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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11호 인터뷰] “잘못된 걸 잘못됐다, 네가 말하고 왔던 날” - 남순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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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8. 10. 1.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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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올해 ACT! 인터뷰는 독립영화와 대안미디어 분야의 활동가들을 찾아갑니다. 가능하면 이제 막 이곳으로 진입하여 자기 자신과 그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신입활동가’를 자주 만나보고자 합니다. ‘활동’에 대한 호기심과 욕심, 실망과 의지를 고루 안고서 자기만의 영역을 일구기 시작한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찬찬히 나누며, 현재의 장을 환기시키고 새로운 가치와 욕구를 전달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ACT! 111호 인터뷰 2018.10.05]


“잘못된 걸 잘못됐다, 네가 말하고 왔던 날”

- 남순아 (한국독립영화협회)


차한비 (ACT! 편집위원)



  부슬비가 내리는 9월의 어느 저녁이었다. 인터뷰를 청하는 순간은 언제나 떨리지만 이번 자리에는 설렘과 긴장과는 또 다른 감정이 섞였다. 오늘의 주인공을 기다리며, 그에게 보낸 메일을 다시 한 번 읽어보았다. “감독님과 이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조금 미안해졌어요. 감독님을 감독님이라고 부르면서도 언젠가부터 자연스럽게 같은 영역에 있는 활동가로 인식하고 만나왔던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우리는 그동안 영화 이야기라곤 정말 해본 적이 없네요. 감독님은 어떤 영화를 좋아하고 또 만들고 싶은지, 지금 구상 중인 작품이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매번 다음으로 미루게 되더라고요. 우리 앞에는 당장 할 얘기가 늘 쌓여 있었으니까요.”


  미안함을 먼저 고백한 이유는 이 인터뷰 역시 ‘감독’ 남순아가 아닌 ‘활동가’ 남순아를 조명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두 해 전, 어느 영화제에서 처음 만났던 남순아는 감독이었고 이후로도 영화 작업을 이어갔지만 그는 자주 영화 외의 방식으로 수식되고 호명되었다. 메일에 변명처럼 덧붙였다. “영화 만드는 남순아를 존중하지 않거나 또는 창작자 남순아와 활동가 남순아를 분리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지금의 제가 살펴보고 싶은 남순아에게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싶어서예요. 당신의 영화만큼이나 중요한 당신의 활동과 노력을 되짚고, 현재의 이 시간이 감독님에게는 어떤 의미로 저장되고 있는지 듣고 싶습니다.” 


* * *


▲ 남순아


차한비(이하 ‘한비’) 바쁜 와중에 인터뷰 수락해주어 감사하다. 근황과 함께 요즘의 관심사를 묻고 싶다.


남순아(이하 ‘순아’) 잠시 여행을 다녀왔고 최근에 요가를 시작해서 열심히 하고 있다. 벌써 근육도 생겼다(웃음). 요즘의 관심사라면 크게 두 가지인 것 같다. 하나는 영화 작업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의 성폭력이다. 이걸 ‘관심사’라고 말하다니 가혹하지만. 영화에 대해서는 앞으로 내가 계속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극영화를 만들고 싶은데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새로 학교를 가야할지 이러저런 고민이 든다. 성평등 활동과 관련해서는 참여 중인 특정 사건부터 성폭력 예방교육 강의를 진행하는 일, 그 외에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사건과 사고를 접하며 드는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한 시기다.


한비 2015년에 연출한 다큐멘터리 <아빠가 죽으면 나는 어떡하지?>를 인디다큐페스티발과 서울독립영화제 등에서 상영했고, 이후 <걷기왕> <오목소녀>(2016/2018, 연출 백승화) 등의 장편영화에도 참여했다. 영화를 만드는 창작자로서 활동가로 명명되는 상황이 부담스럽지는 않은지 조심스럽게 묻고 싶다.


순아 사실 나는 그동안 ‘창작자’ 혹은 ‘백수’라는 정체성이 제일 강했고, 두 갈래의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하나는 ‘왜 나는 창작자인데 작업을 안 하지? 왜 작업 대신 이런 활동들을 하고 있는 거지?’ 라는 불안이었고 다른 하나는 ‘적어도 독립영화계는 내 문제니까 내가 하는 게 맞아’ 라는 믿음이었다. ‘활동가’는 일종의 직업적 명칭으로 생각했기에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느꼈다. 때문에 오히려 이 질문을 받고 나서 마음이 좀 편해진 구석이 있다. “그래, 나는 활동가구나.” 라는 깨달음이랄까, ‘활동가’라는 명명이 낯설지만 다행스럽게 다가왔다. 적어도 지금의 나는 이 분야에서 이런 일을 하고 있구나, 라는 자각이 생겼다. 

  하지만 다음 작업이 미뤄지는 상황은 괴롭다. 단순히 개인의 노력 여하에 달린 문제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해결이든 연대든 당장 뛰어들어 뭔가를 해야만 하는 사건은 연속적으로 발생하는데, 그 활동의 몫은 몇몇 사람에게 돌아간다.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 스스로 창작 활동을 우선순위에서 부차화해버린다. 그러면서 속에 화가 쌓이는 것 같다. 모두가 성평등이라는 가치를 1순위에 놓지는 않는다는, 다른 사람들은 나만큼 관심 갖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지금은 인정했지만 초기에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인정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어디까지 이해해야 할지 잘은 모르겠다. 지금처럼 소수의 인원이 주도적인 역할을 계속해서 감당해야만 하는가, 그것이 옳다고 할 수 있는가, 옳지 않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나는 이 안의 구성원들이 어떤 방식으로 변화하고 참여하기를 바라는 걸까… 등등 질문은 이어지는데 좀처럼 갈피가 안 잡힌다.


▲ 남순아


한비 고민이 느껴진다. 영화계 내 성폭력 문제가 대두된 이후로 사건의 공론화 과정에 참여한 사람들이 그들의 노력과 비례하는 피로를 집중적으로 떠안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감독님 또한 작년부터 올해까지 해당 사건의 해결 및 성평등한 문화 정착과 관련하여 다양한 역할을 맡고 있는데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간략히 소개해주면 좋겠다.


순아 그렇게 많지는 않다(웃음). 한국독립영화협회(이하 ‘한독협’) 성평등위원회의 위원장을 역임하고 있고, 영화산업 내 성평등 환경 조성을 목적으로 2018년에 설립된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의 성폭력 예방교육 강사로 위촉되어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얼마 전 대법원 판결이 선고된  ‘남배우A 사건’과 ‘영화감독 김기덕 사건’의 공동대책위원회에 참여하고 있기도 하다. 공동대책위원회의 경우, 시작은 2017년이었는데 사실 재판 과정이 이렇게나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 생각해보면 몰라서 시작한 일들이 많다(웃음).

  

한비 스크립터로 참여한 <걷기왕>은 영화계 최초로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하며 화제가 되었다.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그때를 현 시점에서 돌이켜보았을 때, 영화인으로서 어떤 변화를 체감하는가.


순아 엄밀히 말하자면 최초는 아니다. 2007년 노사 임단협을 통해 영화 현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이 시행되기 시작했다. 다만 이전까지는 헤드 스태프 위주로 진행하는 소극적인 형태의 강의였다면 <걷기왕>은 스태프 전체로 대상을 확장한 사례였다. 성희롱 예방 교육을 의무적으로 실행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공유되지 않은 시기였기 때문에 더욱 이슈가 되었던 것 같다. 실제로 강의를 나가보면 참석률이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니지만, 어쨌든 형식적으로라도 강의를 실시한다는 점은 중요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의 설립과 영화진흥위원회가 장편 극영화 제작지원작에 성폭력 예방교육 의무화를 요구하게 된 것 역시 의미 있는 변화다.


한비 이야기가 나온 것처럼 성폭력 예방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교육의 중요성에 공감하는 동시에, 강의라는 적극적인 방식을 택한 것이 놀랍기도 하다. 계기는 무엇이었는지, 과정 중에 어려운 점은 없는지 궁금하다. 


순아 강의를 듣고 기획할수록 좀 더 직접적으로 가닿을 수는 없을까, 라는 아쉬움이 생겼다. 영화계 종사자들에게 보다 현실적인 장면을 제시하고 설명함으로써 성/폭력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이어지기를 바랐다. 결국에는 이 역시 잘 몰라서 시작한 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웃음). 세상이 바뀔 줄 알았다. 이것보다는 빠르게, 많이 바뀔 거라고 믿었다. 2016년 촉발된 #영화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의 흐름에서 ‘찍는페미’, ‘불꽃페미액션’ 등을 비롯한 여러 그룹이 등장했고, 적지 않은 단위에서 성평등이라는 주제를 적극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강사로 활동하겠다는 용기는 그 과정에서 나왔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지친 상태다. 일로도, 일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도 거리두기가 잘 되지 않아서 강의를 잠시 중단하고 있다. 아무리 공부하고 준비를 해도 사람들 앞에서는 부족함을 느낀다. 솔직히 말하면 시간이 지나고 회를 거듭할수록 두려움이 커졌다. 처음에 가장 당황스러웠던 점은 내가 기본적으로 환영받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떨떠름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맞닥뜨릴 거라고, “네가 영화계를 잘 모르는 것 같은데.” 라는 말을 들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따지고 보면 나는 대개의 수강자보다 영화경력이 길지 않고 장편을 연출해본 경험도 없다. 강의에서 폭력의 사례나 피해 경험을 예시로 들 때 “요즘은 그렇지 않다.” 라거나 “네가 영화계를 몰라서 하는 얘기 같은데.” 라는 반응이 돌아오면 ‘내 경험이 나에게만 일어난 일이면 어떡하지'라는 불안을 떨쳐내기가 어렵다. 과연 나의 경험을 보편적인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하는 걱정이 나를 위축시킨다. 


한비 애초에 환대받지 못하는 자리에 선다는 말이 마음에 걸린다. 강의 중에 어떤 의미로든 인상적인 순간이 있었다면 듣고 싶다.


순아 보통 강의에서 사례를 말할 때는 아카이빙 된 사건을 일부 각색하여 전달한다. 한 번은 위계폭력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감독이 연출부에게 고성을 지르며 욕설을 내뱉은 상황을 예로 들었다. 수업을 듣는 사람들에게 당신이 그 자리에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다. 그 중 한 분이 “연출부가 잘못했을 수도 있으니까 상황이 종료된 후에 연출부에게 가서 어떻게 된 일인지 조용히 물어보겠다.” 라고 답했다. 그때 내가 꽤나 착각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 누구도, 감독이라고 해도, 혹은 연출부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해도 언어폭력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전제 자체가 합의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

 

▲ 남순아

 

한비 한독협 성평등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다. 성평등위원회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진행해왔나.


순아 처음에는 포부도 컸고 정말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웃음). 뭐랄까, 지금의 활동 방향보다는 훨씬 귀엽고 재미있는 일들을 상상했다. 각종 캠페인과 협회 내 극·실험/다큐/비평/상영/프로듀서 분과별 협업을 통한 다양한 기획을 진행해보고 싶었다. 

  물론 성과가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우선 가장 큰 변화는 내규의 개정이다. 성평등위원회를 주축으로 한독협의 기존 ‘성평등위원회 규약 및 성차별·성폭력·인권침해 사건 처리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고 ‘평등문화약속문’을 새롭게 작성했다. 단순히 사후 처리에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닌, 폭력의 예방과 조직 문화의 환기를 위한 매뉴얼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더불어 올해 3월, 성차별·성폭력·인권침해 사건의 신고 상담을 접수하는 창구로서 성평등위원회 핫라인 계정을 설치했고, 소속 회원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성평등 교육의 의무 이수화 방안을 논의 중이다.


한비 영화계 내에 관행처럼 묵인되어 온 폭력이 가시화 되면서 독립영화 진영에서도 지속적으로 성폭력 사건이 공론화되고 있다. 한독협도 올해 두 차례의 대책위원회 조사와 발표가 있었다. 가까운 곳에서 과정을 지켜본 사람 중 한 명으로서의 소회를 듣고 싶다.


순아 올해 2월부터 4월, 5월부터 9월까지 두 차례의 대책위원회가 운영되었다. 한독협 소속 회원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되었고 내규에 따라 해당 사건의 조사를 결정했다. 별도의 두 사건 모두 조사 과정에서 추가 신고가 접수되었고 당초 계획보다 긴 시간과 에너지가 투입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 이 경험이 나를 성장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이토록 데미지가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성평등위원회든 대책위원회든 어떤 역할을 수행한 사람의 경험이 그의 경험으로만 단절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동시에 몇몇의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역할이 집중되는 것도 막고 싶었다. 처음에는 그런 포부나 의지로 나 자신을 이끌어갔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글쎄, 주체나 원인을 명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내가 뭔가에 많이 실망한 상태다. 사건을 맡고 나서 부담이 심했다. 이 활동으로 인해서 혹시라도 비난 받을까봐, 여기서 자칫 실수할까봐, 의도치 않게 누군가를 상처 입힐까봐, 또 그 사실이 알려져서 공개적으로 비난 받을까봐 내내 전전긍긍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내가 뭘 잘못했지? 뭘 놓쳤지? 더 나은 방향으로 가려면 뭘 어떻게 더 했어야 했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반복적으로 던진다. 

  여기서 더 노력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대답은 포부나 의지보다는 애정과 신뢰로 결정된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그것은 나의 문제인 동시에 조직의 문제다. 이 조직이 나에게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나와 우리의 존재, 그리고 이 활동의 근거를 어떤 방식으로 마련할 것인가. 대책위원회는 종료된 상태이지만 여러 겹의 질문이 남아 있다.


한비 2016년 <걷기왕>으로 주목과 기대가 높아진 상황에서 여러 자리에 호명되었고, 꼬박 2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고민 속에서 꾸준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을 수도 있지만 본인에게는 선택의 순간도 분명히 있었으리라 짐작한다.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였는지, 그럼에도 여기까지 지속해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순아 지금(웃음)! 지금이 제일 힘들다. 누군가는 나에게 용감하다, 대단하다, 혹은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라고 이야기한다. 그런 말을 들으면 감사하지만 마음 한 귀퉁이에서는 왜 나일까, 왜 계속 나여야 할까, 라는 의구심도 든다. 나보다 경력이 길고 책임이 있고, 굳이 표현하자면 더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도 나에게 자꾸 마이크가 돌아오는 상황이 쉽게 이해되지는 않는다. 어느 선까지 내가 ‘스피커’로서의 역할을 소화해내야 하는지도 판단하기 어렵다. 발언할 사람, 그 중에 믿고 부탁할 사람이 적다는 사실을 나 역시 알고 있지만, 동시에 내가 어떤 상징으로서, 그나마 쉽게 호출할 수 있는 존재로서 소비되고 있다는 점도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 

  무엇보다 같이 할 사람이 없다는 느낌이 외롭고 또 무섭다. 최근에 상담을 받았는데 의사가 “잘 마무리해서 후유증 없게 합시다.” 라는 말을 했다. 언젠가는 끝날 일이니까 큰 상처 남기지 말고 통과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네? 후유증이요?” 라고 반문했더니 ‘사람에 대한 불신’을 예로 들었다. 순간 그거라면 이미 후유증으로 남지 않았나 싶었다. 

  한편으로는 원래 ‘운동’이 다 이런 건가 싶기도 하다. 문득 허공에 대고 외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당장의 변화가 불가능하다면 ‘이것이 옳다’는 생각으로 어디까지 할 수 있나 막막해진다. 때문에 어떻게 지속해왔느냐는 질문에는 딱히 할 말이 없다. 여태까지는 옳다고 생각해서 했으니까. 정말 눈치 없게도 세상이 빨리 바뀔 줄 알았나보다(웃음).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위치에서 끈질기게 싸웠고, 그 기반과 맥락에서 ‘미투’도 나왔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여기서 더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이제야 직면하는 것 같다.  


▲ 남순아


한비 그렇다면 감독님이 바라는 영화계는 어떤 모습인가. 뭔가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이긴 하지만(웃음), 어떤 세상을 꿈꾸는지 혹은 당신이 속한 조직 내에서 어떤 노력이 구체화되길 희망하는지 이야기해주면 좋겠다.


순아 되게 멋있게 말해야 할 것 같은데,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 성폭력 없는 세상! 이렇게 말하면 너무 거창한가(웃음). 음, 바람은 여러 가지다. 잘 들어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조직이 되기를 바란다. 누군가 문제제기를 하면 비난하기보다는 귀 기울이고 살펴보는 태도로 타인을 대했으면 좋겠다. 또 아무리 좋고 옳은 일이어도 소수의 힘으로 굴러가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소위 말하는 대의에 개인이 포섭되거나 희생되는 상황은 원하지 않는다. 


한비 마지막 질문이다. 앞으로 무얼 하고 싶은가. 다음 작품도 궁금하다.


순아 지금은 그냥 작업을 하고 싶다. 동료 영화인들을 보면서 나 역시 연출자로서 어떤 결과물이나 성과를 내야 하는 시기 아닌가, 그러기에만도 정신없이 바쁜 때에 뭘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압박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지속적으로 영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쪽에 가깝다. 영화를 만들고, 그 안에서 평등한 관계를 구축하고,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고 또 받으며 노동하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다음 작업은 아마 단편 극영화가 될 것 같다.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시나리오로 쓰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삶의 방식과 모양은 달라지는데 우리가 계속 친구일 수 있을까, 라는 의문에서 출발한 이야기다.  


한비 작품 소식을 들으면 무척 반가울 것 같다. 어디서든 기다리고 응원하겠다.  


* * *


  인터뷰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비는 멎고 주위는 캄캄했다. 남순아 감독이 말한 몇 개의 문장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건 전부 현재에 대한 말이었지만 어쩐지 너무 늦게야 들은 것만 같았다. 후회와 다행을 오가며 짧은 귀갓길을 구태여 빙 돌아서 걸었다. <잘못된 걸 잘못됐다>는 제목의 노래가 떠올랐다. 소용없는 가정을 곱씹고 괜한 자책에 시달리는 사람, 그러면 안 된다는 것도 그럴수록 힘들어진다는 것도 알지만 달리 어쩔 도리가 없어서 그렇게 시간을 견디는 사람. 그런 사람은 아마도 누군가를 또 무언가를 지키려고 하는 사람일 것이다. 잘못된 걸 잘못됐다고 말하는 사람일 것이다. 근심과 실망, 두려움과 외로움이 멀지 않은 때에 응답받기를, 그의 그런 순간들에는 함께 하는 사람들이 꼭 있기를 바란다. 


잘못된 걸 잘못됐다 / 네가 말하고 왔던 날 / 나는 얘길 듣다 술집에서 / 갑자기 펑펑 울었지 / 나는 너를 걱정했고 / 음식들은 식어갔지 / 걱정하는 내가 싫어 / 나는 펑펑펑 울었지 / 나는 나의 그런 순간들에 / 그러지 못했었지 / 괜한 미움을 살까봐 / 누가 날 노려볼까봐 /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 이상한 단어로 날 부를까봐 / 주먹으로 맞을까봐 / 흉기에다 찔릴까봐 / 집주소를 알아내서 / 문짝을 걷어 찰까봐 / 멋있는 척 하는 걸까봐 / 분위기를 망칠까봐 / 내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온 / 그냥 트라우마일까봐 / 최루액을 맞을까봐 / 벌금이 날아 올까봐 /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 카메라에 찍힐까봐 / 친구들한테 해 갈까봐 / 그 사람이 다칠까봐 / 내가 드러날까봐 / 거짓말하게 될까봐 / 용기내서 할 수 있는 말 / 저는 용기가 없어요 / 빚지고는 안 살 거야 / 다짐해도 손부터 떨려요  ― 신승은, <잘못된 걸 잘못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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