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108호 이슈와 현장 2018.03.14.]

     

    현대판 민주적 자치(自治) 구조를 만들자!
    - 블랙리스트 관련 문화행정 혁신 방안에 관한 제언

     

    김지현(미디어운동 연구자, 독립영화 프로듀서) 

     

     

      블랙리스트 사태에서부터 최근 미투 운동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문화예술계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들을 용감하게 드러내고 사회적으로 이슈화하는 데 있어 그 어떤 분야보다도 맹활약 중이다. 슬프면서도 반가운 일이다. 이는 문화예술계가 한국 사회의 위계적 권력구조나 국가폭력에 의한 인권 침해가 부단히 일어나는 곳이면서 동시에 이에 대해 가장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곳이기도 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먼저 말문을 트고 잘못된 현실을 바꿔내는 것은 문화예술이 담당하는 사회적 역할의 본질과도 직결되는 일일 것이다.

     

      연일 쏟아지는 이슈들 중 블랙리스트 문제는 이슈가 제기된 지 벌써 3년째가 되어간다. 그동안 블랙리스트는 문화예술계 뿐 아니라 방송계, 사법부, 학계, 심지어 일반 인터넷 사용자 등 사회분야 도처를 대상으로 작성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문제의 심각성과 전방위성이 드러난 바 있다. 또, 이 문제가 비단 지난 정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이전 정부부터 치밀하게 이루어져 왔다는 사실도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다. 아니, 민주주의 국가라는 곳에서 어떻게 이런 대규모의 사상탄압이 그렇게 오랫동안 아무런 제재 없이 버젓이 지속될 수 있었을까? 우리가 몸담고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해 새삼 경악하고 돌아보게 된다. 뭐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지 않고서야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과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영화 분야에서 이루어진 블랙리스트 사태만 떼어놓고 살펴보더라도 그 기획에서부터 실행 과정에 관한 작동구조가 매우 거대하고 복잡하다. 청와대를 필두로 국가정보원, 경찰 등과 같은 사찰기관, 문화체육관광부, 영화진흥위원회, 영상물등급위원회 등과 같은 영화행정 기관, 현장 영화인 및 단체, 영화 투자자 및 각종 기업들이 줄줄이 걸쳐있다. 이렇게 볼 때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는 일부 피해자나 가담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며 그 해결에 있어서도 일부의 단기적 노력으로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한국 사회의 병폐에 대한 구조적 인식과 함께, 오늘날 문화행정 자체의 존재 목적과 원칙에 대해 근본적으로 되돌아보고 실제 문화행정의 운영 방식이 이에 부합하는지 세세히 점검해봐야 하는 문제인 것이다. 

     

      사실 블랙리스트 사태의 본질은 매우 간단명료하다. 국가가 행정 구조를 통해 개개인의 자유로운 의사표현과 의견 형성 과정을 통제, 검열하려했다는 점이다. 권력자에 의한 사상 통제와 검열의 문제는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언제나 존재해온 것이지만, 이에 대한 비판과 저항 역시 끊임없이 전개되어왔다. 최근의 블랙리스트 사태가 그러한 역사적 과정의 현대적 버전이라고 할 때 문제는 그 구체적 전개 양상이며 같은 문제가 재발되지 않도록 현대적 버전의 대책을 마련하는 일일 것이다.  

     

      이를 위해선 앞서 말했듯 무엇보다 문화행정의 원칙과 목적에 대한 정확하고 올바른 인식부터 제대로 설정될 필요가 있다. 문화행정은 문화의 발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그 발전을 저해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화 발전인가가 핵심적 관건인데, 이는 해당 분야의 구성원들이 해당 분야의 고유한 가치 체계에 따라 광범위한 소통과정을 통해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합의해 나가야하는 사안이다. 합의의 내용 뿐 아니라 합의의 과정 자체가 민주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뜻이다. 문화예술의 존재의의 자체도 어떻게 보면 문화예술 분야의 고유한 방식과 가치를 통해 해당 사회의 민주적 역량을 강화하는 것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따라서 문화행정의 주요 원칙이자 임무 중 하나는 문화의 발전을 위해 광범위한 공론의 장을 만드는 민주적 협치 구조의 창출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견 너무나 당연한 소리처럼 들리는 이 문화행정의 원칙에 동의한다면 그 다음 문제는 이 원칙을 현실에 적용하는 방법에 대한 것일 것이다. 이 부분은 현실적이면서 구체적인 창의력이 많이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실제로 현실에서 효과를 거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기존 제도가 현재의 민주적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는 구조 또는 수준이라면, 어떻게 고치면 될까? 일단 「블랙리스트 관련 문화예술기관 제도개선 연구」(2017.11~2018.1)(*주1)를 통해 모인 현장 문화예술인들의 의견으로는 기관운영의 독립성 강화, 기관 인력의 전문성 확보, 현장성 확보와 거버넌스, 심의제도와 투명성 제고 등이 주요 과제로 제기되었다.    

     

    주요 과제 내용 [공통과제]

     

    과제

    방안

    비고 []

    기관 운영의

    독립성 강화

    임원진 하향식 인사에서 상향식 구성으로 전환

    : 이사/위원() 구성시 추천제, 호선제 적극 도입

     

    제도적 역할 구분을 통해 수직적 관료체계 극복

    : 기금관리형 준정부기관에서 정책집행형 기구로 변환

     

    재원구조의 문제: 별도의 논의 필요

    예술위:

    국가기구 설립안

     

    영진위:

    임원 정책실명제, 책무성 강화

    기관 인력의

    전문성 확보

    개방형 보직 등 문화예술인 참여로 행정적 관료주의 극복

    : 예술행정 특화된 인력 양성, 상근 임원 및 개방형 직위제 운영

     

    기능주의적 사업 구성 극복, 현장 요구형 사업 체계 마련

    : 기능적 통합적 구조에서 장르별 실질적 편제로 재편

     

    상근 임원 제도 도입을 통해 전문화/분화 모색

    : 임원의 대표성과 책무성 강화, 상근 소위원 제도 도입 등

    예복:

    임무형 이사제 도입

     

    콘진원:

    장르별 지원센터운영(운영위원회)

    현장성 확보와

    거버넌스

    관료주의적 성과관리 지표 지양 사업 구성

    : 현장성 반영을 위한 정책 기능 강화

     

    현장과 소통 구조화를 위한 상시적 플랫폼 기능 강화

    : 소위원회, 지원센터 등을 통해 장르별 거버넌스 실행

     

    민관 협력체계 강화와 기관별 사업 변화 모색

    : 통합적 사업구조 장르 중심 재편, 민간 영역 이관 활성화

    콘진원:

    다수간접지원 확대

     

    출진원:

    세종도서사업 등 이관

    심의제도와

    투명성 제고

    심의위원 풀 구성 제도화 및 현장성에 입각한 심의 기준 마련

    : 장르·영역·분야별로 확대하여 DB화하고 심사위원의 선정 및 심사 기준 마련

     

    심사 과정 및 결과 공개와 이의신청 등 사후제도 마련

    : 전 과정 공개주의를 원칙 적용 및 옴부즈만 제도 운용,

    심사 모니터링 제도 마련

    영진위:

    사업별 특성을 고려한 심사기준 마련, 심사기준 공개

     

    * 자료 출처: 신용목 외, 「블랙리스트 관련 문화예술기관 제도개선 연구」,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2018, 21-22쪽.) 

     


      위에서 보다시피 블랙리스트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과제 또한 그리 간단치만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작동구조가 매우 거대하고 복잡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문화행정에 대한 문화예술인들의 개혁 요구가 그만큼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여기서 제시된 방안들은 1차적 의견일 뿐 실제로 문화행정 현장에서 효과를 거두기엔 많이 부족한 것일 수도 있다. 올해 문화예술 관련 기관들이 실제로 제도개선을 해나가면서 그 빈틈들을 많이 채워나가길 기대해본다. 

     

      이번 블랙리스트 사태가 보여주는 현대판 국가 검열의 특징 중 하나는 그것이 정부 보조금 등 지원구조와 결합하여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문화예술계를 지원하고 진흥해야 하는 곳들이 오히려 문화예술계를 감시하고 탄압, 차별, 배제하는 곳으로 전락해버렸다. 애초의 설립 취지와 180도 바뀌는 이러한 역기능을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신뢰는 한번 쌓기는 어려워도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다. 배신감, 무능감, 무력감, 불신, 불안, 공포 등 문화예술인들이 느꼈을 사회적 자본의 손실을 어떻게 앞으로 만회해나갈 것인가? 문제제기는 이미 충분히 이루어졌다. 이제는 진상조사를 포함하여 해당 기관들이 문제 해결 과정에 적극적이고 진지하게 임하는 모습을 하루빨리 보여주어야 할 때이다. 

     


    * 주1. 「블랙리스트 관련 문화예술기관 제도개선 연구」는 2017년 11월부터 2018년 1월까지 약 3개월 동안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콘텐츠진흥원,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등 5개 문화예술 기관들을 중심으로 각 기관별 블랙리스트 사건 현황과 재발 방지를 위한 운영개선 방안을 연구하였다. 각 분야별 요약과 전문은 문화예술계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홈페이지 자료실에서 볼 수 있다.

     

    *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홈페이지

    https://www.blacklist-free.kr/

     



    글쓴이 김지현

     

    미디액트 정책실과 [ACT!] 편집위원 활동 등을 통해 독립영화, 퍼블릭액세스, 공동체 미디어 등 다양한 대안 미디어 실천들에 대해 눈을 뜬 후 계속해서 관심을 이어나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미디어운동에 관한 연구와 함께 독립영화 프로듀서로도 활동 중이다. 최근에는 「블랙리스트 관련 문화예술기관 제도개선 연구」와 「독립영화ㆍ영화인 실태조사 연구」 등에 참여하고 있다.  

    Posted by ACT! actedi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