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103호 인터뷰 2017.5.19]
“우리는 사람들의 가치를 보여주는 기업, 21세기자막단입니다.”
진행 및 정리 : 차한비(ACT! 편집위원회)
영화는 혼자서 만들 수 없다. 흔히 떠올리는 감독과 배우뿐만 아니라, 각자의 자리를 지켜내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영화는 탄생한다. 한 편의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얼굴도 모르는 수십 수백 개의 이름이 검은 화면 위에 흰 글씨로 나타났다가 사라질 때는 아득한 기분이 든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그리고 영화를 관객들과 만나게 하기 위해서 생각보다 아주 많은 사람이 필요했음을 깨닫는다.
‘사람들의 가치를 보여주는 기업’, 21세기자막단은 스스로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이것은 그들의 포부이자 목표로 들린다. 영화를 ‘함께’ 만든 사람들의 가치, 그리고 그처럼 빛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영화’를 알리겠다는 것이 21세기자막단의 속내이다. 영화제 자막팀으로 시작해서 전문회사로 성장하고, 자막제작은 물론 상영회와 영화제 기획, 카드뉴스와 뉴스레터 등 콘텐츠 발행까지 진행하며 바쁘게 시간을 통과하는 중에도 그 원칙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나 영화제 브로슈어에서 21세기자막단의 이름을 발견할 때마다 반가운 동시에 그들의 ‘요즘’이 궁금해졌다. 21세기자막단 김빈 대표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김 대표는 인터뷰를 수락하며 “여러 가지 일을 진행하다보면 한 번씩 왜 하고 있는지, 잘 가고 있는지, 생각을 점검해보는 순간들이 필요한데 이번 인터뷰를 하면서 다시 점검해봐야겠습니다.”라고 답했다. 2017년 4월 13일, 길마다 벚꽃이 만개한 봄날이었다. 21세기자막단의 사무실로 가는 전철에서 김 대표의 메일을 한 번 더 읽어보았다. 좋은 인터뷰가 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 인터뷰는 2017년 4월 13일 21세기자막단 사무실에서 진행되었다
김빈 21세기 자막단 대표(사진 왼쪽)와 차한비 ACT! 편집위원(사진 오른쪽)
영화제 자원활동가가 21세기자막단의 대표로
한비 : 21세기자막단과 구성원 소개 먼저 부탁드린다.
김빈 : 21세기자막단은 저평가된 사람들의 가치를 보여주기 위해 일하는 회사다. 연 평균 7명 정도의 자막 편집자가 있고, 현재 출근하는 사람은 3명이다. 한 분은 작년에 출산으로 육아휴직 중이고, 재택근무를 하는 번역가가 20-30명 있다. 일이 많을 때는 70명까지 같이 작업을 한다.
한비 : 생각보다 많은 언어를 번역하더라.
김빈 : 전부 다 원어로 진행하지는 않는다. 6개 국어 정도는 원어를 한국어로 옮기고, 나머지는 영어자막을 받아서 작업을 한다. 가끔 프로젝트가 있을 때는 원어민과 작업하기도 한다. 13개 국어 정도를 작업했고 보통은 영어 번역이 제일 많다.
한비 : 처음 ‘자막 일’을 시작했을 때는 언제인가.
김빈 : 1999년에 영화제에서 기술팀 자원활동가로 일했다. 영사보조와 자막보조를 했는데 그때 같이 일했던 팀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기술팀이었다. 다음 해에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연락을 주셨고 자막팀으로 일하게 되었다.
한비 : 영화제 자막팀으로 시작해서 오랜 시간 자막가로 일해오고 있다. 아시다시피 영화제는 보통 계약직으로 단기 스태프를 구성한다. 영화제가 끝나면 이쪽 스태프들이 저쪽 영화제로 옮겨가는 식인데, 김빈 대표의 경우 이런 구조를 탈피하고 회사를 차린 것이다. 21세기자막단은 그 시작에서부터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영화계에 관행적으로 존재하는 고용 불안을 겨냥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시작’할 생각을 했나.
김빈 : 솔직히 말하면 회사를 차리겠다고 마음먹은 결정적 순간은 이제 이 일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하던 시기에 찾아왔다. 개인적으로 일이 재미없어진 상태였다. 자막제작 환경에서 ‘팀장’급으로 오래 있다 보면 점점 실무와는 거리가 생긴다. 매년 새로운 작품을 만난다는 설렘은 있지만, 사실상 영화제를 시작하면 영화는 몇 편이 들어올 테고 그럼 사람은 몇 명이 필요하고… 그런 식의 짜임새가 머릿속에 갖춰지고 익숙해진다.
그렇다고 매년 새로운 시도를 한다거나 스태프들이 일하는 업무환경의 시스템을 바꿀 수 있는 포지션도 아니다. 스태프들은 보통 석 달 정도 일을 하는데, 이미 영화제 예산책정이 끝난 상태에서 결합하기 때문에 그때 들어가서 인건비 상승 등의 요구를 하기도 어렵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건 “내년에는 이렇게 하시오” 라는 결과보고 정도다. 설사 그러한 요구사항이 다음 해에 반영된다 하더라도 작년에 일했던 사람과 올해도 같이 일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이러한 현실에 한계를 느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일종의 팀이 생겼다. 일 년 내내 그 팀원들은 내가 팀장이 되어서 부르기를 기다렸다가 같이 일하고 또 흩어지고 그런 식의 반복이었다. 영화제가 많이 열리지 않는 겨울을 지나 보내고 다시 오는 친구들은 같이 일을 하는 거고, 아니면 헤어지는 거고. 내가 그만두면 다른 친구들이 내가 있던 영화제에 팀장으로 갈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나는 10년 차가 되니까 사무국에 ‘말빨’이 먹히는 사람이라 치면, 팀원들은 다시 처음부터 부딪쳐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겠더라. 사무국에서는 자막가가 몇 명인지조차 잘 모르는 경우도 있을 정도니까. 이런 문제들을 바꿔보고 싶었다. 그러고 나면 홀가분하게 관둘 수 있겠다는 마음(웃음). 나에게는 회사가 일종의 돌파구였던 셈이다. 비슷한 고민들이 점점 쌓이다가 그런 식으로 발현이 된 것 같다.
△ 21세기 자막단의 사무실 전경
21세기자막단 ‘되어 가기’
한비 : 21세기자막단의 태동은 2011-2012년으로 알고 있다. 간간히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소식을 접하기는 했지만, 그동안 21세기자막단이 어떤 변모과정을 거쳐 왔는지 정확히는 모르고 있다.
김빈 : 2011년에는 프리랜서 팀처럼 일했다. 창업을 결심하고 친구 소개로 사회적기업 아카데미 수업을 들었다. 창업에 대해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내가 상상하는 회사가 사회적기업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을 했는데, 마침 비즈니스 수업이 있다고 해서 수강하게 되었다. 그 후 씨즈라는 중간조직이 있었다. 사회적기업을 지원하는 곳인데, 당시 전체 육성사업팀에 영화 파트가 우리밖에 없어서 쉽지는 않았다. 그때는 창업공간이 광진구에 있었고 1년 후에는 구의동에 개인 사무실을 내서 일했다. 거기에 1년 6개월 정도 있다가, 불광에 서울혁신파크가 생긴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해서 현재의 사무실로 오게 되었다.
육성사업을 통해 교육이나 컨설팅을 받는 경우가 있었는데, 자막 제막이나 영화 관련업이 드문 일어어서 사업에 직접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회사 만들고 첫 해는 정말 일하다가 시간을 다 보냈다. 그렇게 정신없이 하고 나니까 이러려고 회사 차렸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이 되고 한가해졌을 때, 회사 식구들과 “우리가 왜 회사를 만들었을까” 이런 얘기를 하다가 ‘찾아가는 활력상영회’와 옥상에서 하는 ‘루프탑 활력상영회’를 시작하게 된 거다.
자막 제작하면서 내내 아쉬움이 있었다. 완성하고 나서 한 번만 트는 영화도 많으니까. 그게 너무 아깝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들을 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또 한편으로는 정말 극장이 없거나 극장에 갈 수가 없는 상황이라 영화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생각보다 많더라. 그런 지역이나 사람들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활력상영회’를 시작했다. 우연히 트위터에서 벌교의 한 초등학교 폐교 소식을 접했다. 학생들과 부모님들이 폐교를 막기 위해 고구마를 팔고 있었다. 당신들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학교에 연락을 하고 영화를 같이 보자고 제안했다. 그때의 경험이 좋아서 일이 점점 커졌다(웃음).
한비 : 상영회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인데 대단하다. 가장 최근에 했던 상영회도 궁금하다.
김빈 : 그렇게 힘든 줄 알았다면 안 했을 거다(웃음). 작년 연말에 ‘도우누리협동조합’과 상영회를 열었다. 노인, 아동, 장애인, 방문요양 등 다양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요양보호사 분들이 계시는 협동조합이다. 우리가 영화를 선정하고 요양 보호사 중에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분을 추천 받아서 상영회와 토크쇼를 접목한 형태로 진행했다.
△ 김빈 21세기 자막단 대표
자막가의 일, 자막단의 일
한비 : 자막가는 유능한 프로그래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지금까지 본 영화의 편수가 압도적일 테고, 게다가 한두 번 영화를 보고 자막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깊이도 남다르리라 생각한다. 프로그래밍이나 또 다른 영역에 대한 욕구도 있을 것 같은데.
김빈 : 자막을 만들기 전에는 좋아하는 감독을 꼽을 수 있었다. 그런데 자막을 하다보니까 다 좋아진다. 계속 보고 같이 만들다보면 어쩔 수 없이 애정이 생긴다. 세 번, 네 번 자꾸 돌려보면 처음에는 감지하지 못했던 매력 포인트가 보이잖나. 한 사람을 꼽을 수가 없게 되더라. 자막팀을 꾸릴 때 어떤 모델을 만들거나 정해둔 건 아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각자의 욕구와 조직의 역량이 보였다. 주변에서 요청이 들어왔을 때 자연스럽게 프로그래밍을 하게 되었고, 우리가 추천하는 영화를 상영하기 위해 공동체 상영과 배급 등에도 관여하게 되었다. 처음에 자막단을 시작할 때는 자막 만드는 일만 했다면 현재는 콘텐츠를 확산하고 유통하는 일까지 하고 있는 셈이다.
한비 : 일반적으로 영화 회사라고 하면 제작사를 생각하기 쉽고, 자막이라는 것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편도 아니다. 작업 과정 또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대사 번역’ 수준이 아닐 텐데 자막의 제작 과정과 역할 배분이 궁금하다.
김빈 : 영화제나 감독 측에서 보내온 자료를 편집하는 작업부터 한다. 대본에 있는 문장을 시간에 맞춰 타임코드로 나누고 가이드를 잡는다. 번역가들은 가이드에 맞춰서 글자 수를 고려해 번역을 한다. 관객들이 시간 내에 자막을 다 읽으면서도 의미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하니까. 다시 자막편집자가 타임코드 수정할 것이 있는지 확인 후 초벌감수를 하고, 감수자가 오역을 확인한 후에 다시 한 번 감수를 거친다. 그 과정을 마치면 보통 영화제는 프리뷰로 작업을 하니까 상영본을 수급한 뒤에 편집이 동일한지 확인하고 극장에서 상영하는 일까지 진행한다.
한비 : 수입영화에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는 번역 문제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해보고 싶다. 오역뿐만 아니라, 여성 캐릭터가 하는 말은 존댓말로 번역하는 반면에 남성 캐릭터는 반말로 처리하는 관행적인 번역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다. 번역을 할 때 자막가로서의 태도랄까, 관련 이슈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김빈 : 방금 언급한 문제를 포함해서 영화 번역의 민감함을 인지하며 지속적으로 고민 중이다. 여성-존댓말, 남성-반말의 형태는 그나마 줄고 있는 추세인 것 같다. 한편으로는 영화제 작업의 특징이기도 한데 해당 이슈들을 제일 앞에서, 제일 빠르게 말하지 않나. 환경영화제 작업 당시 ‘글로벌 워밍’에 대해 한참 이야기를 하는데 한국에는 관련 내용에 대한 지식이 보편화 되어 있지 않아서 이걸 어떻게 번역할지 논의해야 했다. 또한 여성영화제나 인권영화제에서 작업을 하면서 해당 이슈에 민감해지지 않을 수가 없고, 제대로 표현하지 않았을 때 의미를 훼손하게 되어버리기 때문에 공부가 필수적이다.
한비 : 외국 영화를 볼 때는 화면만큼이나 자주 자막을 보게 되고, 일상어든 전문 용어든 자막에 쓰인 단어를 바로 흡수해버리니까 자막을 제작하는 측면에서는 확실히 고민을 거듭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김빈 : 실제로 발화된 워딩 그대로 써야 하는 경우도 있고, 반면에 뉘앙스를 전달하기 위해서 가장 효과적인 단어를 골라야 할 때도 있다. 한 작품 할 때 최소 2-3명이 보는 이유가 있다. 누가 놓치더라도 다른 사람이 잡을 수 있으니까. 사실 자막가에게는 항상 예민한 문제다.
가치를 지켜내는 구조
한비 : 이 안에 존재하는 활동가로 보았을 때, 21세기자막단은 일종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영화 창작자들이 그러하듯 상영활동가와 기술 스태프 등 많은 인력이 처음에는 ‘독립영화’ 또는 ‘비상업영화’로 영화제를 만나고 일을 시작한다. 이때 개인 및 조직의 가치관과 일자리 계약의 형태와 노동 조건이 사실상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고민과 갈등이 깊어진다.
김빈 :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스태프들은 영화제 사정을 뻔히 아니까 더 이야기를 못한다. 그럼 이렇게 바꿔보자고 했을 때 연대의 경험이 원만하지도 않다. 나 또한 변화를 위해 함께 하자고 제안하기보다는 내가 나가서 해보겠다는 개인적인 방식을 선택한 거다. 그 내부에서 뭔가 잘 되었으면 사실 자막단 같은 회사가 나올 필요는 없었을 거다.
기준을 세우고 연대를 하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은 한다. 예컨대 사업을 하면서도 어떤 불합리한 구조를 바꾸겠다고 할 때, 합의를 본 하한선이 있는데 그 다음에 다른 팀이 와서 우리는 더 싸게 하겠다고 하면 의미가 없어지지 않나. 만약에 우리보다 좋은 시스템을 가져서 예산을 줄이고 효과를 늘리는 거라면 좋겠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뾰족한 수가 있어서가 아니고 결국 인건비를 줄일 수밖에 없는데, 얼마 안 되는 예산으로 그런 식의 경쟁을 하니까 안타까운 거다.
그럼에도 나 역시 연대에 대해서 아직도 어렵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누군가 먼저 와서 이야기하면 좀 더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세운다거나 할 텐데 우리 또한 부족하고, 단체별로 모여 앉아서 이야기하면 결론이 안 나기도 한다. 단위들마다 니즈가 다 다르니까. 네트워크를 통합할 수 있는 조직에서 변화를 이끌어가고 그 방향에 지지하는 단위들이 따라 붙는 형태가 되지 않으면 그냥은 쉽지 않은 것 같다.
한비 : 실례되지 않는 선에서 21세기자막단의 매출에 대해 묻고 싶다. 영화계의 고용불안이라든가 저임금 문제는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아쉬움과 부당함으로 껴안고 있다. 그런 면에서 21세기자막단은 최초의 사례이자 성공적인 길잡이가 되어주기도 한다. 수익구조를 안정화하고 노동 조건을 개선해나가기 위한 여러 고민이 있으리라 예상된다.
김빈 : 회사 만들기 전에는 우리 팀 중에서도 내가 1년에 9개월 일한다고 해서 나머지 친구들이 9개월을 똑같이 일하지는 못하니까, 팀장이 세팅하면 그 다음에 들어오게 되고 팀장이 급여가 더 높기도 하고. 연봉이 천만 원 안 되는 친구들이 많았고, 천만 원이 넘는다고 하더라도 큰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나의 첫 목표는 급여가 조금 적더라도 일 년 내내 받을 수 있게 만들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다시피 월급은 제때 받을 수 있었지만, 첫 해는 정말 자막만 찍는 분위기의 공장 같았으니 조정이 필요했다. 그만두는 친구들도 있었고 남은 친구들도 있었다.
1년이 지나고 회사가 되니까 일은 많이 들어오는데 원가보다 낮게 해달라거나 영화제 자막팀에 쓰는 운영비를 절감할 생각으로 일을 맡기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한 무리한 요구들은 다 쳐냈다. 그랬더니 매출이 반토막이 되는 거다. 그때는 매출이 줄어서 힘들다기보다는 내 미션이 맞는가, 서로의 미션이 정말로 동일한 것인가에 대한 생각 때문에 힘들었다. ‘저평가된 사람들의 가치를 보여주겠다’고 했을 때 그럼 무엇을 할까, 라고 하면 어떤 사람은 돈을 많이 벌어야 하고 어떤 사람은 나가서 이름을 날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다. 틀린 건 아니지만 각자의 정의가 모두 달랐다. 그 후부터는 영화제 경력이 없다고 해도 우리의 미션에 동의하는 친구들을 우선으로 사람을 뽑았다. 일을 가르치고 배우는 건 할 수 있으니까. 갑자기 매출이 늘어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보존을 하고부터는 조금씩 매출도 올라가고 있다. 성공했다기보다는 아직 살아있지(웃음).
한비 : 자막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영화제도 주최하고 상영회도 연다. SNS에는 카드뉴스를 만들어 배포하고 뉴스레터를 발행하기도 한다. 많은 일을 하는 곳일수록 그 이유를 물으면 명쾌하더라. 원칙이 확실히 서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해나가는 듯하다. 21세기자막단이 일을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무엇인가.
김빈 : 자막 제작만 하면 사람들과 서로 만날 일이 생기지 않는다. 스태프들은 이렇게 고생하면서 일하는데 관객들은 아무도 모르고. 여기에 이런 사람들이 있고,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영화를 보면 더 재미있을 텐데 싶었다. 우리를 포함해서 저평가된 사람의 가치를 인정받게 해주자, 해서 시작했다. 때문에 메이킹필름영화제를 주최할 때도 스태프를 중심으로 선택해서 기획했다. 미술팀과 음악팀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실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들.
자막 제작을 맡을 때는, 상대를 갑으로 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우리의 파트너라고 생각한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감사히 작업을 받는 편인데, 예를 들면 환경영화제처럼 꾸준히 파트너쉽을 공유하며 가는 팀이 있다. 그런데 환경영화제의 지향과 목표와 아주 반대되는 작업을 제안 받으면 고민이 된다. 예컨대 원자력과 직접 관련된 회사의 제품을 확산하는 교육 영상의 자막 작업이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거절했다. 그런 식의 선택 기준은 있다.
한비 : 엄청난 대의라기보다는 가치관을 공유한 파트너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김빈 : 앞에선 이렇게 하고 뒤돌아서는 저렇게 하는 식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목적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겠지만, 애초에 큰돈을 목적으로 시작한 회사는 아니었으니까.
△ 21세기 자막단의 사무실 벽에는 그동안 진행했던 행사의 포스터들이 붙어있다
보여주고 싶은 영화, 빛나는 사람
한비 : “좋은 자막이란 기억에 남지 않는 자막”이라고 말한 인터뷰를 보았다. 영화업에 종사하는 활동가로서 그 말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예컨대 잔치의 주인공이라기보다는 잔치가 별 탈 없이 이어지도록 제자리를 지키는 쪽인데, 식상하겠지만 언제 가장 보람을 느끼는지 묻고 싶다.
김빈 : 소소하게 많다. 개인 제작자들과 작업했을 때는, 두 번째 작품 찍는다는 소식이 들릴 때가 제일 반갑고 기분 좋다. 그들이 영화를 만들 때의 마음은 이 영화가 어디든 알려져서 두 번째 영화를 찍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크니까. 최근에도 그런 감독님이 한 분 있었는데, 두 번째 작품소식을 들었을 때 보람된 순간이었다. 또 우리가 SNS에 소개한 작품을 보고 정말 좋았다든가, 전에는 미술팀에 대해 몰랐는데 알고 나니 더 영화를 재밌게 보았다는 댓글을 볼 때도 기분이 좋다.
한비 : 영화 일을 하는 사람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개인적인 믿음이 있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인과 가장 좋아하는 대사는?
김빈 : 메이킹필름영화제 하면서 만났던 팀들이 기억에 남는다. 1회 때 만난 <숫호구>(연출 백승기) 팀이 많이 생각나고, 2회 때 음악 했던 팀도 고마웠다. 우연히 와서 반은 관객, 반은 스태프처럼 앉아 있다가 이야기 나누고 그 다음에 같이 영화제까지 하게 된 인연이다. 백승기 감독이 <시발, 놈: 인류의 시작> 개봉했을 때는 다 같이 가서 보고 그랬다. 요즘 <소공녀> 촬영하고 있는 전고운 감독은 우리 자막 스태프였다. 그 인연으로 광화문시네마에서 제작하는 작품의 자막 작업을 맡기도 했다. 전고운 감독과 같이 스태프로 일하고 그 친구의 단편영화를 보기도 하고 그랬는데, 장편 작업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기대 중이다. 가장 좋아하는 대사는 내 명함에 적혀 있다. 21세기자막단은 각자의 명함에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대사를 넣는다. <아비정전>(연출 왕가위)에 나오는 ‘아비’의 대사다. “지금 우리가 함께 한 이 순간을 기억하게 될 거야.”
긴 시간 인터뷰가 이어지는 동안 21세기자막단의 반려견 ‘재인’이 곁을 지켰다. 김빈 대표와 마주앉은 책상 밑에서 ‘재인’은 쉬거나 잠을 잤다. 큰 개가 있다고 말하면 대개 사람들이 “실제로 보니 생각보다 정말 크네요.”라고 놀라기에 요즘에는 “생각보다 큰 개가 있어요.”라고 말한다는 김빈 대표의 얼굴이 화사했다. 21세기자막단의 현재를 놓고 성공했다기보다는 살아남았다고 표현하며 웃을 때의 얼굴 또한 그러했다.
△ 21세기자막단의 반려견 ‘재인’
왜 하고 있는지, 잘 가고 있는지 인터뷰를 통해 다시 한 번 점검해보겠다는 김빈 대표의 말은 대화를 진행하는 내내 무게를 지니고 그의 옆자리에 머무는 듯했다. 21세기자막단은 아주 더디지도 아주 빠르지도 않게 제 속도를 유지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었다. 고민과 선택이 쌓여 지금의 21세기자막단을 만들었고, 그렇게 계속해서 21세기자막단이 되어 가고 있는 중이었다. 앞으로 더 많은 일을 동시에 한다고 해도 그들은 가치와 구조 속에서 균형을 잡으려 애쓰며 그 모습대로 21세기자막단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1세기자막단의 사무실을 나와 잠깐 걸었다.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조그마한 꽃잎들이 천천히 떨어졌다. 김빈 대표가 건넨 명함을 꺼내 천천히 읽어 보았다. “지금 우리가 함께 한 이 순간을 기억하게 될 거야.” □
[필자소개]
차한비
어려도 추워도 가방을 내려놓지 않아도
아무데나 걸터 앉아서도 가능한 것들이 언제까지나 그랬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것을 지켜내는 가장 좋은 방법을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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