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리뷰 2018.05.03.]
세월호에 대한 질문을 가리는 영화, <그날, 바다>
성상민(ACT! 편집위원)
오래 전부터 4월은 ‘추모의 달’이라 봐도 과언은 아니었다. 제주 4.3 사건과 4.19 혁명은 국가 권력이 민중의 저항에 폭력으로 대응한 과거의 역사를 상징했다. 안타깝게도 2014년 이후로 4월에 또 다른 ‘추모의 날’이 늘어나고 말았다. 한국 사회에 경종을 울린 비극적인 선발 침몰 사고 ‘세월호 참사’가 그해 4월 16일에 발생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의 취약성과 문제가 집약된 총체적 난국이었다. 당장 침몰해도 이상하지 않을 배가 안전 검사를 통과하고 버젓이 바다 위를 돌아다녔다. 정부는 안전 취약점을 제때 관리하지 못한 것은 물론, 안전사고가 발생한 뒤에도 이렇다 할 조처를 하지 못했다. 오히려 졸지에 자식과 친지를 잃은 유가족들을 윽박지르기에 바빴다. 세월호 특조위에 적극적으로 결합하여 진상조사에 힘을 쓰는 대신, 물밑에서 특조위의 활동을 방해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보수 우익단체들 역시 박근혜 정부와 손을 잡고 세월호 유가족과 그들과 연대한 사람들을 ‘종북’으로 몰며 정신적으로 큰 피해를 안겼다. 참사 발생 전부터 후까지 벌어졌던 모든 일련의 사건들은 한국 사회가 놓여 있는 현실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세월호 사건의 처리 과정에서 크나큰 불신과 반목을 만든 박근혜 정부는 결국 2017년 초, ‘박근혜-최순실 스캔들’로 인해 탄핵을 당하며 스스로 명줄을 끊었다. 이후 새롭게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조사에 강한 의지를 보이며 유가족을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기대감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 출범 이래 처음으로 맞는 4월 16일을 앞두고 한 편의 영화가 극장에 걸렸다. 바로 <그날, 바다>이다.
▲ 영화 <그날, 바다> 포스터
2010년대 이후 달라진 미디어 환경이 만든 다큐멘터리
<그날, 바다>는 본래 <인텐션>이라는 제목으로 제작된 작품이었다. 시사/정치 웹진 <딴지일보>의 ‘총수’ 김어준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시리즈 ‘프로젝트 부(不)’에 속한 영화이기도 하다. 본래 ‘프로젝트 부’로 묶인 작품 중에서 가장 먼저 공개될 것이라 선언했던 영화는 2012년 대선 조작 의혹을 내세운 <더 플랜>과 주진우 시사IN 기자의 이명박 비리 추적을 다룬 <저수지 게임>이 개봉된 이후에 겨우 개봉하게 되었다. 그 사이에 제목도 <그날, 바다>로 바뀌었다.
영화의 제작자인 김어준은 한국 미디어 환경 변천사를 말하기 위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만 하는 인물이다. 그가 1998년 창간한 <딴지일보>는 재치있게 사회, 정치 이슈를 풍자하고 글의 문체 역시 반말과 비속어를 사용하는 등 당시 한국 미디어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스타일로 주목을 받았다. 이후 김어준은 2011년 정봉주 전 국회의원, 김용민 시사평론가, 주진우 시사IN 기자와 함께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를 만들며 다시금 화제가 되었다.
▲ 2018. 4. 17. 이수 아트나인
<그날, 바다> 상영보고회에 참석한 김지영 감독과 김어준 제작자
<나는 꼼수다>는 이명박 정권에 답답함을 느끼던 청취자의 마음을 거침없는 주장과 분석, 그리고 걸쭉한 욕설로 시원하게 풀며 열렬한 인기를 끌었다. 또한 <나는 꼼수다>는 한국에 본격적으로 ‘팟캐스트’를 정착하는 동시에, 팟캐스트의 ‘대안언론’적인 성격을 부각하는 하나의 계기를 만들었다. 이후로도 김어준은 2016년 서울시 산하의 공영방송 tbs에서 라디오 프로그램 <김어준의 뉴스공장>, 2018년에는 지상파 방송 SBS에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의 진행자로 활약하며 더욱 많은 사람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알리고 있다. 시사 웹진에서 시작해 팟캐스트, 라디오, 끝내는 TV 프로그램에 진출한 그의 이력은 그 자체로 한국 미디어 환경의 흐름과 변화를 상징한다.
<그날, 바다>의 감독 김지영 역시 무척이나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본래 CF 감독으로 활약하던 그는, 2012년 대선 직전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만든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을 발표하며 일약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 직접적으로 이승만과 박정희의 문제점을 건드린 작품은 시민방송 RTV로 잠시 방송했던 것을 제외하면 철저히 온라인으로 유통된 다큐멘터리였다. 하지만 공개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곧 200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하는 것은 물론, 정치권에서도 큰 화제를 일으키는 것에 성공했다. 이후 <백년전쟁>은 RTV로 방송된 이후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객관성, 공정성, 명예훼손성’을 이유로 징계를 내리며 방송과 언론의 자유라는 측면에서도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제작자도, 감독도 모두 주류적인 매체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철저히 온라인을 기반으로 활동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이들이 만든 결과물은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에도 영향을 끼치고, 거시적으로는 한국 미디어 환경 전반에도 큰 파장을 미쳤다. 이렇게 여러모로 화제가 된 두 인물이 뭉쳐 <그날, 바다>를 만들었다. 과연 작품은 어떤 주장과 메시지를 담고 있을까.
유려한 편집과 리듬으로 ‘가설’을 설파하다
<그날, 바다>의 본디 제목이자 영어 제목인 ‘인텐션’(intention)은 한국어로 ‘의도’나 ‘목적’을 의미한다. 그 의미대로 <그날, 바다>는 세월호 침몰이 ‘고의’로 발생했다는 의혹을 계속 주장한다.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침몰 원인으로 공개한 ‘급변침’(갑작스러운 선체 회전으로 인한 침몰)과 달리 이를 ‘논리적’이며 ‘과학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새로운 증거를 발견했음을 강조한다. 그 ‘증거’는 바로 ‘출처마다 서로 다른 세월호의 위치 정보’와 ‘의문의 검은 양복’이다.
영화는 세월호가 침몰 직전까지 해경 VTS(해상교통관제센터)에 송신한 위치-속도 기록과 해군 함정에 설치된 레이더가 포착한 위치 기록이 서로 다른 것에 집중한다. 감독은 독자적으로 수집한 정보와 스스로 배운 자료 해석법에 기초하여 세월호는 침몰 직전 낮은 수심에 진입해, 갑자기 닻을 내려 배가 침몰했다는 가설을 내세운다. 여기에 감독은 세월호에 탑승했던 생존자나 선원의 증언을 덧붙여, 세월호가 처음으로 기우뚱한 순간을 조작하려는 ‘의문의 검은 양복’이 존재했다고 주장한다. 작품은 지속해서 <그날, 바다>의 모든 주장이 ‘가설’임을 내세우지만, 그 가설은 ‘과학적’인 분석에 따라 도출된 것임을 강조하며 은연 중으로 가설의 신빙성을 내비친다.
▲ 영화 <그날, 바다>의 한 장면
다큐멘터리에 담긴 주장을 떠나, 분명 <그날, 바다>는 흥미진진하게 영화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구성된 작품이다. 본래 CF 감독이었던 감독의 이력처럼, 영화는 끊임없이 관객의 이목을 자극적인 장면을 이어나간다. 적극적으로 효과음과 자막을 사용하는 것은 물론, 세월호가 침몰하는 모습과 자신들이 내세운 ‘가설’을 3D 그래픽으로 재현하며 관객들에게 ‘볼거리’를 주려 애쓴다. 한 번 보여준 장면이나 증언을 여러 번 반복하며 관객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앞장서서 주입하는 연출법도 사용된다. 김지영의 전작 <백년전쟁>이 그랬던 것처럼, <그날, 바다> 역시 관객들의 시선을 적극적으로 자극하는 연출을 계속 이어나간다.
또한 <그날, 바다>는 관객들의 감정을 직접 건드는 시퀀스를 효과적으로 사용한다. 영화의 초반부에서 무척이나 무능한 ‘정부’와 그에 맞서는 ‘김어준’을 대비하는 것은 물론, 영화의 결말부에서는 세월호 참사 생존자들과 유가족, 그리고 김어준 자신이 흘리는 눈물을 교차 편집하며 관객들이 세월호 참사라는 거대한 문제에 감정적으로 다가갈 수 있게 만든다. 세월호 참사를 애니메이션으로 재현하는 장면에서도 사람이 바다에 빠지거나, 선체에 부딪히는 모습을 묘사하는 등 매우 직접적으로 세월호 참사의 당시 순간을 표현한다. 세월호 사건에 적극적으로 연대하거나, 세월초 침몰에 의문을 제시했던 이들이라면 순식간에 빠져들 수 있는 여지를 무수히 두는 작품인 것이다.
‘닻 침몰론’에 가려지는 세월호의 문제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날, 바다>는 세월호를 말하지만, 동시에 세월호에 대한 문제를 말하지 않는다. 작품이 담고 있는 세월호의 문제는 ‘닻 침몰론’에 수렴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날, 바다>는 감독과 제작자가 가설로 내세운 ‘닻 침몰론’의 얼마나 신빙성을 갖추고 있는지를 증명하고, 다시 3D 애니메이션으로 재현하며 관객들을 설득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 이외 참사 당시의 문제나 참사 전후로 보였던 정부의 태도와 행동에 대한 지적은 거의 담겨있지 않다.
물론 <그날, 바다>의 제작진을 비롯하여 많은 이들이 세월호의 침몰에는 어떤 ‘의도’가 있었다고 생각하게 된 큰 책임은 전적으로 박근혜 정부의 몫이다. 최근 문재인 정부의 조사로 밝혀졌듯,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당일 컨트롤 타워의 기능을 전혀 발휘하지 못했다. 도리어 자신들의 무능을 숨기는 것에 급급했으며, 적극적인 진상조사 착수를 주장하는 유가족과 민중들의 요구를 억누르기에 여념이 없었다. 게다가 일부 언론은 박근혜 정부에 편승하여 세월호 유가족과 연대하는 이들을 비난하는 것에 몰두할 뿐이었다. 제대로 국가 시스템과 언론이 작동하지 않는 가운데,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월호 참사의 원인은 여전히 조사 중인 상황이다. <그날, 바다>가 50만 명의 관객을 모은 진정한 이유는 지난 정부에 대한 ‘답답함’과 기존 언론에 대한 ‘불신’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의의를 감안하더라도, <그날, 바다>가 ‘닻 침몰론’에만 얽매여 세월호 참사를 말하는 것은 작품의 치명적인 한계이다. ‘닻 침몰론’ 자체가 개봉한 이후 계속 논란에 휩싸이고 있지만, 침몰론 자체에 대한 논란을 떠나 세월호 참사를 ‘침몰론’으로만 이야기하는 것은 세월호 참사가 한국 사회에 던진 메시지를 놓치기 쉬운 자세이다.
▲ 정부 위탁을 받고 선박 안전을 검사하는 민간단체 ‘한국선급’은
세월호가 불법 개조됐다는 사실을 알고도 지적하지 않았다. (사진출처: JTBC)
세월호는 그 자체로 한국 사회가 안전을 등한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선박이었다. 세월호 특조위는 정부의 지속적인 방해와 열악한 활동 여건에도 불구하고 세월호가 그 자체로 문제가 많은 배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세월호 화물칸 위는 철판이 아니라 천막으로 덮여 있었다. 세월호가 더 많은 화물과 승객을 실어 나르기 위해 불법적으로 개조가 이뤄지고, 과적이 일상적으로 벌어져도 이렇다 할 감시나 관리감독이 이뤄지지 못했다. 여기에 최근 세월호 선조위의 조사 결과, 선박에 물이 찰 때 빠르게 빼기 위한 통로인 ‘수밀문’이 전부 열려있었다는 사실과 선박의 방향타를 조절하는 부품 ‘솔레노이드 밸브’에 결함이 있었다는 사실도 드러나게 되었다. 언제 침몰해도 이상하지 않을 배가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돌아다녔다.
동시에 세월호의 침몰은 한국 사회의 구조가 낳은 참사기도 했다. ‘낡은 규제’를 없애 ‘산업을 진흥’시키겠다는 명목으로 선박안전법에 규정되어 있던 각종 안전 규제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세월호에 탑승한 17명의 핵심 선원들 중 선장을 포함한 12명이 비정규직이었다. 해경은 자신들이 전담해야 할 해양 안전 관리 업무를 민간단체인 ‘한국해운조합’에 위탁했다. 세월호를 비롯한 선박을 정기적으로 검사하는 기관도 정부가 아니라 정부의 위탁을 받은 ‘한국선급’이었다. 게다가 아무리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발생할지라도, 관계자 몇 명만을 처벌할 뿐 안전사고를 일으킨 기업이나 안전 관리 및 조치를 등한시한 정부 관료에 대한 처벌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날, 바다>는 세월호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와 맥락을 전부 삭제한 채, 닻을 내려 침몰했다는 가설만 강변한다.
세월호를 말해왔던 다양한 작품들에 주목하라
애석하게 대중들의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김어준-김지영의 <그날, 바다>나 이상호 감독의 <다이빙벨>이 개봉하기 이전에도 수많은 감독이 세월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이에 대한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 왔었다. 김동빈 감독의 <업사이드 다운>은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진도 앞바다를 비롯해 팽목항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기록하고, 동시에 국내외 전문가 16인의 인터뷰를 함께 담아내며 세월호 참사가 드러낸 한국 사회의 적폐와 구조적 모순을 짚어내는 작품이었다.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나쁜 나라>는 정부와 정치권이 세월호 참사를 대처하는 자세와 진상조사를 위해 싸우는 유가족의 모습을 대비하며 세월호 참사의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이밖에도 세월호 참사를 각자의 시선으로 들여다보고, 함께 하려는 다양한 작품들이 있다. 무수한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참여하고 있는 ‘4.16연대 미디어위원회’는 세월호 참사 4주기에 맞춰 공개된 <공동의 기억 : 트라우마>를 비롯해 매년 세월호 참사를 다룬 옴니버스 다큐멘터리를 제작, 발표하고 있다. 최근 온라인으로 공개된 김응수 감독의 다큐멘터리 <오, 사랑>과 <초현실>은 외부인의 관점에서 세월호 문제에 접근하고 연대하는 모습과 함께 세월호 유가족이 지닌 슬픔의 무게를 진솔하게 드러냈다. <그날, 바다>와 같은 시기 개봉한 오멸 감독의 <눈꺼풀>은 4.3 사건과 세월호를 이미지로 연결하는 시도를 보였다.
▲ 최근 공개된 4.16 미디어위원회 옴니버스 다큐멘터리
<공동의 기억 : 트라우마> 포스터.
비록 이들 작품은 <나쁜 나라> 정도를 제외하면 유의미한 흥행을 거두지도, 널리 사람들에게 전파되지도 못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가 한국 사회에 던진 메시지를 깊게 들여다보고, 다른 한편에서는 세월호 유가족과 외부에서 이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드러내는 등 저마다의 다채로운 시선으로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함께하는 시도가 지닌 의미는 <그날, 바다>보다 훨씬 깊다. <그날, 바다>를 통해 세월호 문제를 인식하게 된 50만 명의 관객들이, 이들 작품을 통해 세월호 문제를 더욱 마음속 깊이 인식할 수 있길 바랄 따름이다. ■
[참고문헌]
- 사회진보연대 보건의료팀, <세월호 사고를 통해 드러난 구조적 문제와 노동안전 과제>, 월간 <오늘보다> 2015년 4월호(통권 제3호)
- 박상은, <세월호 진상규명, 우리는 지금 어디쯤 왔나>, 월간 <오늘보다> 2017년 2월호(통권 제25호)
- 정환봉 기자, <세월호야, 일어나>, 주간 <한겨레21> 제1209호, 2018년 4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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