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109호 인터뷰 2018.05.30.] 


    올해를 끝으로 그만하려고 한다

    - 독립영화제 프로 자원활동가 김선민 인터뷰


    인터뷰 진행 및 정리 : 김주현, 성상민


    프로 자원활동가라니! 이 얼마나 모순적인 단어의 조합인가. 하지만 이 결합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 독립영화제 좀 다녀본 사람은 알만한, 혹은 직접 알지는 못하더라도 상영관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기념품을 판매하는 그의 목소리를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올 해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도 역시 익숙한 그 목소리를 들었다. 이 사람 도대체 뭔가, 왜 가는 영화제마다 있는가, 혹시 영화제 전문 용역(?) 같은 건가. 나와 같은 의문을 가진 사람이 또 있을 거라 생각해서 인터뷰를 요청했다. 인터뷰는 지난 5월 2일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가 있는 서울극장 로비에서 진행되었다.



    - 초면에 죄송하지만 도대체 정체가 뭔가?


      원래는 노동조합에서 일한다. 민주노총 금속노동조합에서 8년 일하고, 민주노총 법률원에서 7년 일했다. ‘전교조 1세대’라 불리는 87년 즈음에 고등학교를 다닌 세대다. 자연스럽게 학생 운동 서클활동을 했고, 대학교를 나온 뒤에도 계속 활동하고 있는 전형적인 운동권이다.



    - 언제부터 영화제 자원활동을 시작했나?


      2010년에 서울독립영화제가 처음이었다. 그 다음 해 인디다큐페스티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LGBT영화제, 정동진독립영화제에 자원활동가로 참여했다. 그 뒤로 지금까지 서울독립영화제, 인디다큐페스티발, 정동진독립영화제는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 빼고는 빠지지 않고 자원 활동을 하고 있다. 자원활동을 시작한 첫 해에는 직장을 쉬고 있었다. 그 뒤로는 영화제 쪽에서 배려해줘서 전일 활동은 아니더라도 휴가와 주말을 활용해서 자원 활동을 해왔다.



    - 학생운동 할 때부터 독립영화에 관심이 많았나?


      아니다. 내가 대학교를 다닐 때는 장산곶매의 <파업전야>(1990)나 <어머니, 당신의 아들>(1991) 같은 작품 상영회를 쇠파이프 들고 경찰의 침탈을 막았을 뿐이다. 학생 때 보다는 사회에 나와서 더 자주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날 수 있었다. 선동성이 강한 작품을 좋아했고, 그래서 여전히 다큐멘터리를 좋아한다.



    △ 인터뷰는 지난 5월 2일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가 있는 서울극장 로비에서 진행되었다.



    <우리 학교>를 만나고 인생이 바뀌었다



    - 영화제 자원활동을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김명준 감독의 <우리학교>(2007)를 만나면서 시작했다. <우리학교>를 보고 인생이 많이 바뀌었다. 내가 은혜를 받은 만큼, 다른 사람에게도 주고 싶었다. 마침 직장을 쉬게 되면서 자원활동을 할 수 있었다.



    - 카카오톡 프로필이 아직 <우리학교> 포스터인 게 신기했다. <우리학교> 공동체 상영 및 배급활동이 활발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아직까지 활동이 이어지는 줄은 몰랐다.


      <우리학교>의 배경인 일본 조선학교를 응원하는 활동을 2007년에 영화가 개봉한 이후로 11년 째 쭉 하고 있다. 2011년 일본 도호쿠 대지진을 계기로 생긴 단체 ‘몽당연필’에도 운영위원으로 같이 활동한다. 화요일에는 매주 일본대사관에서 조선학교 차별반대 1인 시위를 한다. 수요일에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수요집회에 참여한다. 오늘도 수요집회에 갔다 오는 길이다.




    독립영화제는 영화를 둘러싼 분위가 다르다


    - 영화제 얘기로 돌아가자. 주요 독립영화제 3곳에서 자원활동을 계속했는데 내부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이 있을 것 같다.


      각각 특징이 강하긴 하지만, 정동진독립영화제는 확연한 분위기 차이가 있다. 특히 자원활동가 운영방식도 독특한데 보통의 영화제는 상영팀, 부스팀, 무슨 팀 역할별로 분화가 되어있어서 영화제 일주일 내내 그 역할만 계속하는데, 정동진 독립영화제는 조를 짜서 매일 돌아가며 다른 역할을 맡는다.


      큰 영화제와 비교했을 때 독립영화제는 영화를 둘러싼 분위기가 다른 것 같다. 부산이나 전주 같은 큰 영화제들도 노동이나 사회적 이슈를 다룬 작품을 틀긴 하지만, 뭐랄까 영화가 온순하게 느껴진다고 할까, 제도권 안에서 벌어진다는 느낌이 든다. 반면에 독립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영화제는 극장의 분위기가 확실히 다르다. 예를 들면, 세월호나 성주-소성리, 제주 강정에 대한 작품을 틀 때 이미 로비에서부터 선전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하고, 활동가들이 이를 계기로 서로 교류하고, 상영 이후에도 뒷풀이나 집회에서 분위기가 이어지기도 한다.



    - 영화제 활동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있다면?


      상영관 로비부터 뒷풀이까지 완벽하게 이어지는 상황을 보는 것. 특히 다큐멘터리가 그렇다. 다큐멘터리를 보러 오는 관객, 현장을 지킨 카메라들, 그리고 함께 관심 가지고 연대하기 위해 온 분들. 이 분들이 함께 만드는 에너지가 나에게 힘이 된다. 그리고 영화제에서 만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 좋았다. 영화제에서 관객이나 자원봉사자로 만난 사람이, 어느 순간 집회에서 촬영자로 만나거나 극장에서 스태프나 또 다른 관객으로 만나게 되더라. 어찌되었든 꾸준히 영화에 관심 가지고, 다양한 입장과 생각으로 영화에 참여를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은 인연이 된다고 생각한다.





      안타까운 기억은 전동 휠체어를 타고 온 분이 영화를 못 본 사건이다. 상영관 입구가 계단이라 나무 발판 없이는 휠체어가 들어올 수 없었다. 그런데 하필 그 해는 발판이 준비되지 않는 것이다. 들어서 올려주겠다고 양해를 드렸는데, 그분이 굳이 그렇게까지 하며 영화를 보고 싶지 않다며 집에 돌아갔다. 돌아가실 때도 승객용 엘리베이터 앞에는 쇠말뚝이 있어서 화물용 엘레베이터로 내려가야만 했다.


      또 기억나는 일이 있다. 아마 서울독립영화제였던 것으로 기억나는데, 성적 소수자에 대한 작품이었다. 상영 시간 15분이 지나서 어떤 청소년이 쭈뼛거리며 지금 상영관에 들어갈 수 있냐고 부탁을 했다. 이미 입장시간이 오래 지났다고 거절하니 울면서 돌아가고 말았다. 그 때문에 감독님이 많이 서운해 했다. 항상 입장시간 문제는 쉽지가 않다. 어차피 사람도 많지 않은데 그냥 보내주면 안 되냐는 생각과, 그래도 운영원칙을 준수해야 하지 않나하는 입장이 충돌한다. 그 친구로서는 처음으로 힘겹게 ‘벽장’을 나와서 상영관에 온 것일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정말 미안했다.



    자원활동가 제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 자원활동을 오래하면서 고민도 있을 것 같다.


      큰 영화제에 비해 독립영화제들은 좀 더 관계를 깊게 형성할 수 있는 것이 좋지만, 스텝이 많거나 체계가 확실한 게 아니라서, 종종 자원활동가 개인이 쉽게 감당하기 어려운 책임이 부여되며 일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또 자원활동가 제도에 대한 고민도 든다. ‘봉사’와 ‘활동'에 대해 영화제와 자원활동가 모두 고민이 필요하다. 봉사자가 아닌 자원활동가인 만큼 영화제가 끝난 이후에도 어떤 관계를 지속할 것인지, 영화제 이후에도 활동가로 키울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그래도 독립영화제들은 사람을 그저 일주일 쓰고 버리는 식으로 자원봉사자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후로도 스태프나 감독, 배우로 다시 영화제에 참여하는 선순환이 이뤄진다고 생각한다. 자원활동가들도 아무 영화제나 참여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동의하고 마음을 바칠 수 있는 영화제를 선택해야 한다.


      그러다 최근 2년에는 좀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아무리 상호 동의해도, 아침 일찍 출근해서 밤늦게 퇴근하고 돈을 주지도 않는다. 일주일 동안 매일 13시간 가량 일을 하며 돈을 주지 않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일지 고민이다. 서로의 ‘의지’만이 아니라 자원봉사자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적당한 활동 시간을 보장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것을 고민치 않으면 ‘그냥 일을 시킬’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문제를 함께 고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영화제 자원활동이 본인에게 가지는 의미도 궁금하다.


     스트레스를 운동이나 독립영화에 관련된 활동으로 푼다. 영화제는 일을 하면서 힘을 받을 수 있는 창구이다. 평소에 가기 힘든 현장의 이야기라거나, 관심은 있지만 정확히 모르는 분야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기존에 가지던 선입견에 벗어나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도 한다.


     사실 독립영화가 모두 만족을 주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독립영화 중 80-90% 작품은 마음에 안 들수도 있다. 하지만 그 중에 나에게 맞는 영화를 만나면, 인생이 바뀔 수 있다. 독립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이 사회를 변혁하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상영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영사기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인다페 다시보기, 재일동포영화상영회, <우리학교> 정기상영 등 꾸준히 상영활동을 하고 있다. 그렇게 독립영화에 참여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운동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정작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독립영화를 못 보는 것이 아쉽다



    - 많은 독립영화를 봤을텐데 추천하고 싶은 독립영화가 있다면?


      <하늘색 심포니>(2016)와 <우리 학교>(2007)는 조선학교 문제를 다루고 있어서 같이 보면 좋을 것 같다. <친구들: 숨어 있는 슬픔>(2017)도 좋았다. 세월호에 대한 내용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같이 보자고 이야기하고 싶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민주노총과 직접적 연관이 있는 작품을 꼽으라면 변규리 감독의 <플레이 온>(2017), 김수목 감독의 <니가 필요해>(2014)가 좋았다. 꾸준히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에 대한 작품이 나오긴 한데, 정작 조합원들이 많이 못 보는 것이 아쉽다. 태준식 감독의 <어머니>(2012)도 좋았는데, 주변에 본 분들이 별로 없더라.



    - 왜 독립영화를 많이 보지 못할까?


      볼 시간도 없고, 영화에 대한 정보도 접하기 어렵다. 영화를 보고 싶어도, 시간을 맞추기도 어렵다. 지금 한창 개봉 중인 <어벤져스>처럼 쭉 극장에 깔리거나, 공중파로 상영되지 않는 이상 노동자들이 그런 작품을 챙겨보는 게 쉽겠나. 그래서 좀 공동체 상영이 잘 되었으면 하는데, 역시나 그도 쉽지 않다. ‘모두를 위한 극장’ 같이 공동체 상영 플랫폼이 시도되긴 하는데 비용이나 장소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다. 개인이 혼자서 추진하기엔 여전히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노조나 학교가 적극적으로 나섰으면 하는데. 전국 각지에 있는 도서관이나 구민, 읍민회관에서 영화를 많이 틀지 않나. 그런 곳에서 많이 틀어주면 좋겠는데, 이런 말을 하면 옛날 운동권 같은 생각이려나(웃음).



    - 언제까지 영화제 활동을 할 생각인지.


      고백하자면, 올해를 끝으로 영화제 자원활동을 그만하려고 한다. 점점 더 젊은 자원활동가들과 함께 하는 게 쉽지 않다. 큰아이가 고3이다. 어느새 자원활동가들의 아버지 나이대가 되었는데, 이러다보니 어쩔 수 없이 분위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는 스태프와 자원활동가 사이를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이제는 서로가 내 존재를 부담스러워하지 않나 생각도 든다. 10년 전에도 내 나이가 영화제 스태프들보다 훨씬 많았다. 하지만 그때는 영화제에 별다른 경험도 없었다면, 이제는 영화제 일을 10년 한 48살 아저씨가 되고 말았다. 어떻게 대하든 스태프들이나 자원봉사자들 모두에게 부담이 될 것 같다. 꼰대가 되고 싶지 않아도 영화제 경험이 많다보니 ‘이 건 이래야 하지 않나’ 같은 이야기가 절로 나온다. 가끔은 스태프들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 같기도 하고.


      신체적인 요인도 크다. 어느 순간 영화제 티켓을 보니 글씨가 잘 보이지가 않더라. 나중에 DMZ 영화제에서 ‘실버 자원활동가’ 같은 걸로 참여하지 않을까 싶다(웃음). □


    Posted by ACT! actedi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