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105호 이슈와 현장 2017.9.11]
시민들이 지켜주고 싶은 4기 방통위가 되길 바란다
- 방송·시청자·통신·노동·공동체미디어, 도발적 정책 제안
권순택(언론개혁시민연대 활동가)
‘4기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에 바란다’
토론회 제목 그대로였다. ‘방송통신기본법’ 제1조는 “방송과 통신의 융합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여 방송의 자유와 공공성 및 공익성을 높이고 방통위의 독립적 운영을 보장함으로써 국민의 권익보호와 공공복리의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방통위가 그 목적에 부합하게 운영돼 왔다고 자신 있게 답할 사람은 없어 보인다.
이명박 정부에서 출범한 방통위는 지난 9년 동안 법 목적과는 달리 끊임없이 정치적 행보를 이어왔다. 정부는 초대 방통위원장에 ‘MB멘토’라고 불리던 최시중 씨를 앉혔다. 그 후, 벌어질 일은 뻔했다. 최시중 씨가 방통위원장으로 처음 한 일은 KBS 정연주 사장을 내쫓기 위해 김금수 이사장을 만나 종용한 일이었다. 그와 함께 보수신문에 방송을 내주기 위해 종합편성채널 도입을 추진했다. 그 두 축으로 미디어 지형을 보수화 하겠다는 게 이명박 정부의 의도였고 결과적으론 성공했다. KBS에는 특보출신 김인규 씨를 비롯해 입맛에 맞는 사장을 내리 꽂았다. MBC 또한 김우룡 방문진 이사장-김재철 사장 임명을 시작으로 망가지기 시작했다. TV조선과 채널A, MBN 등 종편에서는 정권에 유리한 리포트들이 쏟아졌다. 박근혜 정부는 이미 망가진 공영언론들을 회복시킬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고영주-이인호 등 뉴라이트 인사를 공영방송 최고 의결기구 이사장으로 앉혀 이념적 색채를 강화하는 데에 골몰했다. 그러니, 시민들이 주체가 된 공동체미디어는 신경을 쏟을 만한 곳이라고 조차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게 지난 9년이었다.
뚜렷한 철학 없이 운영되다보니 방통위는 ‘정치적’ 사안이 아닌 때에는 방송·통신 권력에 의해 움직였다. 말마따나 공무원이 퇴직하더라도 자리를 보전해줄 수 있는 곳은 시청자-시민이 아닌 사업자일테니 말이다. 그렇게 방통위는 방송의 주인인 시청자-이용자들의 권한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왔다. KBS수신료 인상 그리고 쏟아진 광고 완화 정책, 블랙아웃 사태 등 대부분의 정책 추진에 있어서 시청자-이용자는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4기 방통위가 민주정부에서 출범하게 된 것은 그래서 기대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28개 단체들이 모인 까닭 또한 같은 맥락에서였다. 이효성 위원장은 인사청문회에서 “의도적으로 시청자-이용자의 입장에 더 서고, 그 분들을 더 많이 만나 의견을 듣겠다”고 밝힌 바 있다.
▲ 토론회 ‘4기 방송통신위원회에 바란다’ 2017.08.10.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19층
9년 전으로 되돌리기?…미디어생태계, 미래를 상상하자!
그렇다면 과연 9년 전으로 돌리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았다. ‘과거’가 아니라 미디어생태계의 ‘미래’를 그려야 한다는 데에 단체들이 합의했다. 토론회에서 발제와 토론을 통해 도발적인 그러나 실현 가능한 정책들을 내놓게 된 까닭이었다.
토론회에서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공동대표는 ‘방송통신위원회 평가와 시청자 이용자 관점의 거버넌스’라는 제목으로 발제를 맡았다. 그는 “방통위는 시민들이 미디어 정책에 개입할 수 있도록 다양한 창구를 열어주는 기능을 해야 한다”며 “그것이 촛불혁명의 시대정신”이라고 강조했다. 그러고는 ‘시민참여형 정책 개입 검토가 가능한 영역’으로 △공영방송정상화, △공영방송을 포함한 공공서비스 획정, △방송사 재허가 및 재승인, △공영방송 이사 및 방송사 시청자위원회·시청자평가원 공모 추천 기능, △보편적 서비스 고도화 및 정보격차 해소, △성별·연령별·지역별 미디어다양성 확대, △수신료 산정 및 배분·평가, △이용자영향 평가를 포함해 시청자 이용자 관점의 R&D활성화, △시청자 이용자 피해구제, △지역 및 공동체미디어 활성화 지원, △미디어교육 통합 지원 등을 설정했다. 또한 일관성 있는 정책비전과 거버넌스의 합리적 재편을 위한 사회적 논의기구 구성을 제안했다. 방통위가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제시한 ‘방송미래발전위원회’와 어떻게 조우할 수 있을지 향후 지켜봐야할 대목이기도 하다.
‘방송·시청자’ 영역 토론을 맡은 노영란 매체비평우리스스로 사무국장은 4기 방통위에 “사업자-공급자 중심이 아닌 시청자-이용자 중심의 기구로 개편하고 개방성, 투명성, 책임성을 강화한 위원회로 운영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시민주권 강화’를 위한 정책으로 △무료보편적 방송 및 시청접근권 강화(다채널 방송 확대·직접 수신 환경 구축 등), △무분별한 광고규제완화 중단(지상파 편법 PCM 광고 중지·광고정책 전반적 검토), △유료방송 공공성 개념 확립 및 공적책무 부여(지역별 시청자위원회 설치 의무화·종편 의무전송 등 혜택 회수·홈쇼핑 채널 개선), △미디어교육 활성화 위한 법제정(민관협의체 운영), △시청자주권 복지 및 참여 강화(시청자위원회 책무 확대·행정심의 축소) 등을 제시했다.
‘통신’ 영역에서는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가 ‘인터넷 내용심의 폐지’, ‘인터넷·휴대전화 실명제 폐지’, ‘임시조치 제도 개선’, ‘이용자 개인정보 보호’를 중심으로 토론했다. 문재인 정부는 앞서 인터넷상 정치적 표현물에 대해 자율규제로 단계적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그와 관련해 오병일 활동가는 “보다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해야한다”며 “또, 이미 오래 전부터 민간 업체의 자율규제기구(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가 활동해온 것을 고려할 때, 굳이 2021년까지의 장기계획으로 설정할 이유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방통위에 대해서도 “불법정보라고 판단되는 게시물에 대해 법원의 판단 없이 삭제를 명령할 수 있다”며 해당 권한의 폐지를 주장했다. 또한 방통위가 지정권한을 가진 ‘본인확인기관’ 제도가 인터넷 실명제를 부추기는 기반이 되고 있다면서 폐지를 주장했다. 이 밖에도 ‘범정부 비식별조치 가이드라인’은 재검토를 요청하기도 했다.
‘통신노동’ 영역에 있어서는 희망연대노동조합 박장준 사무국장이 토론을 맡았다. 그는 “보편서비스라고 할 수 있는 방송통신 영역의 밑단(설치·수리·상담·영업·망 유지보수 등 상시지속업무)이 하도급 구조로 유지되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SO(종합유선방송)의 허가 및 재허가 심사기본계획 중 주요 심사 항목에 ‘노동’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방통위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앞서 CJ헬로비젼, 가야방송 등 24개 SO의 재허가를 승인하며 ‘협력업체 종사자 고용안정’ 등을 명시한 바 있기도 하다. 하지만 부족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경영계획의 적정성’ 항목을 기존 70점에서 80점으로 상향하고, 늘어난 10점을 ‘일자리 창출’로 설계했기 때문이다. 그는 “총점 1000점의 심사에서 10점은 당락을 가르거나 사업자를 규제할 수준이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해당 토론문 제목은 ‘방송통신노동 정책, 1000점 만점에 10점 드립니다’였다. 이 밖에도 박장준 사무국장은 유료방송플랫폼을 비롯해 방송의 공공성을 목적으로 방송사업자 소유규제를 정비해 투기자본의 방송-통신에 대한 영향력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공동체미디어’ 영역은 송덕호 한국공동체라디오방송협회 상임이사(마포공동체라디오 대표)가 토론을 맡았다. 근 10년 째 정부로부터 방치돼 있는 분야이기도 했다. 송덕호 상임이사는 “정부부문의 제1섹터 ‘공영미디어’와 민간영리부문에 해당하는 제2섹터 ‘민영미디어’와는 구별되는 시민영역으로의 제3섹터 ‘공동체미디어’에 대한 명확한 정책적 인식과 그에 따른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공동체미디어 진흥을 위해 △공동체미디어 활성화를 위한 특별법 제정, △공동체미디어 담당 방통위 조직 신설, △공동체라디오 주파수대역 마련, △기금을 비롯한 독립적이고 지속가능한 재원 시스템 구축 등을 제시했다. 그는 시청자미디어센터의 경우, 문화체육관광부 및 영화진흥위원회‧지자체‧지역MBC‧민간단체 등 기타 지역미디어센터와의 정책조율을 주장했다. 광역 내 지역미디어센터 간 수평적 연계‧협력체계를 수립하는 것이 핵심과제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 토론회 ‘4기 방송통신위원회에 바란다’ 2017.08.10.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
4기 방통위, 토론하고 또 토론하고 그리고…합의하라!
이날 토론회에서는 4기 방통위를 이끌어가야 할 상임위원들이 귀담아 들었으면 하는 내용들이 집중적으로 제안됐다. 그런 점에서 이효성 위원장의 불참이 어느 때보다도 아쉬운 부분으로 남았다. 대신 방통위에서는 김영관 방송정책국장이 참석해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는 “이번 정부의 기본 방향이 시민참여형 정책 추진”이라며 “일련의 과정 속에서 공식 절차 속에서 노조 입장이나 시민단체 입장을 반영하는 방안을 생각해보겠다”고 밝혔다. 이어, “문재인 정부 공약과 100대 과제에도 수신료위원회 설치 등 반드시 시청자가 중심이 되는 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고 덧붙였다.
시민들의 바람은 한 가지다. 방통위가 법에서 보장된 ‘독립성’을 중심으로 정책을 펼쳐달라는 것이 그 첫 번째다. 더 이상 누구로부터 추천을 받았는지(정당 및 기관)에 따라 싸우지 말고 방송철학을 가지고 토론하고 또 토론하고 기구성격에 맞게 합의해 정책을 추진하길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시청자-이용자의 권익이 있어야 한다는 게 우리 단체들의 바람이기도 했다.
방통위 정책은 지난 9년간 시민사회로부터 단 한차례도 ‘호응’을 받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최시중 위원장일 때부터 이계철-이경재-최성준 위원장 체제까지 “사퇴하라”라는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4기 방통위는 제발 그 같은 과거와 결별했으면 한다. 이제는 새로운 모습을 보고 싶다. 정치권에서 방통위를 흔들고 나올 때, 그 뒤를 받쳐주는 시민들의 모습을 말이다. □
[필자소개] 권순택(언론개혁시민연대 활동가)
9년만에 시민단체로 돌아왔다. 미디어스 기자로 있을 때에는 취재하고 그에 따라 글을 쓰면 됐었다. 그런데, 이제는 대안까지 생각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서 '좌충우돌'중이다. 안녕하세요, '신입'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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