물어봅시다” 등의 발언을 관객들을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현실에서, 국민들이 경찰로부터 들었던 조사 결과는 달랐다. <더 블랙>이 시작한 지 30분째, 2013년 12월 17일 경찰이 ‘혐의를 발견 못 했다’는 분석결과보고서를 발표한다. “혐의가 없다고 판단하신 거에요? 아니면 믿고 싶은 거에요?”라는 기자의 날카로운 질문에도 수서경찰서장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틀 뒤에 열린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는 51.6%의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했다. 


      이어 세 번째 챕터, ‘검찰 특별 수사팀’에서는 국정원 댓글 개입 사건의 전말 그리고 수사 전반적인 이야기가 등장한다. 다큐멘터리의 톤도 살짝 달라진다. 제작진이 취재를 통해 재구성한 것으로 검사 X가 등장하는 재연 장면이기 때문이다. 


      ‘전직 검사 X’는 당시 특별수사팀이 이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청와대·국정원 등 윗선으로부터 어떤 압력을 받았는지 구체적으로 말한다. 검사 X에 따르면 국정원 댓글 공작 사건은 당시 특별수사팀 소속 공안검사조차도 국정원의 정치개입을 인정할 정도였다. 검사들은 결정적인 증거도 확보했고, 윗선의 의사와는 다르게 수사를 강행했다. 국정원의 선거 개입 여부를 어느 정도 밝혀내기까지 했다. 그리고 2013년 6월 14일 수사 결과를 발표한다. 하지만, 채동욱 전 검찰총장과 윤석열 당시 특별수사팀장을 포함한 수사팀 수뇌부는 자리에서 물러나야했다. 


      “위에선 ‘덮어라’, 검사들은 ‘못 덮겠다’. 그러니깐 검찰총장을 날려버린 거에요. 아주 치졸한 방식으로. (중략) 특별수사팀 검사들이 강골이었다고요? 천만에요. (윗선이) 그 사람들을 강골로 만든 거에요.” (검사X의 말 중에서) 


      그의 말대로, 당시의 상황들을 지금은 ‘치졸했다’고 평할 수 있다. 하지만 <더 블랙>을 통해 우리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를 뒤덮었던 절대적인 공권력, ‘치졸함’이 어쩔 수 없이 용인되던 상황, 부조리함들을 새삼스럽게 바라보게 된다.   


    ▲ <더 블랙>(이마리오, 2018)




    보이지 않으나 체감되는 공포와 결핍을 말했던 ‘이남종’,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리고 감독은 ‘검사 X’에게 묻는다. ‘이남종’을 아느냐고. 그는 “모른다”며 “제가 그 분은 모르지만, 검사마저 깨져나가니깐 국민들에겐 절망적이었던 것 아닌가. 개인적 성향이나 처지가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죠. 물론 그게 국민의 뜻이죠.”라고 답한다. 그리고 “촛불이 이남종이라는 분하고 무슨 상관이죠?”라고 질문한다. 그의 질문처럼, 그로부터 2년 뒤에 일어난 ‘촛불’은 그와 무관한 걸까? 이미 눈에 뻔히 보이는 박근혜 정권의 부정과 부패에 대해 고 이남종씨는 분노를 느꼈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느꼈을 그 분노.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안부도 묻기 힘든 상황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총칼없이 이룬 자유민주주의를 전복한 쿠데타 정부입니다. 원칙을 지킨다는 박근혜 대통령은 그 원칙의 잣대를 왜 자신에게는 들이대지 않는 것입니까. 많은 국민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진 공권력의 대선개입은 고의든 미필적 고의든 개인적 일탈이든 책임져야 할 분은 박근혜 대통령입니다. 이상득, 최시중처럼 눈물 찔끔 흘리며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던 그 양심이 박근혜 대통령의 원칙이 아니길 바랍니다. 여러분, 보이지 않으나 체감되는 공포와 결핍을 제가 가져가도록 허락해주십시오. 두려움은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일어나십시오.”


      고 이남종씨의 유서 내용이다. <더 블랙>은 마지막 다섯 번째 챕터에서 다시 ‘이남종’으로 돌아간다. <더 블랙>은 그는 시민운동, 사회운동을 한 사람도 아니었으며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는 그저 평범한 시민이었다. 평범한 시민이었던 그가 국정원 댓글 공작사건을 보며, 문제를 느꼈고 지적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 경찰은 ‘이남종씨가 경제적 빈곤 등 개인적 신변을 비관하여 분신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다큐멘터리에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유서 내용도 분명히 사회적인 문제제기였는데, 경찰은 경제적 문제로만 보도자료를 냈어요. 고인의 명예에 문제가 생겨 문제제기를 했지만 이미 보수 언론들은 기사를 썼고, 명예를 회복하기가 어려웠어요.”라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당시 언론은 왜곡하거나, 또는 외면했다. 지상파3사는 왜곡이 일어날 기사 자체를 쓰지도 않았다. MBC는 “이남종”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간 어떠한 기사도 내지 않았으며, KBS는 영결식을 알리는 단신 기사를 보냈다. SBS가 <‘두려움 안고 간다' 서울역 분신 40대 유서 공개’>, <문재인, 서울역 분신 사망사건에 "참담한 마음"’> 등 세 편의 온라인 기사를 냈고, 종합편성채널 중에서는 JTBC가 <유서 두고 유족·경찰 엇갈린 주장…그는 왜 분신했을까> 리포트를 방송했다. 

     박근혜 정권 동안 언론이 외면한 죽음은 이 뿐만은 아니겠으나 이처럼 그의 죽음은 언론마저도 외면했고, 사람들에게 덜 알려질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이 다큐는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 위해 고 이남종씨의 죽음을 기억해야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애도한다. 이 점이 인상적이다. 2017년 1월 1일 광주 망월동 묘역에 위치한 고 이남종씨의 묘 앞에 흰 국화가 놓여지는 장면처럼, <더 블랙>은 그에게 애도를 표하며 끝을 맺는다. <더 블랙>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고 이남종 씨를 알고 그의 마지막 말을 기억할 것이다. □




    글쓴이. 구보라



    TV와 영화 보기, 소설 읽기를 좋아하고, 리뷰를 씁니다.

    Posted by ACT! actedi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