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ACT! 인터뷰는 독립영화와 대안미디어 분야의 활동가들을 찾아갑니다. 가능하면 이제 막 이곳으로 진입하여 자기 자신과 그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신입활동가’를 자주 만나보고자 합니다. ‘활동’에 대한 호기심과 욕심, 실망과 의지를 고루 안고서 자기만의 영역을 일구기 시작한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찬찬히 나누며, 현재의 장을 환기시키고 새로운 가치와 욕구를 전달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차한비 (ACT! 편집위원)


    [ACT! 110호 인터뷰 2018.07.31.]


    두 번째 축제를 기다리는 마음

    - 이경준, 이채현, 이유선 (서울독립영화제)


    차한비 (ACT! 편집위원)


    올해로 44회를 맞이하는 서울독립영화제는 매해 연말에 개최되는 영화제로서 한 해의 독립영화를 호명하고 결산하는 자리로 여겨진다. 송년회처럼 따뜻하고 반가운 느낌을 주는 동시에, 경쟁 영화제로서의 팽팽한 긴장감 역시 지니고 있다. 작년 제43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새로운 얼굴들을 만났다. 서울독립영화제 프로그램팀의 이경준과 이유선, 홍보팀의 이채현. 문득 세 사람의 얼굴이 영화제의 인상과 묘하게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늘 바쁘고 긴장한 듯 보였지만 눈이 마주치면 환대의 미소를 건넸다. 


    영화제가 열리는 기간은 길어야 열흘 남짓이다. 주제도 표현도 각양각색인 영화들이 영화제라는 이름으로 한자리에 모였다가 짧은 축제가 끝나면 제 갈 길을 간다. 그렇다면 영화제를 만들었던 사람들은 어디로 갈까. 영화제가 열리지 않는 동안 그들은 무슨 일을 할까. 겨울의 낮과 밤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영화제가 끝나고, 어느덧 그 겨울도 봄도 지나서 여름의 한복판에 와 있다. 세 사람은 어디쯤 가 있는지, 요새는 무얼 하는지 궁금해졌다.



    ▲ 왼쪽부터 이경준, 이채현, 이유선


    |누구냐고 물으면


    한비 먼저 각자 소개 부탁드린다. 


    유선 프로그램팀에서 일하는 이유선이다. 작년 10월부터 12월까지 서울독립영화제 단기 스태프로 처음 일했고 올해 3월에 다시 복귀했다.


    채현 홍보팀 이채현이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과 입사 동기라고 말한다(웃음). 작년 5월에 들어왔는데 공교롭게도 대통령이 취임하던 날이었다. 새 정권에서 만나자는 농담 섞인 문자를 받고 일을 시작했다.


    경준 프로그램팀장을 맡은 이경준이다. 작년 4월부터 일했다.


    한비 오늘은 서울독립영화제를 대표한다거나 대신하는 사람들로서가 아닌 세 분 각자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듣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일하는 시간을 포함해 보통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지 궁금하다.

     

    유선 10시에 일어나서 11시에 출근한다. 퇴근 후에 별 약속이 없으면 운동을 하러 간다. 요즘에는 서킷 트레이닝이라는 순환운동을 한다. 운동 마치면 저녁 식사를 하고 두 시간 정도 드라마나 가요 프로그램을 본다. 잠들기 전에 일기를 쓴다. 대개 한두 시쯤 잔다. 


    채현 나도 비슷하다. 서울독립영화제의 업무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다. 다른 곳과 비교하면 출근이 늦은 편인데, 처음엔 어색했지만 이내 생활 패턴이 거기에 맞춰졌다. 워낙 친구들 만나는 걸 좋아해서 퇴근 후에 저녁 약속이 잦은 편이다. 딱히 친구들을 만나거나 하지 않으면, 혼자서 음악 들으며 한두 시간 정도 걷다가 집에 들어간다. 


    경준 이중에서는 제일 빨리 일어나는 것 같다. 일할수록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게 느껴진다. 8시에 일어나서 잠도 깰 겸 커피를 마시고, 가만히 앉아서 머릿속 이런 저런 생각을 정리하며 명상을 한다. 거창한 이유에서가 아니라 후다닥 쫓겨서 바쁜 마음으로 출근하기가 싫어서다. 이부자리 정리에도 습관을 들였다. 퇴근하고 집으로 들어갔을 때 어지러운 방을 보는 것이 싫기도 하고, 이것쯤은 지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근할 때는 나도 채현 씨처럼 몇 정거장 먼저 내려서 걷는다. 걷는다는 행위가 몸과 마음에 주는 영향이 아주 크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걸으면서 하루를 되돌아보기도 하고, 힘들었던 일들은 털어버리기도 한다. 


    한비 훌륭하다. 나는 매년 새해 다짐으로 운동이든 공부든 계획만 세우고 번번이 실패한다. 출근 전과 퇴근 후를 온전히 자기 시간으로 소화하기가 생각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경준 맞다. 나도 차단을 못 하는 편이다. 퇴근하고 사무실을 나와도 아직 일이 끝나지 않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더 이런저런 활동으로 내 시간을 채워가려고 하는 것 같다. 



    시작에 대해 물으면


    ▲ 왼쪽부터 이경준 프로그램팀장과 이채현 홍보팀장


    한비 어떻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괜찮다면 각자 원래는 어떤 일이나 공부를 했는지도 말해주면 좋겠다. 


    경준 나는 경영학과를 졸업했고 회사에 들어갔다. 야근을 밥 먹듯이 하며 몇 년 일했더니 ‘새로고침’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방향을 전환해보자 싶었다. 영화 관련 분야에서 일하겠다고 결심하니까 영화제가 보였다. 1년 동안 영화제를 돌면서 자원활동을 했다.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인지 간접적으로 체험해보며 나 스스로 기회를 준 셈이다. 흥미와 욕구가 생겼지만 내심 불안하기도 했다. 어쨌든 자원활동가는 보조적인 역할이니까, 막상 스태프가 되었을 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의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때 용기를 갖게 해주신 분이 서울프라이드영화제의 김승환 집행위원장이다.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지금 당장 일을 해도 충분히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격려해주셨다. 여담이지만 나중에 만나서 이 얘기를 하니까 본인은 전혀 기억 못 하시더라(웃음). 마지막으로 서울독립영화제 자원활동을 하고, 다음 해 2월 스태프 채용에 지원했다. 


    채현 학교 다닐 때 전공은 일어였다. 원래는 방송 프로그램의 PD가 되고 싶어서 언론정보학과에 갈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일본어를 전공하게 됐다. 입학하고 보니 90% 이상의 학생들이 이미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일본에 관심이 많고 일본문화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내 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를 좋아해서 그쪽으로 대외활동을 여러 차례 했고, 과정 중에 영화제를 알게 되었다. 그 전까지는 독립영화, 단편영화, 심지어 영화제의 존재조차 몰랐다. 인디포럼에서 자원활동을 하며 영화와 영화인, 영화제에 대한 글을 썼다. 그때가 정말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왜 꼭 영화여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졸업할 때쯤 돌아보니 내가 한 일이라곤 그것뿐이었다. 좋은 영화들을 발견했고 그 영화에 관한 글을 썼다. 영화제에서 만난 사람들이 좋았고 그곳에서 활동하는 나 자신이 좋았다. 물론 여러 영화제 중 서울독립영화제를 선택한 이유는 있다. 신이수 감독님의 <이름들>이라는 영화 때문이다. 그해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심사단으로 활동했는데 나에게는 터닝 포인트가 되어준 작품이다.


    ▲ 이유선 프로그램팀원


    유선 나에게 영화제는 대학생이라면 경험해봐야 할 어떤 로망이었다. 고향이 제천이라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10대부터 가기 시작했는데, 친구 언니들이 영화제 자원활동을 추천했다. 휴학하고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시작으로 부산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까지 가을과 겨울을 꽉 채웠다. 서울독립영화제를 끝으로 복학할 생각이었는데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인디포럼과 정동진독립영화제를 알게 되었다. 놓칠 수 없더라(웃음). 그렇게 다음 해까지 쭉 영화제 자원활동을 하면서, 점차 영화제 스태프의 일이 궁금해졌다. 행사에 좀 더 깊이 관여하고 싶다는 마음도 생겼다. 서울독립영화제에 들어온 이유는 그간 경험한 모든 영화제 중에서 가장 사랑받았던,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게 해준 영화제이기 때문이다. 이후 자원활동을 하게 될 다른 친구들도 그런 마음을 얻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입사를 지원했다. 


    경준 말하다 보니 오늘 우리도 서로 몰랐던 것들에 대해 많이 알게 되는 것 같다(웃음). 



    어떤 곳이냐고 물으면


    한비 다들 자원활동의 경험을 이어왔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자원활동가가 아닌 정식 스태프로 일을 시작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 사실 독립영화나 독립영화제에 대한 이해도가 없는 상대라면, 이것이 ‘일’임을 설명하는 것조차 만만치 않았을 텐데.


    경준 이직한다고 하자 주변 사람들 모두가 당황스러워했다. 나름대로는 오랜 시간 준비하고 내린 결정이었지만, 친구나 부모님에게는 갑작스러운 소식이었다. 거기를 왜? 네가 뭘 하는데? 라는 질문이 보통의 반응이었다. 물론 나는 내 일에 자부심이 있지만, 독립영화가 무엇인지 들어본 적조차 없는 사람들에게 이 일과 일하는 나에 대해 설명하기에는 여전히 어려운 점이 있다.

     

    채현 영화 쪽에서 일한다고 하면 일단 영화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너 감독하니?” 이렇게(웃음). 그동안 집안 어른들 기준에 나는 어딘가 좀 ‘튀는 애’였고 처음에는 이 일을 진짜 ‘노동’으로 생각하지는 않으셨던 것 같다. 얼마 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영화제에서 화환이 왔다. 그걸 보고 나서야 내가 진짜 ‘회사’를 다닌다고 생각하신다. 아, 얘가 정말 어디에서 일하긴 하는구나(웃음). 친구들의 경우에는 워낙 대학 때부터 내가 영화제 활동하는 모습을 지켜봐서인지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었다.


    유선 가족들은 간섭이나 기대가 심하지 않은 편이다. 네가 하고 싶은 일이면 해라, 정도인 데다 구체적으로 묻거나 알아내려고 하지 않는다. 물론 재밌느냐고 물어보긴 한다. 재밌고 배우는 느낌이 든다고 답하면 그걸로 오케이다. 대학 때 방황기가 꽤 길었다. 당시 친구들이 내 걱정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내가 제일 재밌게 사는 것 같다며 축하해준다. 물론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이해시키기에는 무리가 있다. “영화? 그럼 내가 아는 사람 이름을 대봐.” 이런 말을 들으면 좀 막막하다.


    한비 독립영화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 대다수가 경험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나도 어느 순간 설명을 포기한 부분이 있다(웃음). 그럼 실제로 일을 해보며 경험한 서울독립영화제는 다른 영화제와 비교할 때 어떤 차이점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독립영화제’에서 일하기 때문에 안고 가는 어려움도 있을 것 같다.


    경준 우선 가장 큰 차이는 소수의 인원으로 꾸려진다는 점이다. 어려운 부분인 동시에 서울독립영화제의 강점이기도 하다. 내가 안 하면 대신해줄 사람이 없다 보니 자연스레 책임감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어느 조직에서나 정보 전달과 의사소통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곳은 인원 자체가 적기 때문에 내용 공유와 의견 취합이 빠르다. 이처럼 예상치 못한 사건이 생겨도 금방 처리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라면, 단점은 아무래도 일이 몰렸을 때는 절대적으로 시간과 손이 부족해지기도 한다는 점이다.


    ▲ 2017 서울독립영화제 폐막식. 시상을 진행하는 이경준 프로그램팀장


    채현 맞다, 장점과 단점이 통한다. 다른 영화제와 비교했을 때 서울독립영화제는 기본적으로 영화제뿐만 아니라 일상사업이 많다.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힘에 부칠 때도 있지만 배워가는 것도 많다. 무엇보다 그저 팀의 한 명으로 마치 부속품처럼 일하는 것이 아니라, 역할과 발언권이 동등하게 주어지고 독립적으로 일을 해나가는 경험은 소중하다. 다만 같은 일을 다른 사람이라면 어떻게 할까 궁금해질 때가 있다. 


    경준 동감한다. 예를 들어 프로그램팀에 들어온 유선 씨에게 최대한 일을 자세하게 가르쳐주려고 노력하지만, 문득 이것이 정답은 아니라는 생각에 망설여진다. 일을 진행하는 여러 가지 방식 중에서 나에게 맞는 방식일 뿐인데, 마치 정답인 양 이대로 굳어질까 봐 부담스럽기도 하다. 혼자 알아서 해보라기엔 시간도 없고 상대방도 막막할 테니 일단은 내 경험을 공유하고는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만의 방법을 터득해나가는 것이 중요한데 그런 부분이 아쉽다.


    유선 이 안에 팀이 나뉘어 있고 서로 맡은 업무가 다르지만, 기본적으로는 전체를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급하면 다른 팀의 일도 같이하고, 본 행사 때는 더더욱 본인의 일만 챙겨서는 안 된다. 그 점이 다른 영화제와 다르고 동시에 내가 어려워하는 부분이다. 처음에는 해봤거나 잘하는 일이 아닌, 업무의 능력적인 면에서 자신 없는 일도 해야 하니까 힘들었다.


    한비 나 또한 예시가 없어서 막막한 적이 더러 있다. 단기간에 압축적으로 배우지만, 그만큼 어떤 부분에서는 시야가 좁아지는 듯해서 고민스럽다. 특히 내가 누군가를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면 부담이 앞선다.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으면


    ▲ 2017 서울독립영화제 폐막식. 이채현 홍보팀장과 이유선 프로그램팀원


    한비 서울독립영화제는 일상사업이 많은 편이라고 했는데, 최근에는 어떤 일들을 해왔는지 소개해주면 좋겠다. 어쨌거나 영화제 사무국 스태프들에게 일 년 중 가장 큰 행사는 ‘영화제’ 아닌가. 그 외의 기간에는, 뭐랄까 영화제가 성수기라면 비성수기에는 어떤 활동을 하는지 궁금하다. 물론 비성수기라고 말하기에는 늘 바빠 보이긴 하지만(웃음).


    채현 영화제에는 비성수기가 딱히 없다. 성수기와 극성수기로 나뉘는 것 같다(웃음). 나의 경우, 기본적으로는 진행사업에 대한 홍보를 맡고 있다. 홈페이지와 SNS 관리, 보도자료 작성, 뉴스레터 제작, 매거진 「NOW」 발행, 도서 출간 등의 업무를 진행한다. 


    유선 프로그램팀은 일상사업으로 순회상영회 인디피크닉을 진행한다. 작년 영화제 수상 및 화제작을 중심으로 블루레이도 준비하고 있다. 인디트라이앵글이라는 이름으로 사전제작 지원을 진행하고, 배급과 마케팅을 겸하기도 한다. 본행사 때는 프로그램 노트 등의 출판 업무부터 상영본 관리, 감독 및 참여 관계자 관리 등 다양한 일을 맡는다.


    채현 분기별로 나눠보면 봄에는 사업기획안이 나오고 세팅 과정을 거친다. 이후 연말까지 전년도 영화제 상영작으로 프로그래밍 된 인디피크닉을 진행하고, 중간에는 인디트라이앵글을 통해 제작한 작품을 배급한다. 8월에는 작품공모가 시작되면서 본격적으로 영화제 준비에 돌입한다. 12월에 영화제가 종료되면 정산 및 평가를 포함한 모든 정리가 1월까지는 마무리된다. 


    한비 타임라인이 빼곡히 채워지겠다. 일하면서 특별히 좋아하거나 잘하고 싶은 분야가 있는지도 궁금하다.


    경준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터라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크다. 지금은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실수 없이 유지해나가고 싶다.

     

    채현 매거진이나 도서 발간을 준비하며 인터뷰를 할 때가 제일 재미있다. 이곳에는 흥미로운 사람들이 많다. 이따금 번뜩이는 순간이 있어야 일도 지속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을 만나서 인터뷰하다 보면 자극이 될 때가 있다. 잘하고 싶은 일은 많다. 무엇보다 내가 제발 좀 차분해지면 좋겠다. 안 그래도 성격이 급한 편인데 영화제를 치르다 보면 당황해서 더 쫓기듯 일하고 만다. 그럴 때 실수를 더 반복한다는 것도 알면서.

     

    경준 영화제 스태프의 가장 중요한 덕목 같다. 내 마음 잘 다스리기. 어렵지만 급할수록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하다. 


    채현 그러고 보니 면접 때 김동현 집행위원장이 어떻게 스트레스를 관리하느냐고 물어보시더라. 정말 통찰력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웃음). 잘 풀고 잘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래서 퇴근하면 가급적 일에서 떨어져 나오려고 한다. 일종의 ‘셧다운’을 시행한다고 해야 할까. 어떨 때는 너무 내가 닫아버렸구나, 싶어서 동료들에게 미안해지기도 하지만.


    경준 미안할 일이 아니다. 나는 그런 점을 닮고 싶어서 채현 씨에게 많이 물어봤다. 장기적으로 보면 누구에게나 필요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일을 미루거나 안 하는 것이 아니고 잠시 쉴 틈을 확보한다는 의미이니까. 


    유선 내 경우에는 특별히 좋아하는 일이 있다기보다 사무국에 있으면 뭔가를 끊임없이 배우게 된다는 사실이 재밌다. 지금은 내가 제일 나중에 들어왔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 모두 대단해 보인다. 시간이 흐르면서 성장한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 너무 좋고 다행스럽다.  



    지금까지는 어땠느냐고 물으면


    ▲ 2017 서울독립영화제. 김선민 자원활동가와 이유선 프로그램팀원


    한비 이번 여름은 영화 <너와 극장에서> 극장 개봉으로 바빴다고 들었다. 서울독립영화제 스태프로서 영화의 제작과 배급에 참여했는데 그 과정과 소감을 말해주면 좋겠다.


    경준 <너와 극장에서>는 2017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제작 지원한 작품이다. ‘극장’을 키워드로 유지영, 정가영, 김태진 세 명의 감독이 연출을 맡아 옴니버스 형태의 영화가 탄생했다. 작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상영되며 처음 공개되었다. 공모 과정에서부터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옴니버스 장편으로 개발하여 개봉과 배급을 지원하기로 되어있었다. 일회성에 그치는 단순 행사로서의 영화제를 넘어, 이와 같은 사업들을 통해 실질적으로 독립영화의 제작과 유통 환경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경로를 모색하고자 한다.

     

    채현 영화 상영 후에 유지영 감독과 정성일 평론가가 토크를 진행한 적이 있다. 그때 서울독립영화제가 진짜로 작품이나 감독에게 ‘터치’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유지영 감독이 조언 정도야 들었지만 강제성은 없었다면서 영화제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독립영화를 만들다 보면 사실상 지원금이 필요해지는데, 어디서든 돈을 주면 크고 작은 요구가 따라붙는다고 한다. 독립영화를 만드는 사람에게 자기 생각과 의도대로 자유롭게 영화 만드는 기회가 얼마나 중요한지, 극장에서 관객들과 만나는 일까지 함께해나갈 파트너가 얼마나 필요한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유선 엔딩크레딧이나 포스터에서 내 이름을 발견했을 때 너무 신기했다. 친구들한테 자랑도 많이 했다(웃음). GV를 다니면서 비로소 ‘내가 배급을 하고 있구나’ 하는 실감이 난다. 같은 영화의 GV인데도 매번 다른 질문과 대화가 오가는 것이 놀랍다. 유지영 감독과 정성일 평론가의 토크 같은 경우에는 단편 한 작품에 대한 이야기이니까 한 시간 정도로 GV를 잡았는데, 정성일 평론가가 두 시간 반을 진행한 다음에도 못다 한 질문이 있다고 했다. 평론가의 열정도 대단하고 그 질문에 모두 대답할 수 있는, 그 정도로 장면 하나 소품 하나에 대해 생각하며 작업했을 감독도 대단하게 느껴졌다. 


    한비 서서히 인터뷰를 마무리할 시간이다. 앞서 장단점이 통한다는 말도 했는데, 일하다 보면 보람을 느끼는 순간과 지치는 순간은 종종 맞물리곤 하더라. 세 사람은 그간 일하면서 어떤 부분이 힘들었는지, 어떤 점을 같이 고민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경준 힘든 것으로 말하자면 매일매일 힘들고 어렵다.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생기고 누군가는 그걸 해결해야만 하니까. 걱정도 심한 편이라 영화제 때는 스트레스가 많았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입장에서 지금 어렵고 힘든 건 당연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업무 환경에는 만족하는 편이다. 나쁜 버릇일 수도 있는데, 나는 힘들 때 더 힘든 시기를 떠올리곤 한다(웃음). 과거와 비교하면 훨씬 자유롭고 좋은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일단은 나를 좀 더 다져가고 싶다.


    유선 이전까지는 재미로 했던 활동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진짜 일이라고 생각해야 할 시점이 올해 왔다. 그때가 좀 힘들었다. 작년에 단기 스태프로 일할 때는 솔직히 책임이나 역할에 대한 큰 고민 없이 영화제를 치렀다. 당연히 재미가 훨씬 많았고, 올해도 그 정도의 마음으로 들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스스로 ‘일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깨닫자 힘들어졌다. 재밌느냐는 질문에 머뭇거렸던 것 같다. 다행히 그 시기가 지나고 나니까 괜찮아졌다. 이곳의 좋은 점은 시간을 준다는 것이다.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을 기다려주고, 함께 환경을 고민한다는 점이 감사하다.


    채현 영화제 때는 솔직히 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어서 별 느낌이 없다. 의미를 창출하고 있다기보다는 문자 그대로 일이라는 기분이 드는데, 폐막식 중에 수상소감을 듣다가 눈물이 났다. 우리가 열심히 준비하고 만든 축제에서 누군가 저런 의미를 찾고 가져간다는 사실이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다만 최근 ‘뒷풀이 문화’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자리에 누가 앉아 있고 싶은지, 누가 일을 하고 누가 즐기고 있는지, 꼭 필요할지 등등. 동료로서 사람들 간의 유대가 생기고 고생했다는 의미에서 격려가 오가는 건 좋은데, 한편으로는 공가 사가 불분명한 자리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한비 나 역시 최근 술자리에 대한 고민이 많다. 술을 마시고 대화를 나눈다 한들, 결국 일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어떤 사교 모임이나 여가 활동이 아닌 업무의 연장이 될 수밖에 없다. 내부적으로 논의와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이번 인터뷰를 계기 삼아 앞으로 자주 이야기 나누면 좋겠다. 자, 그럼 마지막으로 한 마디씩 하며 마치자.


    경준 2018서울독립영화제 작품공모가 8월부터 시작된다. 좋은 영화 많이 출품해주시라! 

    채현 했던 일을 또 해도 새롭겠지만 모쪼록 작년보다는 더 잘하고 싶다.

    유선 우리 모두 작년보다 나은 모습으로 올해의 영화제를 치를 수 있으면 좋겠다.




    가끔 잊고 만다. 스포트라이트가 환히 켜진 무대에 집중하다 보면 무대 위의 영화와, 박수 소리와, 상패를 들어 올린 연출자의 이름 같은, 당장 눈에 보이는 것들에만 신경을 온통 쏟게 된다. 일하는 사람조차 일하는 사람의 존재를 잊어버리곤 한다. 하지만 알다시피 축제는 그런 식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영화제는 한두 사람에 의해 저절로 이루어지는 마법이 아니라, 모두가 저마다의 위치에서 손과 발을 굴려 끌고 가는 애씀으로 지속된다. 


    열흘 남짓의 영화제를 위해 한 달, 석 달, 일 년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다. 영화제가 그저 반짝 하고 사라지는 이벤트에 그치지 않도록, 축제가 끝난 다음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오늘도 영화제에서 일을 하고 있다. ‘무사히 잘’을 기원하는 세 사람의 마음을 응원하며 그들에게 다가올 두 번째 축제를 함께 기다린다. 그들 모두 충분히 축하받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 □


    Posted by ACT! actedi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