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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95호 특집] 방송을 하면서 좋은 일들이 많이 생겼다 (공주, 금강F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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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5. 10. 27.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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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95호 특집 2015.11.15]


공동체라디오 10주년 기념 기획 <내 삶의 라디오>

방송을 하면서 좋은 일들이 많이 생겼다


박정란 (공주, 금강FM)


<공동체라디오 10주년 기념 기획 - 내 삶의 라디오>는 공동체라디오 운영 10주년을 맞아 각 공동체라디오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삶 속에 녹아 있는 공동체라디오의 역사와 의미를 되짚어보고자 기획되었다. 전국 7개 공동체라디오에서 방송을 제작하고 진행하며 라디오를 이끌어온 7개 방송국 8명의 인물이 쓴 에세이를 소개한다.



 방송국으로 향하는 길은 늘 새롭고 향기롭다. 달리는 길 앞에 펼쳐지는 금강과 산천의 모습들이 매일 다르게 다가오고 오늘은 어떤 방송이 어울릴까를 생각하면 행복하기 때문이다. 계절에 따라 금강에서는 물안개가 피어오르기도 하고 햇살좋은 날은 반사되는 은물결이 너무나 아름답다. 때문에 방송을 하며 준비했던 오프닝 멘트를 곧잘 바꾸고는 한다.




▲ 방송실에서


 행복한 마음으로 금강변을 달리며 방송을 한지 벌써 9년. 미소가 떠오른다. 늦은 나이에 막내아들 대학졸업반일 때, 나도 이제 엄마노릇을 거의 했으니 대학을 다녀야겠다고 방송아나운서과에 등록을 했다. 문예창작과를 가려 했으나, 그 과는 취업이 잘 안되니 방송아나운서과로 바뀌어져 입시생을 받고 있었기에 생각지도 않게 입학을 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내게 필요한 글 쓰는데 도움이 될 과목들만 열심히 듣겠다는 생각이었으나, 각 과목들마다 흥미진진했다. 아나운싱, 더빙, 나레이션 등 열심히 젊은이들 곁에서 공부하며 이다음에 실버타운에 가서 방송을 하면 될 것 같다는 반농담의 말을 주변 사람들에게 하고는 했었는데 졸업을 앞두고 금강FM방송에 음악프로그램을 진행해보지 않겠냐는 교수님의 권유를 받게 되었다. 지역방송이니 서툴러도 괜찮다고 적극 추천하는 바람에 용기를 갖고 50중반의 아줌마가 방송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 나이에 방송을 해서 내 목소리가 전파를 타고 다닌다니... 부끄럽기 그지없었으나 한편 자랑스럽기도 했다. 열심히 멘트를 쓰고, 음악을 고르고 내 방송을 모니터하느라 듣고 또 듣고, 덕택에 많은 노래를 들으며 행복한 생활이 시작되었다.


 하나 둘 애청자가 늘어나서 그들과 마음을 나누는 것 또한 즐거웠다. 그 중 마음 아픈 한 분이 생각난다. 부모님 모시는 일로 동서 간에 마음이 많이 불편한 주부였는데 우리 방송을 열심히 듣고 속상한 이야기들을 곧잘 홈피에 올려 위로받고는 했었다.


 그 분은 매주 소식을 올리는 분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소식이 끊겼다. 어쩐 일일까? 궁금하여 전화를 걸어봤더니 갑자기 이상이 생겨 병원을 가게 되었는데 암 진단이 나왔다는 것이다. 좀 지나 병문안차 식사도 함께 했었는데 그 후 얼마간 투병생활을 하다 끝내 못 견디고 그분은 먼 나라로 떠나야만 했다. 따님에게 투병생활 중에도 어머니가 방송을 통해 많이 위로를 받았고, 병상에서도 우리 방송을 종종 들었다며 고맙다는 긴 편지를 받기도 했다.


 하루는 택시를 이용할 일이 있었는데 내 목소리가 라디오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기사님! 이 방송 제가 한 거예요. 앞으로도 계속 잘 들어주세요."

 라고 하니 뒤돌아보시며

 "아이구, 그래요. 오늘 귀한 분을 모셨네요. 늘 잘 듣고 있어요."

 하며 웃는 게 아닌가. 아! 방송하는 사람들을 괜찮은 사람으로 보는구나 하고 잠시 우쭐해지기도 했다.


 단골 애청자 중에 한 분은 70을 훌쩍 넘긴 분이다. 수예점을 오래 경영하셨던 분인데 꽃을 사랑하고 요리도 좋아하고 못하는 게 없는 팔방미인 할머니다. 

 "나랑 잘 아는 동생이 하는 방송이야. 참 잘하지.. 다들 들어. 우리들이 좋아하는 노래들만 나오는 방송이야."라고 친구들만 오면 들으라고 컴퓨터를 켜서 다시듣기로 들려주시는 멋있는 애청자. 좋은 일 한다고 불러 맛있는 밥도 해주신 멋진 분이다. 그 연세에도 인터넷에 접속해 홈페이지에 종종 글을 올리고 음악을 청해주시니 감사하고 늘 반갑다.


 방송을 하면서 좋은 일들이 많이 생겼다. 그동안 썼던 글들을 모아 수필로 신인상도 받아 등단을 했고, 충남문학상 신인상을 받기도 했으며, 금강여성문학동인 회장과 한국문인협회 공주지부 지부장을 지내기도 했는데, 80여명의 회원들이 있는 문인협회의 회장이란 쉬운 게 아니다. 그것도 여성 최초의 회장이니 내게는 큰 영광이고 기쁨이다. 


 또한 방송 원고에 매번 좋은 시 한편을 올려 낭독한 경험으로 2년 전, 백제시낭송가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여해 낭송가 인증서도 받았다. 하여, 공주시의 행사에 곧잘 불려져 행사 시를 낭독하거나 시낭송을 하기도 한다. KTX역 개통, 공산성과 송산리 고분군 유네스코 등재 기원 달리기 대회, 유네스코 등재 기념식 등 큰 행사에 시 낭독을 했으니 많은 칭송을 받음과 함께 내게는 큰 기쁨이다.



 방송이야 틈틈이 원고를 썼다가 일주일에 하루 방송국에 나가 녹음을 하니 별로 부담되지는 않는다. 그 외 시간들은 이주민 여성 한글지도도 하고 요즘은 공주풀꽃문학관에 나가 봉사도 한다. 방문객들이 오면 문학관 안내와 단체 방문객들에게는 공주문화원장인 나태주 시인의 시를 낭송해 주기도 한다.


 며칠 전에는 공주 시낭송 발표회가 있었다. 나태주 시인의 <빈손의 노래>를 낭송했다. 이제는 긴 시를 외우기란 힘이 들지만 아마도 치매는 오지 않을거야... 라고 웃으며 시를 외운다. 발표회에 오신 분들에게 칭송을 받으니 그 또한 고맙고 감사하다. 

 이렇게 활동할 수 있는 이만큼의 건강도 감사하고, 이제는 아들 둘도 결혼시켜 지금은 손주가 셋. 곧 넷이 될 예정이니 감사할 일이 너무 많다.

 

 "내 목소리 할머니 소리라 듣기 싫지 않나요? 이제 그만 둬야 되겠잖아?"

 라며 방송국 여직원들에게 그만 둬야 되지 않겠냐 물어보면 

 "전혀 안그래요. 걱정 말고 오래 해주세요."

 라는 답에 나는 또 웃으며 방송국을 나온다. 

 오는 길 양희은씨의 목소리가 라디오에서 들린다. 아! 그녀는 나랑 동갑인데. 아직 목소리 듣기 괜찮잖아. 나도 좀 더 해도 되겠지? 할머니 방송인은 오늘도 스스로 위로하며 푸르른 하늘을 우러른다. 

 이다음 실버타운에 가서도 내가 방송을 하게 될까? 생각에 머물면 입가에 미소가 가득하다. □


* 금강FM : http://www.kk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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