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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09호 인터뷰] “원래 그런 곳은 없습니다.” - 오지수 & 장민경 (4.16연대 미디어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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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8. 5. 18.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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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올해 ACT! 인터뷰는 독립영화와 대안미디어 분야의 활동가들을 찾아갑니다. 가능하면 이제 막 이곳으로 진입하여 자기 자신과 그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신입활동가’를 자주 만나보고자 합니다. ‘활동’에 대한 호기심과 욕심, 실망과 의지를 고루 안고서 자기만의 영역을 일구기 시작한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찬찬히 나누며, 현재의 장을 환기시키고 새로운 가치와 욕구를 전달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ACT! 109호 인터뷰 2018.05.30.]


“원래 그런 곳은 없습니다.”

- 오지수 & 장민경 4.16연대 미디어위원회 활동가


인터뷰 및 정리: 차한비(ACT! 편집위원)

사진/기록: 김주현(ACT! 편집위원)


사월의 마지막 날, 동교동의 카페에서 4.16연대 미디어위원회(이하 ‘미디어위’) 미디어 활동가를 만났다. 오지수와 장민경, 두 사람은 각각 2016년과 2017년에 미디어위에 합류했으며 제18회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처음 공개된 4.16연대 미디어위원회의 세 번째 416프로젝트 <공동의 기억: 트라우마>(2018)에 참여했다.


지난 몇 해 동안 장소를 옮겨가며 그들의 얼굴을 발견했다. 극장에서, 광장에서, 장례식장에서, 시위대의 행렬 속에서 두 사람은 늘 분주하게 움직였고 그만큼 힘들어 보이는 순간도 적지 않았다. 안부가 궁금했지만 선뜻 잘 지내느냐는 인사를 건네기는 어려웠다. 이번 활동가 인터뷰를 기획하고 그 두 사람의 얼굴이 곧장 떠올랐다. 겨우 ‘안녕하세요’ 라는 말을 꺼내고, 조직 내 역할과 개인의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 활동가로서 만남을 청했다.


* * *


오지랖, 사춘기, 활동가


차한비(이하 ‘한비’) : 우선 소개를 해보자. 보통 어떤 식으로 자신을 소개하는지 궁금하다. 나는 한국독립영화협회 활동가로 일한 지 3년이 되었는데 어느 순간 내 이름보다 소속을 먼저 밝히는 경우가 늘어나게 되더라.


장민경(이하 ‘민경’) : 상황에 따라 다르다. 미디어위 차원에서 참석한 자리일 때는 미디어위 활동가라고 소개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는 다큐멘터리 공부하고 있다고 말한다. 소개는 늘 고민이 된다. 어디서 활동하고 있다고 말하는 순간 내가 너무 드러나는 느낌이다.


오지수(이하 ‘지수’) : “4.16연대 미디어위원회 활동하고 있는 오지수입니다” 라는 문장이 입버릇처럼 붙었다. 얼마 전 416프로젝트 <공동의 기억: 트라우마> 작업이 종료되고 나서는 <어른이 되어>를 연출한 ‘오지수 감독’으로 불리더라. 호칭이나 소개가 별 것 아닐 수도 있지만 나 역시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계속 하게 된다. 하지만 오늘은 ‘활동가’로서 나를 소개하고 싶다.



▲ 왼쪽부터 장민경, 오지수, 차한비

한비 : 그럼 지금의 자신을 하나의 단어로 정의해볼 수 있을까. 직업적인 의미여도 좋고 상태에 대한 표현이어도 좋다. 


민경 : 최근에 가장 많이 쓰는 단어가 ‘오지랖’이다. 내가 생각해도 오지랖이 넓어졌다. 이전까지는 내 가치관과 지향을 정립하기에 바빴다.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면서 살아가야 할까 라는 생각에 옆 사람을 챙기거나 조직문화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런 내가 오지랖이 넓어진 데에는 아무래도 미디어위의 영향이 있다. ‘세월호’라는 특정 주제와 사안에 대해 기록 활동을 하고 있다 보니, 활동가의 스트레스나 조직 관계에서 발생한 문제가 개인 사정으로 치부될 때가 있다. “우리는 이 일을 하고 있으니까 네 감정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수록 더 서로 서로 챙겨야겠다는 마음에 ‘오지랖’이 넓어지고 있는 것 같다.


지수 : 한 단어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요즘 나는 ‘사춘기’라고 말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반항이라고 해야 할까, 어떤 상황이나 사람에 대해 화를 표현하거나 저항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싫어도 웃고 참는 편이었는데, 적어도 요즘에는 반문하기 시작했다. 동의가 안 되면 짜증도 내고 아닌 건 아니라고 돌려서라도 말하는 연습을 해보고 있다. 얼마 전에 누가 나에게 사춘기냐고 장난스럽게 물었는데 그 말이 상처였다기보다는 무척 와 닿았다. 부당한 권력 행사에 대해 내 나름대로 문제제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아주 노련하지는 않고 아직까지는 정말 ‘사춘기’스럽지만.


한비 : 조직 내 활동가의 경우, 어느 순간 조직과 나 자신을 분리하기가 어려워진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도 그 문제가 끊임없이 영향을 준다. 두 사람은 이런 상황이 힘들거나 부담스러운 적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민경 : 여러 가지 면에서 어렵다. 예컨대 <공동의 기억: 트라우마> 텀블벅 펀딩 프로젝트를 할 때는 딱히 휴일이란 개념이 없었다. 내 핸드폰이 휴대용 사무 전화기가 되는 상황이었고, 어느 때든 질의가 오면 응답을 해야 했다. 4.16연대 활동가나 세월호 유가족들, 일반 시민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도 미디어위라는 소속을 갖고 있다 보니 스스로의 태도와 발언에 대해 항상 긴장을 하게 되고, 일상생활을 할 때도 장민경이 아니라 미디어위 일원으로 인식되는 것이 신경 쓰이기도 한다.  


지수 : 이 질문을 받으니 어쨌거나 나에게 변화한 지점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불과 작년의 나였다면 같은 질문에 “저는 괜찮은데요” 라고 답했을지도 모르겠다. 처음 미디어위에 들어왔을 때는 내가 소속된 집단이 나보다 앞에 서는 상황이 멋있고 좋았다. 정말 중요한 일을, 그것도 아주 많이 하고 있는 집단이기에 ‘내가 이런 곳에 있다니’ 하며 감격하기도 했다. 그래서 활동 1년까지는 그 안에서 치이는 ‘나’에 대해 나조차 관심을 갖지 않았다. 휴일이나 휴식의 개념 없이 밤을 새고 아침 해를 보는 생활이 이어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도 그렇고 우리 모두가 너무 무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옆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아프고 떠나가니까 나는 나대로 뭔가를 더 해야 할 것 같았다. 박종필 감독님이 돌아가시고 나서는 명확히 깨달았다. 책임감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구나, 그래서 내가 동료를 잃었구나. 그러자 또 얼마간은 동료의 일을 덜겠다는 생각으로 무리를 하게 되더라.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데, 남을 볼 줄 알면 나 자신도 돌볼 수 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나 자신을 괴롭힌 시간들이 있었다. 지금은 달라지겠다고 마음먹었다.





더 이상 동료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


한비 : 두 사람에게 미디어위는 단순한 소속집단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각자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미디어위에 합류해서 맨 처음으로 했던 일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지수 : 2016년에 나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스무 살이었다. 예고에서 연출을 공부했지만 대학까지 영화과로 가고 싶지는 않았다. 고등학교에도 소위 말하는 ‘현장 문화’가 있었고 감독이나 헤드스태프들이 폭력적으로 구는 상황을 경험했다. 차라리 인문사회 계열의 다른 공부를 해보고 싶었다. 그러던 중 미디액트에서 6개월 간 아르바이트를 했고 그즈음 만난 분을 통해 미디어위를 알게 되었다. 나는 세월호에 탑승했던 단원고 학생들과 동갑이었고, 성인이 되고 나서도 세월호는 내게 남다른 의미로 자리 잡았다. 영화과에 갈 생각은 없었지만, 카메라 찍고 영화를 만드는 것 자체는 좋아하니까 미디어위 활동을 같이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때가 2016년 9월, 딱 1-2차 청문회를 하던 시기였다. 첫 회의에 들어갔는데 내가 매스컴을 통해 접한 것보다 실제 논의되고 있는 세월호의 타임라인은 훨씬 방대하고 복잡해서 놀랐다. 가장 처음에 한 일은 녹취였다. 사실 그때는 ‘녹취’의 뜻도 몰랐다. 안전공원 건립을 설득하기 위한 영상을 만들기 위해 유가족 분들을 인터뷰 했는데 종필 감독님이 녹취 푸는 일을 맡겼다. 일단 알겠다고 하고 네이버에 ‘녹취’를 검색했다. 그러고도 긴가민가해서 엄마 아빠에게 물어봤다가 결국에는 종필 감독님한테 물어봤다(웃음). 종필 감독님이 “녹음한 내용을 글로 푸는 거예요” 라고 알려주었다. 그렇게 정말 아무것도 모른 채 들어갔기 때문에 미디어위가 더욱 멋있어 보였다. 피해당사자들과 관계를 맺고 노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고, 당시의 나로서는 뭔가를 하고 싶다는 욕구는 있었지만 알고 있는 바가 적었기에 주구장창 발로 뛰어다녔다.



▲ 오지수 활동가



민경 : 그러고 보니 미디액트로 연결이 된다. 나의 경우, 중앙대에서 자유인문캠프 기획활동을 하면서 교내 독립저널 「잠망경」과 ‘잠망경TV’를 운영했다. 학내 문제를 다루는 영상을 제작해서 유튜브에 업로드하고 다큐멘터리 공동체 상영회도 꾸준하게 열었다. 특히 세월호 참사 주기마다 미디어위가 제작한 영화를 항상 상영했다. 세월호를 이야기하는 곳이 거의 없던 상황에서 미디어위의 작품은 세월호를 바라보는 대리 눈의 역할을 해주었다. 세월호는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엉킨 채로 마음속에 남아 있었고, 언제가 되었든 나도 뭔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줄곧 해왔다. 

  그러다가 학교를 졸업할 즈음에, 미디액트에서 독립다큐멘터리 제작 수업을 같이 수강했던 친구가 미디어위 참여를 제안했다. 그 전 해에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 기록팀에 참여하면서 박종필 감독님을 뵌 적이 있었다. 뭐랄까,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저런 분이라면 같이 활동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여러 생각 끝에 미디어위 참여를 결심하고 김환태 감독님과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는데, 약속했던 그 날에 종필 감독님 장례가 치러졌다. 장례식장 들어섰을 때 기분이… 말로는 못하겠다.

  미디어위 들어가자마자 처음으로 한 일은 목포에 내려간 거다. 미디어위 활동가들이 번갈아 목포에 상주하며 선체조사에 참여했는데, 그때 한 명이 부족한 상황이라 어쩌다 보니 내가 내려가게 되었다. 세월호가 그렇게나 큰 배인 줄 몰랐다. 그곳에서 일주일을 지냈는데, 거대한 상처투성이를 마주하기가 쉽지 않았다.


▲ 박종필 감독이 찍은 두 사람


지수 : 갑자기 생각났는데 이 사진(위)이 우리 처음 만난 날 종필 감독님이 찍어준 거다. 돌아가시고 2달 뒤에 발견했다. 음, 종필 감독님의 부재는 미디어위는 물론 여러 면에서 큰 전환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그 사람이 위원장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를 계기로 미디어위를 포함한 현장 활동가들의 처우 문제에 대한 질문이 비로소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시스템이 전혀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는 계속 참고 무리해왔고 또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를 비롯해 현장에서 카메라를 드는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인식하면서도 제대로 된 변화를 요구하지 못했다. 활동가의 건강권과 생존권에 대한 논의는 더 이상 누군가를 잃기 싫다는 마음에서 터져 나왔다고 생각한다. 



조직 내 ‘젊은 여성 활동가’란


한비 : 그럼 두 사람은 미디어위에서 주로 어떤 일을 하고 있나. 본인의 욕구와 능력이 적절히 반영된 활동이라고 생각하는가.


민경 : <공동의 기억: 트라우마>에서는 2부 <이름에게>(연출 주현숙)의 조연출을 맡았다. 작업 기간 동안 녹취와 촬영 등의 일을 했고, 영화가 마무리 될 무렵부터 지수와 함께 미디어위 사무실에서 반상근직으로 일하고 있다. 그간의 촬영영상을 정리하는 아카이브 작업과 텀블벅 진행, SNS 관리 등을 병행했다. 촬영이나 편집 의뢰가 들어오면 참여하기도 한다.

  반상근이기는 하지만 나로서는 단체 내에서 일을 한다는 것, 특히 사무직으로 일하는 것이 낯설고 어렵기도 하다. 정기적으로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는 생활이 톱니바퀴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게다가 실무라는 건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일이어서 웬만해선 티도 안 난다(웃음). 실무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 일도 일이지만 동료가 중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지수와 공유하고 조율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지수 : 나의 경우 3주기 416프로젝트 <망각과 기억2: 돌아 봄> 때, 민경이 지금 하고 있는 업무들을 소화했다. 4주기 프로젝트에서는 <어른이 되어>를 연출하기로 결정이 되고 나서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이 ‘실무담당자를 외롭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였다. 내 작품도 너무 하고 싶었지만 실무를 경험한 사람으로서 그 일이 절대 혼자 할 수 있는 업무가 아니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매뉴얼이 전무한 상황이라 벅차기는 했지만, 나름 팀 구성을 제안하고 타임라인을 정리했다. 지금도 민경과 서로 이야기하며 맞춰나가는 부분이 많다.

  사실은 인터뷰에 참여하기로 결정하고 나서도 ‘우리가 무엇을 어디까지 말로 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거듭했다. 미디어위 활동 중에는 보람과 성취를 느끼는 순간도 있지만 동시에 버겁고 외로운 시간들도 포함되어 있다. 나는 이것보다 저게 더 하고 싶은데, 라고 하면 어리광 같아서 말하기는 어렵지만 내 안의 욕구와 현실이 충돌하는 지점이 있다.  


민경 : 미디어위 활동가로서 내가 수행하고 있는 업무 전체에 만족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나와 내가 속한 조직이 추구하는 가치에 다가가기 위해서 하는 일이긴 하지만, 다른 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거리감이 느껴지는 일들도 있다. 계속해서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나가는 노력이 필요해진다.



▲ 장민경 활동가



한비 : 어느 조직이든, 심지어 우리가 속한 진영조차 위계질서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성별, 나이, 경력 등에 따라 일의 영역이 나누어지기도 하고 같은 일을 해도 주/부로 위치가 굳어지기도 한다. 미디어위의 구조와 입장상 두 사람은 편하게 이야기하기가 더 어려우리라고 짐작한다.

  최근 조직 내 ‘젊은 여성’들은 여러 겹으로 둘러싸인 장벽과 싸우는 중이다. 이쪽도 예외는 아니고 이제 막 장 안으로 진입한 신입활동가의 경우 더욱 그럴 것이다. 의도가 있건 없건 차별과 폭력은 구조 내 가장 취약한 계층을 타깃으로 삼는다. 나의 경우, 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국 활동가로서 회원과 활동가 사이의 위계를 오랜 시간 고민하고 있다. 아까 말이 나왔던 것처럼 실무는 종종 평가절하 되기도 할뿐더러 일부에게는 사무국 여성 활동가가 그들의 편익을 위한 서비스 제공자처럼 인식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지수 : 공감한다. 권력의 해체와 대항으로서의 독립영화를 말하던 사람들이 어느 자리에 가면 소위 ‘감독부심’을 부린다. “조연출이 연출 컨디션 만들어줘야지” 라든가 “연출이 그런 일까지 하면 안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저런 게 권력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불쾌했고, 내가 어리고 여자이고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당연하다는 듯이 가르치려 드는 태도에도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았다. 초반에는 내가 부족하고 못나서라고 자책했는데 지금은 내 탓이 아니라는 걸 안다. 내가 설사 능력이 안 되어 일을 못했어도 그런 말을 들을 이유는 없다. 미디어위에서든 독립영화계에서든 이런 생각들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 여기서 무엇을 함께 하자고 제안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자 고민이다.


민경 : 이따금 다큐멘터리를 왜 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이상한 사람 안 되고 싶어서” 라고 대답한다. 다큐멘터리를 한다는 건 나 자신을 끊임없이 성찰하고 돌아보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생각과 행동의 간극을 좁혀나가려는 노력이 계속해서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활동 중에 실망과 회의를 느낀 순간도 적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에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오래 하라’고 말하는데, 그들을 보며 ‘나도 저렇게 되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될 때 두렵다. 

 

한비 : 작년까지만 해도 ‘지속가능한’ 활동에 대한 고민을 했는데 요즘엔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내가 지속하고 싶지 않을 때 지속하지 않을 자유와 안전이 보장되면 좋겠다. 그저 오래 하라는 무책임한 주문 대신에, 오래 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질문해야 할 때다.


지수 : 계속하라는 말보다 계속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심이 필요하다. ‘젊은 여성 활동가’라는 틀에서 강요받는 책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버티라고, 지금까지 잘해오지 않았느냐고 말하는 선배들은 많았지만 그것이 폭력일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민경 : 그런 식으로 자발성을 강요받다 보면 심지어 ‘나는 여기 들어오면 안 되는 사람이었나?’ 하고 자신이 없어지기도 한다. 생계에 대한 이야기, ‘돈’ 문제를 논의할 수 없는 분위기 또한 비슷한 방식으로 형성된다. 조직 내 구성원 모두가 힘들면 힘들다고, 죄책감 없이 이야기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세월호는 모두에게 중요한 문제이고 나 또한 여기에 결합해서 풀어나가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그와 동시에 각자 생계를 꾸리고 자기 자신을 보살피는 것도 중요하다. 문제가 생기면 공유하고 해결해야 하는데 그 모든 책임이 개인의 인내와 희생으로 돌아오는 것은 옳지 못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지수 : 원래 그렇다는 말이 우리를 낙담하게 한다. “이 판은 원래 힘들고 여기 있는 사람들 원래 다 그렇다”는 말은 더 이상의 문제제기나 요구를 차단하겠다는 태도다. 무엇보다 조직 내 언어와 문화의 형성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구성원들 모두 말로는 성평등한 문화를 지향하고 사회적으로 만연한 폭력에 대항한다고 하지만, 젊은 여성 활동가들이 뒤에서 실무를 처리하는 동안 소위 얼굴이 필요한 자리에는 기성 감독들이 무대에 오르는 상황이 연출된다. 같은 조직에 속해 있더라도 합의되지 못한 각자의 언어가 있을 뿐이다. 나는 여기서 균열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처음엔 미세한 진동처럼 느껴지지만 결국 무시할 수 없는 문제로 대두될 것이다. 




동력은 좋은 질문과 재미, 그리고 동료


한비 : 두 사람의 이야기 안에는 회의감과 동시에 의지가 섞여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렇다면 두 사람은 미디어위 활동에 어떤 목표와 계획이 있는지 묻고 싶다. 


지수 : 우선은 이 활동을 꾸준히 해나가고 싶지만 지금의 고민과 회의가 끝나지 않을까봐 무섭다. 더 이상은 눈앞에 닥친 문제를 외면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동시에, 여전히 세월호 참사를 가까이 직면하는 일만도 슬프고 힘들다. 개인적으로는 알고 싶은 것도 많고 배우고 싶은 것도 많다. 세월호 참사라는 문제 자체가 다양한 차원의 공부가 필요하니까. 욕구와 혼란이 공존하는 시기 같다. 말하고 보니 정말 사춘기다(웃음).


민경 : 미디어위 활동 영역에서의 목표는 ‘아픔’에 대한 다른 방식의 접근이다. 이곳에 있는 유가족, 현장 활동가, 연대 활동가들을 지켜보면서 여러 고민이 든다. 유가족과 피해생존자들은 너무나 쉽게 2차, 3차 가해에 노출된다. 웃으면 웃는다고 뭐라고 하고, 울면 그만 좀 울라고 다그친다. 계속해서 자신의 슬픔과 아픔을 증언해야 하는 와중에 문제제기를 하면 문제제기를 한다고 손가락질 당하는 식이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대해서 항상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다. 비슷한 참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만큼, 그 두려움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과 실천 역시 필요하다.


한비 : 어쨌거나 지금까지 오게 해준, 또 지금 이 순간을 그 다음으로 이어주는 동력은 무엇일까. 두 사람의 동력이라는 것은 어떤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민경 : 그럼에도 미련을 못 버리고 하는 이유는(웃음) 첫 번째는 같이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어쩔 수 없이 내가 영화를 통해 묻고 싶기 때문이다. 던지고 싶은 화두가 내 안에 있다. 세월호에 대해서도 또 다른 말하기를 시도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좋은 질문을 갖고 싶고 그 질문을 가꿔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나의 동력이 된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로 인해 와장창 깨지기도 하지만, 그런 부분이 또 의미가 있다. 미디어위 활동을 하면서도 촬영하러 가기 전에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갔는데 막상 실제로 진행해보니 예상 밖으로 흘러가는 상황들이 더러 있었다. 그럴 때 머리가 아프지만 하길 잘했다는 만족감도 생긴다. 여전히 보고 듣고 생각할 부분이 많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한비 : 역시 다들 변태 같은 구석이 있다!(웃음)


지수 : 연출을 하고 구성을 하고 그렇게 머리 맞대고 같이 고민하는 일을 사랑하지 않으면 절대 지금까지 여기에 남아있지 못했을 거다. 결국엔 내가 재밌으니까 이 일을 계속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민경과 함께 미투(#MeToo) 집회 영상을 편집했다. 집회에서 힘을 받기도 했지만 정말 ‘협업’을 제대로 경험해본 기분이었다.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상의하며 컷과 컷을 붙이고 음악을 삽입하고 수다 떨며 작업하는 전 과정이 정말 즐거웠다. 기존에도 공동편집을 해본 적이 있지만 권력관계로부터 자유롭지 않았고 어쩌면 내 쪽에서 지레 움츠러들어 선을 그은 적도 있었을 거다.

  이러한 고민들은 단순히 나이와 경력이 쌓인다고 해서 바로 해결되지는 않을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 역시 좀 더 노력해보고 싶고 내 언어도 더욱 단단하게 만들고 싶다. 힘들고 지치게 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정말 보석 같은 사람들, 나의 친구와 동료들이 있는 곳도 바로 여기다.


* * *


원래 그런 곳은 없다. 원래 그렇다는 말에 저항하며 다른 관계와 다른 장소를 상상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범위를 알 수 없는 ‘이 판’의 우리들은 그 사람들의 용기와 노력에 제각기 빚지고 있다. 경청하는 자세와 동참하는 목소리로 그 빚을 털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 가능한 많은 사람들과 가능한 오래 함께 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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