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105호 이슈와 현장 2017.9.11]
내가 경험한 네트워크
- <미디어로 행동하라 in 성주/김천>의 기획과 진행
오재환(청주 생활교육공동체 공룡)
<미디어로 행동하라 in 성주/김천> 프로젝트 진행 이후, 아직 평가회의가 진행되지 못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이번 프로젝트의 총괄 역할을 맡았던 필자의 개인적인 기억과 의견임을 우선 밝힌다. 안 밝힌다고 굳이 누가 뭐라 그럴까 싶긴 하지만 내가 소심해서 일단 밝힌다.
▲ 2017 미디어로 행동하라 in 성주/김천
1. 2017년 3월 26일 사전모임
<미디어로 행동하라>(이하 미행)는, 전국의 미디어 활동가들이 한 곳의 투쟁현장에 모여서 4박 5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미디어를 제작하는 프로젝트이다. 지난 2014년 삼척을 시작으로 작년까지 대략 1년에 한 번 씩 밀양, 영덕, 청주 및 충북지역 등의 지역에 방문해서, 핵발전소와 송전탑, 노조 파괴 문제 등에 대한 영상, 라디오, 음악을 만들고 배포했다.
올해에는, 누군가가 사드 배치 예정지인 성주에서 미행을 진행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하면서, 3월 26일 홍대의 한 까페에서 미행의 첫 모임이 시작되었다. 일단 뭘 어떻게 할지 얘기나 해보자고 모였지만, 성주에 대해서나 프로젝트에 참여할 미디어활동가들의 근황에 대해서나 정보가 많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다채로운 얘기가 오가진 않았던 것 같다. 일단은 성주의 투쟁단위 쪽에 연락을 해서 상황을 좀 더 알아보는 동시에, 미디어 활동가들에게 연락을 취해서 사람을 모으고 기획회의의 일정과 내용을 잡아 보기로 했다.
2. 2017년 4월 22일 기획회의
미행이라는 이름은 위에서 이야기한 제작 프로젝트를 지칭하기도 하지만,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람들, 멤버가 누구인지 고정되어 있진 않지만 각자 어느 정도의 소속감과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개별 미디어 활동가들의 네트워크를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다. 미행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위의 두 가지 의미 중에서 어떤 것이 더 많이 떠오르느냐에 따라서, 이 이름을 걸고 어떤 활동을 상상하고 실행에 옮길지가 조금 달라지는 것 같다.
네트워크를 통해 일을 진행할 때 조심스러운 점은, 각자 느끼는 소속감과 책임감, 그리고 각각이 현재 처한 상황이 다 다르다는 것이다. 기획회의 날짜를 잡고 참여자를 모으기 위해 이전의 미행 참여자들과 관심 있을 만한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지만, 전화를 걸 때마다 무리한 부탁을 하는 것 같고 돈 꾸는 것 마냥 찜찜하고 그랬다. 실제로 참여를 기대했던 많은 사람들이 일정이 안 맞다거나 올해엔 참여가 힘들 것 같다는 이야기를 전해왔고, 나는 간만에 연락해서 나 필요한 것만 얘기하고 끊는 것이 왠지 미안해서 초반엔 어색하게 안부라도 묻고 소소한 대화라도 나눠 보려고 노력하였으나, 평소에 그런 거 안하는 티가 너무 나는 것 같아서 이마저도 그만두었다. 그래서 자세한 속사정을 들어 보지는 못했지만, 특히 올해엔 많은 미디어활동가들이 추가로 뭔가를 할 여력이 없었던 것 같다. 지난 10년동안 싸워야 할 현장은 늘어가고, 돈줄은 말라갔으니까. 각자의 활동과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해내야 할 일들이 발목을 잡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아픈 사람들도 있었다.
반면에, 이 네트워크에 활발하게 참여하지 않을 거라고 나 혼자 짐작했던 사람들이 의외로 흔쾌히 참여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기획회의에 올 수 있는 사람은 늘어났지만, 회의의 내용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에 대해서 더 많은 고민이 생겼다. 미행이라는 네트워크의 대표적인 활동이 1년에 한 번 꼴로 있는 4박 5일의 제작프로젝트이긴 하지만, 그동안 참여했던 사람들은 이 네트워크가 좀 더 일상적으로 다양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느꼈고, 눈에 보이는 성과는 없더라도 활동가들끼리의 네트워킹, 플랫폼, 아카이빙 등에 대한 실험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었으며, 기획회의를 준비하던 나 또한 이러한 시도를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전화를 해서 미행 이야기를 꺼냈을 때 많은 사람들의 첫 질문은 “이번 미행은 어디로 가나요?” 였다. 특히 내가 예측하지 못했던 기획회의 참여자들 중 상당수에게 미행은 제작 프로젝트로서의 의미가 더 컸던 것 같다. 네트워크에 대한 고민과 논의를 함께 이어나갈 사람들의 적극적 참여가 힘든 상황에서, 미행이 단순한 연간 이벤트로 축소되는 것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얼마간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다가, 그냥 막지 않기로 했다. 적극적인 참여가 어려운 사람들을 억지로 불러 모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미행이란 이름으로 모였다고 해서 그간 미행에서 진행된 고민과 해야 할 일을 다 지고 가도록 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지금 모일 수 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해 나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 4월 22일 기획회의를 진행했고, 올해 제작 프로젝트를 성주에서 하기로 정식으로 결정했다. 그리고 나는, 힘든 일이란 걸 알아서 되도록 피하고 싶었지만, 올해 프로젝트를 총괄할 책임자가 되어 버렸다.
3. 2017년 4월 26일
제작 프로젝트로서의 미행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같다. 우선 명백한 건 힘겹게 싸우고 있는 투쟁현장에 미디어로 연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신진 활동가를 발굴하고 현장을 경험하게 하는 등 미디어 활동가의 네트워크를 넓히고 다지기 위한 목표도 있다. 이 두 가지 목표는 늘 일치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현장의 다급한 요구에 대응하는 일은 미디어 활동가들이 보람을 느끼는 만큼 지치게 만들고, 미디어 활동가들의 고민과 욕구에 기반한 활동은 현장에서 그 필요성을 공감받지 못하거나 자칫하면 민폐가 될 수도 있다.
기획회의를 마치고 며칠 지나지 않은 4월 26일, 이제 본격적으로 미디어 활동가들과 성주의 투쟁단위에 연락을 해서 프로젝트의 일정과 내용을 잡아봐야겠다고 마음만 먹고 밍기적대고 있는데, 사드발사대 2기가 들어와 버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번 프로젝트의 총괄 책임자로서 제일 먼저 머릿속을 스친 생각은 “망했다”였다. 하지만 현장의 절박한 싸움은 그렇게 쉽게 망할 수가 없으니, 우리도 여유부릴 새 없이 뭔가를 시작해야 했다. 일단 사드가 지나가는 길목인 성주 소성리 현장에서 촬영과 속보 영상 제작 등의 연대활동을 해줄 수 있는 활동가를 찾았고, 걱정했던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시간을 내어서 달려가 주었다.
그렇게 현장에서 연대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현장에 대한 사전조사와 간담회 등 미행을 위한 준비작업을 함께 진행하게 되었다.
현장에서의 활동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쉽지 않았다. 나는 사드 2기 기습배치 이후 일주일이 넘어서야 소성리 현장에 갈 수 있었고 그 전엔 연대할 활동가들을 모집하고 필요한 것들을 챙기는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현장에 미리 가 있던 사람들이 미행 이름으로 된 현수막이나 이름표 같은 것들을 요청하길래 처음엔 이게 왜 필요한 건지 의아해 했었다. 그런데 직접 현장에 가서 보니, 일단 거기서 뭔가를 하려면 우리 이름을 알리고 사드 반대 투쟁의 일원으로 인식되는 것이 급선무였다. 언제 어떤 상황이 생길지 모르는 긴박한 상황에서, 처음 보는 미디어활동가들을 환영해 줄 여유를 기대하긴 힘들었고, 경찰 카메라로 오해받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먼저 현장에 들어갔던 사람들은 숙박을 위해 텐트를 칠 장소부터 눈치껏 알아서 확보해야 했고, 마음 놓고 촬영을 할 수 있는 여지도 좁았다. 며칠 동안 계속 카메라를 들고, <미디어로 행동하라>가 뭔지 묻는 사람들에게 설명을 하고, 노래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 현장 집회에서 공연을 하고, 그러면서 급한 대로 현장에 있던 사람들과 미약한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도, 미행의 제작 프로젝트를 어떤 형태와 내용과 일정으로 할 수 있을지, 하다못해 그냥 이걸 할 수는 있는 건지를 확정하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소성리 상황실 쪽에서는, 미디어 활동가들에게 급하게 요청해야 할 일들은 많은 반면 미행의 제작 프로젝트 자체에 대해 함께 고민해 줄 수 있는 상황은 못되었다. 미행 안에서도 이 프로젝트를 이대로 진행하는 게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예전에 하던 대로 4~50명 되는 인원을 모집해서 4박 5일 동안의 제작활동을 강행하기엔 예측할 수 없는 변수들이 너무 많았고, 특히 전에 현장에서의 미디어활동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이 프로젝트가 긍정적인 경험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인가, 혹시 사고라도 나지 않을까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은 다 달랐으며, 의견이 다른 사람들이 전국에 흩어져 있었기 때문에 이 네트워크 사업의 총괄 역할을 맡고 있는 나는 전화를 걸어서 상황을 설명하고, 의견을 듣고, 그 의견을 정리해서 다른 사람에게 또 전화를 걸고, 또 다른 의견을 듣고, 한참을 그렇게 헷갈려 하고 있었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미행 참여자들 사이에서 현재 상황의 어려움에 대한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되고 각각의 의견이 더 이상은 좁혀지지 않는다는 판단이 섰을 때에야,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내가 결정하고 추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 이번 제작 프로젝트를 진행하되, 공개모집은 하지 않고 어느 정도의 현장 경험이 있는 활동가들이 각자 알아서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을 불러 오기로 했다. 사드라는 사안에 대한 주민들의 이야기를 미디어로 제작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이 현장에서는 그 과정에서 생기는 어려움을 각자 알아서 책임질 수밖에 없다고 봤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다. 미행의 두 가지 목적 중에서 미디어 활동가 네트워크에 대한 부분을 어느 정도는 포기한 셈이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이번 제작 프로젝트의 형태가 잡히고, <미디어로 행동하라 in 성주/김천>이라는 정식 명칭이 정해지고, 프로젝트 일정이 확정되었다.
4. 2017년 6월 27일 ~ 2017년 7월 1일
일단 날짜가 정해진 후엔, 큰 무리없이 일이 진행되었던 것 같다. 이 프로젝트를 처음 준비하기 시작했을 때는 필요한 일을 누가 얼마나 함께해줄 수 있을 것인지가 불투명했기 때문에 모든 걸 내가 혼자 다 해야 할 것처럼 불안해했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거듭 연락을 하고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동안에, 현장 연대 및 지역 코디네이팅, 영상 기획과 제작, 라디오 및 문화제 기획, 뮤지션 섭외 등의 역할을 맡을 사람들이 하나 둘 확정되었다. 필요한 때가 되니 참여자들은 의무감이나 미안함을 넘어서 자기 욕구를 가지고 움직이며 할 일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고, 처음에 걱정했던 것보다 내가 신경 써야 할 일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리고 처음에 기대했던 것보다 많은 일들이 이뤄졌다.
이번 미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현장 상황은 너무 유동적이고 미디어 활동가들은 너무 바빠 보였기 때문에 욕심을 많이 접을 수밖에 없었다. 위에서 얘기했듯이 새로운 미디어 활동가들을 불러모으고 연결시키는 네트워크로서의 역할은 거의 포기한 상태였고, 어느 정도 현장 경험이 있는 영상 활동가들 몇 명이 모여서 적어도 한 편의 영상을 완성하고, 예전 미행과는 다르게 뮤지션들을 초청해서 미행에서 음악으로 어떤 것을 할 수 있는지 한 번 가늠해 보고, 마지막날 만들어진 영상과 뮤지션들의 음악으로 한 차례의 문화제를 사고 없이 치러내는 것 정도가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6월 27일부터 7월 1일까지의 일정이 끝나고 돌이켜 보니, 우린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해냈던 것 같다. 영상 활동가들은 각자의 관점과 목소리로 성주 주민과 연대자들의 모습을 담은 3편의 영상이 만들어졌고, 뮤지션과 라디오 팀은 매일같이 공연을 하고 현장 라디오 생방송을 내보내면서 총 7곡의 노래를 만들었다. 그리고 정량적으로 설명하긴 힘들지만 이번 미행을 통해 현장에 처음 와본 영상 활동가와 뮤지션들은 큰 사고 없이 스스로도 뿌듯해할 만한 성과를 얻고 갔다고 느낀다.
5. 이후
<미디어로 행동하라 in 성주/김천>의 모든 일정이 끝난 후에도 일부 활동가들은 성주와 김천에 남거나, 관련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영상 활동가들 중 몇 명은 사드 문제에 관한 장편 다큐를 만들기로 하고, 현재 촬영, 편집 및 현장 연대를 진행 중이다. 뮤지션들은 성주에서 만든 노래를 모아 <새 민중음악 선곡집 – 소성리의 노래들>이라는 음반을 제작 중이고, 추후에 성주와 김천으로 다시 가서 공연을 하려고 계획하고 있다. 사실 다른 재주가 많지 않은 나는, 소성리에 꽤 오래 머물렀지만 주민들이나 연대자들의 기억에 많이 남을 뭔가를 하진 못한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이 기억할 만한 영상 활동가들, 뮤지션들을 만나는 데에 내가 어떤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나름 뿌듯함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뿌듯함과는 별개로, 프로젝트가 마무리된 후 “이 짓을 두 번은 못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이번 미행을 준비하고 일이 되게 만드는 과정에서 고민도 많았고 고생도 많이 했으니까. 그럼 내년부터 미행은 어떻게 되려나? 아마도 누군가 다른 사람이 올해 내가 했던 역할을 할 수도 있고, 아니면 어쩌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또 하고 있을 수도 있을 거다. (또 하겠단 얘기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한다.) 뭐가 됐든 미행이라는 제작 프로젝트이자 네트워크는 꽤 오랜 시간 동안 계속 유지될 것 같다. 내 생각에는, 각자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절실한 이유를 가진 현장, 중간에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소통할 수 있는 한두 사람, 이렇게 세 가지 정도의 요소가 충족된다면 이 네트워크는 어떻게든 굴러간다. 물론 이 요소들이 항상 자연스레 충족되는 건 아닐 테지만,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그때의 상황을 살피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우린 또 어떤 투쟁현장에서 정신없이 촬영을 하고 방송을 하고 노래를 부르다가 생각보다 괜찮은 결과를 마주하며 놀라고 있지 않을까. 심지어 그러다 보면 누군가가 적극적으로 자기 의욕을 드러내며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기획을 제시하는 순간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필자소개] 오재환
- 청주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에서 활동하고 있다. 농사도 짓고 음악도 만든다.
[ACT! 107호 이슈와 현장] "원래 그런 것은 없었다." - 방송 제작 실태와 과제 (0) | 2017.11.06 |
---|---|
[ACT! 107호 이슈와 현장] 독립적임에 대해서 - 미디액트 15주년 '다시 그리기' (0) | 2017.11.06 |
[ACT! 105호 이슈와 현장] 보수도시의 변화를 기대하며 - 국민마이크 in 대구 (0) | 2017.08.29 |
[ACT! 105호 이슈와 현장] 독립영화와 유통 사이 - <노무현입니다>와 <옥자> 이후를 고민하다 (0) | 2017.08.29 |
[ACT! 105호 이슈와 현장] 시민들이 지켜주고 싶은 4기 방통위가 되길 바란다 (0) | 2017.08.29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