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87호 이슈와 현장 2014. 1. 27]
나의 목소리가 들려?
- 제3회 세계공동체라디오(AMARC) 아시아 태평양 서울대회를 다녀와서
장주원(전주시민미디어센터 영시미)
0. 들어가기
지난 2013년 12월 2일부터 5일까지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제3회 세계공동체라디오(AMARC) 아시아 태평양 서울대회’가 열렸다. 이름이 참 길다. 그래서 다들 ‘아막 서울대회’라고 부른다. 이 컨퍼런스에서는 “공동체라디오의 권리와 인식 등 17개의 다양한 주제로 진행되고 해외 19개국 90여명과 국내 참가자 210여 명이 함께 할 예정이며 국내의 경우 공동체라디오방송국 7개사 및 전국의 영상미디어센터 28개, 그리고 학계로는 한국언론정보학회 등이 참가한다.”는 언론의 보도자료 내용처럼 여러 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왔고 다양한 이야기를 했다. ‘대체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서울로 모인 걸까?’
▲ 제3회 세계공동체라디오 아시아 태평양 서울대회 첫째 날 전체토론
1. 대체 ‘아막’이 뭐야?
‘아막’이란 말을 처음 들었을 때가 기억난다. 약 3년 전쯤 친한 미디어활동가 분이 ‘아막’의 주요자리를 맡게 되었다고 해서 ‘아막이 뭐지? 꼬막 사촌? 먹는 모임인가?’라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 모르니 어쩌겠는가? 떠오르는 건 꼬막뿐인데... 그래서 ‘아막’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아직 한글을 깨치지 못한 어린 아이가 된 느낌이었다.
이전에도 SNS를 통해 “(제주)강정을 살리자.”는 활동가 분의 말에 “(닭)강정이 먹고 싶으시냐?”고 답하던 나였다. 그 당시 사회문제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 나에게 ‘강정’이란 단어는 제주의 강정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해군기지 반대운동보다 집 앞의 치킨가게에서 방금 튀긴 닭강정 이미지를 떠오르게 했다.
그러다 이제 막 공동체라디오를 시작한 내가 아막 서울대회에 왔다. 그러니 내게 아막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글쎄. 아직도, 잘은, 모르겠다. 할 말 있는 사람들이 말할게 있으니까 모였겠지?’
2. 영어도 자꾸 들으면 들려
이번 대회의 소감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영어 울렁증’이라고 말하고 싶다. 역시 세계 공통어는 ‘영어’였다. 그리고 나는 ‘영어 울렁증’에 현기증을 내면서도 끝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대회일정에 참여했다. 아는 단어 몇 개만 듣고 전부 알아듣는 척 고개를 끄덕이고 미소 짓는 연기센스(?)와 번역기를 통해 나오는 감정 없는 통역사의 말에 의지해 그나마 조금은 이해하며 스텝처럼 보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제3회 세계공동체라디오 아시아 태평양 서울대회 둘째날 전체회의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영어라는 공통의 언어로 전달해주듯 공동체라디오도 세계 곳곳에서 그들만의 이야기를 모두의 이야기로 전해주고 있었다. 처음엔 ‘뭐 하러 저런 얘길 라디오로 해? 얼마나 듣겠어?’ 라고 생각했지만 그 이야기는 사람의 ‘권리’와 ‘이념’ 그리고 ‘생존’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각각의 공동체 안에서 그 이야기는 서로의 공동체성을 강화하고 공동체가 아닌 사람들과도 소통할 수 있는 소중한 목소리로 세계 곳곳에서 전파를 타고 있고, 또 많은 사람들이 듣고 있었다.
인터넷이 완전히 개방되지 않은 중국, 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부탄, 재난재해가 빈번히 일어나는 일본 등 나라마다의 상황과 환경, 경험에 따라 다양한 이야기가 세계 여기저기에서 공동체라디오를 이끌어가고 있었다.
영어가 서툴러서 처음엔 잘 알아듣지 못하다가 일정이 거의 끝날 때쯤엔 조금씩 귀가 열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새까맣게 어두웠던 내 생각도 밝은 무언가가 차기 시작했다. ‘근데 여기서 질문 하나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요?’
3. 나의 목소리가 들려?
우리나라도 공동체라디오 방송을 하고 있다. 현재 공식적인 주파수 허가를 받아 운영하고 있는 방송국은 전국에 7곳이 있고, 그 외에는 전국의 미디어센터에서 주파수가 아닌 인터넷 기반의 플랫폼을 이용해 방송을 하고 있다. 외국의 공동체라디오 방송국의 수와 비교하면 턱없이 적은 수지만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등 특수한 계층부터 일반시민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운영하는 공동체라디오 방송국을 운영하고 있다.
이번 아막 서울대회에서는 마포FM의 레주파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의 발표가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레즈비언으로 산다는 것, 성소수자로 산다는 것,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과 편견으로 음지에서 올라오지 못한 목소리들을 전국에서 모아 그들의 권리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나에게 레주파의 발표는 큰 충격과 도전을 주었다. 전국에 공동체라디오 방송국이 몇 개 있고 어렵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지금까지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진 못했었다. 우리나라에도 권리를 잃은 사람들이 무수히 많고, 할 얘기가 있는 사람들이 수두룩하게 존재할텐데 그것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목소리를 내고 있는 사람이 있지만 듣지 못하는 건 왜일까? 주파수를 이용한 공동체라디오 방송국이 없어서? 방송 프로그램이 없어서? 방송할 사람이 없어서? 다 맞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공동체를 위한 방송국도 별로 없고, 방송 프로그램도 별로 없고, 방송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하지만 더 중요한건, 있어도 듣지 않으려는 우리의 마음이 아닐까싶다.
주위를 둘러보면 수많은 이야기들이 들어달라고 아우성이다. 그중에 정말 들어야할 이야기도 있고 듣지 않아도 될 이야기도 있다. 나는 지금 무슨 이야기를 듣고 있는지 생각해보자. □
* 주1: 뉴시스 기사참조
[필자소개] 장주원(전주시민미디어센터 영시미)
- 군 제대 후 2010년부터 익산에서 미디어교육 교사활동을 하다가, 작년 5월부터 전주로 자리를 옮겨 공동체미디어 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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