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87호 이슈와 현장 2014.01.27]
당신들의 주파수
- 지상파 vs 통신사의 황금주파수 700Mhz 대역 재분배 논란에 부쳐
개미(ACT!편집위원회)
최근 지상파 방송국과 주요 통신사들 사이의 700Mhz 주파수 배정 논란이 다시 떠올랐다. 700Mhz 가 뭐 길래? 700Mhz 주파수 대역은 다른 대역대보다 신호전파의 회절성이 강하고 신호감쇠(signal attenuation)가 적으며 신호전파의 효율성이 뛰어나 라디오, TV, 이동통신 등 방송․통신 수요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주1) 그런데 갑자기 왜 이 700Mhz 대역을 재배치하겠다는 것일까?
지난 2012년 12월 31일자로 국내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 전환이 완료됐다. 방송 디지털 전환은 주파수 압축 기술의 발달로 가능해진 것인데, 이에 따라 기존에 지상파 방송에서 사용하던 700Mhz 대역 주파수가 여유대역으로 남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 여유대역대의 일부를 통신 주파수로 전환하고, 남은 부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가지고 지상파 방송사와 이동통신사의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 DTV 채널 전환 이후 지상파 채널/주파수 배치도 (출처: 디지털타임스)
양 측의 주장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통신사들은 스마트폰 도입 이후 모바일 데이터 트래픽의 폭증으로 안정적인 서비스를 위해 추가 주파수 확보가 시급하며, 이것이 더욱 주파수를 경제적이고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안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지상파 방송사들은 대출력을 사용하는 지상파 방송과 소출력을 사용하는 이동통신이 같은 대역에 존재하면 상호 간섭과 혼신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며, 디지털전환 이후 DTV(Digital TV) 난시청지역 해소와 향후 UHDTV(*주2) 및 초고화질 3DTV와 HD급-MMS방송(*주3)을 위하여 별도의 예비 주파수 할당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주4)
▲ SD, HD 및 UHD 해상도 비교
한국은 주파수를 정부 중심의 명령과 통제에 의해 관리하고 있다. 그 정책은 바로 주차수의 경제적 가치에 기반 한 ‘대가할당제도’와 ‘주파수 경매제’, 그리고 ‘주파수 임대’ 등의 시장 기반 전파관리 정책이다. ‘주파수 할당’이란 특정 주파수를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특정인에게 주는 것을 말하는데(전파법 제 2조 1항 3호),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비교심사에 의한 할당을 주로 실시하다가 최근 전파법 개정 이후 ‘주파수 경매제’를 통해 이동통신사업자들에게 주파수가 할당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장 메커니즘에 의한 주파수 할당이 시작되었다.(*주5)
한 마디로 통신사들은 경매를 통해 정부로부터 주파수를 낙찰 받는다는 것이다. 지난해 8월 30일 실시된 경매에서 SK텔레콤과 KT, LG-U+는 각각 1조 500억~4700억 원을 들여 LTE망 구축용 주파수 사용권을 구매했다. 하지만 통신사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700Mhz 대역대를 추가로 입찰, 확보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이에 비해 지상파 방송사 주파수는 사용권 경매를 통하지 않고 무상으로 분배되어 있다. 통신사나 유료 케이블사, 위성방송사과는 달리 보편적이고 공공적인 서비스를 지향하는 취지의 지상파 방송이다 보니 이는 당연한 것이지만, 최근 들어 700Mhz 논쟁 때문인지 이마저도 공격받고 있다. 태국, 영국 등 해외에서는 지상파 주파수도 정부가 사용료를 받는데, 한국 지상파 3사에서는 아무 대가 없이 주파수를 공짜로 사용하고 있다며, 주파수를 더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사용하자는 주장을 펴는 것이다.(*주6)
이러한 주장은 사실 700Mhz 대역 재분배 논쟁에서 통신사 측의 주장을 지지하는 내용이다. 쉽게 말해 “공짜로 방송사에 주파수를 내어주는 것보다는, 우리가 비싸게 주고 사서 수익을 내면 정부 재정에도, 사회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니 정부에 훨씬 이익이 아니냐”는 주장이다. 물론 ‘창조경제’를 내세우고 있는 박근혜 정부에서도 이 주장에 좀 더 큰 힘을 실어주고 있는 눈치라, 지상파 방송사 측에서는 꽤 큰 위기감을 표시하고 있다. 실제로 정부가 지난해 11월 유료방송 주도의 UHD방송 상용화를 포함한 ‘방송산업발전 종합계획’을 발표했고, 이는 지상파 방송사에서 주장하는 700Mhz 주파수 확보 근거인 ‘지상파 우선 UHD 방송 도입’과는 상반되는 정책이었다. 심지어 미래창조과학부에서 기존 지상파 방송사에서 사용해오던 주파수에 대해서도 사용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계획까지 발표했다. 지상파 방송사는 이것이 ‘주파수 민영화’라며 강하게 반발하는 한 편, 주파수 확보 논쟁에서 지상파 방송의 공공성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이어져 온 주파수 논란에서 ‘공공성’을 언급할 때면, 지상파 방송사와 이동통신사의 서비스, 두 가지 중 무엇이 나은지 비교하는 데에만 그치는 것은 의아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방송의 공공성을 위해 보장되어야 한다고 늘 제기됐던 ‘퍼블릭액세스 채널’ 및 ‘독립제작물의 지상파 방송 접근권’에 대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언급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퍼블릭액세스’라는 개념은 사실 누구에게나 익숙하게 다가오는 단어는 아니다. 풀어서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보통은 지상파 방송사에서 평일 오전쯤에 주로 나오는 기존 프로그램 시청자 평가 및 감상을 전하는 프로그램이 떠오르는 정도다. 하지만 퍼블릭액세스 채널의 범위는 생각보다 다양하게 볼 수 있다. 라디오 쪽에서는 최근 서울시에서 마을미디어 사업을 지원하면서 지역주민들이 직접 만들고 함께 듣는 성북마을방송 와보숑, 관악FM, 도봉N 등 10여개에 달하는 일종의 퍼블릭액세스 채널이 나름 활기를 띄고 있다. 반면 국내 지상파 방송에서는 특정 채널을 퍼블릭액세스 전용으로 둔 적도 없고, 프로그램의 차원에서도 KBS의 <열린채널> 정도를 들 수 있을 뿐이다. 국내 케이블 채널로는 거의 유일한 시청자제작 전문 채널 RTV가 있지만, 2005년 RTV가 모든 지역 케이블 TV가 의무 전송해야 하는 공익채널에서 배제되고, 2009년부터는 공익채널에 대한 정부 지원금마저 전면 중단되어 이 RTV조차 지역 케이블 한켠에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정도다.
해외에서는 퍼블릭액세스가 지역 공동체 방송국, 케이블TV 등을 중심으로 시작된 경우가 많고, 점차 확산되는 추세다. 최근 15년에 걸쳐 남미에서는 미디어 접근권에 있어서 큰 변화가 있었다. 이전까지 소수 가문이나 대형 언론사에 집중되어 있었던 언론 권력을 정부가 분산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우루과이 등 곳곳에서 퍼블릭액세스 및 공동체 방송국을 법적,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시스템이 만들려는 시도를 정부 차원에서 진행했다. 이들 미디어 개혁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1/3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아르헨티라를 필두로 볼리비아와 우루과이에서도 이와 같은 방식을 차용했는데, 바로 주파수의 33%는 개인방송국, 33%는 퍼블릭액세스, 33-34%는 비영리/공동체 방송국에 할당하도록 주파수를 재분배한 것이다. 이들의 개혁 과정에서도 많은 반발이 있었지만, 그 반발은 대체로 기존에 주파수를 독점하고 있던 대형 언론사와 그 지지자들만의 반응이었고, 대부분의 풀뿌리 네트워크와 지역 언론에서는 크게 환영했다. 더불어 이들 미디어 개정안에는 단순히 주파수의 수치적 할당 뿐 아니라 인종차별, 성차별, 소외계층 차별 등을 금지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정치적 민주화를 갓 이루면서 이전의 독점적인 방송 행태를 개혁해나가는 남미의 모델을 현재의 한국에 적용시키기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주파수 분배 방식을 비롯, 다양한 제도를 차용해오고 있는 미국의 사례를 보자.
미국의 퍼블릭액세스 방송은 PEG(Public, Education, Government)모델로 요약할 수 있다. PEG채널은 지역 케이블TV 사업자가 한 개 이상의 비상업적 채널을 유지해야 한다는 규정에 힘입어 미 전역에 약 1800여개가 존재한다. 1970년대에 케이블TV가 광범위하게 소개되기 시작했을 당시, 연방통신위원회(FCC)는 1972년 케이블 운영자들이 ‘공공접근(퍼블릭액세스)’을 위한 채널을 공급하도록 승인했다. 이에 따라 100개에 이르는 케이블 채널들은 PUBLIC, EDUCATION, GOVERNMENT 채널을 송출하게 됐다. 선착순 원칙(first-come, first-served)에 따라 음란물과 명예훼손 우려가 있는 프로그램을 제외하고는 모든 프로그램을 방송할 수 있는 비상업채널로서, 주류미디어에서 소외된 개인과 그룹들에게 이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 퍼블릭액세스의 방송유형은 액세스 방송이 독자적인 채널의 형태로 존재하도록 하는 ‘독립채널모델’이다. 미국에서는 지역시민사회단체와 영상운동단체, 그리고 때로는 지방자치단체가 공동으로 퍼블릭액세스 채널의 운영주체를 구성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주체가 편성과 운영에 관한 모든 결정권을 행사한다. 미국 퍼블랙액세스채널에는 다섯가지 기본 규칙이 있는데, 1.액세스는 무차별 선착순 원칙을 고수한다, 2.상업적 상품·서비스의 판매(공직후보자를 위한 광고 포함) 원칙에 따라야 한다, 3.복권정보방송을 할 수 없다, 4.음란하거나 외설스러운 방송은 금지한다, 5.액세스 시간을 요구하는 모든 개인과 집단의 이름과 주소와 완전한 기록에 대한 공공열람을 허용해야 한다(보존기간 2년)는 것이다. 이러한 조치들에도 불구하고 개선점이 다양하게 발견되고 있기는 하지만, 일단 미국에서는 법적으로 “미국 케이블TV 사업자는 최소한 한 개 이상의 비상업적 채널을 유지해야 하며, 하나 이상의 퍼블릭 액세스 채널을 항상 무료로 개방해야 한다. 또한 케이블TV 액세스 프로그램 제작에 필요한 최소한의 장비와 시설이 공적으로 이용될 수 있도록 유지해야 하며, 케이블TV 사업자는 프로그램 내용에 대하여 어떠한 통제도 가할 수 없다”(*주7)는 것이 보장되어 있다는 점은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한국의 퍼블릭액세스 제도는 지역 케이블 방송 공급자가 비상업적 채널을 하나 이상 두도록 하고는 있지만, 그것이 퍼블릭액세스를 반드시 허용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렇다보니 대부분의 국내 케이블SO에서는 퍼블릭액세스 채널이 들어갈 수 있는 자리를 예능이나 드라마 재방송만 하는 채널로 채우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에서도 퍼블릭액세스는 일부 프로그램으로 두는 정도에 그치고 있고, 그 프로그램조차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으며 검열 역시 별다른 기준 없이 각 방송사 재량에 맡겨져 있다.
일반 시민들뿐만 아니라 전문적으로 방송, 영상물 제작을 업으로 삼고 있는 전문 독립제작자들마저도 별도의 채널, 프로그램, 소통 통로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몇 개 되지 않는 통로로 시민PD(퍼블릭액세스에서 활동하는 시민들)들과 독립제작자들이 혼재되어 몰리는데, 틀어줄 수 있는 곳은 없고, 온라인에만 영상 콘텐츠가 넘쳐난다. 시민들이 직접 만들어 공감도도 높고, 다양해진 미디어 교육으로 인해 퀄리티도 좋은 다양한 콘텐츠가 있어도 보여줄 통로가 변변치 못한 것이다. 그런데 방송사에서 ‘시청자 제작 프로그램을 유지하기에는 콘텐츠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물론 꾸준히 시청자 제작 콘텐츠를 발굴하고 지원하려면 방송사 측에서 엄청난 고민과 역량을 투여해야 가능하겠지만, 어느 때보다도 ‘공공성’을 내세우고 있는 지금이 바로 지상파 방송사에서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적기가 아닐까? 주파수의 주인인 국민, 시청자들이 직접 제작에 참여하는 방송보다 더 공공성이 출중한 주파수 활용 방안이 어디 또 있을까.
주파수에 대한 배분 권한을 정부가 갖는 것은 주파수가 공공재라는 전제에 의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700Mhz 주파수 분배 논의에서 퍼블릭액세스에 대한 고민 역시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 현재 비어 있는 700Mhz 주파수를 가장 공공의 이익에 맞게 사용하는 형태는, 수용자와 제작자가 분리되지 않고, 주류 미디어에서 소외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국민 모두의 퍼블릭액세스 채널은 아닐까 한다. □
* 참고자료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 전환 완료 이후 700Mhz 대역 주파수 재배치에 대한 이용자 인식 연구》 2012. 11. 이영주, 박성규, 최성진
《지역케이블SO의 퍼블릭액세스 채널 – 가능과 효용성》 -박선미, 김은희, 김지현, 이진규
《700Mhz 대역의 공익적 활용방향 – 차세대방송 서비스를 중심으로》 2012. 4. -박상호
[Third World Network] South America: A panorama of media democratization
* 각주
*주1.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 전환 완료 이후 700Mhz 대역 주파수 재배치에 대한 이용자 인식 연구. 이영주, 박성규, 최성진 (방송공학회논문지 제17권 제6호, 2012, 11), 출처:
http://dx.doi.org/10.5909/JBE.2012.17.6.1080
*주2.
초고선명 텔레비전(Ultra High Definition Television, UHDTV, Ultra HDTV) 또는 초고정밀 영상 시스템(Ultra High Definition Video (UHDV) 또는 슈퍼 하이비전(Super Hi-Vision, SHV)은 일본 NHK 방송 기술 연구소가 개발하고 있는 기술이다. 7680x4320 화소의 디스플레이 해상도를 말하며, 화소는 약 3300만 화소이다. 일본은 2015년 초고선명 기술을 시험 방송하여 2020년까지 상용화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주3.
지상파 멀티 모드 서비스(MMS : Multi-Mode Service, 주파수 1개 대역으로 여러 채널을 전송하는 방송 방식)는 디지털 정보의 압축 기술이 발달하면서 남는 주파수 대역에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한 채널의 신호전송 용량인 19.39Mbps에서 기존에 보내던 HD방송 외에 또 다른 HD방송을 송출하거나, HD·SD·오디오·데이터 등 다양한 형태의 19.39Mbps에서 기존에 보내던 HD방송 외에 또 다른 HD방송을 송출하거나, HD·SD·오디오·데이터 등 다양한 형태의 서비스를 보낼 수 있어 디지털 방송의 장점으로 꼽힌다. 그러나 2006년 시험방송에서 나타난 기술적 미비와 유료방송의 견제로 MMS 도입은 계속 미뤄져 왔다.
*주4.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 전환 완료 이후 700Mhz 대역 주파수 재배치에 대한 이용자 인식 연구. 이영주, 박성규, 최성진 (방송공학회논문지 제17권 제6호, 2012, 11), 출처:
http://dx.doi.org/10.5909/JBE.2012.17.6.1080
*주5.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 전환 완료 이후 700Mhz 대역 주파수 재배치에 대한 이용자 인식 연구. 이영주, 박성규, 최성진 (방송공학회논문지 제17권 제6호, 2012, 11), 출처:
http://dx.doi.org/10.5909/JBE.2012.17.6.1080
*주6.
*주7.
《지역케이블SO의 퍼블릭액세스 채널 – 가능과 효용성, 박선미 外,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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