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107호 인터뷰 2017.11.20.]
“희생하지 않습니다.”
- 부산 영화배급협동조합 씨네소파
차한비 (ACT! 편집위원)
“희생하지 않습니다. 재미있어서, 재미가 그칠 때까지 합니다.”
이번 인터뷰는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가 한창이던 10월 19일(목), 부산의 신생 배급사 ‘씨네소파’와 함께 진행했습니다. 작은 물결이 큰 파도를 이룬다는 속담에서 비롯하여 ‘영화의 작은 물결’이라는 뜻을 담아 지었다는 이름, ‘씨네소파(小波)’. 봄기운이 몰려오던 지난 3월 창립총회를 치르고, 8월에는 부산 영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카메라에 담아낸 김영조 감독의 다큐멘터리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배급했습니다. 요즘은 김수정 감독의 <파란 입이 달린 얼굴>을 관객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개봉 준비에 한창입니다.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씨네소파의 작은 사무실에 들렀습니다. 영화 포스터와 각종 전단들이 구석구석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테이블에 둘러앉아 차도 마시고 빵도 먹으며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편지를 띄우는 마음으로 인터뷰 내용을 갈무리 합니다. 이 편지는 필자인 제가 씨네소파에게 보내는 것이기도 하고, 씨네소파가 이 기사를 읽는 독자들에게 보내는 것이기도 하며, 동시에 ‘우리’가 ‘우리’라고 부를 수 있는 친구들에게 보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 * *
씨네소파, 작은 물결
▲ 왼쪽부터 씨네소파의 쏭쏭, 딩딩, 슈슈.
차한비(이하 한비) : 바쁘실 텐데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먼저 한 분씩 돌아가며 소개 부탁드릴게요.
성송이(이하 쏭쏭) : 안녕하세요. 씨네소파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성송이입니다. 여기서는 서로 직함 대신 닉네임으로 불러요. 이름의 한 글자씩 따서 만든 애칭인데요, 저는 쏭쏭이라고 합니다. 그동안 모퉁이극장(*주1) 등 여러 문화예술단체에서 일하다가 씨네소파를 꾸리게 되었습니다.
노수진(이하 슈슈) : 상영관 소통과 상영본 관리 및 전달 등, 전반적인 배급업무를 진행하고 있는 슈슈입니다. 이전에는 영화의 전당 아카데미에서 영화 제작과정을 공부하고 단편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모퉁이극장에서 짧게 일하던 중에 씨네소파를 제안 받고 합류했어요.
최예지(이하 딩딩) : 홍보 담당 딩딩입니다. 디자인을 전공했고 영화 배급에 필요한 다양한 홍보 컨텐츠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오늘 인터뷰에는 사정이 있어 참석하지 못했는데, 오용택(룡룡)이라는 친구까지 포함해서 총 4명이 씨네소파의 운영진이에요. 룡룡은 회계 및 정산 업무를 진행합니다.
한비 : 씨네소파의 창립과정을 구체적으로 듣고 싶어요. 쏭쏭은 어떻게 현재의 구성원들을 ‘불러 모을’ 생각을 했는지도 궁금하고, 왜 하필 ‘배급’이었는지에 대해서도 묻고 싶어요.
쏭쏭 : 개인적으로 그간 문화예술 분야에서 활동을 해오면서 갈증이 있었어요. 다른 시장에서 다른 그룹과 활동해봤으면 싶었고, 어떤 프로젝트든 꾸준히 해야지 한 번 하고 마는 일이면 아예 안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죠. 솔직히 말하면 ‘이제 영화 일은 그만 두겠다’고 마음먹었던 때에, 김영조 감독님이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같이 개봉해보자는 제안을 주신 거예요. 거절할 생각으로 감독님을 만나러 갔는데, 그 자리에서 이상하게 마음이 동하더라고요.(웃음)
어쨌든 그 날 배급과정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들었는데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더라고요. 당시 모퉁이극장에서 일하고 있던 슈슈도 김영조 감독님에게 따로 연락을 받은 상태였고요. 딩딩, 룡룡과도 이미 알고 있는 사이였는데, 서로들 뭔가 ‘재밌는 일을 같이 해보자’는 얘기는 계속 하고 있었거든요. 영화 배급이라면 앞으로 꾸준하게 해볼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부산에서 아무도 안 하고 있다는 말에 더 끌리기도 했어요. 다만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판단이 섰고, 생각나는 친구들에게 제안을 하게 되었죠.
한비 : 영화 배급에서 일의 지속성을 기대하셨네요.
쏭쏭 : 그동안 진행한 프로젝트 역시 크고 작은 일들의 연속이긴 했는데, 어쨌든 ‘배급’이라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통해 처음으로 경험해보는 것이니까요.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이 일을 통해서 새로운 시장과 문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딩딩 : 저 같은 경우는 뭐든 경험해보면 좋다는 마인드인데, 하고 싶었던 일 중 하나가 좋은 회사를 꾸리고 좋은 문화를 만들어내고 싶다는 거였거든요. 씨네소파라면 그걸 해볼 수 있겠더라고요. 저희가 일전에 스터디를 진행하면서 지그문트 바우만의 책을 같이 읽은 적이 있는데, ‘청년들이 벌떼처럼 모였다가 에너지 소모만 하고 흩어진다.’는 내용에 굉장히 자극을 받았어요. 흩어지는 대신 모인 김에 뭔가를 좀 해보자고 마음을 다졌죠.
물론 그때 당시에는 수입이라든가 어떤 현실적인 상황에 대한 고민은 깊지 않았어요(웃음). 저에게는 영화를 배급한다는 말 자체도 생소했으니까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봤더니 영화가 너무 좋은 거예요. ‘세상에 이런 다큐멘터리도 있구나, 이 영화를 여러 사람이랑 같이 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하겠다고 했죠. 다들 어떻게 시작했냐고 물어보면서 기대를 많이 하시는 것 같은데, 실은 정말 그냥 했어요. 재밌을 것 같아서, 그리고 쏭쏭이 평소에 뭘 같이 하자고 쉽게 말을 던지는 친구가 아니라서요. 어, 그래? 그럼 한 번 해보자, 그랬어요.(웃음)
한비 : 그러니까 시작할 수 있던 것 같기도 해요. 시작 단계에서 이것저것 따지고 계산했으면 아무래도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서 결국 시작 자체를 엄두내지 못했을 것 같거든요.
슈슈 : 저 역시 ‘이거 아니면 안 된다’ 그런 거창한 마음은 아니었어요. 뭘 모르니까 그냥 덤벼든 거죠. 당시에 저는 굉장히 불안한 상태였어요. 영화를 만들기는 했지만, 이걸로 먹고 살 수 없다는 사실은 자명했고, 그럼 대체 뭘 해야 할까 싶어서 수화도 배우고 자격증도 준비했죠. 그런데도 시간이 너무 많이 남는 거예요. 배급 제안을 받고 생각해보니까, 지금 아니면 내가 영화와 관련된 일을 못할 수도 있겠구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쉽게, 같이, 기쁜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영화 배급하기
▲ <그럼에도 불구하고>(김영조, 2017) 포스터
한비 : 씨네소파의 창립,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배급 활동, 그리고 <파란 입이 달린 얼굴> 개봉까지 연달아 도착하는 소식들이 무척 반가웠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괜한 걱정이 들기도 했어요. 지역에서 영화를 제작하는 것만도 힘든데, 그 영화의 상영까지 소화해내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을 테니까요.
쏭쏭 : 주변의 우려가 많았어요. 이미 독립영화 배급을 경험하셨거나, 이쪽에서 종사하고 계신 분들은 대부분 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워낙 힘든 일이니까 추천하지는 않으셨던 거죠.
딩딩 :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독립영화협회가 열었던 ‘독립영화의 밤’ 때 여러 분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그 자리에서 어떤 분이 “어차피 망한 거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라고 하시더라고요. 신기하게도 그 말에 힘을 얻었어요. (웃음)
한비 : 앞서 쏭쏭도 말했지만, 현재 문화예술계에 종사하는 2-30대 소위 ‘젊은 청년’이라는 인력들이 즐겁게 일하기가 쉽지 않은 구조잖아요. 일자리가 없는 상황은 아닌데, 내부의 급여체계는 거의 최저생계비를 웃도는 수준이 태반이고, 커리어를 쌓는다고 해도 상황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으니까요. 에너지를 많이 쓰면서도 회의에 빠질 수밖에 없는 구조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씨네소파가 어떤 조직에 편입되는 방식이 아니라, 협동조합으로 배급사를 만든 것이 신선하게 다가왔어요.
쏭쏭 : 맞아요. 다들 처음 해보는 일인데도 우리 힘으로 시작해보자 했던 데에는 그런 답답함이 있었어요. 협동조합은 문화예술 활동하는 사람들에게는 이상적인 운영체계잖아요. 저희도 각자 영역에서 활동하고 함께 스터디 하면서 자연스럽게 협동조합에 관심이 생겼어요. 독립영화 배급으로는 어차피 수익이 보장되지 않으니까 협동조합이면 조금이나마 지속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했죠.
딩딩: 게다가 ‘다 같이 그냥’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막상 일을 벌이고 회사가 만들어지니 기능적으로 이 내부에서 ‘대표’가 필요해지더라고요. 대표에게 쏠리는 무게중심을 방지하고, 저희끼리는 그런 부분에서 자유로워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한비 : 그럼 앞으로 협동조합을 확장할 계획이 있나요?
쏭쏭 : 현재 씨네소파는 저희 네 명과 김영조 감독을 포함해서 총 5명이 조합원이에요. 다른 협동조합을 찾아가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조합원 구성에 따라 협동조합의 성격이 바뀌더라고요. 그 부분을 중점으로 고민하고 있어요. 제작자를 모을지, 관객을 모을지, 아니면 배급에 관심 있는 인력을 모아야 할지요. 저희의 방향성을 결정짓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한비 : 이야기를 쭉 들어보니, 씨네소파의 탄생과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개봉이 맞붙어 있는 느낌이 들어요. 영화는 2015년에 제작되었고, 그해 공개 당시 국내외 다수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결국 2년이란 시간이 지나서야 씨네소파에서 개봉을 했어요. 그간 감독님께서는 배급을 독자적으로 준비하셨던 건가요?
쏭쏭 : 서울에 있는 배급사도 문의는 해보신 걸로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영화가 결국 부산에서 활동하는 감독이 찍은 부산 영화이기도 하다 보니 ‘여기서 배급을 해보는 것이 의미 있지 않을까’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그렇게 자체 배급을 결정하고, 부산에서 함께 배급할 사람을 구하셨던 거죠.
한비 : 첫 배급작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개봉한 소감은 어때요?
딩딩 : 총 관객이 1,400명 정도 돼요. 관객이 적으니까 한 분 한 분이 정말 감사하더라고요(웃음). 워낙 시작 전부터 “다큐멘터리에, 게다가 지역 영화는 1,000명도 힘들다”라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솔직히 말하면 저희로서는 나름 다행스런 결과이기도 했어요.
쏭쏭 : 수치는 나름 괜찮았는데, 그걸 수익으로 받아들였을 때는 충격이긴 했죠(웃음). 저 같은 경우에는 배급기획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어요. 관객 수 1,400명 중에 부산 관객이 1,000명이에요. 상영관을 많이 잡는 것, 전국에서 개봉하는 것이 꼭 능사는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영화에 따라서 부산에서만 개봉을 할 수도 있고요. 지금보다는 유동적으로 생각해보려고 해요.
딩딩 : 영화마다 제작 의도가 있잖아요. 관객들에게 그 의도가 가장 잘 전달될 수 있는 방식으로 영화를 보여주면 좋겠어요. 영화에 맞게 배급과 상영도 기획을 달리 해야 할 것 같아요.
▲ 흔한_배급사_직원의_책상.jpg
한비 : 영화에 맞는 배급 기획이 필요하다는 데에 굉장히 동의해요. 하지만 그와 동시에 어쨌든 배급, 그리고 극장 개봉이라는 건 시장 안에 들어가서 수익구조를 만들어내야 하는 일이잖아요. 이 부분에 대해서 다들 고민이 많으시죠?
슈슈 : 일단 기본적인 식비와 교통비조차 보장이 안 되니까요.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할지 당장은 잘 모르겠어요. 처음에는 이 영화가 좋고, 그래서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한 번 경험을 하고 나니까 우리가 ‘지속’하려면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절실해요.
쏭쏭 :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봉을 경험하면서, 극장 수입으로는 수익을 내기가 어렵다는 걸 확인했어요. 인건비를 확보해낼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에요. 상영관이 있다고 해도 관객 수를 기대하기 어려운 시간대에 배치되고, 자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홍보에 제한적일 수밖에 없죠. 나름 현실을 봤다고 생각했는데도 만만치 않더라고요. 우선 지금으로서는 지자체, 정부 등에서 관리하는 문화기획 분야의 지원금을 확보한다든지, 아니면 자체 펀딩프로젝트를 통해 기록집을 제작하는 등 다른 수익사업을 발굴해내야만 하는 상황이에요.
딩딩 : 개인적으로 예전부터 회의감을 느꼈던 것 중에 하나는 ‘자립’에 관한 거예요. 저는 애초에 돈이 안 되는 일을 가지고 돈을 벌려는/벌어들이라고 강요하는 발상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문화예술 분야에서 최근 들어 ‘자립’을 우선 가치로 두는 분위기가 있는데, 독립영화와 신진 작가들에 대한 지원은 공적영역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에서 돈으로 값을 매기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지만, 사실 돈으로 측정되지 않는 가치가 분명히 있고 그것은 그것대로 존중받아야 하니까요.
한비 : 공감해요. 저는 ‘돈을 받으면 자립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방식에 동의하기 어려워요. ‘돈을 이만큼 주었으니 이제는 자립해라’라고 주문하는 쪽도 마찬가지고요. 결국 모든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거죠.
쏭쏭 : 전에는 막연히 짐작만 했지만 실제로 배급이란 걸 해보니까 알겠더라고요. 현재의 시장 시스템에서 ‘독립영화’로 돈을 벌기란 불가능해요. 배급사의 크기가 어떻든 간에요. 그런데 단적인 예를 들면, 영진위와 영상위를 비롯한 대부분의 기관 지원금에는 실제로 그 일을 진행하는 사람에 대한 인건비가 누락되어 있어요.
한비 : 지난 액트 105호 인터뷰에서 강릉 인디하우스의 이마리오 감독과 대화를 나눌 때에도 (http://actmediact.tistory.com/1172) 비슷한 말을 들었어요. 인건비를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회의감을 느낀다고요. 노동을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결국에는 후배들한테도 동일한 구조를 강요하게 되는 셈이니까요. 사실 지원금을 집행하는 곳에서도 빤히 알잖아요. 인건비가 책정되지 않으면 사업비 내 다른 항목으로 돈을 돌려써야만 하고, 그럼 ‘불법’을 저지르게 만드는 것과 다를 바 없죠.
쏭쏭 : 그렇죠. 어쨌든 현재 씨네소파로는 지원이 전혀 없는 상태라서 내년부터는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 쪽으로 관련 지원을 알아볼 예정이에요. 그와 함께 인건비랄지 운영을 위한 수익구조를 만들어나가는 일에 대해 고민을 이어 보려고요.
우리의 재미가 우리의 방향
▲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왼쪽부터 룡룡, 쏭쏭, 딩딩
한비 : 부산은 그야말로 ‘영화의 도시’잖아요. 부산독립영화제가 20년 가까이 진행되었다는 건 부산에서 꾸준히 영화가 제작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고요. 부산국제영화제, 부산독립영화제, 영화아카데미, 시네마테크, 영화학과 등등 풀이 튼튼한 편인데다, 다양한 장르와 형태의 영화를 제작하는 창작자들이 부산에 있죠. 어찌 보면 왜 여태까지 배급사가 없었나 싶기도 한데요. 배급사로서 이러한 지역 내 제작자나 유관단체들과의 네트워킹을 진행하고 있나요?
쏭쏭 : 부산독립영화협회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주려고 하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사회 때는 부산영상위원회의 도움을 받기도 했고요. 하지만 저희 스스로가 아직은 네트워크가 있다고 할 만큼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지는 않아요.
딩딩 : 씨네소파를 준비하고, 만들고, 개봉하는 과정에서 어떤 ‘연대’보다는 배급과 관련하여 실질적으로 조언을 구할 곳이 필요했어요. 부산에는 그런 분이 많지 않으니까요. 전주나 서울을 찾아간 것도 그 때문이었어요.
쏭쏭 : 현재의 씨네소파로서는 타 단체와의 긴밀한 연대가 조심스럽기도 해요. 저희가 다져지지 않은 상황이라 도리어 균형이 깨질 위험이 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이곳은 아무래도 제작자 중심이고 배급에 대한 이해도도 천차만별이에요. 게다가 저희 운영진이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에, 원치 않는 상황에 처하게 되기도 하고요.
한비 : 이제 막 이 일에 뛰어든 씨네소파의 입장에서는 그런 식의 권력관계가 부당하게 느껴지는 동시에 어떻게 그 문제를 언어나 태도적으로 정확하게 전달할지 고민이 될 것 같아요.
쏭쏭 : 생각보다 관계 설정 자체가 쉽지 않아요. 감독, 배급사, 거래처, 관객 등이 서로를 인식하는 일부터가 시작 같아요. ‘좋은 일 하는 청년들’이라는 프레임에는 제약이 따르기 마련이고, 저희 역시 배급사로서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줄곧 고민하고 있어요.
▲ 씨네소파 명함.
“영화배급협동조합 씨네소파. 영화문화의 작은 물결로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자 합니다.”
한비 : 자연스럽게 그 얘기를 나누면 좋겠어요. 각자 어떤 배급활동을 하고 싶은지, 씨네소파가 상상하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쏭쏭 : 처음에 씨네소파를 만들면서 앞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방향성에 대한 논의를 많이 했어요. 그 중 하나는 영화에 따라 다양한 문화 장르와 엮어서 유연하게 배급을 기획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배급의 의미를 확장하는 거예요. 개봉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관객들하고 독립영화를 더 잘 볼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거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산 내의 다른 친구들과의 협업을 통해서 결과물을 생산하고 관계를 만들어나가고 싶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봉 당시 포스터는 부산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가 제작했고, 예고편은 부산에서 단편영화를 연출한 친구가 만들었거든요. 그런 방향성으로 영화를 계속 배급해나가는 것이 현재의 계획이자 목표예요.
한비 : ‘친구’라고 부르지만 사실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네요. 씨네소파 운영진이 모인 모습과 비슷한 것 같아요.
딩딩 : 덧붙여서 얘기하면, 부산은 배급 인프라가 전무한 상황이에요. 그런 인프라를 저희가 구축해나가고 싶어요. 일전에 “광장이 되고 싶다”는 표현을 쓴 적이 있어요. 극장에 왔다가 영화 끝나면 바로 퇴장하고 헤어지는 식의 영화 보기가 아니라, 씨네소파가 배급하는 영화를 통해 서로의 생각도 나누고 몰랐던 사람들과도 대화 나누며 어울리는 그런 ‘광장’의 역할을 하고 싶어요.
슈슈 : 앞서 말한 두 사람과 같은 마음이고, 저만의 소박한 목표는 지금 제가 맡은 일을 잘 해내는 거예요. 상영관과 잘 소통하고, 메일을 보내고 전화를 하는 기본적인 일에도 좀 더 꼼꼼해지려고요.
쏭쏭 : 참, 그리고 룡룡이 이 자리에 있다면 분명 계획에 ‘돈 벌기’라고 말했을 거예요(웃음). 수익구조 조금이라도 만들어내는 것이 저희의 큰 목표입니다.
한비 : 서로를 갉아먹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보수를 받으며 즐거운 마음으로 일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니까요.
쏭쏭 : 누군가는 조금만 버티라고 얘기하더라고요. 내년에는 더 좋아질 거라고(웃음). 믿을 수 있는 말인지, 그 말을 믿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냥 진짜로 그렇게 됐으면 좋겠네요.
한비 : 그럼 앞으로 씨네소파가 어떻게 인식되는 배급사이길 바라는지 들어보며 인터뷰 마무리할까 해요.
딩딩 : 얼마 전 저희끼리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얘기했어요. 우리가 영화를 보는 눈을 길러야겠다고. 영화 공부를 지속적으로 해나갈 계획이에요. ‘좋은 일 하는 청년들’로 인식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전문성을 키우고 싶어요. 씨네소파라는 배급사에서 나오는 영화들이 되게 좋다, 영화 콘텐츠가 좋다, 그런 평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쏭쏭 : 저도 동감해요. 그리고 저희를 마치 ‘영화계를 위해서 봉사하는 청년들’로 보는 시선은 거두어주시면 좋겠어요.(웃음) 희생하는 청년들 말고, 재밌어서 일하는 사람들로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저희도 이 일 하면서 먹고 살 수 있기를 바라고, 지금은 정말 재밌어서 하고 있거든요. 어떤 대의를 위한 운동이라고 평가하지는 않았으면 해요.
딩딩 : 저번에 어떤 분이 “너네 이거 다 운동 차원에서 하는 건데.” 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저희는 이 활동을 운동이라고 규정한 적이 없거든요. 씨네소파의 기준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재미있는 만큼’ 이에요. 재미도 없는데 억지로 할 필요는 없고, 우리의 재미가 우리의 방향성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쟤네 되게 재밌어 보이네.”
슈슈 : 그리고 덧붙여, “씨네소파가 배급하는 영화면 괜찮지.” 이런 믿음.
딩딩: 맞아, 아직까지는 “쟤네는 자꾸 힘든 거 한다.”는 얘기만 들어서. (일동 웃음)
* * *
▲ 씨네소파 인터뷰를 마치고, 해질녘 해운대 바다.
이 일에서 재미를 잃지 않으면, 재미를 지켜내면 좀 더 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일과 삶의 지속성을 확보해내는 방법 아닐까, 하며 웃는 씨네소파 운영진들이 멋져 보였습니다. ‘그냥’이라고 말하지만 시작한 다음 책임을 외면하지 않았고, 책임만을 강조하기에는 어깨가 말랑말랑 하달까요. 금세라도 ‘재미’있는 것을 찾아낼 사람들처럼 눈이 반짝였습니다.
다가오는 1월, 씨네소파는 두 번째 배급작 <파란 입이 달린 얼굴>을 개봉합니다. 영화를 만든 김수정 감독 또한 부산에서 살며 영화작업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씨네소파는 이 영화의 배급기획의 중심에 관객을 두겠다고 합니다. 관객들에게 생각하고 말할 시간을 충분히 주어야 할 영화라는 판단에서입니다. 최근 부산독립영화에 일기 시작한 이 소파(小派)는 눈여겨 볼만 합니다. 작아 보이는 물결이지만 동심원은 조금씩 더 넓게 퍼져 나가고 있으니까요. □
*주1)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에 위치. 스스로를 영화의 시민이라 여기는 다양한 배경과 이력을 지닌 ‘영화의 관객들(Citizen of Cinema)’이 주축이 되어 2012년 설립한 관객운동단체. http://blog.naver.com/cornerthe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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