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110호 미디어인터내셔널 2018.07.31.]


    독립다큐멘터리와 공영방송이 손잡는 방법
    미국 공영방송 PBS 프로그램 <P.O.V(Point of View)> 사례로 보는 독립 다큐멘터리 제작 배급 환경


    권세미(미디액트 마을공동체미디어실원)



    <P.O.V(Point of View)>는 1988년부터 400개가 넘는 독립 다큐멘터리를를 텔레비전에 소개한 미국 공영방송 PBS의 프로그램이다. 본 글은 <POV>의 20년을 정리한 인터뷰 자료를 참조했다. (The view from the top - P.O.V leaders on the struggle to create truly public media(2007), Barbara abrash)


    공영방송과 P.O.V

    1988년 미국 공영방송인 PBS는 <P.O.V(Point of View)>라는 10주짜리 독립다큐멘터리 방영 프로그램을 내보낸다. 방영된 작품들은 주로 페미니즘, 시민권, 반전운동 등 사회적 이슈를 개인적 목소리로 이야기한 1인칭 다큐멘터리로, 안정적인 콘텐츠를 선호하고 논란을 피하려는 성향이 강한 공영방송으로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P.O.V>를 기획한 첫 번째 책임프로듀서 마크 와이즈는 스스로가 미디어활동가이자 독립제작자였다. 그는 60년대 베트남 반전운동을 지켜보며 소외된 목소리를 전하는 독립다큐멘터리의 잠재력을 발견했고, 좁은 배급로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방송사들을 설득하여 전국적으로 시청자를 보유한 PBS 공영방송을 통해 독립다큐멘터리 방영 프로그램을 제작하게 된다.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까지는 미국 다큐멘터리의 황금기였다. 미국 사회상에 대한 통렬하고 솔직한 관점의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고 대학이나 공동체상영, 영화제를 통해 대중에게 소개되었다. 이후 독립제작자들의 꾸준한 노력으로 80년대 ITVS를 비롯한 제작 지원이 늘어나게 되면서 독립다큐멘터리는 양적 질적으로 더욱 성장하게 된다.

    ▲ POV의 로고. P.O.V는 36번의 EMMY, 20번의 피바디상을 수상하고

    프로그램당 250만 명의 누적 관객수를 보유하고 있다.


    ▲ P.O.V의 31번째 시즌이 현재 방영중이다.

    홈페이지에서 방영 중인 다큐멘터리 정보와 클립을 볼 수 있다. (pbs.org/pov)

    P.O.V의 시도 1 : 공영방송과 독립영화제작자의 중재자가 되다. 그러나 이런 성장에도 불구하고 대중 매체에서 독립다큐멘터리를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독립제작자들은 관료주의적인 공영방송을 상대하기 힘들어했고, 공영방송은 논쟁이 될 만한 작품은 어떻게든 피하려고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마크 와이즈를 필두로 한 P.O.V는 방송국과 제작자 사이에 중재자를 자처하며 양측의 신뢰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다. 제작자와 방송국 측이 모두 참여하는 편집위원회에서 다큐멘터리를 선정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한편, 제작자들에게 정당한 방영료를 지급하고 작품 제작과 배급을 지원했다. 아프리카계 미국 동성애자의 경험을 다룬 <Tongue Untied>(1991)와 같은 논쟁적인 작품이 방영될 때면 보수적인 단체들의 공격으로 방영이 취소될 뻔한 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P.O.V는 그 때마다 방송사와 언론을 적극적으로 설득하면서 위기를 극복해나갔고, 공영방송이 무엇을 말해야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며 표현의 자유와 공영미디어의 역할에 대한 의미 있는 논쟁을 촉발했다. P.O.V를 통해 방영된 작품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관점의 개인적인 스토리텔링은 새로운 이야기에 목말랐던 언론과 비평계에 좋은 반응을 얻어 이후 P.O.V 시리즈가 계속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었다.

    ▲ <Tongue untied>(1991), Malon Riggs.

    아프리카계 미국인 동성애자들의 에세이로 P.O.V 상영 당시

    보수단체들이 지원금을 회수하려고 의회를 소집하기도 했다.


    P.O.V의 시도 2 : 다양한 관객참여 아웃리치 프로그램 개발

    마크 와이즈를 비롯한 P.O.V의 책임프로듀서들은 독립다큐멘터리가 대중 토론과 시민 참여의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고, 방송과 연계된 토론 및 다양한 시민 참여형 프로그램(*주1)들을 발전시켜나갔다. 그동안 공영방송에서 볼 수 없었던 개인적이고 논쟁적인 작품들이 방영되면서 작품을 중심으로 해당 이슈에 대한 사회적 담론이 확대되기도 했다.


    ▲ <Talking back> 프로그램. 다큐멘터리를 본 시청자들의 영상편지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으로 영화의 관객의 참여와 토론을 이끌어내는 데 기여했다.

    ▲ POV에서 제공하는 공동체 상영 가이드 자료



      이런 논의들은 사회적 캠페인으로 이어졌는데, 다큐멘터리에서 예술적인 표현일 뿐만 아니라 효과적인 사회적 도구로 인식하기 시작한 포드 재단 및 어바인 재단의 후원을 통해 다양한 단체와 캠페인이 만들어졌다. 한 예로 에이즈를 가진 두 남자의 삶을 담은 <SilverLake Life>가 P.O.V에서 방영 후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포드 재단은 에이즈에 대한 편견에 대항하는 “Tune- In” 캠페인에 26,000달러를 후원하기도 했다. 나아가 P.O.V는 비영리 기관들 및 학교, 도서관, 풀뿌리 공동체에 다큐멘터리를 활용해 관객과 소통할 수 있도록 미디어 훈련을 제공하는 등 방송국-지역 커뮤니티간의 파트너쉽을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계속해나갔다.



     P.O.V의 시도 3 : 제작, 유통, 관객참여의 시스템 구축


      90년대 후반 디지털 기술 발전과 온라인 서비스의 보급으로 미국은 멀티플랫폼 미디어 환경으로 진입하게 된다. 미디어 기술을 통해서 전혀 다른 방식의 미디어 제작과 배급이 가능해지게 되면서, P.O.V는 독립다큐멘터리의 제작, 배급, 관객참여 부분의 전 과정에서 규모를 확장하며 시스템을 구축해나간다. 

      우선 안정적인 다큐멘터리 제작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제작자들에게 피칭, 마케팅, 제작에 필요한 안내와 지원을 제공하고, 영화제작 기반을 안정화하기 위해 공동제작 비율을 늘려나갔다. 그 결과 2000년대 중반에는 전체 방영된 다큐멘터리의 절반 정도를 공동 제작할 수 있었다. 또한 상업방송 및 넷플릭스를 비롯한 온라인 플랫폼과 협력관계를 만들어나가며 폭발적으로 배급/유통의 통로를 넓혀나갔다. 

      P.O.V는 공공 온라인 미디어 영역에서도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2003년에는 영화마다 개별적인 온라인페이지를 만들어 비디오 스트리밍, 영화제작자 인터뷰, 이야기 업데이트, 교육 자료와 지도자 가이드를 제공하여 방영한 영화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관객을 만날 수 있도록 지원하였다. 이후 공영방송 시리즈에 웹페이지를 제작하고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일종의 관례가 되기도 했다. 


     ▲ POV 홈페이지 중 독립다큐멘터리 제작자를 위한 안내 페이지. 

    제작자들에게 피칭, 마케팅, 제작에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고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자원들을 소개하고 있다. 



      P.O.V, 공공 미디어의 존재이유에 질문을 던지다. 


      1988년 이후 P.O.V는 30년간 500개 이상의 독립다큐멘터리를 공공 텔레비전에 소개하는 역할을 했다. 이 다큐멘터리들을 통해 대중들은 상업매체에 거의 나오지 않는 다양한 주제와 개인적인 목소리를 접할 수 있었다. POV의 활동에서 주목할 것은 다큐멘터리 쇼케이스를 넘어서서 다큐멘터리 제작환경을 개선하고, 다양한 관객 참여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다큐멘터리가 담고 있는 인종, 계급 등의 사회적 이슈를 대중 논의로 확장시켰다는 점이다. 또한 실험적인 작품들을 전국적인 TV프로그램으로 방영하여 공영방송의 경계를 확장시키면서 민주사회에서 공공미디어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고 논쟁을 이끌어 나갔다. 



    한국 공영방송과 독립다큐멘터리  


      한국 독립다큐멘터리와 공영방송의 관계는 어떨까. 얼마 전 고(故) 박환성·김광일 독립 PD 1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고(故) 박환성·김광일 PD는 EBS 다큐프라임 ‘야수와 방주’ 촬영을 하던 중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코디네이터도 둘 수 없는 환경에서 운전하다가 교통사고로 지난해 7월 사망했다.  방송사의 갑질 논란과 불공정 계약 문제를 비롯해 외주 다큐제작의 열악한 현실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외주 제작 시스템에서 벗어나서 적극적이고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계속되고 있다. 


     故박환성·김광일 독립PD 사망사건과 관련해 

    독립PD협회는 EBS책임자를 고소했다. (연합뉴스, 2018.05.02.) 



      현재 KBS에도 독립영화관이라는 독립다큐멘터리를 방영하는 프로그램이 있지만, 심야에 방영되는데다가 다시 보기가 불가해서 시청자들이 접근하기 어렵다. 또한 다큐멘터리를 활용한 교육이나 지원 프로그램도 부족한 상황이다. 


     ▲ KBS 독립영화관 홈페이지 캡처 이미지. 

    심야시간에 방영될 뿐만 아니라 저작권 문제로 다시보기를 제공하지 않는다. 

    http://www.kbs.co.kr/1tv/enter/indiefilm 



      POV의 사례에서 보듯이 독립다큐멘터리는 공영방송에 새로운 주제와 형식을 제공하여 공공미디어의 시야를 넓혀주고, 제작자들에게는 넓은 유통망과 플랫폼을 제공해줄 수 있다. KBS을 통해 방영되는 독립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상상해보자. 다만 이 프로그램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우리의 현실에 맞는 기금지원방식과 프로그램 제작주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독립다큐멘터리와 방송시스템을 이해하는 전문가가 독립성을 가지고 프로그램을 구성할 수 있어야하고, 수신료와 지원기금을 통해 안정적인 재정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다큐멘터리가 관객과 만날 수 있는 다양한 도구와 활동을 개발하고 지원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이런 노력들이 수반될 때 프로그램이 단지 심야시간 비주류 다큐멘터리를 틀어주는 형식적인 프로그램에 머물지 않고 공공미디어 안에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는 공공문화의 선구적 실험실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주1. P.O.V 에서 제공하는 교육 프로그램에 대해 참고할만한 기사.

    (ACT! 108호, 교실로 들어간 다큐멘터리, 2018.3)





    글쓴이. 권세미



    미디액트 마을미디어교육실에서 일하며 종종 연극작업을 한다. 창작이 제일 괴롭고 즐거운 취미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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